2007. 11. 17. 17:34ㆍ선교자료/2.중국선교자료
열차에서 벌인 ‘엉덩이 힘겨루기’ 한판
2004년 8월 어느 날이다. 홀로 떠난 ‘실크로드와 3대 석굴 둘러보기’ 배낭여행을 거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의 일이다.
19박20일의 여행 동안 최소 10시간에서 최장 48시간이나 걸리는 열차를 연이어 타면서도 워푸(침대칸)나 잉워(딱딱한 침대칸)에는 한번도 오르지 못하고 잉쭤(딱딱한 좌석)나 우쭤(입석) 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열차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날엔 관광지를 둘러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 연속되는 여행이라 피곤은 쌓일 대로 쌓였다. 뤄양(낙양)에 있는 용문석굴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모두 마치고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귀로에 오른 이날도 정저우(정주)~심양 열차표를 어렵게 잉쭤로 구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 열차를 타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여야만 했다. 열차표를 예매한 뤄양에서 정저우까지 가는 열차를 탔지만 이 열차가 너무 완행이라 정저우~심양 열차 출발시간까지 정저우역에 닿을 수가 없었다. 열차표를 사면서 이 열차가 심양행 열차 출발시간 전에 정저우에 도착할 수 있느냐고 분명하게 물어봤다. 그러자 역무원은 갈 수 있다며 나에게 열차표를 팔았다.
늘 이렇다. 일일이 따져보고 챙겨보는 확인하는 게 없다. 확인이 어렵거나 그 과정이 복잡하거나 귀찮으면 무조건 자기 편한대로 해석해 결정을 내린다. 맞으면 다행이고 아니어도 그만이다. 나중에라도 확인해 따지면 나몰라하고 만다. 설사 문제가 생겨도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지 않으냐는 식이다.
타고 가는 열차가 너무 느려 여승무원에게 다시 확인해보니 심양행 열차 출발시간까지는 도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10분 정도는 늦게 도착한단다. 중국의 열차 출발 및 도착시간은 거의 정확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걱정을 하니 기다려보란다. 그는 친절하게도 열차장에게 내 형편을 이야기해 고속 열차가 있는지를 알아본 뒤 다음 정차역에서 내려 고속열차로 갈아타고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다. 중국에서 만난 정말 몇 안 되는 친절하고 적극적인 서비스를 아끼지 않은 좋은 승무원이었다. 덕분에 시안에서 상하이로 가는 고속열차로 갈아타고 정저우까지 갈 수 있었다.
정저우에 도착하니(정저우역은 중국 철도의 중심 역으로 엄청 크다. 플랫폼만 10여 곳이 넘는다) 다행스럽게도 저 너머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심양행 기차가 출발하기 바로 1분 전이다. 역무원의 안내를 받아 지하도를 통해 건너 플랫폼으로 뛰어가서 열차에 올라타니 곧바로 출발한다. 열차가 움직이자 승무원이 차량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줘 내 좌석을 찾아갈 수 있었다.(중국은 열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은 차량 사이를 오가는 문뿐만 아니라 화장실 문까지 반드시 잠근 다음 열차가 다시 출발을 해야 승무원이 문을 열어준다)
이렇게 이날은 정신없이 열차를 갈아타며 바쁘게 뛰어다닌 하루였다.
열차에 오른 안도감에 한숨을 돌린 나는 좌석을 찾았다. 두 명씩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네 명이 앉는 좌석이었다.(중국 열차 좌석은 6명이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자리와 4명이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자리 사이에 통로가 있다) 이미 내 자리(복도 쪽) 안쪽인 창문 쪽에는 마흔대여섯 정도 돼 보이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옆자리 사람이 왔는데도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배낭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자리가 좁다. 좌석의 중간쯤에 앉아 안쪽에 자리가 많이 남아 있는데도 이 녀석은 엉덩이를 안쪽으로 들여 앉을 태세가 전혀 아니다.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 있던 나는 그냥 말없이 자리에 엉덩이를 살짝 앉혔다. 그런데 남아 있는 자리가 워낙 좁아 내 엉덩이가 녀석의 엉덩이와 자연스레 부딪혔다. 그 순간 녀석의 엉덩이에서 상당한(?) 힘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어라! 뭐 이런 친구가 다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날은 정말 힘들고 피곤했기에 무시하고 내 엉덩이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약간의 힘을 실어 그대로 안착을 시켰다. 그러자 녀석이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며 더욱 강하게 버티는 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화가 나고 한편으론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나도 “에라, 모르겠다. 눌러버리자”며 밀려나지 않고 상대적으로 튼실한 엉덩이에 힘을 줬다. 이렇게 여행의 피날레는 웃지 못 할 ‘엉덩이 한판 싸움’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날 엉덩이 싸움은 30분을 넘어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녀석의 엉덩이 내공(?)은 엄청 강력했다. 하지만 내 엉덩이도 살집이 좀 있는데다 온몸이 천근만근이어서 만만찮은 힘이 실렸다.
중국인을 상대하는 일은 이렇게 힘이 든다. 양보란 없다. 양보는 고사하고 배려도 없다. 아니 배려를 떠나 예의가 없다. 사실은 예의가 없다기보다 수치심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맞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대하면 항상 당황스런 상황을 맞게 된다. 손해 보기 십상이다. 그러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중국을 욕한다. 하지만 미리 알면 당하지 않고 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중국이 세계 경제대국이 되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 강대국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미국도 어쩔 수 없는, 유럽이 눈치 보는 실질적인 세계 최강국이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지도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니 될 수가 없다. 중국인들한테서 세계 패권주의적인 뿌리 깊은 중화주의는 찾아볼 수 있어도 인류 보편적인 도덕이나 예의,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 나아가 남을 위해 실천하는 희생정신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양보를 받기란 무척 어렵다. 특히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양보는 아예 포기하는 게 낫다.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분명하고 끈질기게 요구해서 마지못해 내주는 수준이라도 챙겨야 한다. 열차역이나 버스정류장 등 공공장소에서뿐만 아니라 호텔 소파 같은 자리에서도 자신의 옆자리에 짐을 올려놓아 다른 사람이 아예 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모습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면서도 그걸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남을 위해 배려하거나 예의를 차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곤 모르쇠하며 끈질기게 버틴다. 이런 경우엔 분명하게 따져 양보를 받는지 아니면 치사하고 더럽긴 하지만 같이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특히 기차 좌석의 경우 더욱 그렇다. 미리 좌석을 차지하고 옆 사람이 오든 말든 최대한 편하게 드러눕거나 버젓이 발을 올려놓는다. 자리 양보를 요구해도 처음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몇 차례 더 요구하면 못 이기는 척 자리를 내준다. 하지만 열차 승무원이 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승무원은 다짜고짜로 툭툭 치면서 명령하듯 일어나라고 한다. 그러면 ‘찍’ 소리 없이 두말 않고 벌떡 일어난다. 열차 안에서 승무원의 권한은 거의 절대적이다. 관료나 공직이 힘을 가지고 백성 위에 군림하는 사회인 탓이다.
녀석의 엉덩이에 실린 힘만큼 나도 말없이 힘을 계속 줄 수밖에 없었다. 서로 못할 짓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여기서 밀리면 하룻밤을 더 큰 고통 속에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나로서는 지속적으로 힘을 주며 버티는 수밖엔 없었다.
마침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녀석의 엉덩이가 약간 ‘부드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지나자 녀석의 엉덩이가 안쪽으로 조금 물러났다. 나는 내 자리만큼의 ‘전리품’을 차지하곤 더 이상 ‘영역’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나도 이제 힘 좀 빼고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곯아떨어져 한숨을 잤다. 잠에서 깨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자칫 다시 엉덩이에 힘을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더는 그런 일은 없었다. 한번 물러선 녀석의 엉덩이는 여유 있게 자리를 내어놓고 안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조금 지나니 녀석이 얼굴 두껍게도 싱글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면서 내 몸무게가 몇 근인지를 묻는다.(중국에서는 사람 몸무게도 근으로 말한다. 한 근은 500그램이다) 아까 일을 생각하면 얼굴 쳐다보기도 민망할 터인데 도대체 제대로 정신이 박힌 녀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싱글거리며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어 약 160근 정도 된다고 하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기는 130근 정도라고 말한다. 마치 자기가 엉덩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달은 듯한 태도다. 다른 한편으론 몸무게가 나보다 훨씬 적은데도 엉덩이 싸움에서 버틸 만큼 버텼다는 대견함을 표시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이런 후안무치한 녀석이 있나. 이건 바로 자기가 의도적으로 엉덩이 싸움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게 말을 걸기에 앞서 미리 엉덩이를 불편하게 해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붙여온다. 참 웃기는 녀석이다 싶은데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니 그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고, 또 적어도 10시간 가까이 바로 옆에 앉아 같이 가야 하니 말을 받아주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못 배우거나 성격이 이상한 녀석도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게 이야기를 펼쳐가는 꽤 괜찮은 친구다.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 중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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