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돌아온 21명이 왜 비난받아야 하나?
2007. 9. 26. 23:43ㆍ선교자료/1.글로벌선교회
요즈음 아프간 사태로 인해서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말할 수 없이 나빠졌다. 탈레반은 아프간에 봉사하러 갔던 23명의 한국인들을 인질로 납치해서 6주간 토굴과 오두막집에 가두어 놓고 두명은 죽이고, 몸이 아프다고 약을 요청하자 여기는 병원이 아니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고 한다.
2명을 먼저 풀어주고 나머지는 풀어주면서 거액의 몸값을 챙겼다는 소문도 있다. 이들을 풀어주면서 탈레반 대변인은 “이번 납치 사건의 성과가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들을 일으킬 것이다”고 했단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 사건을 통해서 살아돌아온 21명이 마치 도둑질하다가 들켜서 실컷 얻어맞아 온 몸이 피멍이 들었는데도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숨죽여 울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 딱해서 이들을 보고 느낀 것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이런 천인공로할 일을 저지를 탈레반들인데 왜 피해자들인 납치되었던 사람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가?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들에게는 욕을 하는 대신에 격려를 해야 하고 위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칭찬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들이 자랑스런 한국인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물론 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하는 내게 욕을 바가지로 퍼붓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청년들이 많아야 한국을 복을 받는다고 감히 주장한다.
예를 들어보자. 강도가 많이 출몰하는 어떤 동네에 처절하게 가난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그들의 소식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들을 도우러 가려고 하자 아버지가 거긴 위험하다고 못 가게 말렸다. 이 청년은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 몰래 거기에 갔다가 그만 강도에게 붙잡혀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흠씬 얻어맞고 몸이 만신창이 되어서 돌아왔다.
이런 아들이 있다면 아버지 말을 안 듣더니 꼴좋다고 비난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가슴 속에 이웃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격려해야 하는 것인가? 근시안적으로 보고 아들을 꾸짖고 종아리만 때린다면 그 아이는 스스로 결심하고 매정한 인간으로 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 아들의 창창한 미래를 생각하면 이런 따뜻한 행동을 격려하고 칭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아이는 계속해서 선을 행하고자 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사회가 따뜻해지고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들이 칭찬받아야 한다고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 지역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갔다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그들은 몸으로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둘째: 그들의 봉사는 물질적 희생을 동반한 봉사였다. 입으로 만의 봉사가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고 회사에서 휴가를 얻어서 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을 욕하려면 수백만원 정도의 금전적 희생을 해 가면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남을 도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을 돕기는커녕 비난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셋째: 그 힘들고 지친 장기간의 토굴 생활의 악조건 속에서 총을 들이대면서 개종을 강요하는 위협을 이겼을 뿐만 아니라 개종하면 풀어준다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자신들의 신념과 신앙을 지켰다는 것이다. 쉽게 변절하고 상황 따라 지조가 흔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넷째: 이들은 잠시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을 그 토굴 속의 고통 속에서 언제 누구를 무작위로 불러내어 죽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두 명을 석방시킨다는 소식에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움을 보였다.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 누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엄청난 희생적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들을 비난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틀림없이 서로 먼저 석방되고자 아귀다툼을 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다섯째: 이들은 역사의 빚을 갚고자 했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쇄국정책으로 서양 선교사들을 칼로 목을 베어 죽이고 대동강에 왔던 제너럴셔먼호라는 상선을 불태워 사람들을 다 죽이고, 목민심서에 보면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었던 사람까지도 다 찾아 처형을 하는 탈레반보다 더 가혹한 엄청난 기독교 핍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선교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처절하게 폐허가 되었을 때에 달려와서 옥수수빵과 의류와 우유를 나눠주었고 여성들과 평민과 천민들에게도 글을 가르쳐 주었고 새로운 가치관과 신앙과 신기술들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 것이다. 이번에 납치되었던 사람들은 이 사랑의 빚을 갚을 만큼 우리는 성숙해 졌고 복을 받았으니 이제 나누어 줘야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런 일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랑거리이며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 단기간 내에 6.25의 잿더미 속에서 세계 굴지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며 이제는 남을 돕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법에서 금한 것을 어기면서 다시 들어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을 탓하며 봉사가 아니라 선교라고 비난만 일삼고 있다면 오히려 이런 일을 저지른 탈레반에게 당위성을 인정해 주는 것일 뿐 우리 중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처음에 배형규 목사를 살해할 때 이들은 “종교는 상관이 없다. 다만 그들이 미국과 아프간 정부를 돕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백성들이 계속해서 종교문제로 피납자들을 비난을 하는 분위기를 보고 나중에 “이들은 우리의 종교를 포기하게 하려고 온 자들이기에 응징했다”고 말을 바꾼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한민국 백성들은 더 이상 그들의 정치 술수에 속아 탈레반의 속임수에 맞장구치며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이 자랑스런 사건을 오히려 수치스런 사건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시각을 바꿔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은 국위 손상을 가져오며 대한민국 국민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이 있으면 왜 진짜 큰 죄를 짓고 한 마디 사과도 없고 수치심도 없는 탈레반을 비난할 용기는 없는가?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이란 선교사 이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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