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행사 요약설교 (입관,발인,하관, 어린이임종, 입관,발인,하관설교 )

2007. 7. 18. 17:50목양자료/6.교회행사 자료

바울의 인생관  (입관-1)
딤후 4 : 6-8        231,402,544
우리 인생은 이 땅에 잠시 잠깐의 생애를 살다가 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언겐가는 모두다 이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울의 생애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

1, 과거의 생애 .
바울은 인생을 투쟁하는 전쟁터로 보았다. 그는 을바른 인생. 후회없는 생애를 살기 위해서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했다. 싸움이란 적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는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이생의 정욕. 육신의 정욕.세상의 자랑이다. 이것들은 우리의한펑생을 괴롭게 하다가 죽음과 동시에 사라진다.

2, 현재의 생애
바울은 지상 사역을 부7런씻 다 필하였다고,갈 준비를 온전히 갖추었노라고 확신했다. 이와같이 고백자 확신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나도 과연 숨을거둘 때 이와같은 아름다운 확신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부에 처할 줄로 알고 가난 속에서 자족할줄 알며 오직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해 살았던 바울이다.

3, 미래의 생애 .
바울은 죽음을 예상하고서,"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딘로'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미래에 받을 상급을 사모함으로 죽음에서도 오히려 위안과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바울은 진리를 위해 싸왔으며 복음을 위해 생애를 다바쳤다. 그리고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았다.                  





죽음을 위한 준비   (임종-2)                 
사 38 : 1-3           f 294,295,296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두지 않고 공평하게 임한다. 그리고 이 죽음은 어김얼이 숨김없이 조금도 오차 없이 사람의 생명을 잇아간다. 이 죽음으로 인하여 사람은 그가 생전에 행했던 그대로 심판을 받는다.       

1, 우리는 죽은 자의 영흔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장례예식의 목적은 죽은 자의 상태를 진척시키기 위해 집행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영흔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어느 곳에도 엄다. 우리는 친지들이나 이웃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의 영흔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해야 하지 그들이 이미 죽은 이후에 기도 한다는 것은 아무런 효능이 없다.                     

2, 유족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
장례식의 중요한 목적은 남아있는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게하기 위함에 있다. 비록 장례식이 우리 영혼의 상태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자의 죽은 시신을 짐숭과 같이 아무렇게나 매장할 수는 없다. 장메식 의 또 하나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기 위합에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엄연한 진리를 망각하기 립다. 시간과 감각에 속한 것들에 열중하는 동안 세상 재리에 빼앗겼던 마음을 영원한 것들로 되돌아 오게 함은 중요한 일이다.





인간들의 행진  (입관-1)
욥 30 : 23            225.467,532
욥은 극한적인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 그에게  사랑하는 자녀들과 아내가 떠나갔다. 소유도 모두 떠나  갔고 종들도 떠나갔다. 절친한 친구들은 그를 위선자  사기꾼으로 몰아 붙였다.

1,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가 죽어 무덤에 묻히는 것은 우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위대한 조성자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하셨기 때문이다. (히9 : 27) 그러므로 인간이 죽어 묻히는 무덤이야  말로 인간 본연의 처소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가장 공평한 장소인 것이다.

2, 죽음은 심각한 것을 깨닫게 힌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고서 자신의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하는 기회로 삼는다. · 우리는 시간을 영원처림 생각하거나 영원을 시간처럼 생각하는 착각을 하고 있다가 죽음을 목격하고서 이를 시정하곤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이야 말로 우리의 위대한 스숭이요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3,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붙잡도록 고무시킨다.
임박한 죽음을 의식하는 자는 영생을 사모하기 마련이다. 그런 자에게 매 순간 순간은 가치있고 보람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죽을때 영혼을 생각하게 하고 영생을 사모하게 하신다.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얻을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죽음은 인생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므로 영생을 사모하여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것이다.                      





영원히 멸한 사망  (발인-1)
(사 25 : 8)     290.532,544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죽음위에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본문은 인간 최대의 원수인 사망을 이기시고 숭리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승리 .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와 결탁하여 그리스도를 죽이고 무덤 속에 넣은 후 군병들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사망의 권세가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그리스도를 더 이상 그 착고에 매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망을 이기겼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인생들에게까지 사망에서 부활을 맛보게 하셨다.

2, 사람의 공포를 물리친 승리 .
사망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그의 영과 혼과 감정에까지 스며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공포의 도가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을 향해 담대히,"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3, 면류관으로 말미암은 승리 .
믿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림으로 그 숭리를 온전하게 확증시킬 수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숭리로 사탄을 멸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땅위에 살고 있지만 이미 승리한 자로서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 아래서 믿음으로 길를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촬로 사망을 멸하고 영원한 승리를 얻었으딜로 사망을 두려워 말자.





인생에 대한 평가  (발인-2)
(시 90 : 9-10)     289.297.536

인생은 원래가 가치있는 존재이며 가치있는 사역을 하다가 전능자를 만나 뵈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어야 할 자이다.

1, 인간 연수에 의한 평가
오늘 본문은 인생이 살았던 연수게 대해 언급하고 있다 지상에 태어났던 대부분의 인간들은 70, 80의 생애를 살다가 죽어야만 한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유년시절과 어린이 시절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연수의 길고 짧7이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다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

2, 행위에 의한 평가
인간의 생명은 연수에 의해 평가되기 보다 그 행위에 의해 평가된다고 봄이 더 합당하다. 현대 문명의 이기는 이전에 여러 해 걸리던 것을 짧은 시간에 깨끗이 해결 지어 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어진 순간 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보다 중요하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목표로 그 영광을 기대하떠 살아야 한다.

3, 내세 준비에 의한 귐가.
현재의 생애를 잘 사는 방법은 내세의 생애를 잘 준비하는데 있다고 봄이 옮다. 그러므로 인생은 초기부터 진정한 기반을 잘 선택하여 합당한 재료로써 맹렬한 불에도 견딜만한 집을 지어야만 할 것이다. 성도의 진정한 준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승리 (하관-1)
(고전 15 : 57-58)   f 384,396,397
사망의 세력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망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1, 죽음에서의 승리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죽음에 대해 숭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죽음의 위협 앞에 수 없이 처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부촬의 신앙으로 인해 담대히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도 이와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죽음의 현장에서도 부활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2,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승리
현 세상에서는 부귀 영화의 척도에 따라 인간을 판단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이 장차 우리가 얻을 부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를 누릴 자들은 그러한 승리로 말미암아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들이다. 승리하신 아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곧 나의 생명이므로 영원한 승리를 얻은 것이다.

3, 승리 연율 자들의 자세 .
우리는 멸망 당할 자들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세상의 변화무쌍한 풍조에 쉽사리 혼들리거나 놀라지 않는다. 우리는 소심하고 두려워 안절부절 못하는 자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부활세계를 바라봄으로 힘과 용기를 공급받아야 하겠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확신하는 자들은 영생을 소유한 하나텀의 백성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잠  (하관-2)
(시127 : 2)  f 418,464.474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믿는 성도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의 모든 샘애 가운데 구체적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

1, 하나님외 사랑하시는 자들.
하나님은 죄악의 쇠사슬에 묶여있던 자들을 당신의 피값으로 구속하시고 자녀로 삼으셨다. 자녀이면 그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충의 대상이될 수 있다. 그들은 장차 하늘의 신령한 유업에 참여자가 된다. 그들은 이것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과 위에 있는 것들을 위하여 살고 있다.

2,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신령한 은사들은 물론 육적인 필요도 채워주신다. 그는 그들에게 잠. 안식 만족을 주신다. 그가 공급하시는 만족은 모든 선한 것에 충만히 역사하고. 또 창세 전에 택하시고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3, 사랑하는 자들에게 잠을 주심 .
현세의 생애를 잘 사는 방법은 내세의 생애를 잘 준비하는데 있다고 봄이 옳다. 그러므로 인생은 초기부터 진정한 기반을 잘 선택하여 합당한 재료로써 맹렬한 불에도 견딜만한 집을 지어야만 할 것이. 성도의 진정한 준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나외 죄를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인생은 잠깐이므로 자랑할 것 없는 약한 존재로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천국시민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어린이 (어린이 임종-1)
마 19 : 13-15    273.299,300

오늘 사랑하는 어린이를 잃고 슬퍼하는 이 가정에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주시는 말씀은 어린이를 귀중히 보신다는 말7이다.

1, 어린 아이를 사랑하심
사람들은 어린이를 무시 흑은 간과하는 예가 허다하였다. 우리 나라 관슘에 의할 것 같으면 27세가 넘어야만 비로소 썽인'(7A), 즉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의 입장과 너무도 상이하다. 아수님은 제자들이 어린이를 무시하였을 때 이를 진노하셨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가 바로 이런 자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2, 어린이를 구속하심 .
어린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그의 보혈의 공로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에게도 전가되어 있는 원죄의 죄책을 말끔히 썬기셨으며. 하늘나라의 영원한 저택에 그들의 영흔을 안식시키신 것이다. 어린 아이도 완전한 자, 인격체로서 천국의 기업을 받아누릴 자격이있는 것이다.

3, 하늘 나라를 물려주심
어린이들도 불멸의 영흔을 지닌 무한히 가치있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따금섹. "애들이 뭘 안다고 그래"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들의 키와 지혜가 조금 부족할지라도 그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며 하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 받을 짜들이다. 진실로 어린 아이좌 같은 마음을 품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은 어린이에게로 영생을 허락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이런 자와 같다고 하셨다.





어린이의 죽음  (입관-어린이)
(창 37 : 27-34)   ? 233.298.535

요셉을 미워하던 그의 형제들은 요셉을 제거하기로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사악한 심성을 돌이켜 요셉에게 복이 되게 하셨다.

1, 어린 아이가 살찌던 목적 .
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살았다. 진실로 때묻지 않고 숭리의 삶을 살은 어린이는 하니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은 이 어린 아이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 그는 예수 안에 속한 삶을 살은 것이다.

2, 어린 아이가 옮건진 목적
우리가 세상적인 차원에서만 바라 볼 때에는 "아이가 없구나"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유족들의 가슴 속에. 그리고 하나님의 존전에 살아 있다. 그는 지금 하늘 나라에서 무한한 축복들을 누리고 있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그 곳, 눈물이 더 이상
없는 맑고 밝은 그곳에서 영원히 여호와를 찬송하며 축복된 삶을 향유하고 있다.

3, 어린 아이가 팔려간 결과
요셉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간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이 400년간 애굽에 종살이 할것을 예언한 것이 실현되는 것을 볼수 있다(창15:12-15). 그릭 요셉이 총리가 되고 큰 민족을 이루어 탈출하게 된다. 따라서 이 죽음은 슬픈일이지만 천국을 소유함을 생각할패 위로가 된다.
이는 곧 우리의 현실의 생애는 고난이 많고 슬프지만 미래는 영광스런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결과를 낳고야 만다는 것이다.





돌아오지 못할 강  (발인-어린이)
(삼하 12 : 20-23)  f 226,224.541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머나 먼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하늘나라에 펀안히 안식하기 위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것이다.

1, 죽음의 공정성
죽음은 그 어느 것에도 차별을 두지 않는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의 집은 물론 가장 귀한 신분외 집에도 동일하게 찾아간다. 어린 아이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이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 우리는 이와같은 슬픈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으므로 오히려 새로운 생명의 소망 가운데 거할 수 있다.

2, 돌아오지 못할 감.
다욋 왕은 왕의 어린 아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갔다고 슬퍼하였다 그렇다 죽음은 왕의 저택이라고 못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욋 왕도 때가 되면 조만간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그도 역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강을 건너기전에 심각하게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내가 강을 건넌다면 영생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나를 점검해야 하겠다.

3. 다시 만남의 해후
남아 있는 유족들은 장차 하늘 나라에 가서 꿈에도 잊지못할 이 어린이를 다시 만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믿음과 회개로써 모든 죄를 깨끗이 용서 받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서 가능하다. 죽음을 누구든지 찾아 가나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두려워 말고 감사하며 엄숙히 맞이해야 할 것이다.





수넴여인의 아이  (하관-어린이)
(왕하 4 : 26-31)   f 168.291.545

수넴 여인의 이야기는 성경상에서 가장 애처로운 사건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어린 아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슬픔 가운데 처해있는 모든 부모들을 위로하는 이야기이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거룩한 위로와 용기와 확신을 공급받게 된다.

1. 어린이는 하나님의 선물임 .
이 아이는 가정에 무한한 기쁨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만일 어린이가 없는 사회나 가정을 생각해 본다면, 그 적막함과 쓸쓸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의롭고 고달픈 현실의 삶 가운데서도 어린이를 바라봄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무한한 은혜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다.

2, 어린이의 갑작스런 소환.
하나님은 어찌하여 수넴 여인에게 아이를 뺏앗아 가심으로 그녀를 절망시컸는가? 하지만 여기에는 하니님의 놀라운 사랑과 섭리가 내재되어 있다. 세계요한과 우리 주님의 경우가 바로 그 것이다.

3, 어린 아이가 일으킴을 받음
하나님은 수넴 여인의 가정에 아이를 다시 돌려주심으로러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게 하셨다. 이 아이가 다시살아난 것은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예함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아이도 다시 들어 을리실 것을 믿음으로 오히려 신앙 가운데 굳게 서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간이 다 알 수 없으나 성도의죽음 후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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