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은혜 메세지는 이렇게 예찬할 때가 많다.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영접 기도를 드리고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라.
그러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자아와 세상을 부인하라는 얘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듣기 좋은 말로만 교육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불순종하고 거룩하지 않게 살아도
하나님의 백지 은혜로 다 덮어질 줄로 생각한다.
이런 미지근한 상태에 젖어 든
수많은 교인들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미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해, 차갑거나 뜨거운 자들은
스스로에게 속고있지 않으나 미지근한 자들은 속고 있다.
그들은 자기 상태를 실제와 다르게 알고 있다.
자기들이 예수님께 속한 줄로 착각하고 있다.
여기 경고와 격려가 함께 있다.
경고는, 값싼 은혜 교리로 인해
은혜를 헛되이 받아 실격하지 말라는 것이다.
격려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살아갈 힘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진리를 갈망하지만
일단 진리에 부딪히면, 그것을 거부하거나..
묵살하거나..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왜곡한다.
그런 현상은 교회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고
교회와 성도들을 기만에 빠뜨렸다.
기만이 중대한 문제인 까닭은,
기만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자들이
자기가 진리 가운데 행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세를 이렇게 묘사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거짓 말)를 좇으리라" (딤후 4:3-4)
성경의 진리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
온 세계가 좁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7:14)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요 3:20-21)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19:!2)
다윗의 이 부르짖음이 우리의 부르짖음이 되게 하자.
-존 비비어의 "거룩한 열정"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