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의 여행(4) 로즈 힐

2007. 4. 17. 14:37회원자료/1.휴게실

미국에서는 연로한 부모님에게 ‘묏자리 선물’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그것이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것 같아 기분 나쁘고 무례한 일로 생각되지만 미국에선 묏자리 선물이 연로한 부모님을 위한 좋은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약 10년 전, 아버님이 LA 근처의 로즈 힐(Rose Hills)에 부부 묏자리를 사놨습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착잡했지만 부모님은 ‘누우실 곳’을 마련했다는 생각으로 안정감을 느끼셨는지 당시에 로즈 힐 얘기만 나오면 부모님의 목소리에 생기가 흘렀습니다. 어느 새 세월이 흘러 지금은 아버님이 그곳에 누워계십니다.

LA 도착 둘째 날 아침, 로즈 힐에 있는 아버님 산소로 출발했습니다. 로즈 힐은 ‘장미 언덕’이라는 명칭처럼 아름다운 곳입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감탄했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동묘지가 있다니...” 공동묘지란 섬뜩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색시킨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그곳에서는 장례식은 물론 결혼식까지 치러집니다.

아버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 둘째 딸이 할아버지의 묘비에 누워 껴안는 자세를 하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 한나예요. 잘 계셨어요? 외롭지 않으세요? 제 선물 받으세요.”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인형을 할아버지 무덤 위에 놓았습니다. 첫째 딸도 함께 누워 묘비를 껴안는 자세를 취하자 어머님이 밝은 표정으로 웃으셨습니다.

어머님은 희미한 기억력으로 가끔 아버님 얘기를 했습니다. 아버님은 어렵게 8명의 자녀 대학교육을 시켰습니다. 자녀들이 거의 연년생이라 3명이 함께 대학 다닐 때가 4년간 연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학비 문제로 자녀의 기가 죽지 않게 아버님은 학비 마련에 전 삶을 걸었고, 신기하게 등록금을 구해오셨습니다. 그때 자녀들은 티 없이 대학생활을 했지만 아버님은 등록금 문제로 너무 힘들어 한강을 볼 때마다 빠져죽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꼈습니다. 아버님의 눈물로 자녀들은 웃을 수 있었습니다.

약 30분쯤 후, 무덤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자 둘째 딸이 놓아둔 인형이 있어 무덤 속의 아버님이 외로워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동시에 따뜻한 햇살과 함께 환하게 미소 짓는 아버님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자식을 위해 흘렸던 아버님의 눈물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녀가 눈물지을 때 아버님은 웃고 계셨습니다. 그때 아버님의 당부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네 엄마 살아 계실 때 잘 모셔라!”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부모님 사후 효자’가 많은 것을 이상하게 봅니다. 명절이 되면 성묘한다고 교통이 막히고, 비싼 제사상을 차립니다. 어떤 분은 1년에 10번까지 제사를 드리는 엄청난 효자입니다. 그러나 ‘부모님 사후 효자의 길’보다 ‘부모님 생전 효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 진짜 효자입니다. 로즈 힐은 어머님 생전에 힘써 마음을 드리며 살겠다는 열정을 새롭게 불붙인 ‘내 삶의 장미 언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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