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자

2007. 1. 15. 21:46참고자료/4,예화자료

프리모 레비(Primo Levi?1919~87)는 아우슈비츠서 살아난 몇 안 되는 생존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독일에서 나치가 결성된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레비는 수백 년에 걸쳐 이탈리아에 완전히 동화한 유대인 집안의 후손이었습니다. 토리노대학을 졸업한 그는 1943년 빨치산 조직 '정의와 자유''의 일원으로 파시스트 군에 대항하다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감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다 1944년 2월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한 지 10분 만에 선별작업이 행해졌습니다. 남자 96명, 여자 29명은 즉시 살해되지 않을 특권, 즉 그 자리에서 살해되는 것이 아니라?노동을 통한 절멸?의 대상이 된 사람이 되었고 함께 열차를 탔던 나머지 500명 이상은 바로 말살되었습니다. 레비는 '노동 가능'한 20대 중반의 남성이었기 때문에 '즉시' 살해되지 않을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레비는 거대한 화학 콤비나트에서 노동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주어진 명령을 모두 실행하고 배급되는 음식만 먹으며 수용소의 모든 규칙을 지키면 잘해야 3개월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수인은 약 7,000명이었고 레비도 이 행운의 7000명 에 속하였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된 희생자 수는 110만 내지 150만 명에 이릅니다. 그해 10월 가족에게 돌아간 그는 1947년 아우슈비츠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이것이 인간인가>를 펴냈고 그 후 <휴전>(1963), <주기율>(1975), <성형(星型)의 스파나>(1978), <지금이 아니면 언제>(1982), <익사한 자와 구제된 자>(1986)를 출간하며 이탈리아의 대표적 작가로 부상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난 후 40년 간 그를 붙잡은 화두는 바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인간인 것에 죄가 있다'고 느꼈고 결국 인간의 일원이었던 그 자신이 증인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회의했습니다. "우리 생존자들은 진정한 증인이 아니다. 우리는 눈속임이나 요령 혹은 행운에 의해서 심연의 바닥까지 가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다. (진정한 증인은) 돌아와 증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고민 때문이었는지 토리노의 한 아파트에서 그는 1987년 4월 11일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가 목숨을 끊기 1년 전에 출판한 책 <익사한 자와 구제된 자>에서 "하나의 민족과 문명을 파괴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며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 내전, 포클랜드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등을 열거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인간의 실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우리 인류는 그러한 잔학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죄악들도 인간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레비의 자살은 더 나아질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절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