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

2007. 1. 15. 21:44참고자료/5,영성 자료

원광식 씨(1942-)는 열일곱 살에 자동차 기술을 배우려 상경했다가 종을 제작하는 8촌형을 만났습니다.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한 섬세한 기술을 배운다는 자부심으로 가슴 뿌듯해하며 종 만드는 법을 배우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종을 만드는 외형 틀이 무너지면서 흘러나온 쇳물 한 방울이 그의 오른쪽 눈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스물여섯 살의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농사를 짓겠다고 낙향해 땅을 일구었지만 2년이 채 되지 않아 수덕사에서 종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지를 찾아가 "이문도 필요 없으니 재료만 구입해주면 제대로 된 종을 제작해 보겠다"고 졸랐습니다. 그리고는 수덕사로 내려가 한구석에 주물공장을 세우고 조석예불을 올리며 꼬박 3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그는 "한 번을 치면 2분 30초 동안 울리고, 소리가 30리에 이른다"는 수덕사 대중들을 만들었습니다. 해방 후 처음으로 제작된 1,000관에 달하는 대종이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에밀레종과 상원사종이 모두 밀랍주조공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공법은 소멸되어 있었습니다. 밀랍주조공법은 밀랍과 소기름을 적당한 비율로 배합하여 만든 초로 모형을 제작한 후 외부에 주물사를 반죽해 두께를 주고, 이후 열을 가해 초 모형을 제거한 후 쇳물을 붓는 공법을 말합니다.  

 

밀랍주조공법이 아니면 우리 선조들이 제작한 옛 종의 정교한 문양을 재현해 낼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일본으로 유출된 신라?고려?조선시대의 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연구하기를 10여년, 드디어 밀랍주조공법을 재현해 내는 데 성공했고 그 공로와 능력을 인정받아 2001년 대한민국 명장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웬만한 사찰의 종은 모두 이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산불 속에 녹아버렸다가 복원된 양양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도, 제야의 종을 울리는 서울 보신각 종도 그가 만들었습니다. 1969년 이후 그가 만든 종은 7,000여개입니다. 5?16이 터지고 나니 "절마다 교회마다 종 수요가 엄청 늘어서 정신없이 일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2005년 충북도와 진천군, 그리고 문화재청이 돈을 대고 원씨가 복원한 종 170개를 기증해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각 지자체마다 유행 중인 '도민의 종', '시민의 종' 덕택에 먹고 살기도 부족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종 만들다가 죽는 일만 남았어요." 먹고 살려고 시작했던 종 '업자'가 어느덧 대한민국 종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진 재능을 모두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자기 배만 불리게 하라고 재능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재능으로 남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 재능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참고자료 > 5,영성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사람을 입으라  (0) 2007.02.19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0) 2007.02.19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0) 2007.01.15
환상적인 영상  (0) 2005.12.03
유혹  (0) 200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