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국 교회 선교의
지도력 계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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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한국 민족의 독특성은 좀처럼 다른 민족과 동화되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 교회의
성장도 세계 교회 지도자들을 놀라게 하면서도 세계적 교회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인지도 모른다. 각 교파의 세계 최대의 교회들이 모두
한국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선교회의를 단 한 교회가 전담하여 개최할 수 있을만한 재력까지 가진 많은 큰 교회가 있음을 자랑한다.
그런데 진정 한국 교회가 세계 속의 한국 교회로 자부할 수 있는가 하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PART I. 세계 속의 한국
교회와 지도력의 성장과 이동
1. 세계 속의 한국 교회의 실상은 무엇인가?
한국 교회는 첫째로 교회 건축에 있어서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건물의 크기와 다기능, 다목적 장비와 시설도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한국 교회는 신도들의 교회
회집에 참가하는 시간이 많고 길기로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한 시간, 수요예배와 금요일의 구역회 혹은 셀모임,
토요집회, 철야기도, 주일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12시간 이상 교회의 여러 모임이 계속된다. 셋째로 한국 교회의 목회자의 근무 시간이
선진국의 목회자들의 사역 시간의 몇 배에 달한다. 기도회, 수양회, 심방, 상담, 교육 활동에서 수많은 조직과 위원회의 출석 등 거의 24시간
깨어 있어야 할 정도이다. 넷째로 한국 교회 평신도들의 교회 봉사활동 시간이 많기로 세계적이다. 다섯째로 신도 개인당 헌금율이
높기로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섯째로 기도 생활이 많기로도 세계적이다. 일곱째로 교회 성장율도 세게에서 가장 높다.
여덟째로 교회 장벽이 높기로도 세계적이다. 아홉째로 신학교와 신학생 수가 많기로도 세계적이다. 열째로 개척 교회와 세계
선교열이 높기로도 세계적이다.
이러한 세계 속의 한국 교회의 위치가 그 겉모습과 함께 내실과 지도력이 있어서도 세계적 수준에
있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 지도력이 지난 100년 동안 시대별로 어떻게 이동되어 왔는가를 분석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2. 한국 교회 지도력의 성장과 변동 추세에 대한 분석
기독교 전래 초기로부터 1907년 첫 신학교 7인
졸업생 배출로 한국인 목사 일곱 명과 선교사 공동으로 조직된 독노회까지 제1기 20년을 선교사 중심 시대로 곱을 수 있다. 제2기는
1907년부터 1912년까지 12년간을 교회 지도력이 선교사로부터 한국 목사로 이동하는 지도력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한국 교회
목사에게로의 지도력 이동 전환기의 특성은 국외 또는 해외 자민족 선교를 교회 지도력의 주용 과업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제주도와 시베리아와 동북
만주 지역의 실향 이민들을 위한 자민족 선교가 자생적으로 확대 발전하다가, 1912년 총회는 중국 산동성으로 중국 한족들을 위한 선교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타민족 선교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 시기가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으로 나라 없는 민족이 된
좌절과 절망의 시대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국 교회 지도력의 외향적 선교 지도력으로의 발전에서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다.
1912년부터 1938년 제2차 대전 발발 초기까지의 25년간의 제3기 한국 교회 지도력은 교회가 전 민족의 보호자로 민족을 대표하는
민족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다는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1910년 신민회 사건의 700면 검속과, 105인이 실형을 당한 일을 비롯하여
1919년 33인 민족대표에 한국 교회 지도자 16명 참여로 한국 교회는 민족의 보호자였으며 민족의 교육과 사회와 문화와 산업 개발의 중추
세력이 되는 특성을 가진 시대였다. 이 시대에도 한국 교회는 밖으로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예루살렘대회에 전인과 양주삼, 김활란 등 세 민족 지도자를 참석시키는 선교 지도력을 과시했다. 제4기는 1937년부터 1945년 전쟁
기간 동안은 교회의 수난기에 나타난 타협과 변절의 지도자와 순교적 지도력이 혼재한 치욕의 시대였다. 이러한 어려운 수난의 시대에도 1937년
한국 교회는 1937년 방지일 목사와 박상순 목사를 중국 산동성 선교사로 파송한다. 제5기는 한국 기독교 지도력의 혼란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대전 종전과 함께 해방과 분단의 기쁨과 아픔을 동시에 겪었던 1945년에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1960년까지 15년간의 건국
과도기는 한국 교회의 교권 분열과 신학적 분열로 인한 신학적 지도력과 국제 관계와 교권 투쟁의 지도력 혼란기였다.
3. 1960년
서구 선교질서 와해 이후의 한국 교회 선교 지도력의 생성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국제선교협의회(IMC)를 해산시키고 병합해 버리면서 50년 역사를 가진 서구 선교 세계 구조가 와해되면서 성령은 새로운 선교 세력을 서구
식민지에서 해방된 아시아 국가들에서 일으킨다. 일본과 인도와 홍콩과 대만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선교단체가 조직되고, 한국에서는 김활란 박사가
이화대학교 학생선교회를 조직하여 파키스탄에 세 선교사를 파송하고 미국에서 선교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조동진은 국제선교협력기구를 조직하여 한국 교회
역사상 최초의 초교파 선교사 파송운동이 시작된다. 1965년 한국 선교 7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복음화운동의 출범은 한국 교회의 선교
지도력의 역량을 분출시키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1961년까지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IMC)의 부회장이었던 김활란 박사를 총무로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한국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을 망라한 전국복음화운동이 전개되면서 조직위원장으로
조동진이 선출되었다. 다음 해 1966년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전도회의: Berlin Congress on World
Evangelism>에는 한경직, 김활란을 중심으로 조동진, 김준곤, 최찬영 등 새로 일어나는 선교 지도력 10여명의 대표단이 참가하였다.
이어서 1968년 싱가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전도회의에는 대회장으로 선출된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참가하면서
한국 교회는 아시아 선교 세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 대회로부터 귀국한 대표들을 중심으로 한국 최초의 전국전도회의(National
Congress on Evangelism)가 소집되고 한경직, 홍현설, 강신명, 김옥길 등 대회 회장단은 조동진을 대회 기획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이 전국 전도회의에 이어서 1973년 세계 기독교 역사상 최대 인파인 120만 명을 동원하는 <서울 '73 빌리그래함
전도대회>를 여의도 5.16광장에 기독교 전도집회를 여는 데까지 이르고, 이 전국 전도대회에 뒤를 이어 같은 해 8월에 아시아 14개국의
선교 지도자들이 서울 아카데미하우스에 모이는 <범아시아선교지도자회의: All Asia Mission Consultation>을
소집한다.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비서구 국가 선교 지도자들의 회의인 이 범아시아선교지도자회의는 한경직 목사를 명예회장으로 홍콩의 필립탱 목사를
회장으로 조동진 목사를 사무총장으로 선출하고 <아시아선교협의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동서선교연구개발원: East West
Center for Missions Research and Development> 설립을 결의한다. 이어서 미국의 풀러선교대학원과
달라스신학교의 선교학 교수들로 강사진으로 하는 아시아 최초의 <하기선교대학원>을 개원한다. 이것이 한국 교회 세계선교지도력 개발의
주도국으로 등장하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다음 해인 1974년 스위스 로잔 세계선교회의에서는 한국을 비서구 세계 선교 지도력의 중심 국가로
인정하고 조동진, 김순일, 조종남, 김장환 등 한국의 젊은 선교 지도자들이 대회의 강사로 내세워지고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 구조
쇄신>에 앞장서게 된다. 이 때에 한국이 해외에 파견한 선교사의 수는 불과 12가정 24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동진은 로잔대회에서
"AD2000년까지 한국에서 3,000명의 선교사를 아시아에서 10,000명의 선교사를 훈련시켜 내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그 때에
이러한 예언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 예언은 보다 더 크게 적중되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AD 2000년 현재
한국에서 파송한 선교사의 수는 10,000명을 넘어섰고 아시아 선교사의 수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제
3세계 선교사의 수는 16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서구 선교사의 수는 10만 명을 넘어 섰을 뿐이다. 21세기에 들어서 3년 지낸 오늘
우리는 이러한 엄청난 세계 선교 세력의 대이동 앞에서 한국 교회 선교지도력의 제 2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지도력 개발의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PART II. 21세기 한국 교회 선교 지도력 계승의 방향
1. 기독교 인구와 선교 세력 분포의
대 역전기(逆轉期)에 있어서의 지도력 개발 전략
기독교는 더 이상 서구 종교가 아니다. 1960년까지 세계 기독교 인구의 70%는
서구 세계에 있었고 비서구 세계 기독교 인구는 30%에 불과했다. 그러나 AD 2000년 세계 기독교 인구의 80%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등 비서구 세계에 있고 서구 세계는 단지 20%의 기독교 인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21세기 종교 인구의 대역전과
함께 우리 앞에는 다른 하나의 도전이 있다. 그것은 아직도 세계 선교의 지적 정보 접속율(Access of Information)은 서구 선교
지도자들이 비서구 선교 지도자들보다 300%나 높다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나는 지난 30년, 한국 교회
선교지도력 계승을 위하여 세계 선교에 관한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과 선교 정보 접속 능력의 향상을 위한 정책과 전략의 개발에 주력하여 왔다.
나는 우선 선교지도력을 선교 인원의 숫자적 증가에서보다 선교 인원의 선발과 훈련의 올바른 기초의 확립에서부터 찾았다. 선교에의 소명과 동기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위한 추려내기와 걸러내기가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선교의 성서적 원리와 사도적 방법에 의한 올바른 훈련을 두번째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 후에는 선교사 후보생 각자의 재능과 능력의 확인 과정을 거쳤다. 신학적, 지적 학습 능력을 점검하고 선교를 수행하는 방법의
구체적 교육과 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나서 파송된 선교 인원들은 5년간의 선교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선교 지도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선교 연구에의 길을 열어주어 스스로 자신의 선교지도력의 방향을 설정하도록 했다. 나는 이들의 선교 사역의 영역을 국지 선교에서
광역 선교에로, 또다시 국제적 선교조직과의 동역과 협력관계로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나의 30년간의 선교지도력 개발 정책과
전략에서 나의 발견은 선교지도력을 기능별 전문 지도력으로 발전시키는 구체적인 전략의 필요성이었다.
(1) 높은 수준의
선교학자로서의 지도력 (2) 뛰어나 선교 전략가로서의 지도력 (3) 세계 수준의 선교 조직과 행정가로서의 지도력 (4)
선교 지역별 선교 전문가로서의 지도력 (5) 세계 선교정보 연구가로서의 선교 리서치 전문가로서의 지도력
21세기 한국 교회
선교지도력 개발의 방향은 이러한 세계 수준의 기능별 전문성을 갖춘 지도자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주력하여야만 할 것이라고 믿는다.
2. 21세기 선교 지도력은 20세기의 선교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선교신학의 명제를 제시해야 한다
인간 중심과
세계 중심 연구의 과잉(過剩) 집중이 20세기 선교학 (Missiology)을 오도한 데는 "무엇을 할 것인가(What to do?)'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 (How to do?)'를 선교신학의 중심으로 삼은 것이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이 서구 자유주의
신학의 방향을 닮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진보적 신학자들보다 더 한층 세속적 실용주의 학문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들었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교의신학(Dogmatic Theology)이 목사 양성을 위한 신학 교육에서 그 무게를 상실하여 가면서
일반 과학, 윤리학, 심리학, 사회학, 도시학, 국제학 등 신학 외 학문들을 신학에 접목시켜 나갔다. 선교신학도 서구 선교의 몰락을
회생(回生)시키는 방법으로 세속 실용주의 학문인 방법론에로 그 무게를 옮기게 되면서 '신 중심 도그마의 신학'과 '성경 중심 케리그마의 신학'이
그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난 20년 서구 선교신학 연구기관의 모든 커리큘럼은 신학교(seminary)가 아니라
대학교(university)의 커리큘럼으로 그 얼굴을 완전히 바꾸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이처럼 20세기 후반 서구 선교신학의
실용주의화 한 응용학문으로의 방향 선회를 말하는 것은 그러한 학문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신학교육에 누구보다도 먼저 응용신학
부분을 도입한 사람인 내가 이제 와서 선교신학의 비신학적 경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은 신학의 주객(主客)이 바뀌어 버림으로 인한 부작용이
실제로 선교사들의 선교 인식과 선교 행태에서 나타나고 있는 데 대한 염려 때문이다.
나는 지난 40년, 선교사 훈련과 선교학
교육의 기초를 '성서적 선교신학'에 두고 다른 모든 선교방법론의 강의에 앞서서 먼저 '성서적 선교신학'을 강의하기를 고집하여 왔다. 내가 선교학
교육의 현장에서 현대 서구 선교신학이 가져온 20세기 후반의 선교현장의 문제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제 21세기 선교신학의 대명제는 '신 중심
도그마의 신학'과 '그리스도의 인카네이션을 선포하는 케리그마의 신학'으로의 시급한 회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A. 신학적
수행(修行)으로서의 선교학(Missiology)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선교 연구가 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에 속한 것이 20세기 초반까지의 신학교육 커리큘럼의 추세였다. 선교사학(Missionary Making)은 주로
성서대학(Bible College)의 커리큘럼이었기 때문에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 커리큘럼의 일부로
채택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의 일이다. 그리고 신학교의 커리큘럼에서 선교학(Missiology)이 신학적 수행(修行) 밖의 특수학문으로
독립적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다. 이와 같은 미국에서의 선교학의 발전은 교회와 크리스챤들로 하여금 서구
밖의 세계와 서구 문화 밖의 문화를 바로 보게 하는 데에 크게 공헌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의 내리막길로 치닫던
서구 선교를 다시 일으키는 데도 큰 뒷받침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교학에서 신학 외(神學外) 학문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발생한 부작용으로 신학의 진수인 교의신학인 도그마(Dogma)와 복음 선포의 신학인 캐리그마(Kerygma)가 그 권위와 능력을
상실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신학적 수행(修行: discipline)의 기초가 무너진 서구 선교학은 21세기
세계 무질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지워진 대명제는 어떻게 선교학을 신학적 수행의 기초 위에 재건할 것인가이다. 세계의 선교 현장
정보와 수많은 조직들에 관한 자료목록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선교 정책과 전략과 방법의 연구조사나 문화와 문화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문제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소중하고 가치 있는 학문일지라도 어떻게(how)라는 효율성의 문제는 과정(課程)상의 문제이지, 무엇(what)을 할 것인가와
누구(who)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는 선교의 원점(原點: origin)과 종점(終點: destination)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신학적 수행으로서의 '선교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선교의 근원을 삼위 하나님(Triune God)의
본성으로부터 오는 권능(authority)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삼위 하나님'의 '도그마'의 신학에 대한 철저한 수행을 21세기 선교신학의
새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선교의 동기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목적이 삼위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완성에 있어야
한다. 모든 종류의 종교적, 인도적, 사회적 봉사 활동을 '복음화' 또는 '기독교화'의 길로 인식하는 것은 결코 삼위 하나님의 뜻하시는 선교가
아니다.
서구 선교학(Missiology)이 신학적 수행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떠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선교가 첨단 정보과학이나
강대국의 세계화와 시장 논리의 틀에 갇혀버린 신세가 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는 데는
그 성과를 인정한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의 선교의 섭리에 따라 성령의 권능과 강한 생동력을 가지고 땅 끝 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함으로써 그의
나라를 준비하는 데는 미흡하였다. 선교학 교육에서 삼위 하나님의 역사(works)가 그의 인카네이션과 성령 하나님의 특성(character)이
선교임을 나타내는 데 중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신학적 균형을 상실했었다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21세기는 선교신학이 20세기에
잃어버린 신학 수행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올바른 선교신학의 재정립을 위한 시도가 선행되어야만 선교의 바른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B. 선교학(Missiology)의 기초(foundation)로서의 교의신학(Dogmatic Theology)의
수행(discipline)을 위한 커리큘럼의 개발
현재의 선교신학의 인간-세계 중심(anthro-cosmo centric) 연구가
가지는 결함은 '교의신학'적 기초의 상실로 말미암았다고 할 수 있다. 신학자(theologian)와 선교학자(missiologist)가 가지는
양자의 결함은 두 개의 학문 분야의 상호성(reciprocity)과 통합성(integration)에 관한 인식의 부족으로 말미암는다. 사실상
많은 미국의 신학교에서 신학교수와 선교학 교수간의 김장과 갈등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21세기 신학교육의 커리큘럼에서
교의신학과 선교신학의 상호보완 관계와 통합성을 정립하기 위하여는 선교를 배제하지 않는 교의신학, 그리고 교의신학의 기초 위에 세워진 선교신학을
위한 신학 수행(discipline) 커리큘럼을 개발해야만 한다. 교의신학의 깊은 연구 위에 세워지는 선교신학은 신학의
초월성(transiency)과 선교의 세계성(universality)을 통합할 수 있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
신학은 "보내시는
하나님(God as the sender)"에 대한 연구이고, 선교는 "성자 하나님의 증인으로 '보내심'으로서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교의신학의 기초를 상실한 선교신학은 신학의 '초월성'을 상실한 '세계성'만의 학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삼위 하나님이 시작과 끝, 곧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역사의 주인으로서 역사 위에
계시고, 역사 안에서 역사하시며, 사람을 부르시고 보내시고 증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교의신학이 선교신학의 기초가 될 때에만 21세기
선교신학은 바른 기초 위에서 바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선교신학은 삼위 하나님, 그리고 대속적 죽음을 통한 구원에 대한
'도구마'와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구체적 계획에 대한 완전하고도 통합적 신학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구원의 신학은 '하나님의 사랑(Divine
love)에 기초한다. 구원의 신학은 '인카네이션'과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 사실이 중심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선교신학이 이러한 '구원의
교의신학'을 기초하지 않고 선교 이름으로 하는 모든 봉사활동 및 인도적, 교육적, 사회적 모든 사업을 구원사역으로 받아들이는 소위
Holistic Mission이라는 선교 개념은 교의신학적 선교신학에서 크게 빗나간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고,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주어지며,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으며, 구원은 신앙에 의하여 주어지고
구원의 목적과 내용은 전적으로 도덕적이며, 구원은 세계 인류를 위한 것인 동시에 또한 결과적으로는 우주적인 것이다. 따라서 선교신학이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하나님 구원의 계획을 증거하는 신학이라야만 한다.
C. 선교학은 선포의 신학, 곧 케리그마(Kerygma)의 신학의 다른
표현이다
하나님 나라 선포의 신학은 곧 예수의 선포의 신학인 동시에 또한 종말론적 선포의 신학이다. 케리그마의 신학은 이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사도 바울의 신학을 총칭한 신학이다. 그리스도께서 "때가 찼고 천국이 가까왔다" 고 하신 말씀대로 종말론적 신학이며 또한
대망(待望)의 신학이다. 종말론적 대망의 신학은 '개발'과 '건설'의 신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곧 모든 불의와 전쟁과 무질서와 혼란과
타락과 고난과 질병과 절망의 세계가 끝났고, 하나님의 영광과 온전하심과 선하심이 지배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심을 예비케 하는 '대망의
신학'이다.
미래의 선교학은 평안과 풍요와 발전의 성과와 방법 연구의 학문에서 대망의 신학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에로의 길을 선포하는
권능을 되찾아야만 한다. 지난 반세기 닦아온 문화 중심-세계 중심의 방법론적 선교학의 성과는 케리그마 곧 '선포의 신학'의 굳건한 터 위에 설
때에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종말론적 그리스도 대망의 공동체였던 사도시대의 케리그마는 그리스도에 관한 증인으로서의 순교적
선교였다. 땅 위에서 가장 가난하고 정처 없고 살아갈 소망도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증언을 통하여 이루어진 '오직
신앙의 공동체'가 퍼져나가 서로 엮어져 나가고 이어져 가는 것이 선교였다. 그것은 언어와 문화와 민족과 국경을 뛰어넘는 초월적 복음의
능력이었다.
그래서 선교는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넘는 것이며, 언어의 장벽을 초월하는 힘이며, 민족의 테두리와 국경의
울타리를 뚫고 나가는 '권능'인 것이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임하심과 부르심으로써만 가능하고 그의 보내심을 순종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사랑' 곧 죄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무한대한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사랑의 신학이 그 기초가 되고 있다.
세계가 바라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고 인간이 바라는 것은 '오늘의 구원'이다. 그것은 '은과 금'으로 이루어진다는 인간의
기대로부터 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배부르게 먹은 후에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고자 한 것과 같은
그러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선포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참여케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에 관한 신앙으로 가난을 함께 견디어내는
사랑의 공동체에 동참하는 무리를 더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를 기다리게 하는 '대망과 심판'의 선포이다.
이것이 기독론적
선교신학의 기초이며 복음서와 사도행전적 선교신학의 근거이다. 기독론적 케리그마를 우회하여 가고 있는 현대 서구 선교학은 그 구원의 개념이
기독론적일 수 없다. 그것은 보편적 인간 욕망의 성취와 발전된 서구문명이 지배하는 세계를 의미하는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에 불과하다. 서구 선교신학이 케리그마 신학의 본질을 떠나서 복음과 신앙의 개념을 흐리게 하는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의 이론 아래
묻어버리고 말 때 선교학은 세계의 어두운 종말, 절망적인 종말을 재촉하는 우를 범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상 케리그마
신학은 어떤 때는 교회의 전례(典禮: liturgy)를 방법으로 하였다. 이 교회의 전례는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을 전례의식이라는
드라마(drama) 연출을 통하여 이루려 했다. 이 전례적 케리그마는 문자 해독 능력이 없는 민중들에게 감성적으로 복음의 내용을 느끼게 하여
깨닫게 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케리그마가 황제와 제왕들의 권세와 칙령(勅令) 또는 정복이라는 힘의 논리를 통해서 이루어진 콘스탄틴 이후의
장구한 중세기의 어두운 역사 속에 계속된 때도 있었다.
복음의 선포가 억압과 정복이라는 비윤리적 방법을 동원한 시대가 끝난 것은
그렇게 오래지 않은 20세기 중반이다. 현대 서구 선교신학은 이 억압과 정복이라는 서구 식민주의와 선교의 유착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러한 엄청난
징후는 지난 50년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은 신문화식민주의적이며 선교패권주의라는 신제국주의적인 서구 선교구조 형성에서 드러나고
있다.
교회의 성장과 그리스도의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의 확장이 서구 선교세력이 물러간 세계에서 몇 배나 강한 산불처럼 일어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선교학은 방법론의 신학에서 '성령의 신학' 곧 케리그마의 신학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메시지의
전달 방법과 기술의 습득은 기능공의 훈련과 같은 것이지, 메시지 그 자체의 의미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확산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어떻게(how)'의 교육은 '왜(why)' 그리고 '무엇(what)'을 전달할 것이냐의 교육에 앞서서는 안 된다. 선교를 위하여 인간이 습득한
'지식기반 (knowhow)'은 그렇게 만족할만한 성공을 거둔 사례가 별로 없다.
교회에 대한 교의학적 올바른 개념과 인식,
그리고 교회와 세계의 구속사(救贖史)적 관계는 케리그마 신학의 기초가 된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존재'이며 세계는 교회를 불러낸 곳이며
구원의 대상이다. 세계는 또한 심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선교신학이 케리그마 신학이어야만 될 증거가 여기에 있다. 세계는 선교의 사업장이 아니다.
선교는 심판 받을 세계에서 구원받을 인간을 불러내어 그리스도의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여 종말의 날에 구원받도록 예정된 행위인 것이다.
조동진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B.D) 미국애지브레신학교(Th.M.) 미국 윌리암캐리대학교(Ph.D.)
국제선교협력기구(KIM) 창립, 창립총재 취임(1961) 현, 동서선교연구개발원장 사단법인 민족통일에스라운동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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