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해로(百年偕老)
2006. 7. 20. 13:29ㆍ참고자료/4,예화자료
백년해로(百年偕老)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1909 평북 용천∼1995) 박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1950년 12월, 6·25 동란 중,
평양 의과대학부속병원 2층 수술실에서
밤새워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을 돌보다가
어쩔 수 없이 국군 버스를 타고서 국군 장병들과
함께 황급히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인 김봉숙 여사와
또 다섯 자녀와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는 늘
빛 바랜 가족 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계속 혼자 살았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재혼을 권유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북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어찌 그 기다림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자꾸 재혼하기를 권유하면
그는 이런 말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내가 평양에서 결혼할 때
주례하시던 목사님이 우리 부부를 앞에 세워놓고
백년해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재혼하는 것은 100년 뒤에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으로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다가
끝내는 만나지 못하고
1995년 성탄절 아침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1909 평북 용천∼1995) 박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1950년 12월, 6·25 동란 중,
평양 의과대학부속병원 2층 수술실에서
밤새워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을 돌보다가
어쩔 수 없이 국군 버스를 타고서 국군 장병들과
함께 황급히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인 김봉숙 여사와
또 다섯 자녀와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는 늘
빛 바랜 가족 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계속 혼자 살았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재혼을 권유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북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어찌 그 기다림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자꾸 재혼하기를 권유하면
그는 이런 말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내가 평양에서 결혼할 때
주례하시던 목사님이 우리 부부를 앞에 세워놓고
백년해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재혼하는 것은 100년 뒤에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으로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다가
끝내는 만나지 못하고
1995년 성탄절 아침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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