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의 의복(1) [출 27:20-31:21]

2006. 7. 17. 00:12목양자료/3.강해설교

27: 20- 31:-21 제사장의 의복(1)

출27장 19절까지는 성소의 구조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성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함께 거하시는 장막이신데 그 재료들은 제일 안에 있는 지성소와 성소는 금 판자요 그리고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은 천으로 덮여 있는 집이였다. 그리고 그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있는데 그 휘장에는 그룹들이 수놓아져 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증거궤와 속죄소를 두고 지성소 밖에는 떡상과 등대를 두었다. 그리고 성소와 뜰 사이에도 문이 있는데 거기는 천사들이 수놓아져서 지키고 있는 그런 문은 아니었다. 성소 뜰은 하얀 천으로 되어 있고 어떤 의미로는 은 기둥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받침은 놋이었다. 뜰에는 놋 제단이 있다. 이것은 다 실은 다 한 장막인데 영광들의 간격이 있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래도 문은 문이어도 그 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에 뜰에 있는 문도 성소 안에 있는 그런 영광스러움으로 되어 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천사들이 지키고 있는 문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이었다. 거기는 들어갈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이 성소의 구조에서 나타내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이 그들 중에 계시는데 하늘에 영광으로 계시고 그런데도 아직 지성소와 성소는 나뉘어져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27장20절 오늘 공부할 그런 문단부터 30장 21절까지는 제사장에 대한 여러 규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30장 22절부터 보면 회막에다가 기름을 바르고 증거궤에다가도 기름을 바르고 또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도 기름을 발라서 거룩하게 하고 기름부어서 거룩하게 한것과 그리고 이어서 그 성소에 두는 향을 만들라는 명령이 기록이 되어 있다. 그 명령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백성중에서 끊쳐지리라. 하는 그런 말로 문단들을 나누고 있다.

기름을 붓는 것과 그리고 향을 사르는 것은 물론 제사장에 규례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나누는 문단의 특징이 30장 21절 제일 끝에도 보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그런 말로 문단이 나누어져 있고 그 이하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용도 제사장 자신에 대한 규례보다도 제사장과 성소를 함께 거룩하게 하는 기름 부음과 성소 안에 두는 향에 대한 문제여서 이것은 차라리 제사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야 좋을 것 같아서 문단을 나눴다. 그래서 이번에 배울 것은 제사장에 대한 규례인데 27장20절부터 30장21절까지를 한 단락으로 나눠서 강론하겠다.

제사장에 대한 규례는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그 표현 양식에 의해서 문단이 구분된다. 그것은 27장 제일 끝에도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그렇게 되어 있고 28장 43절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한 것은 줄쳐져 있는 문단들이다. 그래서 27장21절에 보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8장 제일 끝 43절에도 보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그렇게 되어 있고 30장 21절에도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괄호 속에는 28장 29절이 아니라 28장43절이고 그리고 두 번 째 밑줄 있는 것도 1-43절이다.
27장20절부터 21절까지는 이스라엘과 제사장과 직무에 대한 문제가 명령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장을 나누는 것 때문에 문단을 나누는데 애로 점이 있다. 장을 나눈 대로하면 28장부터가 너는 제사장들이 이렇게 이렇게 해라. 제사장의 의복들이 쭉 나오고 27장에는 끝에 조금 나와 있다. 그래도 실은 문단을 나누는 것은 28장부터 나눈 것보다 27장20절부터 나눠야 문단의 흐름에 더 맞다. 만일에 지금 성경에 나눠진 대로 문단을 나누려면 앞에 있는 장의 끝은 뒤에 새로 시작하는 장의 토대를 놓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27장28장은 아예 27장20절부터 문단을 나눠 버리는 것이 훨씬 흐름에 맞다.
그러면 27장 제일 끝에 있는 문단 21-28절은 무슨 내용이 있냐면 이스라엘과 제사장의 직무에 대한 문제가 나와 있는데 등불을 켜는 것이 그들의 직무다 그런 말이 나와 있다. 그리고 나서 28장에 들어가서 즉 그 등불을 켜는 제사장의 직무 수행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영광스러운 옷을 입히는가? 그 의복에 대한 문제와 또 어떻게 위임을 시키는가 위임 식과 그리고 그들이 분향하는 단과 생명의 속전 그들을 씻는 물두멍 제사장의 규례가 쭉 나와 있다.
회막 앞 증거궤 앞 휘장밖에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등불을 켜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 27장21절을 보면 (출27: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 되,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명령이다. (출27:21)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앞과 뒤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영원한 규례로 말하고 그 사이에 제사장 가족이 휘장밖에 어떻게 등불을 켜는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주신 명령인데 그것의 대표로 제사장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표로 하고 있는 제사장을 하나님이 어떻게 영광스러움으로 옷을 입히시는가 하는 것이 28장에 이어서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은 27장20절부터 21절 이 말씀이 제사장의 직무를 총괄해서 하고 있는 말이다. 그것이 이스라엘과 제사장의 영원한 의무다.
그 일을 위해서 그 다음 영광을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27장 끝에 붙어 있어서 작은 것 같아도 여호와 앞에 등불을 끊이지 말고 켜는 것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제사장 가문이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소에 출입하도록 영광스러운 옷을 입히셨다 그렇게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주보를 읽으면서 설명하겠다.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밖에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등불을 켜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제사장은 이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의복과 위임식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시기 전에 등불을 켤 기름에 대한 규례를 명하신 것이다. 제사장을 성소의 물로 씻기고 관유를 부어 거룩한 직무를 위임하고 거룩한 옷으로 입히어 성소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주시는 것은 여호와 앞에 등불을 켜는 직무를 위해서이다. 여호와 앞에 있는 직무를 위해서이고 그 직무와 같은 것이다. 등불을 켜는 직무와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는것과 실은 같은 의미다. 여호와 앞에 있는 일곱 등잔의 불을 끊이지 않고 밝히는 것이 이스라엘중에 거하신 여호와께서 온 이스라엘에게 주신 영광이요 사명이다.
이 일을 위해서 감람으로 찢어 낸 순결한 기름을 여호와께 가져가야 한다. 감람나무는 가나안 땅의 기름진 축복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생명이요 빛이시다. 이 생명의 빛으로 여호와 앞에 사는 것이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사명이다. 감람으로 찢어 낸 순결한 기름을 가져오고 그 기름으로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불이 커지지 않도록 항상 관리하는 것이 제사장의 직무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제사장에게 명령된 대대로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그렇게 되어 있고 이 직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28장-29장에 있는 여러 제사장에 대한 규례들을 주시고 계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백성의 직무는 등불을 켜는것이고 이것이 곧 이스라엘의 성소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그들의 대표자인 제사장에게 주신 영광이요 사명이다 그런 말씀이다.

그러면 등불을 켠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신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빛과 생명으로 요1장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빛이요 생명이시다. 빛과 생명을 같은 가치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것이 어디서 나온 말이냐? 실은 빛은 구약 성소에서는 일곱 등잔에 비친 빛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생명의 빛이다. 그들은 그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빛 안으로 들어가면 캄캄한 암흑이다. 하나님은 암흑 가운데 계신다. 그것이 구약 때 계신 방식이었다.
그리고 일곱 등잔의 빛 앞에는 떡상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서 교제하던 자리다. 백성의 대표자는 거기서 날마다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등불을 어떻게 켜냐면 이스라엘 백성이 감람나무에서 찧어 낸 기름을 가져오면 그 기름으로 켜는 것이고 떡상 앞에 차려놓은 떡고 무슨 떡이냐면 가나안 땅의 산물로 만든 떡을 가져오면 그것이 하나님의 식탁에 놓인 떡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떡을 제사장이 먹는다. 또 그 빛도 실은 제사장이 받는다. 그러니까 성소가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제사장이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인데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생명이요 영광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중에 주신 생명과 영광은 곧 그들의 사명과 일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빛은 무엇이냐? 감람나무로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가져오라 그랬다. 떡상에 놓인 떡은 고운 밀가루로 기름섞어서 만든 떡이다. 그것은 모두 가나안 땅에서 주신 생명의 풍성함이 거기 다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생명의 선물이고 그 생명의 선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즐거워 하는 것이 곧 이스라엘의 생명이고 영광이고 사명이다. 그래서 감람 나무 기름을 가져와야 된다.
만일에 하나님이 그 땅을 저주해서 감람나무도 말갛게 베어 버리고 땅에 있는 것은 메뚜기가 다 먹어 버리고 그러면 하나님 앞에 사를 등불도 없을 것이고 하나님의 상에 놓을 떡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거기 드러내고 바로 거기서 그들은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상에서 먹는 생명의 교제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휘장 안에는 캄캄한 암흑이어서 하나님을 볼수 없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누리는 빛과 생명은 성소에 있는 빛과 생명이고 그것은 가나안 땅에 주신 생명이고 빛이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있는 기름과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등불을 켜면 그것이 곧 그들이 하나님을 누리는 생명의 교제의 처소를 이루는 것이다.
이 은혜의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완성하셨냐면 참 빛이시오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참 감람나무다. 여기서 참이라는 것은 거짓말에 비해 참이라는 말이 아니라 모세 제도에 비한 참이다. 모세 제도는 육체에 속한 것이고 예수 안에 있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그런 의미로 참 빛이다. 구약 때 빛은 일곱 등잔에 감람나무 기름으로 켠 빛이요 예수님은 참 빛이셔서 우리는 예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뵙고 휘장으로 가리우고 계신 분이 아니라 그는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뵙는다. 그분은 진정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오신 분이다. 그는 참 빛이시오 생명이시다. 참 빛이시오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참 감람나무이시다. 구약 표상대로 하면 그렇다 그 말이다.
감람나무에서 찧어 낸 기름으로 등불을 켜도록 하셨다. 감람 나무가 아니면 등불은 켜지지 못하고 빛은 없다. 그러면 캄캄한 암흑이고 하나님을 만날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감람 나무로 찧어낸 기름이 곧 일곱 등잔에 비친 빛이다. 그래서 등대나 감람 나무는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일치가 되는 것이다. 왕이요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성령을 교회에 주시어 교회로 하여금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게 하신다. 슥9장을 보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운다. 원수들의 방해가 많았다. 다시 일곱 등불에 불이 켜질것인데 그 등을 보면 좌우에 두 감람 나무가 서 있어서 일곱 금관을 통해서 계속 금 기름같은 감람 나무 기름을 공급하니까 등불이 꺼지지 않고 불을 켠다. 거기서는 하는 말이 큰 산이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스룹바벨 성전을 원수가 방해하지만 감람 나무에게서 순결한 금 기름이 공급되기 때문에 그 등불은 꺼지지 않고 빛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이방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성령의 권세로 이루어 질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두 감람 나무는 여호와 앞에 모셔 서 있는 두 증인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계시록에서도 두 증인 이야기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들이 두 감람나무다. 구약에서 항상 두 증인하는 것은 교회 숫자이면서도 특별히 에스겔 성전을 보면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하는 두 직무들은 제사장과 왕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영광은 제사장과 왕을 통해서 그렇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나무가 아니라 진짜 자기 자신이 생명이시다. 생명은 제사장이요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에 공급되기 때문에 교회는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또 그렇게 주님의 성령으로 삶으로 주님을 드러내는 세상에 구원의 빛을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감람나무 기름을 가져오면 그것으로 꺼지지 않게 불을 켜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감람나무는 가나안 땅의 풍성한 축복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완전한 생명은 아니다. 진정한 생명은 참 감람나무인 예수로부터 주어진 생명이다. 그분이 그의 성령을 교회에 공급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빛을 받고 또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비치는 등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직무를 하기 위해서 제사장에게 아름다운 의복을 입히고 위임식을 하는 것이 28-29장에 연속 기록이 되어 있다. 오늘은 28장1-5절까지가 되겠다. 물론 28장 전체적인 문제를 다루겠지만 5절까지 되겠는데 거기서 제사장의 의복의 재료가 무엇인지 하는 문제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영광스럽게 하셨는가? 하는 문제를 말씀 드리겠다.
여기 28장을 보면 항상 문장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교리 적으로 배우려고 하지 말고 그 문장 자체를 읽어서 그 특성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내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여기 보니까 제사장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이스라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모세 가문에서 나오기 때문에 네 형 아론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 중에 아론과 그 아들들을 네 앞으로 나오게 해서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신17장을 보면 임금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방인중에서 삼으면 안되고 너희 형제중에 너희를 다스리는 왕을 세우고자 하거든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도 보니까 제사장을 세우는데 이스라엘 자손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이스라엘과 같은 형제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는데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마음에 무릇 지혜 있는 자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흉패 에봇 겉옷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그들의 쓸 것은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 보니까 분명히 아론을 위한 옷을 만드는데 4절을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해서 옷을 짓는다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는 쭉 아론 이야기다. 그 다음에 40절을 보면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게 아름답게 하되. 여기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은 여기 아들들을 위해서도 짓도록 되어 있다. 이제 까지는 전부 아론을 염두해 두고 있는데 40절에서는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라. 너는 그것들과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 40절 이하에서는 아론의 아들들이 앞서 있고 그러면서도 다시 아론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런데 제일 끝에는 무슨 옷을 지을 때 그러냐면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짓고 관을 만들라 해 놓고 뒤에 보면 속옷 이야기다. 그 속옷으로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단에 들어가면 죽을 것이다. 그런데 아론에 대해서는 속 옷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지 않고 아론의 아들들을 말할 때 드디어 속옷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아론의 옷을 만들 때 4절에 보니까 그 아들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라 그랬는데 무슨 말인가? 실은 아론의 아들들은 아론의 영광스러운 옷을 입지 않는다. 그 영광스런 옷은 아론의 대제사장 직무에 합당한 영광이고 그것은 아론이 죽으면 아론을 이을 아들이 입을 옷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론의 의복을 이야기 할 때는 가리우지 않으면 죽으리라 그런 말은 없다. 그 다음에 아론의 아들들을 위해서 속옷을 만들어라 해 놓고 그 다음에 아론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거기서 드디어 하체를 가리지 않으면 죽으리라. 그런 말이 나와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을 벌써 영광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아론과 연결되어 있는데도 죽으리라 한 이야기를 아론의 아들들에 대해서 한 이야기고 아론을 이야기했을 때는 하체를 가려라 그런 말이 거의 나와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런 표현 방식들을 조심해서 보라 그 말이다.
그러면 이 옷은 어떤 옷이냐?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해라. 즉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입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 옷을 입지 않으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옷은 누가 짓냐면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내가 채운 자들에게 말해서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그랬다. 이 옷은 여호와의 영으로 채움을 받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짓는다. 다른 말로 하면 여호와의 영이 지은 옷이다. 이것은 성소를 지을 때도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자들이 그것도 유다 지파와 단 지파에서 나온 자들이 전을 짓도록 되어 있다.
제사장의 옷도 여호와의 영으로 채움을 받은 자들이 짓도록 되어 있다. 그 재료는 무엇이냐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그렇게 짓는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소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금판자에다가 청색 자색 홍색에다가 가늘게 꼰 베실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완전히 성소 내부의 색깔과 제사장의 의복의 색깔이 같고 성소를 짓는 지혜의 영과 제사장의 옷을 짓는 지혜의 영이 같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있냐면 하나님의 영광 중에 있는 대표자다. 너희 형제 중에서 아론을 뽑아서 이스라엘 형제 중에 그런 대표자를 주시는 것이다.
어떻게 여호와 앞에 항상 등불을 켜고 등불 켜는 앞에서 떡을 먹어야 한다. 그 등불 켜는 장소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다. 그 안에는 캄캄한 암흑이어서 아직은 아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생명을 거기서 누리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하나님의 성소의 영광으로 입혀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이 여기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영광스러움은 어떤 영광스러움이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가슴에다 붙이고 어깨에 새겨라. 그러니 하나님의 성소에 그 대제사장이 들어가면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형제일 뿐만 아니라 이름이 항상 하나님 앞에 들어가니까 항상 백성이 같이 나아간다. 그것이 제사장에게 주신 영광이다. 본문을 그처럼 설명했으니까 이제 주부를 읽으면서 설명하겠다.

바로 이것 때문에 신약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냐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우리는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입었다. 또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라. 그런 말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영광의 빛 가운데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영광으로 옷 입으라는 명령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 때는 휘장밖에 있는 영광으로 옷 입었지 우리를 창조하신 자의 영광을 덧입고 그렇게는 못했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빛 앞에 있다. 그러니까 그분으로 옷 입어라. 그것이 너희들이 세상에 비치는 빛이니라.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8장1-43절까지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도록 부르심을 입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다.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다. 너희 형제 중에서 하는말이 그런 말이다. 우리와 같은 형제다. 그중에서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제사장들이 직분을 행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거룩한 옷을 지어 입히시어 그들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 영광의 옷을 입지 못하면 그 영광의 처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집은 전부 금집이고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되어 있는데 그 영광의 합당하지 않는 것은 거기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아론과 그 아들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 직무를 행하도록 부르심을 입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 형제 중에서 그들의 대표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제사장들이 이 직분을 행할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성소 안에 있는 영광으로 제사장을 옷 입혀 주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 옷은 거룩한 옷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이다. 그 거룩은 영화롭고 아름다움이다. 그런 의미로 거룩이다. 너무 깨끗해서 거룩하다 그 말이 아니라 거룩한 옷인데 어떤 의미로 거룩한 옷인가? 영화롭고 아름답다는 의미로 거룩이다. 그 영화로움은 성소의 영광이고 성소의 아름다움이다.
제사장들의 옷은 여호와께서 지혜의 영으로 채운 자들이 지어서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하고 여호와께서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한다. 제사장의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움은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입혀주신 것이다.

아론이 입었던 옷은 그 아들이 입는다.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어서 영원히 살아 있는 대제사장을 나타낸다. 지금 28장에서 이 이야기는 없다. 28장에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 중에 대표자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영광의 빛과 그 양식을 누리도록 하는가 하는 교제의 처소에 대한 이야기만 되고 그 다음에 이제 아론의 옷은 그 아들이 입어라 하는 것은 28장 위임식에서 하는 이야기다. 28장29절을 보면 아론의 거룩한 옷은 아론의 후에 그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것이며 그를 이어 제사장 된 아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때는 7일 동안 그것을 입을지니라. 아론이 죽으면 그 아들이 입는 것이다. 이것은 위임식에서 나온다. 그 위임식을 보니까 아론이 죽은다고 끊어진 것이 아니다. 아론의 아들들이 입어라고 그랬는데 실은 한 아들이 입고 또 그 다음 아들이 입을 것이다. 그런데 7일 동안 입으라고 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영원히 위임된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위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어떻게 그 영광을 주셨는가 하는 이야긴데 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뒤에 것을 가져다가 여기서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어서 영원히 살아 있는 대제사장을 나타낸다.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을 때 거기서 아버지의 옷을 입고 이스라엘 회중에게로 돌아왔다. 아론의 죽음은 이스라엘 회중에게는 감춰져 있다. 민20장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
아론이 범죄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하나님은 호르산으로 올라오도록 하셨는데 아론이 거기서 죽었고 엘르아살이 아버지의 옷을 입고 내려왔다. 모세도 올라가서 죽었다. 아론도 올라가서 죽었다. 그리고 아론의 죽음을 보니까 그 아들들이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내려 왔기 때문에 아론의 죽음은 회중에게는 감춰져 있다. 이는 영원히 살아 있는 대제사장에 대한 약속이다. 대제사장에게는 죽음이 없다. 그러니까 대제사장은 아버지가 죽어도 죽음을 만지면 안된다. 대제사장은 그런 의미로 거룩하다. 대제사장은 성소의 영광으로 아름답고 거룩하다. 거기는 죽음이 없다.

28장에서는 강조되는 것은 대대로 물려받는다는 위임 문제가 아니라 아론의 옷과 아론의 아들들의 옷이 같다. 실은 틀리다. 아론의 옷은 대제사장의 영광스러운 옷이고 일반 제사장의 옷은 그런 영광스런 옷이 아니다. 그런데도 똑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전반부는 전부 아론 이야기만 하지 아론의 아들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아론 아들들의 이야기는 끝에 가서 조금 하면서 속옷을 입어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 만일에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아론을 이야기 할 때는 그런 죽는다는 위협이 없다. 아들들을 이야기하면서 아론과 연결시키면서 그 이야기를 살짝 한다. 그러니까 아직도 이 영광은 온전한 영광은 아니다. 아직도 가리워야 할 부분이 있고 가리우지 않으면 죽는다. 아직도 온전한 영광이 아니다. 물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로도 영광스러움이 아니지만 여기 보니까 가리우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그런 경고가 주어져 있다.

제사장의 머리는 아론이요 그 아들들이 함께 제사장 직분을 행한다. 그러므로 아론을 위한 대제사장 복장을 먼저 언급하시고 그리고 나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한 속옷과 영화롭고 아름다운 관과 기름 부음을 말씀하신다.

아론의 옷의 재료는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다. 이것은 성소의 재료와 같다. 성소는 금판자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었다. 제사장에게 주신 영광은 성소의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나 아론과 그 아들들은 고의를 만들어 하체를 가리워야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서 죽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아직도 온전한 영광은 아니다.
이 은혜의 일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서 온전히 성취하셨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여 하늘 보좌 우편에 오르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뵈며 그 영광의 빛 가운데서 살며 또 한 세상에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빛과 신령한 제사장으로 세우심을 입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간다. 하체를 가리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이다.
예수님은 영광과 존귀로 관 씌신 예수를 보니 어떻게 해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는가? 히브리서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맛보시고 그렇게 하셨다. 그는 우리 형제 중에서 택하심을 받은 자다. 그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셨고 우리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우리 중에 택하심은 받은 대제사장 그런데 아론처럼 의복을 입은 분이 아니라 그는 하늘 처소에 들어가신 분이시다. 그는 성령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 그분이 우리의 대표자로 하나님 보좌 앞에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도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한다. 휘장밖에 일곱 촛대에서 본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서 하나님 자신을 본다. 그는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 신데 그분이 우리의 대표자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하나님 안에 있고 보좌에 앉았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간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은 영원한 대제사장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대제사장 왕이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감람나무다. 그분이 생명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바로 그 영광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우리를 신령한 제사장으로 불러 들이셨다. 그분이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대제사장 예수시다. 히브리서에서 하고 있는 말씀이다.
우리들이 그 영광의 빛 가운데서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윤리적인 명령이 가능한 것이다. 그분을 드러내도록 사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그러니까 교회가 은혜를 입었다 그 말은 곧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왜냐하면 거기서 우리를 통해서 세상이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힌 은혜로 윤리적인 명령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옷입어라. 그런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옷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위한 옷인가? 이 제사장의 영광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영광인가 하는 것은 이제 제사장의 의복에 여러 장식물이 달렸다. 흉패와 어깨에 보석이 있다. 그리고 머리에 쓰는 관이 있는데 그런데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론이 입은 영광은 휘장 밖에까지 박에 못 들어간다. 아론이 켜는 것은 휘장밖에 일곱 등잔의 불밖에 아니다. 또 가나안 땅의 감람나무 기름밖에 아니다. 그러나 교회에 주신 빛은 예수님이 영광의 거처로 들어가신 영광의 빛이고 교회가 비치는 빛은 참 감람나무이신 생명의 성령으로 주님의 어떠하심을 세상에 비치는 것이다. 그것이 구약과 신약의 큰 차이점이다.
지금 출애굽기를 배우니까 아주 그리스도가 누구 신가를 자세히 나타내 주고 있지요? 구약이 이처럼 전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다. 구약 성경만 읽으면 휘장 밖에까지 밖에 못나가고 예수를 믿으면 구약의 휘장은 영원히 벗겨진다. 그런데 아론과 그 아들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형제 중에서 뽑았다. 우리가 다 아론과 같이 다 신령한 제사장이다. 온전한 하늘에 대제사장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가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예수의 영광의 옷을 입는 것이다. 그 영광은 죽음이 없는 영광이기 때문에 대대로 물려 받도록 되어 있다. 그것이 29장에 취임식에 나타난 이야기다.
실은 신약에 있는 모든 언어들은 이 구약에서 나온 언어들이다. 예수의 영광 했을 때도 느닷없이 나타난 영광이 아니라 구약에 영광이 먼저 토대다. 그런데도 구약의 영광은 휘장으로 가리운 영광이었다. 이제는 가리움이 없이 온전히 오셔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성령으로 권능으로 하늘 보좌 우편에 취임하셨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 항상 언어 개념과 모든 기본 개념은 구약에서 가지고 온 개념들이다.
그러니까 영광 하면 그 영광이 무엇인고 독사 해 가지고 언어 풀이하고 그렇게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구약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예수에게 비치는 영광은 휘장으로 가리운 영광이 아니라 바울이 보았을 때 하늘에서 해보다 더 찬란한 영광으로 나타나셨다. 그분이 히브리서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그는 우리의 형제요 죽음을 맛보신 분이라. 그가 휘장 안으로 먼저 들어가셨다. 우리의 대표로 그는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서 그렇게 하셨다. 그는 죽음이 없는 참 하나님이 시요 왕이요 제사장이시다. 바로 그분의 영광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로 옷 입으라는 윤리적인 명령이 주어진다. 이렇게 보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을 잘 몰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된 색이구나. 크게 알겠지요? 일일이 옷 장사 안해도 되고 대충 아는 것이다. 아하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 된 것이구나.
그리고 모르면 더 이상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왜 청색 자색 홍색을 해석하고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크게는 하나님의 성소와 관계된 영광이다. 그것은 전부 일단은 생명과 관계된 것이다. 거기는 복수가 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휘장을 치고 있는 것은 가리고 있는것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는 생명과 복으로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분의 인격과 그분이 주신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드러난 것이지 복수 같은 것은 없다. 그러면 거기서 홍색실은 생명과 관계가 있지 죽음과 관계가 있는것이 아니다. 청색은 하나님의 발밑이 청옥을 편 듯 광명하더라. 했으니까 이것도 하늘에 대한 색깔이다. 또 자색 하는 것은 항상 왕의 색깔이 다 자색들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 가늘게 꼰 베실 그것은 아주 아름다운 옷 색깔이다. 흰색은 무엇이냐? 거룩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이다.
어떻든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된 색깔이구나. 그렇게 알면 된다. 그리고 여기서 색깔 철학을 전개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이다. 왜냐하면 색깔은 구체적으로 해석을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전체적으로 이미지만 전달하지 개별 종목의 해석은 하지 않는다. 해석하지 않는 것을 일일이 해석하려고 하고 거기다 예수님을 막 붙이니까 근거도 없는데 기분은 좋고 그렇게 해서 은혜 받으면 안된다 그 말이다.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장막을 짓고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면서 이스라엘 형제 중에 하나님 앞에 등불을 켤 제사장을 주셨는데 그는 하나님의 성소의 영광으로 옷 입혀 주셨다.
백성을 대표해서 항상 하나님 앞에 등불을 켜고 하나님을 봉사할 수 있도록 하셨다. 만약에 그 방에 불이 꺼져 버리면 못 들어가는 것이다. 낮에는 그 빛이 휘장을 통해서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까 창조주의 영광과 구원의 주의 영광은 실은 같은 것이다. 밤에는 등불을 켜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 재림하시면 이제는 성소의 영광이 따로 없고 등불이 따로 없고 어린양이 친히 빛이 되신다. 그 때는 햇빛과 성소 안에 일곱 등불이 구별된 것도 아니다. 완벽하게 하나다. 그렇게 비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형제 중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옷 입힌 대제사장을 주셨다. 그 가문들이 이 옷을 입도록 그렇게 되어 있고 형제의 대표로 입도록 되어 있고 이런 영광스런 대제사장을 줌으로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에 등불을 켜는 백성으로 생명의 교제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백성은 아직 까지 못 들어갔다. 왜냐하면 대표자만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은 다 들어간다. 왜냐하면 온전한 은혜가 이루어 졌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은 휘장밖에 등불이 아니라 휘장을 거둔 영광으로 빛으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영광의 빛으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도록 생명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부으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자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고 영광과 존귀로 관 쓰셨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다.
그런데 왜 구약을 읽으면 어둡다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읽으면 읽을수록 쉬어야 되는데 열왕기나 역대기를 인용하면 아 무협지 이야기 한가보다 삼국지 같아서 모르겠고 신문 예를 들면 번쩍 알겠고 그리고 구약의 모든 언어가 출애굽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조직되고 하나님은 그 집에 거하신 것이고 그 임마누엘이 예수안에서 완성됐다고 마태복음은 이야기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항상 출애굽기 언어를 토대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출애굽기를 빼 버리고 신약을 설명을 못한다. 왜냐하면 기본 개념을 구약에서 가지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도 구약을 월등히 뛰어 넘어 버려야 된다. 그러니까 신약이 아니면 구약은 이스라엘의 책밖에 안되는 것이다. 신약은 탁월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에서 드디어 구약이 해석이 된다. 그래도 기본적인 의미는 구약에서 가져와야 된다. 신구약이 상호 해석이 안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여러분이 사람 종이 되면 안된다. 여러분 자신들을 그리스도처럼 온전케 하시려고 목사를 세우셔서 도와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항상 목사한테 한수 배우려니 하고 앉아 있으면 안된다 그 말이다. 아 우리 목사님 잘한다고 자랑해도 성경은 이야기 못하고 그러면 안된다. 여호와 증인들은 그렇지 않는다. 성경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는 천주교처럼 묘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면 안된다. 여러분 자신들이 읽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다.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