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노래[출 15:1-18]

2006. 7. 16. 23:57목양자료/3.강해설교

본문:출15:1-18


얼마전 6.25를 기념하면서 만델라 어린이 재단과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 잠실 운동장에서 있었습니다. 보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만 거액의 입장권으로 화제가 되었고 또 그가 노래를 위해 반입한 엄청난 장비로 인해서 더욱 화제가 되곤 했었습니다. 무대장비 도입에만 무려 17억원의 경비가 들었다는 그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노래 몇 곡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장비와 또 경비를 아깝지 않게 사용하는 그의 큰 규모에 놀랄 따름입니다.
그의 노래의 성향이나 도덕성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저는 이번 그의 공연을 보면서 자신의 노래를 위한 열정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모습에 아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의 노래'라고 알려져 있는 홍해를 건넌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가 하나님께 드린 노래입니다. 노래라고 하는 것은 사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는 즐거움의 표현이고, 마음의 문이 열린 증거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너희가 즐거우면 찬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이라고 하는 것은 심령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노래가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또 노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느냐? 하는 부분에 이르면 우리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예배는 할렐루야성가대와 임마누엘성가대의 연합 헌신예배로 드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성가대원들은 자신들이 먼저 어떤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노래하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내가 주님을 노래하는 일에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는가를 한번 돌이켜 보기를 바랍니다.
투자에는 물질적인 투자도 생각할 수 있고, 시간적인 투자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들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투자를, 얼마나 많은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노래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리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입을 모아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별이 됩니다. 1-5절까지는 지금 홍해를 건너 그 감격이, 채 사라지기 전의 따끈따끈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앞의 홍해를 열어주시고, 따라오는 바로의 군사들을 불기둥으로 막아주시다가 그들을 홍해에 수장시키시는 장면을 그들이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서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감격이 충만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더불어서 여호와께 노래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누구입니까? 바로 홍해가 앞에 가로막히고 뒤에는 바로의 군사가 자신들을 추격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의 종 모세를 말로 힘들게 했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여기로 인도해 달라고 했더냐? 무덤이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이려고 했더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퍼부었던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큰 역사 속에 이제는 감사와 찬송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신명기 16장 16절은 "너희 중 모든 남자는 1년에 세 차례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고 1년에 3번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누구입니까? 가정을 이끌고 가는 경제적, 신앙적, 중심축이 되는 가장입니다. 그 가장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드리되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서 그 힘대로 드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감사의 전통이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맥추 감사절은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이지만 지금 우리는 보리 추수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농경 사회가 산업 사회로,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정보화 사회로 급속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산업 구조는 바뀌어가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드렸던 감사의 정신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오늘 우리들에게나 "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는 말씀은 여전히 유효한 줄 믿습니다.
재작년 12월부터 우리는 IMF라고 하는 경제적 시련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어두움의 터널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미 환율, 금리, 주식 등 경제 지표들은 이미 정상을 다 회복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좋아졌다고 하는 느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표와 실물 경제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적인 감사를 말하면 우리의 생각 속에는 "지금 우리가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데 무슨 감사의 조건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분명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가지 아주 중요한 전제 즉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장소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광야의 삶은 우리를 고통으로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심술이 아니라 축복과 은혜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광야의 길을 걷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홍해가 가로막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불평과 불만으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주었고 홍해가 갈라졌을 때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만 건너갔습니까? 신앙적인 말을 한 사람만 건너갔습니까? 하나님과 주의 종을 대적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홍해 를 건넜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있어서 예외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맥추감사가 돌아와도 나는 예외야. 나는 올해에 감사에 있어서는 예외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백성들이 "나는 하나님을 대적했으니까, 나는 주의 종 모세를 힘들게 했으니까 양심상 홍해를 건너지 않겠어"라며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건너갔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도 대한민국의 80%가 하나님을 모르거나 대적하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햇빛과 비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원수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누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는 예외'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현재적인 감사는 우리의 불신앙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우심을 바라보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찬양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그의 이름이시로다" 놀라운 찬양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것을 의미합니다. 홍해를 건너기 전에 닫혀있던 심령들도 홍해를 건너면서 모두가 활짝 열려진 줄로 믿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성도들이 존재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믿음이 적은 사람도, 믿음이 큰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앞의 홍해를 열어주셨을 때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두번째는 과거에 대한 감사입니다. 6절 이하에서 10절까지 보면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셨는지... 에벤에셀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과거에 대한 감사는 언제 가능하느냐 하면 현재적 감사의 문이 열릴 때 과거의 감사의 문도 열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미래적인 감사입니다. 1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앞으로 어떻게 인도해 주실 것인지 오늘 하나님의 역사를 보니까 이제는 용기가 생깁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감사가 충만한 그들에게 있어서 이제 미래지향적인 감사의 삶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줄로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가장 성숙한 감사의 모습입니다.
현재와 과거에 대한 감사의 사람이 미래지향적인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감사를 우리는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눈 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주실 것이라.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 당신이 미리 예비해 주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하는 일도 홍해를 건너는 일도, 감격, 감격, 현재적 감사이지만 하나님은 그것도 이미 예비해 두신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의 모습이 미래지향적인 여호와 이레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치료제가 없어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중 어느날, 깨진 창문 틈을 통해서 날아온 곰팡이 포자를 현미경으로 연구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곰팡이 속에 페니실린의 원료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의 연구실은 열악하고 협소했습니다. 창문은 깨졌고 바람과 먼지가 들어오는 그러한 연구실이었습니다.
페니실린 연구로 세계에 유명해진 소문을 듣고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친구는 그의 연구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만들다니..." 플레밍은 말합니다. "이 열악한 연구실 덕분에 나는 페니실린을 만들 수 있었다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의지라고 하는 것을 나는 깨달았네"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만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환경 탓만 하는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말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 때, 그 시련이 축복의 도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별처럼 빛나는 일꾼들로 새롭게 변화시키실 줄 믿습니다.
광야의 시기 속에서도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감사의 조건들을 담아서 주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 힘든 시기를 살아오면서도 우리의 믿음을 변치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감사가 있을 때 지난날의 대한 감사도, 또 미래에 대한 감사도 넘칠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 이레의 신앙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