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설교
2006. 5. 15. 22:31ㆍ목양자료/2.설교자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설교
성령의 역사가 없는 설교란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령과 설교, 그리고 설교자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령은 설교자를 통해 어떻게 일하시는가?
I.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침묵하게 하신다
성령은 죄인인 설교자에게 거룩한 영으로 다가오셔서 설교자의 죄와 절망을 절감하게 하시므로 설교자로 하여금 자기 언어를 침묵하게 하신다. 이 때 설교자는 철저히 자기 속에 하나님 부재를 경험하며 전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절망은 설교자를 다시금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들며, 설교자로 하여금 설교의 진정한 주체가 설교자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한다.
II.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말씀하게 하신다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자신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신다. 그리하여 용서받은 설교자는 문자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사건으로 이해하게 된다. 설교자는 문자를 꿰뚫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에 문자는 살아있는 영의 사건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때 설교자의 침묵이 깨지며 성령의 새 언어가 솟아나는 것이다.
III. 성령은 설교자에게 하나님과 회중의 간격을 극복케 하는 중매자 역할을 하신다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는 두려움으로, 그러나 회중 앞에서는 담대함으로 서게 하시는 능력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은 설교자가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며, 회중 앞에서의 담대함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 회중 앞에 서기 때문이다.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회중의 죄악을 고백하게 하며, 동시에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대행자가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IV. 성령은 설교자의 영과 더불어 일하신다
성령은 설교자의 마음과 더불어 일하시나, 설교자의 마음의 움직임이 반드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성령은 '우리 밖에'(extra nos) 계신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 안에'(in nos) 우리의 영과 더불어 거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위해'(pro nobis) 일하시는 분인 것이다. 우리 밖에 계신 분이기에 겸손히 그를 기다리며, 우리 안에 계신 분이기에 성령이 거하는 전인 우리의 몸을 귀히 여겨야 하고,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기에 그분의 능력에 덧입기를 기도해야 한다. 설교자는 바로 이 놀라운 성령의 모습과 활동을 회중에게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V. 성령은 설교자의 언어를 항상 현재로 만드신다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과거의 일을 회상하게 하심으로 오늘의 사건으로 만드시고, 미래에 완성될 일을 앞당기심으로 오늘 선취적으로 이 자리에서 경험하게 하신다. 회상으로 과거를, 그리고 전망으로 미래를 오늘의 사건이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설교자의 회상과 전망의 궁극적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의 과거이며, 동시에 미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오늘 역동적으로 경험하도록 선포하는 것이다.
VI. 성령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만물과 역사와 사회 중에서도 역사하신다
성령의 은총과 역사란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자연피조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와 역사의 자리에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회중이 접하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증언해야 하며, 그렇게 회중을 이끌어야 한다. 설교자가 교회를 넘어 역사하시는 성령을 바라 볼 수 있을 때 그는 비로소 이 시대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선포하는 예언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성서마당} 98년 10월 김 지 철)
성령의 역사가 없는 설교란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령과 설교, 그리고 설교자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령은 설교자를 통해 어떻게 일하시는가?
I.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침묵하게 하신다
성령은 죄인인 설교자에게 거룩한 영으로 다가오셔서 설교자의 죄와 절망을 절감하게 하시므로 설교자로 하여금 자기 언어를 침묵하게 하신다. 이 때 설교자는 철저히 자기 속에 하나님 부재를 경험하며 전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절망은 설교자를 다시금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들며, 설교자로 하여금 설교의 진정한 주체가 설교자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한다.
II.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말씀하게 하신다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자신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신다. 그리하여 용서받은 설교자는 문자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사건으로 이해하게 된다. 설교자는 문자를 꿰뚫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에 문자는 살아있는 영의 사건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때 설교자의 침묵이 깨지며 성령의 새 언어가 솟아나는 것이다.
III. 성령은 설교자에게 하나님과 회중의 간격을 극복케 하는 중매자 역할을 하신다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는 두려움으로, 그러나 회중 앞에서는 담대함으로 서게 하시는 능력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은 설교자가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며, 회중 앞에서의 담대함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 회중 앞에 서기 때문이다.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회중의 죄악을 고백하게 하며, 동시에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대행자가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IV. 성령은 설교자의 영과 더불어 일하신다
성령은 설교자의 마음과 더불어 일하시나, 설교자의 마음의 움직임이 반드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성령은 '우리 밖에'(extra nos) 계신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 안에'(in nos) 우리의 영과 더불어 거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위해'(pro nobis) 일하시는 분인 것이다. 우리 밖에 계신 분이기에 겸손히 그를 기다리며, 우리 안에 계신 분이기에 성령이 거하는 전인 우리의 몸을 귀히 여겨야 하고,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기에 그분의 능력에 덧입기를 기도해야 한다. 설교자는 바로 이 놀라운 성령의 모습과 활동을 회중에게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V. 성령은 설교자의 언어를 항상 현재로 만드신다
성령은 설교자로 하여금 과거의 일을 회상하게 하심으로 오늘의 사건으로 만드시고, 미래에 완성될 일을 앞당기심으로 오늘 선취적으로 이 자리에서 경험하게 하신다. 회상으로 과거를, 그리고 전망으로 미래를 오늘의 사건이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설교자의 회상과 전망의 궁극적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의 과거이며, 동시에 미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오늘 역동적으로 경험하도록 선포하는 것이다.
VI. 성령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만물과 역사와 사회 중에서도 역사하신다
성령의 은총과 역사란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자연피조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와 역사의 자리에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회중이 접하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증언해야 하며, 그렇게 회중을 이끌어야 한다. 설교자가 교회를 넘어 역사하시는 성령을 바라 볼 수 있을 때 그는 비로소 이 시대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선포하는 예언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성서마당} 98년 10월 김 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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