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아가 (아 1:1)

2006. 1. 26. 11:16목양자료/3.강해설교

솔로몬의 아가 (아 1:1)
영적 주제 : 노래 중의 노래

요 약

아가서의 우월성은 무엇보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으며, 전무후무한 지혜자의 노래일 뿐 아니라, 사랑을 가장 많이 경험한 자의 노래이며, 가장 우월한 주제인 사랑을 취급하고 있되, 중요한 것은 내면적으로는 그리스도와 성도들과의 깊은 인격적인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일방적인 주님의 사랑만을 들어왔지만 아가서에서는 주님과 성도간의 인격적인 사랑과 그 발전이 묘사되어 있다. 이 사랑은 기도를 통한 깊은 영적 체험을 시사함은 물론 지상 부부에게도 좋은 교훈이 된다.

설 명

1. 내 용
⇒ 솔로몬이 쓴 노래임을 소개한다.

2. 저자 - 솔로몬
전무후무한 지혜자 - 사랑의 최고 경험자 - 영감을 입은 자

3. 제목 - 아가
아가(雅歌)= ‘노래 중의 노래’
가장 우월한 이유는 신령한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

4. 아가서 사랑의 특징

1) 인격적 체험적 연합적인 사랑

2) 앞선 신랑의 사랑
① 포도주와 같은 사랑 (신랑 1:2→신부 4:10)
② 향기름 같은 사랑 (신랑 1:2→신부 4:10)
③ 사랑의 결박성 (신랑 1:4→신부 7:5)
④ 사과나무와 같은 사랑 (신랑 2:3→신부 7:8)
⑤ 아름답고 화창한 사랑 (신랑 1:16→신부 7:6)
⑥ 안아주는 사랑 (신랑 2:6→신부 3:5)
⑦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말 (신랑 2:13→신부 8:14)
⑧ 구체적으로 칭찬 (신랑 4:1-5→신부 5:10-16)
⑨ 오누이 의식 (신랑 4:9→ 신부 8:1)
⑩ 모두가 좋아하는 대상 (신랑 1:2-4→신부 5:10-13)
⑪ 기타 예를 명시하자면 본서의 지면만큼 많은 분량이다.
3) 신부의 점진적인 사랑

사모(1:1-6)→약혼(1:7-2:12)→결혼(2:13-3:11)→신혼갈등(4:1-6:3)
→문제의 해결(6:4-14)→성적매력(7:1-13)→금의환향 출산(8:1-9)
→화평 관계(8:10-13)→동역(8:14)

4) 왕과 백성의 사랑

왕 - 그리스도의 예표, 백성 - 성도의 예표
(참고성구) 벧전3:5-7

5. 적 용
(가정) 부부간에 사랑의 감격이 있는가?
(신앙) 주님과의 러브스토리가 있는가?



아가 1:1
1 솔로몬의 아가라



원 문
1 םירישׁה רישׁ 쉬르 핫쉬림(노래들 중의 노래이다)
המלשׁל רשׁא 아쉘 리쉴로모(솔로몬의)
<로고스 간, 원어분해성경 참조, 이하생략>




스 토 리
솔로몬에게는
많은 왕후들이 있었다.
그러나 깊은 산골 수넴 출신인
술람미 왕후만이 온전한 사랑으로
모든 면에서 남편과 온전한 연합을 이룬다.
처음에는 많은 난관과 미숙함이 있었지만
사랑으로 이내 극복하고
솔로몬 왕의 총애와
왕실 여자들의 부러움과
온 백성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다.
솔로몬은 이 완전한 연합의 사랑을 노래로 엮었다.
오늘은 “솔로몬의 아가라”는 제목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지은 일 천 다섯 개의 노래 중에서 가장 뛰어난 노래입니다. 아가(雅歌)란 히브리어로 (םירישׁה רישׁ 쉬르 하쉬림)으로 ‘노래 중의 노래’(The song of songs)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지은 일 천 다섯 개의 노래 중에서 가장 뛰어난 노래입니다.

아가서가 가장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이 책만이 완전한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다섯 개의 노래를 지었지만 그 중에 성경이 된 것은 아가서 뿐입니다. 아가서 기자가 이 노래를 지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이 주장했음이 분명합니다. 아가서에는 놀랍게도 하나님이나 교회나 율법 등 종교적인 명칭들이 한 마디도 나타나 있지 않고 단지 부부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한 번도 구약교회에서 정경 목록에서 빠져 본 적이 없었고 논란된 적도 없었습니다. 이는 아가서를 단순한 문자적인 의미의 연애시로만 보지 않고 예표론적인 의미 즉 신랑 되신 하나님과 신부된 이스라엘의 사랑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본서에 사랑에 대한 묘사가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고 있긴 하나 그 내용이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솔직하여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세속적인 외설이라는 오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서에 숨겨진 복음적인 뜻을 간과한 오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가서를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이 노래가 전무후무한 지혜자의 노래라는 점입니다.

왕상3:12에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왕상3:11-16) 왕권을 굳건히 하고(왕상4:728) 나라를 부강하게 했으며 성전을 건축하고(왕상6:38) 왕궁을 건축했으며(왕상7:1-8) 특히 지혜로와 명성이 주변국가에 까지 뛰어났으며(왕상4:29-31) 그의 왕국의 부와 사치는 극에 달하였고(왕상10:27, 마6:29), 특히 잠언을 삼천을 말하고 노래는 일천 다섯이요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에서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까지 논하여 천하의 왕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려고 올만큼 훌륭했었습니다(왕상4:32-34).

여기 지혜의 ‘전무 후무’는 단지 지식의 풍성함만이 아니라 솔로몬이 지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계시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노래 중의 노래’란 본서에 비유적으로나마 그리스도께 관한 것이 많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가서를 통하여 한 마디 한 마디 한 구절 한 구절 버리지 않고 신앙의 깊은 영적 체험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사랑을 가장 많이 한 체험자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다른 이름은 ‘여디디아’(הידידי 여디디아)로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의 뜻입니다(삼하12:25). 여러 면에서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왕상3:13). 그리고 이성에 대한 사랑도 솔로몬을 따를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신약의 사도 요한과 함께 사랑의 기록자로 최적격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가서는 사랑의 깊은 영적 체험을 안내합니다. 카나다의 리젠트 칼리지 교수인 유진 피터슨은 “아가서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기도의 비유이며 기도의 백미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아가서가 기도의 교훈이 중심이긴 하지만 주님과의 인격적 사랑은 좀 더 폭이 넓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강해에서 풍성한 여러 가지 진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다른 부분들은 사랑에 관해서 단편적이지만 아가서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점진적이고 사이사이에 각종 오해와 해결을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4. 가장 우월한 주제인 사랑을 주제로 했기 때문입니다.

고전13:13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습니다. 벧후1:5-7에서도 사랑을 성도들이 입을 하나님의 형상의 최고봉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가서가 문자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담겨 있는 것은 이미 언급하였듯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인격적인 사랑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만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가서에서는 그 사랑과 아울러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는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더욱 여기에는 사랑을 중심한 영적 체험과 아울러 성도의 사랑의 성숙이 잘 기술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확신하지만 본서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놀랍게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기타 아가서의 문학적 형태를 말씀드립니다.

아가서를 문학적인 형태로 보면 아름다운 한 편의 오페라(opera) 즉 가극입니다. 그러므로 음악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시적인 요소인 대사, 연극적인 요소인 극화, 등장인물, 미술적인 요소인 배경 등의 오페라가 갖는 모든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등장 인물들에 있어서 주연은 역시 솔로몬과 술람미이고 엑스트라(extra)로는 합창단, 예루살렘여자들, 목자, 백성들, 왕후와 비빈들, 예루살렘 거민들, 술람미의 고향 사람들과 친구들, 솔로몬의 친구들, 축하객들, 신하들, 술람미의 오라버니들, 왕태후, 이스라엘의 육십 용사들, 행순자와 파수자, 기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랑을 노래로 엮었을까? 결혼에 대한 당시의 배경을 보면 신랑과 신부는 특별하게 꾸몄으며(아3:11, 사61:10) 음악이 있는 잔치가 배설되었습니다 29:22, 삿14:10, 렘16:9, 시45편). 그러므로 사랑을 노래로 표현함은 구약적인 전통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사랑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노래가 아니고는 그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춤을 추며 큰 소리로 노래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가서를 공부하는 동안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발전하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경이 그렇지만 더욱 아가서를 연구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본서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요 황후로서의 성숙한 사랑으로 인도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아가서의 사랑은 몇 가지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1. 상호 인격적인 사랑이란 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먼저는, 일반적인 사랑입니다. 마5:45에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선인과 악인, 우주와 만물 등을 총 망라한 사랑을 가리킵니다.

다음은, 구원적인 사랑입니다. 요일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신 대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영원 전부터 자녀로 선택해 주시고 그 놀라운 희생적인 사랑으로 구원해 주신 아가페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아가서의 사랑은 신랑 신부 상호간의 사랑이란 점입니다. 바울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4-25)고 교훈했듯 이 사랑은 상호간의 인격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성도가 신부로서 성숙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가서는 성도가 그리스도를 흠모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참으로 숨막히는 그리스도와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가서입니다.

2. 신랑의 사랑이 항상 앞서 있다는 점입니다.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고, 요일4:19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했고 요일4:10-11에도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아가서에는 언제나 솔로몬의 사랑이 앞서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비교하므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포도주와 같은 사랑에 있어서 신랑은 1:2에 나오지만 신부는 4:10에 나옵니다. 향기로운 기름 같은 사랑에 있어서는 신랑은 1:2에서 신부는 4:10에서, 사랑의 강한 결박성이 신랑은 1:4에서 신부는 7:5에서 나타납니다. 사과나무와 같은 사랑도 신랑은 2:3에서 신부는 7:8에서, 아름답고 화창한 사랑도 신랑은 1:16에서 신부는 7:6에서, 포옹의 사랑도 신랑은 2:6에서 신부는 3:5에서,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말도 신랑은 2:13에서 신부는 8:14에서, 구체적으로 칭찬도 신랑은 4:1-5에서 신부는 5:10-16에서, 오누이라는 의식도 신앙은 4:9에서 신부는 8:1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대상으로 신랑은 1:2-4에서 신부는 5:10-13에서, 기타 이러한 사항을 비교하자면 아가서의 지면만큼 많은 분량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상 부부들이 반드시 남편의 사랑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답은 서로 먼저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불가능하다면 먼저 깨달은 사람이 먼저 해야 합니다.

3. 성도들의 사랑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입니다.

엡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했습니다.
우리는 신부의 점진적인 사랑을 본서의 흐름에서 발견합니다. 즉 1:1-6에는 술람미의 사모함이 나타납니다. 1:7-2:12은 약혼이 그 내용입니다. 2:13-3:11에는 결혼이 그 내용입니다. 4:1-6:3에는 부부생활에서 갈등이 나타나는 대목입니다. 6:4-14에는 부부생활의 만족을 시사합니다. 7:1-13에는 풍성한 성적인 매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8:1-9에는 금의환향하여 고향에서 출산하는 왕후의 모습입니다. 8:10-13에는 부부간의 정신적인 연합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8:14에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가서의 사랑은 점진적입니다.

그리고 아가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연합입니다. 이 연합은 생명적 인격적 양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먼저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적으로 연합합니다. 그래서 롬6:3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했고 고전1:30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고전6:17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연합은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연합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상호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했고, 바울도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5:33) 했으며, 베드로도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벧전3:1) 했고,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귀히 여기라”(벧전3:7)고 교훈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상 부부는 이 영원한 부부를 위한 모형이요 훈련입니다. 지상의 부부의 화목과 갈등 역시 신령한 영적 문제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가서를 통해서 지상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반대로 지상 부부의 경험을 통해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의 발전을 훈련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남편에게 하는 그 순복과 사랑을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적용해 보십시오. 그대로 적용이 될 것을 믿습니다. 아가서를 통해서 주님과의 관계 회복은 물론 여러분의 가정이 더욱 화목하는 계기가 될 것을 믿습니다.

4. 왕과 백성의 사랑이란 점입니다.

벧전3:5-7에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솔로몬 왕과 일반 백성인 술람미와의 혼인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주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왕에게 붙여진 칭호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을 사라와 같이 주라 칭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라가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했다 한 것은 교양의 차원을 넘어 그것이 곧 자기를 높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자신이 왕후로 인정받는 길입니다. 나아가 남편은 왕이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왕은 백성들을 부양하고 지키고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좋은 왕은 백성들의 존중만 받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희생하는 왕입니다. 흔히 나는 주인이니까 다스려야 한다 나는 아내이니 특별한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결혼이란 자기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의무만 생각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아가 왕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백성은 그의 신부인 성도들을 예표합니다. 이것이 아가서가 보여주는 독특한 특징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상의 부부는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영원한 사랑의 예표입니다. 지상의 부부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 아가서를 통하여 신령한 사랑과 아울러 가정의 화목을 이루시는 귀한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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