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죄악의 관영함 본문:(창6:1-8) 주요내용:부패론
요 약 심령의 부패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잃어버린 데서 기인한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속을 가까이할 때 육에
속한 사람이 된다. 이 육에 속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며 죄악이 왕노릇하고 성령을 슬프게 하며 나아가 심판을 자초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소망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강력하신 회개의 기회를 주심과 노아와 같이 경건한 믿음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다.
설
명
◈ 부패의 원인(1-2) ☞ 경건의 능력 상실 하나님의 아들들 - 경건한 셋 계열의 후손 사람의 딸들 -
가인의 후손
◈ 부패의 상태
1. 함께 하시지 않으심(3) 육체(사르크스) -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
2. 죄악의 왕노릇(4) 네피림 - 타락한 난폭군
3. 성령을 슬프게 함(5-6) 한탄하사-
'헐뜩거리다, 신음하다, 숨이 차다' 근심하사 - '심령이 찢어지다'
◈ 부패의 결과 ☞ 심판하심(7)
은혜의 심판 - 영원한 심판
◈ 은혜의 소망 1. 회개의 기회(3) 2. 은혜와 믿음(8)
(본문)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1-8>
(강해) 이 시간 '죄악의 관영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죄악이 관영한
시대의 '관영'이란 '극히 많다'는 뜻으로 노아가 살아가던 시대가 얼마나 타락한 시대였는가 알 수 있습니다. 즉 노아의 한 가정만 남을 만큼,
또 120년이나 바로 살라고 의를 전파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그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물로서 심판하실 만큼 타락했다면 당시 죄악이
세상에 얼마나 창궐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6장의 기사는 먼저 대홍수 이전의 타락 상황을 보여 줌으로써 홍수 심판의
필연성을 보여주며(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사 120년간의 구원의 기회를 주셨음을 보여줍니다(8-22). 인간이란
본질적으로는 모두 악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영적 상태란 그 타락한 본질이 모두 드러난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아모리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기까지 기다리신 것처럼 본질적으로 드러날 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중대한 문제는 그 경건한 셋 계열마저
타락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가 중대한 이유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영적 셋 계열인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어쩌면 노아 시대 이상으로 타락한 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성도들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왜 그 경건하던 셋 계열이 타락하게 된 원인과 타락의 상태와 결과와 그 대책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여기서 우리는 타락의 원인을 발견합니다.
1-2절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과의 혼인에 대하여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경건한 셋 계열의 후손과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이라는 설입니다. 왜냐하면 경건한 성도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표시하고 있으며, 당시 가인의 후손들의 딸들은 예를 들면 라멕의 두
아내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세속적이고 퇴폐적인 미를 추구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을 언듯 보아서는 셋 계열의 타락
원인은 가인 후손들이 조장한 세속적인 환경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그 환경이 크게 한몫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리
타락해도 노아는 타락하지 않았다는 점과, 또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긴다는 점에서 셋 후예들이 타락할래야 타락할 수 없는 조건을
가졌는데 왜 세속화되었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그 답은 그들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셋 시대에
일어나기 시작한 그 경건한 영적 부흥 운동은 10대를 넘기지 못하고 그 줄기인 노아 가정만 제외하고는 모두 식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강한 성령의 감화로 인해 그 타락한 사람의 딸들마저 다 회개하고 경건한 백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어버린 그들의 경건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리어 세속의 감화 속에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에게서 은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은혜 떨어지면 그 순간 그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세속으로 기울게 됩니다. 현대교회가 당면한 문제가 이 문제입니다. 죄악의 풍조는 날로 발달하여 이 풍조에 휘말리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교회는 과연 성도들을 거기서 지키며 나아가 죄인들을 거기서 건져낼 수 있는 영적 감화력을 소유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는 환경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죄악에 물들지 않고 노아와 같이 신앙 생활한다는
것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21세기 목회는 경건목회 영성목회가 아니라면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셋의 시대로 돌아가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양만의 경건이 아니라 진정한 경건운동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의 문제점은 진정한
영성운동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우리는 본문에서 부패한 심령에 나타난 현상이 무엇인지 봅니다. 1. 부패한
심령상태란 어떤 것일까요?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했습니다. 여기 육체는 '사르크스'에 해당하는 단어로 이 용어는 단순히 몸을 가리키지 않고 죄의 오염으로 심히 타락한 인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육적이라 즉 이제 그들이 성령에 속하지 않고 육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없었습니다. 즉 부패한 심령상태란 하나님께서 함게 하실 수 없는 상태입니다.
고전2:14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르크스'가 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1:19에 "이 사람은 -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했습니다. 물론 성도에께서 성령이 완전히 떠나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르크스가 되면 그 충만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소멸한다는 교훈의 뜻입니다(살전5:19).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성령에 속한 사람인가 육에 속한 사람인가 어느 편에 더 가까운지 자신의 정체성을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2. 또 부패한
심령상태는 어떤 것일까요?
4절에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했습니다. 여기 네피림이란 학자들에 따라서 타락한 천사들, 괴물, 신동, 거인 등의 견해가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타락한 자들'로 규정하고 이들을 '압제자, 난폭군, 훼방자'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용사, 유명한 자"는
'강하고 힘센 자' 등의 의미입니다. 이로 볼 때 그들은 그 땅을 지배하는 악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했더니 더 부패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이처럼 은혜 받았던 사람이 세속과 결혼하여 타락하면 더욱 악해집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귀신이 나가서 다시 들어올 때는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배나 악한 귀신들 악한 자손들이 생겼습니다. 교배종이 더 강할
수가 있듯이 더 악하고 을 데리고 들어온다는 말씀과 같이 의인들이 타락하니 그 후손들은 더욱 악해졌습니다. 이처럼 부패한 심령은 죄가
왕노릇합니다(롬5:21, 고전6:12). 그래서 롬6:12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딤후3:1의 "말세에 고통하는 때"란 바로 네피림을 통한 고통입니다. 사48:22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귀한 선을 맛보고 타락한 사람들의 심령의 고통은 더 합니다. 히6:4 이하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만 보면 안됩니다. 그 다음 구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여기 '이같이 말하나' 란 '원리상으로는
그러하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에게도 이 원리가 적용은 되나 그것을 덮을 수 있는 더 큰 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 했어도 죽긴 죽지만 성도는 그 원리 이상의 특별은총이 작용하기에 회개하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습니다(시37:24). 즉 그것을 덮을
수 있는 원리란 택한 자는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붙드시어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의 견인은총입니다. 그 뿐 아니라 10절에는 이 은총에 의해 이미
충성했던 그 상까지도 결코 무효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회개치 않을 때 그 영적 상태란 네피림처럼 죄악이
왕노릇하고 나아가 그 심령이 당하는 내외적인 고통이란 당시 네피림에게 당하듯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이요 영적인
원리입니다. 혹시 마음속에 죄악의 네피림이 왕노릇하고 있다면 진실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해결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부패한
심령상태란 어떠한 것입니까?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셨습니다. 여기 사람들의 타락 상태는 인간의 전적 타락설을 뒷받침합니다.
후일 사도 바울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롬3:9-18). 그런데 여기 '한탄하사'(인나헴)란 '헐떡거리다, 신음하다, 숨이
차다'라는 '나함'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리고 '근심하사'(아차브)는 '심령이 찢어지다'는 뜻입니다. 이 용어는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 즉
하나님이 가지시는 감정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의인화한 표현으로 하나님은 이렇게 죄악을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8:23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하셨고, 롬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셨으며, 엡4:30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럼, 부패한 결과란 무엇일가요?
7절에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하셨습니다. 여기 '쓸어버리되'란 '씻다, 빨다, 닦다'의 뜻으로 얼룩지고 오염된 부분을 깨끗이 씻거나 닦아내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홍수 심판을 예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물론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게 되었습니다. 즉 부패의 결과란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약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원한 심판이요 하나는
은혜의 심판입니다. 즉 불신자에게는 영원한 심판이요, 신자요 주님을 사모하지만 죄악의 본질이 자꾸 나타나서 가눌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시려 하심인 줄 알고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호7:1에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소멸하시는 불로 깨끗이 처리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잊어서는 안될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회개의 기회입니다.
3절에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때부터 인간의 수명이 120세가 된다는 뜻도 아니고, '그들의 날' 즉 그들의 생존할 날이 120년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120년은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 권면을 들을 때,
은혜를 경험할 때, 고난의 때가 그 기회입니다. 그런데 120년의 기회를 주셨는데 120은 신령한 조직수 12에 온전한 구비수 10을 곱한
수입니다. 그러니까 그 기회 속에서 신령함을 구비하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혹은 달리 풀어본다면 40의 연단수에 하나님의 완전수 3을 곱한 수로
이것 역시 완전한 연단이니까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회개하지 않을래야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사랑의 강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연단과 부르시는 손길이란 아무도 물리칠 수 없는 강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방주 같은 신앙 역시 예비하지 못할 수가 없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은총의 때를 암시합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용납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환경과 성령의 외적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음에는, 내적으로 입혀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있습니다.
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했습니다. 여기 '여호와께'란 '여호와의 눈에'라는 뜻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노아에게서 뭔가 보신 것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신다면 무엇을 보실까요? 예수님께서도 모여든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은혜를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란 표어를 걸었는데 이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입었다'란 말씀에서 노아의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은혜이고 사람 편에서 보면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의
눈에 쏙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시144:12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이 구절과 아6:10의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란 바로 은혜 받은
심령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노아에게 대하여 말씀하기를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창6:8), 의인(창6:9), 당세에 완전한
자(창6:9), 하나님과 동행한 자(창6:9), 믿음으로 보지 못한 일에 경고함을 받아 방주를 예비하여 구원을 받은 자(히11:7), 의를
전파한 자(벧후2:5)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노아의 영성은 복음적 영성이요, 나아가 노아의 영성은 가족과 세상이라는 공동체적
영성이요, 나아가 방주로 창조물까지 보호했다는 점에서 우주적인 영성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영성은 우리 기독교 영성의 모델이요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희망은 바로 노아의 영성을 본 받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마음 아파하시는 것은 경건한 성도들이 세상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할지라도 세상에 물들지 맙시다. 그러기 위해서 은혜를
받으십시다. 그래서 죄악 세상을 이기며 둥실 둥실 떠다니는 노아의 방주처럼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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