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더스)문명(BC2500-BC321)

2005. 12. 28. 23:50교회사자료/1.기독교회사

인도하면 생각되는 것은 불교이고, 다음은 카스트 제도로 인한 미개 한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다.
우리는 인도와 연관이 적어서 그런지 매우 생소한 나라이다.
신라의 *혜초가 일찍이 이 나라를 다녀왔다.
BC25 세기경 인도 서북쪽에는 인더스강이 흐르고 강 유역에는 다른 지역보다 조금 늦게 문명이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 같다.

*혜초 (AD704 ?-787 ?) [
4대문명 지도]
혜초는 신라 출신의 스님이나, 723년 당나라 광저우에 건너가 활동하였고, 인도인 금강지의 제자가 되어,
그의 권유로 인도를 다녀왔다.
AD727 년 성덕여왕 26년에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5개의 인도나라를 갔다 온 이야기'라는 뜻으로,
'천축'은 인도라는 의미이다.
AD1908 년 프랑스인 P. 펠리오가 중국 간쑤성에서 발견하였고, 중국 '나오진'이 출판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역의 종교와 풍속을 기록하였는데 몇 가지 적어보면 여려 형제가 아내 한사람과 사는 것,
간장과 된장은 없고 소금만 있는 것, 나체생활의 풍습, 살생하지 않는 것, 흙 솥에 밥을 짓는 것,
각 절의 사정을 기록하였다.
773년경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금강지 제자인 불공(不空)삼장의 6대 제자가 되었다.
또 다른 제자로 신라 사람 신방이 있다. 혜초는 당나라에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주민
본래는 드라비다족이 전역에 살았다.
BC15 세기경에 이란과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아리안계 파가 이주하면서 북쪽에는 아리안계,
남쪽에는 드라비다족이 살게 되었다.
남하 할 때에 일부는 아리안족과 혼열 하거나 동화되었다.
아리안 족은 인도 게르만에서 분열 된 족으로 키가 크다.
피부는 백색에 가깝고, 코가 높으며, 눈이 깊숙하다. 그래서 유럽인에 가깝다.
드라비다 족은 키는 중간이고, 코는 편 평하며, 피부 검어 멜라 네시안 비슷하다.

언어
700가지 정도가 된다고 하며, 헌법에는 아리안계의 힌디어를 표준으로 정했으나, 드라비다계의 거센
반발로 현재는 영어가 공용어로 병용되어 사용하는 덕분에 P.C(pernal computer) 발전에 공헌하였다.


<인더스 문명의 유물인 팔찌와
귀고리> [
인도지도]

종교
힌두교: 80%정도가 믿는다.
본래는 아리안족의 원시 종교 브라만교로 자연의 신 번개, 태양, 불, 소, 등을 믿음으로 발달하였다.
브라만은 여러 신중에 비슈누를 최고의 신으로 하는 비슈누파와 시바를 최고의 신으로 하는 시바파,
그리고 둘가 여신을 신앙하는 샤리티파, 그 외에 여려 파가 있으나 이것을 총괄하여 힌두교라 한다.
불교: BC6-5 세기 경에 불타가 인도 전역에 퍼지고 아시아에도 퍼졌다.
그 후에 회교가 들어와 불교를 배격하였다.
회교: AD10세기 경에 회교군대가 델리 지방을 점령하여, 힌두교를 개종시켰으나 하층의 계급만
주로 믿었다.
회교는 유일신이라, 다른 교에는 관용성이 없어 수시로 힌두교와 충돌이 생겼으며,
인도 독립 시에 회교를 국교로 하는 파키스탄을 분리 독립하였다.
인도의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 대통령도 회교에서 선임되지만,
*펀잡 지방에서는 시크파(힌두교 계파)가 회교의 탄압에 무장 단결하여 충돌을 일으킨다.
소수종교로 배화교(조로아스터)는 이란 계통에서 들어 왔으며,
캬톨릭, 그리스도교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왔다.
유대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소수 집단이 있다.

*펀잡(펀자브)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청정의 땅'의 뜻) 중 북부에 걸친 광대한 지방으로, 인도령과 파키스탄령이 있다. 인더스의 5대 지류가 흐르는 지방으로 '5강의 지방' 뜻이라고 한다.
BC4 세기경에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카스트제도
'4성제도'라고도 하며 아리안족이 이주하면서 생긴 특이한 제도이다.
브라만- 종교를 주관하는 계급
크샤트리아- 무사계급
바이샤- 농업, 목축업, 상업, 공업, 각종 직업에 따라 다시 2차 카스트가 생겼다.
수드라- 노예, 정복당한 자들이다.
같은 카스트 내에서 결혼하고, 직업을 가진다.
카스트란 포르투갈어로 카스타(caster)에서 온 말로 뜻은 혈통보존을 위한 탈법(脫法)이라고 한다.
영국인이 그대로 사용하였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4성에도 들러가지 않는 천민을 '아웃 카스트(out caster)' 또는 파리아(Pariah)이라고도 한다.
천민 중에 천민으로 이들은 주거지가 제한되며 직업 등이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이들과 접촉만 하여도 천민이 옮는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간디는 이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신의 아들이라 높이고, 해방을 위하여 노력했다.
헌법에는 차별 법을 해지하였으나,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며, 대도시는 점차로 완화 되어간다고 한다.
독일의 사회역사학자인 막스 베버는 유대인이 스스로 천민민족으로 분리시켜 상업과 금융업에만
종사하면서, 종교나 도덕적으로 비천하게 여겼던 고리대금업 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리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종교나 도덕적 비난 받는 자본을 천민자본(파리아: Paria)이라고 하였다.
이런 형태의 '근대 자본주의'을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 Pariakapitalismus)이라고 하며,
용어의 어원은 파리아(Pariah)에서 왔다.

<자이푸르에 있는 힌두교
비슈누신 그림>

역사
BC 25-15 세기경 '모헨조다로(죽음의 언덕 뜻)'이라는 유적을 남겼고,
만든 사람은 잘 알 수 없으나 드라비다족이라고 생각한다. [
지도 ]
인도 문명의 중심지인, 파키스탄 서쪽 인더스강 연안의 신드 지방 라르카나 지구에 있다.
이 도시는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규모도 컸으며, AD1921-31년에 발굴이 되었다.
주택은 벽돌로 지었고, 학교, 신전, 시장, 창고 등으로 목욕탕은 공중 목욕탕으로 잘 짖어 졌다.
도로는 잘 포장 정비되었고 하수도까지 갖추었으며, 청동기구, 보석도 있었고, 무명실로 짠 옷을 입었다.
도장에 새겨진 문자는 아직 해독하지 못하였다.
약 천년 동안 유지하다가 아리안의 침입으로 망하였다.

아리안의 침입
BC15 세기경 이란과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편잡 지방에 침입하여, 철제무기와 기마병을 가진
아리안 인이 드라비다족을 정복한 후 세습제도로 지배하였다.
아리안 인은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면서 자연신을 섬겼다.
이들이 갠지스강 지역으로 이동하여 많은 도시국가를 만들었으며,
밀, 보리만 재배하다가 벼도 재배하게 되였다.
이 시기부터 도시국가에서 엄격한 카스트제도가 생겼다.


<모헨조다로 유적지의
목욕탕>


석가모니
BC556 년 지금의 네팔을 지배하고 있던 석가족에 속하는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본 이름은 '고다마시다르타'이다.
석가는 카스트 제도아래 신음하는 백성의 고통과 그리고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낳고, 죽고, 병들고,
늙는(생, 사, 병, 노) 고통에서 구원의 길을 알고자 하였다.
그는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부가다의 숲 속 *보리수나무 아래서 6년의 고행 속에
깨달음(불타의 뜻)얻었다.
석가모니라 함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고, 불타는 깨달은 사람의 뜻으로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라고 하였다.
깨달음은 고행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버리고 자비로 남에게 대하면 고통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고 설법하였다.
일반 평민과 천민의 들이 가르침을 받아드리고, 이 가르침이 불교가 되었다.
불교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있다고 하나 소승불교는 자신을 소승이라 하지 않는다.
대승불교(大乘佛敎)는 자신들을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불교가 아소카왕이 불교에 귀의하여 세력이
커질 때에 보수(재래) 불교에 반하여 큰 수레는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대승이라 하였다.
대승불교 외에 보수적인 것은 모두 다 적은 사람을 구제 하는 적은 수레에 타고 있다는 뜻인
소승불교라고 폄하(貶下)하여 부른데서 기인 한다.
대승불교는 삼론종,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진언종, 율종, 선종 등이 이에 속한다.

*보리수
보리수하면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에 작품 89번인 독일 나무의 '보리수' 이고,
다른 하나는 석가가 수행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인도 나무의 보리수이다.
이 두 보리수나무는 다른 보리수나무라고 생각되어 진다.
독일의 보리수(린덴바움-Lindenbaum, Der)는 우리 나라에 볼 수 있는 보리수이다.
인도의 보리수는 벵갈 보리수로 인도산 무화과라고도 하는데, 열대 지방에 가면 걸어 다니는 별명의
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이 나무의 크기는 엄청나서 알렉산더의 군대 7000명이 야영을 하였다고 한다.
이 정도 나무라면 석가는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석가가 수행한 보리수나무가 지금까지도 살아 있지도 않겠지만, 석가가 수행한 보리수나무 잎을
찾는 사람이 많아 잎 파리 하나가 양 한 마리 값이라고 하며, 줍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근 가게에서 은밀히 매매되기 때문에 진품여부를 두고 갈등이 잦다고 한다.
린덴바움은 4- 5m의 나무로 이 나무 아래서는 6년을 지내기에는 힘들 것이라 생각되어 추측하여 보았다.

석보상절
세종 때에 세조가 지었다고 한다.
내용은 '*아승지겁'이전 석가모니가 세상에 오 기전, 저승의 세상에서 석가모니가 한 보살 있을 때에
'구이'라는 처녀에게서 꽃 일곱 송이를 결혼 해주는 조건으로 받아 부처님께 받쳐 중생을 구할 지혜를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 약속의 이행으로, 이 세상에 와서 야쇼다라와 16세에 결혼하였고, 아들 라훌라도 얻었다고 한다.

*아승지겁
숫자의 단위로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다는 뜻' 세지 못하는 뜻으로 쓰인다.
우리가 많이 놀랄 때에 '십겁' 했다고 하며, 이것은 겁의 10배라는 뜻이니...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을
시작한 사르나트 유적>


삼장(三藏)
불경에는 석가의 가르침을 경(經:경장), 가르친 윤리와 도덕적인 실천규범을 율(律:율장),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철학 체계를 논(論: 논장)이라 한다.
장이란 이것을 간직하여 담고 있는 광주리를 뜻하고 이를 총칭한 것이 삼장이다.
화엄경, 반야경, 법화경처럼 '경'자가 붙은 모든 경전이 이에 포함된다.
또 경장을 가르치는 스승을 강사(講師), 율장을 가르치는 스승을 율사(律師), 논장을 짓거나 가르치는
스승을 논사(論師)라고 하며, 이 모두 것에 정통한 사람을 삼장법사라고 한다.
삼장법사는 '성전에 밝은 스님'의 뜻으로 최고의 학승을 일컫는 영예스런 칭호이다.
가장 알려진 사람은 중국 최대의 번역승려인 현장삼장(玄裝三藏)이다.
현장이 인도에서 불경을 들여온 일을 소설화한 명나라 때의 장편백화소설이 '서유기(西遊記)'이다.
서유기는 당나라 황제의 칙명으로 불전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현장삼장(玄萬三藏)의 종자(하인)
손오공(孫悟空)이 주인공이다.
원숭이 손오공은 돌에서 태어났으며, 도술로 천제의 궁전이 발칵 뒤집히는 소동을 벌인 죄로 500년
동안 오행산(五行山)에 갇혀 있었는 것을 삼장법사가 구출해 주어 종이 되었다.
그밖에 돼지의 괴물이며 머리가 단순한 낙천가 저팔계, 하천의 괴물이며 충직한 비관주의자 등을
포함한 일행은 요괴의 방해를 비롯한 기상천외의 고난을 수없이 당하지만 하늘을 날고 물 속에 잠기는
갖가지 비술로 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여 그 공적으로 부처가 된다는 내용이다.

마가다 왕국 [인도지도]
BC7-6 세기경에 갠지스강에 아리안이 이주하면서 많은 도시 국가를 세웠는데,
그 중에 힘이 강한 10개 도시가 통일하면서 그 중에 마가다와 코살라라 강력하였다.
마가다 왕국이 펀잡을 제외하고 북 인도를 통일하였다.
BC4 세기경에는 찬드라굽타가 나타나 마가다 왕국를 빼앗아 마우리아(BC321) 왕조를 열어
서북 인도를 통일하였다.
찬드라굽타의 3대 왕이 유명한 아소카 왕이다.
북 동쪽 갠지스강에는 잠깐동안 난조 왕국(BC341-321)지배하고 있었다.
BC326년 알렉산더가 인도에 침입 할 때에 싸운 왕이 난조 왕국의 '다나난다' 이다.
그는 기병2만, 전차2천, 코끼리 3천 이상을 이끄는 강대한 왕이 이었다고 한다.
BC321년 난조 왕국의 '다나난다'는 알렉산더와 싸우는 중에 찬드라굽타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중원을 통일한 찬드라굽타의 막대한 힘에 알렉산더는 굴복하였고, 코끼리 500마리와 정복한 땅을
맞바꾸고 알렉산더는 되돌아 갔다.

 

'교회사자료 > 1.기독교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밖의 문명  (0) 2005.12.28
중국 황하문명  (0) 2005.12.28
로마제국(BC753-AD476 서로마, BC753-AD1453 동로마)  (0) 2005.12.28
서로마제국의 멸망  (0) 2005.12.28
세계사 연대기  (0) 200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