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西)아시아의 왕국들(BC358-AD0)

2005. 12. 28. 23:47교회사자료/2.초대교회사

서(西)아시아의 왕국들(BC358-AD0)

1] 페르가몬(버가모) 왕조(BC 241-133)
[
페르가몬지도]
소아시아에서 번영을 누린 헬레니즘제국의 하나이다.
에우메네스( BC362-316)는 알렉산더의 후계자중 유일한 그리스인으로 마케도니아를 통일하려고
셀레우스코1세와 싸워 초반에는 승리하여 이집트까지 쫓아 냈으나 최후에 패하여 암살되므로 제국은
분열되었다. 에우메네스가의 한사람이 도둑왕조를 세운 내력은 이러하다.
페르가몬의 견고한 성안에는 성스러운 산이 있고 이 산에 보석을 감추어두면 도적질하지 못한다는
전설을 믿어 많은 사람이 이 산에 보물을 감추었다.
이 보석을 에우메네스가의 한사람이 전부 훔쳐 그 재력에 의하여 한 왕가를 건설한 것이
아탈로스(앗달리아)왕가이다.
BC 3세기전반에는 트라키아왕에 속하였으나 필레타이로스가 독립을 쟁취하여
아탈로스1세(재위 BC 241-197) 때 왕국이 되었다.
에네메스(재위BC197-160)2세가 성을 건설하여 최성기를 맞이하였고,
로마가 힘이 커지므로 대시리아전 때 로마 편에 협력하여 소아시아의 서쪽을 지배하였다.
제6대 왕 아탈로스 3세(재위 BC 138-133)의 유언에 따라 왕국을 로마에 귀속하여,
BC 133년 소아시아의 한 주가 되었으며, 수도 페르가몬은 후에도 번창하였다.
이 도시에 장서 20만 권의 책을 애석하게도 불쏘시개로 터어키군이 전부 태워 버렸다.
이 왕국에 속한 도시는 성경 사도행전과 계시록에 기록된 7교회이다.
7교회 중에 에베소, 서머나, 라오디게아는 앞에서 설명하였으며,
7교회 중에 설명 안된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바울의 1차 전도 시 여행한 *앗달리아, 1, 2차 때에도 간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버가, *길리기아 그리고 편지를 보낸 *갈라디아
,
성령강림의 오순절에 온 *가바도기아(벧후1:1)
를 소개하기로 한다.

[참고로 여기서 바울의 행적을 살펴보기로 한다]
(1차 전도)
시리아 안디옥(행13:1-3)→실루기아→살라미(행13:5)→바보→버가→비시디아 안디옥→이고니온→
루스드라→더베→(되돌아) 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버가→앗달리아→안디옥(행14:26)
(2차 전도)
시리아 안디옥(행15:36)→수리아(시리아)→길리기아→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드로아→네압볼리→빌립보→암비볼리→아볼로니아→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고린도→겐그리아→
에베소→가이사라→예루살렘→시리아 안디옥(행18:22)
(3차 전도)
시리아 안디옥(행18:23)→다소→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갈라디아→브루기아→
에베소→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고린도→(되돌아) 베뢰아→데살로니가→빌립보→네압볼리→
드로아→앗소→미둘레네→드로굴리온→밀레도→고스→로드→바다라→두로→돌레마이→가이사라→
예루살렘

(로마 행)

예루살렘(행23:31)→안디바드리→가이사라→시돈→무라→미항→가우다→멜리데→수리쿠사→레기온→보디올→압비오 광장→삼관→로마(행28:16)

<페르가몬의 로마유적>
※참고사항 :
성경의 나오는 지명 중에 뒤에 '아'가 있으면 우리의 개념으로 도(道)라고 생각하면 된다.
크기는 우리나라도의 2배가 넘는 크기이다. 예로 아시아, 브르기아, 무시아, 가바도기아, 갈라디아,
비시디아, 밤빌리아, 루기아, 비두니아 등이다.

*버가모(계2:12-17): 신도 안디바의 순교로 요한이 칭찬하였다. [
계시록의 7교회 ]
니골라당은 한번 믿은 후에는 어떠한 행동에도 범죄 함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리(지금의 구원파 주장과
같다)를 좇는 자들을 책망하였다. 승리자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새 명패의 흰 돌을 주겠다고 하였다.
*두아디라(계2:18-19): 버가모성의 방어용으로 구축,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자주가 유명하다.
루디아의 고향으로 빌립보에 비단가계(자주-명주)를 가지고 있는 부자이다.
모직, 구리, 빵 등이 유명하고 노예매매업과 계가 성행하였는데,
그 중에는 성과 관련된 계도 있었다고 하니 음란한 도시이다.
간음을 가르치는 이세벨이 있었고 음란 때문에 책망 받았다. (계2:18-20)
끝까지 믿음을 지킨자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다고 하였으며, 셀레우코스 1세가 건설하였다.
*사데(3:1-5): 버가모국의 중요한 성으로 부도덕한 제사가 있었다.
마케도니아와 시리아의 침략을 받았고 로마 티베리우스(디베료)가 점령한 후 더욱 우수하게
건설하였으나 터키 지배 시에 쇠퇴하여 지금은 유적지만 남아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고 책망하였다.
*빌라데피아((계3:7-12): 루디아도의 수도로 토지가 비옥하며 포도가 유명하다.
지진이 심하여 교회가 땅속으로 내려가 현재 위층만 남아 있으며,
전쟁이 빈발하나 신도는 복음을 잘 전파하여 사도 요한은 책망 없이 칭찬만 하였다.
*앗달리아(행14:25): 소아시아의 지중해연안에 있는 항구이다.
버가모의 아탈로스가 건설하여 그의 이름이 항구 명칭이 되었다.
이 항구는 시리아와 이집트간의 무역을 하기 위하여 건설하였다.
1차 전도 때에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가기 위하여 배를 탄 곳이다.
*비시디아 안디옥(행13:14, 14:24): 이 도시는 안티오코스(안디옥)가 만든 도시 중에 하나이다.
이 지방은 산악과 도로가 험하여 강도가 많은 곳으로 로마군대도 물리치지 못하였다.
이런 위험한 곳에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두 번이나 여행하였다.
*이고니온: 현 지명은 꼬냐이다. 로마제국의 군사도로가 이곳을 지나가므로 당시에는 큰 성으로
유적이 많다. 바울이 1차 전도 때에 많은 신도를 얻었고 오랫동안 전도하고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하므로 못마땅한 유대인이 관원들과 이방인을 선동하여 돌로 치려하여 더베로 피하였다.(행14:1-6)
2차 전도 때에 이 성과 루스드라에서 칭찬 받는 디모데를 얻었다(행16:1-2).
이 교회는 AD850년경까지 있었으나 회교의 침입으로 없어졌다.


<사데의 유적>
*루스드라: 소아시아의 루가오니아도의 한 성으로 더베와 이고니온 중간에 있다.
디모데의 고향이고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고치자 신으로 여기고
바나바는 제우스(쓰스) 바울은 헤르메스(헤메)로 알고 제사하려는 것을 제지하였다. (행14:12)
이곳에서도 유대인은 바울을 돌로 쳐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버렸다. 그러나 살아서 더베로 갔다.
*더베: 소아시아 루가오니아도의 한성이다.
루스드라에서 돌로 맞아 죽을 뻔하였다가 이 성에 와서 전도하여 많은 신자를 얻었다.
그 중에 바울의 동역자가 된 가이오가 있다.(행14:19-20, 20:4)
*버가: 밤빌리아도의 수도로 지중해에서 10Km쯤 된다.
1차 전도 때에 마가와 바울 그리고 바나바가 이곳까지 전도하다가 마가는 의견이 맞지 않아 돌아갔다.
이 일로 인하여 2차 전도여행에는 마가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더베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와서 전도하였다.(행13:13-14, 14:25)
*갈라디아: 현재수도인 안카라가 있는 중앙의 도이다.
BC200경에 '꼬올'족이 침입하여 헬라 사람과 같이 살게되어 '꼬올헬라'라고 부르다가 후에
갈라(꼬올)+디아(헬라)='갈라디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로마가 점령하여 지배하다가 터키가 지금까지 지배하였다.
이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상거래가 많았다. 주민은 공예기술은 좋으나
성질이 급하고 변덕이 심하여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어려웠다. 이곳에 바울이 1, 2, 3차에
들려 전도하고 서신(갈라디아서)으로 책망하고 권면하였다.(행14:1, 16:6, 18:23)
베드로가 이곳에 편지(벧전1:1)로 베드로전서의 서신을 보냈다. 교회는 주후 900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가(갑)바도기아: 이 지방은 소아시아 동부에 있는 불모지 땅이다. [
페르가몬지도]
로마, 동로마, 셀죽터키도 지배하기를 포기한 곳이다.
지형은 특이하여 동화의 나라에 온 기분을 자아내는 곳이다.
이유는 '예르지에스'산의 화산 재가 쌓여 응회암을 만들고, 주야의 일기 온 차가 크고 풍화침식이
심하여 특이한 모양을 만들었다.
로마의 탄압에 이곳으로 피난 온 크리스천들은 '테린규유(깊은 웅덩이의 뜻)'라는 도시에
지하(11-17층)의 땅굴을 파서 지하도시를 건설하였고, 그곳에 신학교, 교회, 포도주공장, 등을
만들었고, 가축도 길으며 생활의 불편을 적게 하였다.
통로에는 큰돌을 굴리어 위급할 때는 봉쇄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웃도시와는 지하로
연결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특이한 지형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오므로 명문의 관광대학이 있다.
3형제바위, 젤베골짜기, 괴레메, 비둘기 골짜기가 특이하다.
그 중에 괴레메의 일라라 계곡에는 무소유의 크리스천이 약150개의 동굴교회서 노동하고 기도하다가
천국으로 갔다고 한다.
여기서 많은 신학자들이 배출하였는데 그 중에 '바질'이 유명하고, 동굴교회의 프레스코벽화의
성화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1세기에 비단, 연옥, 도자기, 보석 등이 중국 장안에서 시작하는 실크로드가 스텝루트(초원 길)를 따라
이곳을 통과하여 지중해의 안디옥에 이르게 된다. 안디옥의 베드로 동굴에서 세례를 받은 상인들이
이곳을 지나며 복음을 전하였다고 사도행전과 베드로 전서가 증거하고 있다.
이곳의 특산물로는 말과 포도주가 있고, 이곳 사람들은 호박을 씨만 먹고 나머지는 버린다.
성령강림의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와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신자가 된 자도 있었다.(행2:9)
베드로가 이곳에 서신(벧전1:1) 베드로후서를 보냈다. 교회는 AD1000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길리기아: 지중해 동북 안에 있는 한 도(道)로 수도는 다소이다.
서북에는 산이 많으나 동부는 비옥한 평야로 기후가 온화하며 풍광이 아름다워 헬라인과 유대인이
많이 살았다. 바울이 2차 전도 때에 이곳의 여러 교회를 돌며 믿음을 굳게 하였다.(행15:41)
*다소(행18:23): 길리기아도의 수도이고 풍광이 아름답고 유명한 대학이 있어 많은 인물을
배출 하였는데 그 중에 한사람이 바울이다.


<요정 같은 바위속의 집
'가바도기아'>





2]셀레우코스왕조 (BC358-BC163)
이 왕조는 귀족 안티오코스가 세운 왕국이라 안티오코스(혹은 안티고노스)왕조라고 한다.
셀레우코스1세 (BC358-280)는 시리아제국의 셀레우코스왕조를 건설한 왕이다.
마케도니아의 귀족 안티오코스의 아들로 바빌로니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에우메네스와
싸워 패하여 이집트로 피신하기도 하였으나 후에 회복하여 영토를 이란과 마케도니아와
그리고 인도북서부까지 다스리고 찬드라굽타와도 관계를 맺었다.
BC312년부터 왕조를 열고 왕호를 사용하였다.
안티오코스1세(BC280-262)는 광대한 영토에 자기 이름의 도시를 많은 건설하여 지배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 때에 만든 도시 중에 *시리아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이 성경에 등장한다.
또 시리아의 수도겸 맹주로 있었던 *다마스쿠스(다메섹)도 설명하려고 한다.
지중해연안은 프톨레마이오스가 빼앗아 돌레마이성을 건설하고 이곳에 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들린 곳이다.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에게 패하여 영토를 잃었다.
안티오코스2세(BC261-247)는 부왕이 잃은 땅을 회복하였다.
첫 번째 부인이 라오디케(라오디게아)로 왕비의 이름으로 건설한도시가 7교회의 하나이다.
*밀레토스(밀레도)에서 신으로 불리었다.
안티오코스3세(BC247-187)는 알렉산더처럼 되려고, 그를 흉내내어 그가 간 길을 따라 인도까지
침공하였다.
지중해로 진출하려다가 동진 해오는 로마와 충돌하여 제1차와 제2차 마케도니아전쟁을 하였다.
BC191년 로마에 대패하여 소아시아를 분할하여 주었다.
제1차 전쟁에서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5세와 동맹을 맺고 로마와 싸운 한니발이 제2차 포에니전쟁에
패하여 이곳으로 도망 왔으나 로마가 신변을 요구하자 한니발은 자살하였다.
안티오코스4세(BC215-163)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현존하는 신)이라고도 자칭 하였다.
로마서 볼모로14년간 있다가 부왕의 죽음으로 즉위하여 헬레니즘문화의 제국을 건설하려고
유대교를 박해하다가 마카베오(마카비)가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전쟁에 패하여 하스몬왕조를
탄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BC163년에 동방원정에서 죽고 왕조는 쇠퇴하였다.

*시리아 안디옥 [
페르가몬지도]
이 도시는 헬라네즘의 문화가 혼합된 동방의 여왕도시라고 불리고 당대에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3대도시이다. 스데반 박해 시에 이곳으로 피해온 신자들이 전도하여 교회를 세운
것이 첫 이방교회이다. 예루살렘교회에서 바나바를 권유사로 보내고, 처음으로 이 교회에서
크리스천(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고, 구제사업도 창시하였다(행11:20-30).
7집사 중에 바나바와 사울을 초대 선교사로 파송하니 이것이 선교사업의 시초이다.(행13:1-4)
이 발걸음이 실루기아에서 시작되었는데 지금도 실루기아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바울기둥이고 다른하나는 바나바의 기둥이라한다.
전세계와 우리에게까지 전파된 것은 이 교회의 지대한 공로와 덕분이다.
예루살렘의 가뭄에도 돕고, 다수의 교역자를 배출한 사람 중에 요한의 제자 이그나시우스 교부는
AD110년에 순교하였다. 사도행전 15장은 대단히 중요한 장이다.
율법을 복음에 어떻게 적용 할 것인가를 사도들이 의논하여 안디옥교회에 답한 것인데,
율법 중에 3가지만 포함하기로 정하였다.
1, 제사음식을 먹지 말자.
2, 목 졸라 주인고기와 피를 먹지 말자.(홍수이전에는 전 민족이 안 먹었다. 창9:4)
3, 음란한 행동을 삼가 하자.
사견인데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복음에 왜 율법이 다시 들어와 베드로의 말처럼
'사도들도 메지 못할 멍에(율법)'를 강조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율법 때문에 많은 사람이 복음을 외면하였다면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가?
한 번쯤 생각해 볼일이다.
AD1870년경에 선교사들이 다시 전도하여 성도가 늘어나고 현재는 상당한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셀레우코스 1세의 동전 >

*다마스쿠스(다메섹) [위치지도(사라센)]
시리아 고원(700m)에 있는 이 도시는 BC2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시로
현재도 수도이다. 도시의 중심에 바라다강이 흘러 도시는 동서로 나뉘어 지고,
남쪽에는 구 시가지로 옛 성채, 대 사원, 시장이 있고 유대교인의 거주지이다.
남쪽의 교외 땅은 회교인의 거주지이다.
북쪽은 근래에 발전하여 고급상점, 관청, 호텔, 병원이 있다.
서쪽은 시리아대학이 있다. 바라다강이 주는 농산물이 풍부하고, 견직물, 융단, 가죽세공, 화학, 유리,
시멘트 등의 근대공업도 성하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들의 통로로 교통과 상품교역이 성행하였고, 순례지로도 유명하며 회교의 4대
성지이다. 기독인은 6만쯤 되나 정치, 경제, 문화에 유력한 집단이다.
BC10세기에는 아랍인의 수도로 있다가 아시리아에게 북 이스라엘(BC723년)과 함께 망한 후에
쇠퇴하다가 BC66년에 로마의 속국이 되면서 다시 번영하였다.
AD635년에 회교가 침입하여 회교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AD1076년에 셀죽투르크가 점령하였고, 그 후 십자군의 원정을 여러 번 물리쳤다.
13세기경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30만 시민이 학살되고 철저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AD1516년에 오스만제국이 다시 건설하였고, 1차 대전 후에 프랑스식민지로 있다가
AD1946년에 독립하였다. 도시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었다.

*다메섹 (행9:11)
아브라함이 조카롯을 구하러 이 성의 좌편에 있는 호바까지 쫓아가 롯을 구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 성의 사람이다.(창14:15-16, 15: 2)
다윗과 솔로몬이 이 성을 점령하였다.(삼하8:5-6, 왕상11:24-25)
이사야는 '이 성이 무너진다'라고 하였고, 예레미아는 '이 성이 불탈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아모스는 '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사17:1, 렘49:27, 암1:3)
그 후에 위의 예언은 기록된데로 마케도니아, 로마, 회교, 몽고, 프랑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네로가 기독교인 박해 때에 이곳에 있는 1만 신자를 학살하였다고 한다.
사울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기 위하여 이 도시로 가다가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 부름을 받고
직가라는 거리에 사는 유다 집에서 거하였다.
이 성에는 신자가 많았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교황의 교구처가 되었다.
현재는 영국인의 선교로 신자가 6만쯤 된다고 한다.

*밀레토스 (밀레도)

BC6세기경에 그리스계통의 이오니아인의 식민도시로 에베소 다음가는 큰 도시이다.
이 도시서 출발한 자연철학을 밀레토스 학파라고 한다.
그들은 사물의 근원을 신화가 아닌 자연의 무한한 것이나, 물, 공기 등이 물질의 근본이라는
주장하는 학파로 처음으로 신에서 자연을 향한 눈을 돌린 것이 큰 변화된 사상이다.

*밀레도 [
페르가몬지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이곳에 들려 에베소 장로들을 오라고하여
권면하였다.(행20:17-35) 드르비모가 병으로 이곳에 남았다.(딤후4:20)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출옥하여 다시 이곳에 왔었다고 한다.

  

3] 하스몬 왕조(BC166-63)
이 왕국의 이름은 마카비(마카베오) 가문의 조상 '하스몬' 이름을 따라 하스몬 왕조라고 한다.
하스몬을 아스모네(Asmone) 혹은 하스모니아라고도 한다.
시리아의 안티오코스4 세가 유대인을 탄압하였으며, 성전에서 제우스 제사에 돼지를 바쳤다.
또 전 유대 땅에 그리스신의 제단을 세우고 강제로 희생의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였다.
유대교 모독 정책에 반항하여 '마데인'의 성읍 대제사장 맛다디아(재위 BC167-166) 이다.
그의 아들 다섯은 유다(재위 BC166-161), 요나단(재위 BC161-144), 시몬(재위 BC144-135),
그리고 재위를 하지 못한 요한과 엘리아살이다.
그 중에 유다(마카베오-별명 쇠망치)가 지도자가 되어 시리아관리를 죽이고 전쟁을 시작하였다.
비록 수는 적지만, 잘 훈련된 시리아군대를 극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몰아 냈다.
이 날이 BC164년 12월25일로 제우스 제사로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고 예배를 드리니
이 날이 수전절의 기원이고 '하눗가축제'라고 하여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BC160년 요나단과 시몬의 두 아들의 의해 마침내 유대는 완전 독립하고 하스몬 왕조를 열었다.
요나단은 뒤에 시리아인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였다. 시몬은 양자에게 살해 당하였다.
시몬의 양자 힐가누스(힐카나)(재위 BC135-106)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정권을 잡아 사마리아와
이스라엘평원을 다스리면서, 사마리아 그리심 산에 있는 사마리아인의 신전을 파괴하고 땅을 더욱
넓혔다. 힐가누스의 아들 알렉산더 얀나이우스는 왕국을 더욱 넓혔다.
대제장과 왕을 겸비하고 있던 이들이 종교에는 관심이 없고 땅을 정복하는데 더 관심을 가지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왔고, 얀나이우스의 두아들 힐가누스 2세와 아리스토볼로스2세가
가족전쟁을 일으켰다. 이 싸움을 부채질하기 위하여 이드메(에돔)에 큰 영향력과 부를 가진
안티파넬이 힐가누스 2세를 편들었다.
힐가누스 2세는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호소하게 되었다.
기회를 노리든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에 입성하므로 BC63년에 하스몬 왕조도 종말을 고하였고,
그 후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 할 때까지 2000년 동안 유대인은 나라 없는 서러움을 겪었다.
폼페이우스는 성전에 들어가 휘장을 칼로 찢어 유대인의 원망을 사게 되었다.
거만한 그도 얼마가지 않아 시저에게 쫓겨 이집트에 도망 왔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목베어
머리는 은 쟁반에 담겨 시저에 받쳐지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BC 63년 폼페이우스가 유대를 침공하였을 때 안티파테르(안티파텔)은 그의 원정을 지원하여
로마와 관계가 시작되었고 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BC 47년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그의 아들 헤롯은 BC 41년 갈릴리 분봉왕이 되었고, 그가 죽기 4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마카비(마카베아) 서(書)는 신교인이 사용하는 70인 번역서에는 없고, 가톨릭인이 사용하는 성서에는
마카베아 4서(書) 중에 1,2서(書)을 정경(正經)으로 채택하여 들어가 있다. [
이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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