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oniram Judson

2005. 12. 12. 15:51선교자료/3.전도자료

불교 지역의 선교 --- 아도니람 져드슨(Adoniram Judson 미국, 1788~1850)


져드슨은 미국에서 해외로 임무를 띄고 나간 최초의 선교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전에는 패쇄되었던 버마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대학 시절에 져드슨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떠나 있었지만 신앙을 되찾고 나서는 앤도버 신학원에 들어가게 되어 거기서 선교의 관심이 자라났다. 그는 사무엘 밀즈(Samuel Mills)와 다른 '건초더미 기도회' 회원을 만났다. 그들과 더불어 져드슨은 '회중교회(the Congregational Church)'(역주 : 종교 개혁이 일어난 후 영국에서 비국교파로 성장한 교회로서 퓨리탄과 흡사하나 영국의 기성교회와 관계를 끊고 개교회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특성이 있다)의 총회에 청원을 올리고 자신과 다른 네 명을 해외로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그들의 간청과 열성에 의해서 최초의 선교부인 '미국 해외 선교 위원회'가 설립되었고 다섯 명은 임무를 받고 인도로 갔다. 1812년 2월에 결혼한 져드슨은 불과 12일 후에 인도를 목표하고 출범했다. 가는 도중에 친구인 사무엘 느웰(Samuel Newall)과 함께 세례에 관한 견해를 바꿈으로써 회중 교회와 관계를 끊고 침례교회와 손을 잡았다. (그 결과 그들 나름으로 최초의 선교부를 세우는데 급격한 촉진제가 되었다.) 인도에 가자 동인도 회사로부터 심한 저항을 받았기 때문에 져드슨은 모든 사람의 충고를 뿌리치고 아내와 함께 버마로 갔다. 랑구운에 머문 지 6년 만에 겨우 한 사람의 개심자가 침례를 받았다. 언어가 어려웠고 본국의 불승과 정부 당국은 적개심을 품고 있는 데다가 변덕스럽기까지 했으며 일반 국민들도 의심이 많았다.

져드슨은 첫 해에 말을 배웠고 3년 만에 버마어 문법을 출판했다. 그리고는 버어마식의 집인 Zayal를 건축하고 거기서 설교를 했다.

1824년 져드슨은 수도인 아바로 갔다. 그런데 영국과 버마간에 전쟁이 돌발하자 영국 스파이로 몰려 투옥되었다. 옥중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인간적이었으므로 그를 돌보고 양식을 갖다 주는 아내의 수고 때문에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1826년 그는 석방되었지만 아내는 역경에 지쳐서 출옥 직후 아이와 더불어 죽고 말았다. 이 사건이 져드슨에게는 찢어진 것같은 슬픔의 기간을 초래했다. 그러나 그후 다시 자신을 회복해서 전도, 번역 및 이런 사업에 가담하게 된 다른 선교사의 감독 등에 전념했다. 1834년 재혼해서 성경전서의 버어마 번역을 완성했다. 두 번째 아내가 몸이 아팠기 때문에 건강 회복을 위해 미국으로 되돌아가는 긴 항해에 올랐지만 아내는 도중에 죽고 말았다. 30년 후 미국에 다시 돌아온 그에게 남은 것은 휴가 뿐이었다. 그는 세번째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버어마로 되돌아 갔는데 4년이 지난 뒤 영.버어마 사전을 개정했다. 지금도 버어마에는 선교사의 입국이 금지되어 있지만 강력한 국내 교회는 그가 시작한 최초의 사업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선교자료 > 3.전도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Hudson Taylor  (0) 2005.12.12
Mary Slessor  (0) 2005.12.12
Samuel Mills  (0) 2005.12.12
William Carey  (0) 2005.12.12
글씨 없는 책  (0) 200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