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uel Mills

2005. 12. 12. 15:49선교자료/3.전도자료

미국 선교의 창시자 --- 사무엘 밀즈(Samuel Mills 미국, 1783~1818)


사무엘 밀즈는 자신이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19세기 미국 선교 운동의 발달 및 추진에 있어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대각성(the Great Awakening)'(역주 : 18세기 미국에서 2회에 걸쳐 일어난 대부흥 운동) 기간 중 18세로서 개종한 뒤 곧 세계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 때 교회는 선교에 관심이 없었고 오늘날처럼 선교사를 보내고 장려하는 선교부 같은 기관도 없었다.

밀즈는 윌리암즈(Williams)대학에 입학해서 정기적으로 기도회를 갖는 학생 모임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그들은 기도하기 위해서 옥외 집회를 가졌는데 어느날 갑작스런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세계 선교의 사명에 대해 토론하고 기도하였는데 어느 곳에 보냄을 받듣지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하기로 하나씩 잇달아 다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건초더미 기도회(the Havstack Praver)'를 미국 선교 운동의 효시로 본다. 이 무리로부터 '형제회(the Society of the Brethren)'가 형성되어 선교의 큰 뜻을 장려했다.

이 무리는 졸업 후 각기 다른 학교에 흩어져서 선교열에 불을 붙였다. 밀즈와 다른 친구 몇 명은 엔도버 신학원으로 가서 아도니람 져드슨을 대표로 해서 그들은 최초의 미국 선교 기관인 '미국 해외 선교 위원회(the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를 탄생시겼다. 그 무리의 다섯 명은 해외에서 일을 하도록 위임받았다.

밀즈는 중요한 일을 부여 받았는데 그것은 새로운 선교사를 더 많이 찾아내는 일, 교회 내에서 선교에 관심을 일으키며 또 험신하게 하는 일이었다. 국내, 국외 선교를 위한 그의 업적은 감명적이었다. 그는 장로 교회와 개혁파 교회를 도와 해외 선교회를 발족시켰다. 그는 뉴욕시 중심부의 빈민굴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 가운데서 일했다. 그는 새로이 사들인 루이지에나 구입지 (역주 : 1803년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것인데 현재의 루이지에나주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 교회에는 거의 알려지지도 않은 미개척 지역 -- 를 통과해야 하는 장기 여행을 두 번씩이나 무릎쓰기도 하였다. 그는 인디안과 흑인 노예에 대해서 깊은 관심이 있었다. 이들의 손에 성경을 들려줘야 할 필요성을 깊이 인식한 그는 미국 성서 공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의 설립을 도왔다. 그 단체의 목적은 노예를 복음화하고 그들의 생활을 영위시키는 동시에 저희 국민에게 선교사 노릇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의 시대를 고려해 볼 때 그것은 놀라운 과업이었다. 그는 식민회이 토지를 정리하기 위해서 아프리카로부터 돌아오는 도중 해상에서 죽었다. 당대의 선교의 큰 뜻을 밀즈보다 더 추진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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