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3. 29. 22:54ㆍ신학자료/1.신학자료
3.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 초상의 역할
역사적 실존 인물인 동시에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의 생에 관한 이야기에는 분명 많은 종교적 윤색이 가해졌을 것이며, 그들에 얽힌 성 십자가의 이야기 역시 과장된 면이 있다. 그러나 본 연구의 목적은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의 초상이라는 이미지가 전달하는 내용의 역사적 진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며, 현상학자의 입장에 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되, 이런 그림이 그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가를 밝히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의 종교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겠으며, 도상학적 분석에 앞서 종교회화의 일반적 특성에 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종교예술55)에 있어서 회화적 이미지는 신적 세계의 신비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이해되며, 여러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 복합적인 상징으로 작용한다. 신적 세계의 ‘신비(mystère)’란 입문자에게만 알려진, 침묵에 싸인 비밀스러운 것이며, 이성(理性)으로써는 도달 불가능한 종교적 도그마(dogma)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인간의 인지력을 넘어서는 어떤 것, 정의를 내리기가 불가능하고 설명할 수 가 없는 어떤 것, 예를 들어 성체(Eucharistie, 聖體)와 그 밖의 성사에 적용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육화와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련된 모든 사건은 구원의 신비를 구성하는 것이다.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의 관상’이라는 말로써 이 ‘신비’를 암시하였다.56)
종교적 이미지는 이런 ‘신비’를 함축하고 있으며, 또 바깥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미지는 과거에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것 뿐 만 아니라, 현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실재(實在)에 연결되어 있으며, 신앙의 진리에로 다가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기호가 지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고, 그 대신 다른 차원의 추상적인 의미를 표현할 때 우리는 그것을 ‘상징’이라고 부른다.57) 상징으로서의 그림이 갖는 힘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표현 양식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강렬하며, 이때는 다의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십자가를 쥐고 있는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의 이미지는 다중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는 성 십자가를 발견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고, 제국 최초의 그리스도교 황제로서 종교와 제국을 보호하는 수호자적 역할을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성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음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어떤 특정한 그림이나 조각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왔다.58) 대략 6세기말부터 7세기경, 비잔틴 세계에는 그림으로 그려진 인물이 그 원형과 어떤 관계를 실제로 가진다는 사고가 자라나기 시작했다.59) 어떤 그림이 널리 공경된다면, 그것은 그 그림이 훌륭하게 잘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림에 그려진 인물이 화면들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벽면에 그려진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는 옛 황제와 그의 어머니를 상기시키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초월적인 세계에 실재하는 그들이 현 세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종의 화신(化身, avatar)으로 인식되었다. 벽면의 안료 자체가 성인과 동일시되느냐의 문제는 계속해서 애매한 점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림 자체는 신자 (또는 관람자)와 초월적 존재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다리로 해석할 수 있다.60)
중재자의 역할은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의 이미지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다. 앞을 향해서 벌린 손을 가슴높이로 올리며 기도하는 동작은 이 역할을 강조한다. 이런 그림 앞에서 신자들은 그들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하며, 구원을 위해 중재해 주기를 간청하며, 교회 내부에 그려진 성인들의 그림은 종종 후원자 개인의 특별한 신심을 반영하기도 한다.61) 괴레메 7번 교회의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 초상은 10세기 중반, 카파도키아의 영향력 있는 포카스(Phokas) 가문62)의 후원으로 장식되었는데, 셀뤼시(Séleucie) 지방의 장군이었던 콘스탄니노스(Cons- tantinos)에 의해 착수되었고, 니케포로스(Nikephoros)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값비싼 청금석 안료를 사용한 이 그림은 콘스탄티노플의 영향과 카파도키아의 지방색을 동시에 보여주며, 또한 이들 후원자의 신심을 드러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장례 의식과 관련된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의 초상도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장례용 교회내부는 일반적으로 죽음과 부활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장식되며,63) 이곳에서 망자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 특히 관을 묻는 장소였던 나르텍스에서는 사망한 수도자나 후원자를 위한 추모미사나 장례예식이 진행되었으며,64) 따라서 후원자에게는 특별한 장소였고, 중재자로 모시는 성인들의 초상을 이곳에 많이 그렸다.
중재의 개념에는 보호라는 의미가 항상 내포되어 있고, 특히 제단이나 교회입구에 그려진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의 초상은 보호와 도액(度厄)이라는 역할을 하고 있다.65)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 초상의 또 다른 역할은 치유의 기능에 관련된 것이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성인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하였는데, 콘스탄티나타(Konstantinata)라고 불리던 메달과 반지는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콘스탄티나타는, 10세기와 11세기에 유행했는데, 십자가를 쥔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가 정면으로 서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고,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졌다.66)
십자가를 쥔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의 이미지는 그 시각적 효율성으로 인해 도그마의 효과적인 전달 체계로 해석할 수 있다.67) 이 그림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확고히 한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신에게 바치는 찬미를 시각화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교의적 논쟁에서 그리스정교의 공식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화된 황제와 황후의 이미지는 비잔틴제국의 근원을 신에게서 찾는 의미를 가지며, 지상에서의 현실적 승리를 내세에서의 승리, 즉 예수의 재림(Parousie)과 부활로 연결시키는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
III. 맺는말
카파도키아 비잔틴교회의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의 초상은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 그림은 후원자 개인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신앙을 표현하며,68) 주로 지역 수도원에 거주하는 수도자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제작자의 종교적 성향과 더불어, 이 그림을 대하는 지역민의 생활상도 보여준다. 그림 자체는 항상 불완전하고 세속적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학적 언명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영성(靈性)을 표현하며, 종교적 실재를 접하도록 해주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 체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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