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덕삼 장로-자신의 마부를 목사로 섬긴 믿음의 사람

2015. 5. 11. 22:51운영자자료/1.운영자 자료실 1

 

 

황영준 기독교호남신문

자신의 마부를 목사로 섬긴 조덕삼 장로

 

 

교회를 잘 섬기며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교회 대표인 목사와 교인 대표인 장로로 당회를 조직한다.

잘 나가는 교회가 많지만 더러는 당회원 간의 갈등과 분쟁으로

누군가는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가 분열된다. 거룩한 공회의 모습은 아니다.

 

장로와 목사의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역사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교회가 있다.

전북 금산교회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 이야기다.

조덕삼은 지주요 부자였고 이자익은 그 집 마부였다.

둘이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서 예수를 믿고 한 날 한 시에 세례를 받고,

한 날 한 시에 집사와 영수 임명도 받았다. 장로를 세울 때는 마부가 먼저 뽑혔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덕삼은 김제군 금산리 용화마을에 살았다.

전라도로 오기 전에는 평양에서 살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중국으로 다니며

인삼무역을 하는 거상이었다.

 

어느 해,

조덕삼의 부친 조종인이 금산에 사금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김제로 내려왔다.

토지를 사들여 금광업을 하고, 논과 과수원도 넓게 가졌다.

조덕삼은 비단을 싣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고,

마방(馬房)을 두어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과도 만났다.

 

어느 해,

남해에서 왔다는 열일곱 살 소년이 머슴이라도 살겠다면 찾아들었다.

부모가 죽고 친척에게 붙어살면서 배를 곯아서 밥이라도 얻어먹을 요량으로 곡창 김제로 왔다는 것이다.

조 부자는 청년을 자기 집 마부로 들여서 늘 동행하게 되었다.

 

전주선교부에 속한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한국명:최의덕)가 말을 타고 지방을 다니는 길에

조덕삼의 마방을 이용했다.

테이트 선교사는 조덕삼에게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웃 마을에도 신자들이 있어서 자기 집 사랑채를 예배장소로 하였다.

이자익도 신자가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금산교회(두정리교회)가 시작된 것은 1904년이라 한다.

 

조 부자는 훈장을 모셔다가 아들 영호를 가르치게 했다.

이자익은 창밖으로 들리는 글 읽는 소리를 함께 외웠다.

조 부자는 자익의 이런 열심을 보고 아들과 함께 공부하게 했다.

자익은 글을 배워 성경을 부지런히 읽었고 믿음도 성장했다.

 

전주선교부는 농한기에 ‘달 성경학교’를 열어서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했다.

조덕삼과 교인들이 이자익이 끌고 가는 달구지를 타고 집회에 참석했다.

그런 배움이 있어서 선교사가 교회에 오지 못할 때는 이자익이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도 했다.

 

조 부자는 혼기가 찬 이자익을 이웃 교회 자매와 걸혼하게 했다.

테이트 선교사 주례로 전주서문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데

그 신식결혼식을 보려는 구경꾼들이 많이 모였다.

그들은 조 부자가 마련해준 초가삼간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1907년에는 처음으로 장로투표를 했다.

이자익 영수가 뽑혔다. 투표를 진행한 테이트 선교사나 교인들은 입장이 난처했을 것이다.

교인들도 조 부잣집 신세를 지고 사는 형편인데 그를 대접하지 못한 미안함이 컸을 것이다.

그 때 조 영수가 일어나 교인들에게 말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박수로 축하합시다.”

이인수 담임목사의 소개이다.

마부가 장로 된 일은 교인들만 아니라 불신 주민들에게도 감동적인 사건이 되었다.

 

1908년에 조 영수가 과수원을 교회에 바쳐 교인들과 힘을 모아 ‘ㄱ' 예배당을 건축했다.

그도 1910년에는 장로가 되어 평생을 금산교회와 주민을 섬겼고 아들 조영호도 대를 이었다.

 

이자익 장로는 테이트 선교사와 조덕삼 장로 추천으로 평양신학교에 들어갔다.

그가 학교에 갈 때는 조덕삼 장로가 강단을 맡았다.

학비와 가족 생활비도 조 장로가 지원했다.

이자익이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자 금산교회 초대목사로 모셨다.

 

이 목사는 1924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3회 총회장이 되었다.

그 후로도 1947년에 제33회 총회장, 1948년에 제34회 총회장이 되어 장로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로 살았다.

 

“나는 조덕삼 장로의 마부였습니다.”하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던 이자익 목사의 겸손,

자기 마부의 믿음을 보고 목사가 되기까지 뒤를 돌봐주었던 조덕삼 장로의 진실한 섬김이 참으로 아름답다.

신자들이 본받고 회복해야 할 감동적 미덕이다.

 

                  금산교회 종탑-금산교회를 방문한 전남과학대학 기독교영상학과 학생들과 황영준 목사

 

 

출처 : 남도 물댄동산
글쓴이 : 남도샘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