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자익 목사-마부였던 사람, 총회장 세 차례

2015. 5. 11. 22:51운영자자료/1.운영자 자료실 1

 

 

 

 

이자익 목사-

마부였던 사람, 총회장 세 차례

 

 

이자익(1879-1958. 12.)이 고아로 고향인 경상도 남해를 나와

전라도 김제의 한 부잣집 마부로 들어간 때는 열일곱 소년 때였다.

곡창 전라도에 가면 머슴을 살더라고 배는 곯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김제평야 금산을 찾아갔다.

그가 만난 조덕삼(1867-1919)은 농사와 과수원과 금광을 하고 지방을 돌며 장사도하고,

지나가는 길손이 쉬어갈 마방을 열고 있는 40세의 마음씨 고운 지주였다.

그 때가 1897 쯤이라 한다.

 

이자익은 여섯 달 때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살았지만 농촌에서 과중한 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렸다.

꼴망태를 짊어지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풀을 베고, 농사를 도와야했다.

 

소년이 된 그는 늘 꿈꾸었던 육지로 나가는 배를 탔다.

처음 길이라서 물어물어 남원과 전주를 거쳐 김제로 향했다.

김제라는 곳은 넓은 들이 있고, 어느 집에서든지 부지런히 일만하면 밥걱정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금산리 용화마을 큰 부잣집 대문 앞에 섰다. 그리고 젊은 주인 조덕삼을 만났다.

 

그 집에서 마부로 일하면서 조부자의 아들과 함께 한문을 배우고,

미국 남장로교 전주선교부에 있는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로 주인과 함께 예수 믿었다.

세례도 같은 날 함께 받고 집사 임명도, 영수 임명도 함께 받았다.

주인과 함께 시작한 신앙생활이고,

둘 다 금산교회 기둥 같은 교인이었지만

이자익이 먼저 장로로 뽑히면서 장차 목회자로서의 이자익과 평신도 조덕삼의 사명이 구별되었다.

 

1907년,

교회가 크게 부흥하면서 장로를 세우는 교인 투표를 했다.

사람들은 조덕삼 영수가 먼저 장로가 되리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마부 이자익이 장로로 뽑힌 것이다.

투표를 인도했던 테이트 선교사(L. B. Tate, 한국명 최의덕)는 크게 염려했을 것이다.

이미 서울에서는 장로 투표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승동교회에서는 가축을 도살하는 백정이 장로로 선출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양반들이 교회를 나가 안동교회를 세웠고,

연동교회는 짐승 가죽 일을 갖바치가 장로로 선출되자 양반들이 교회를 이탈하여 묘동교회를 세워나갔다.

 

조덕삼이 장로 투표에서 떨어졌으니 교인들도 긴장하며 염려했을 것이다.

그 때 조덕삼 영수가 교인들 앞에 나섰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말을 하고 신앙생활도 더 열심히 하니 교인들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놀라고,

교회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 달 전, 청년들을 데리고 금산교회 옛 예배당을 방문했을 때

이인수 담임목사는 그 때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마을 주민들만 아니라 교인들도 조덕삼 부잣집의 밥 안 먹어본 사람이 없고,

도움 받지 않은 자가 없는 형편에 투표가 이렇게 되었으니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 때 조덕삼 영수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박수로 축하합시다.’ 하고 박수를 쳤답니다.

훌륭한 신자였습니다. 투표를 인도했던 선교사님도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1908년에 건축된 ‘ㄱ' 예배당 안에서 듣는 이야기는 큰 감동이었다.

조덕삼은 자기 마부 이자익 장로의 설교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했고,

과수원을 예배당 터로 내놓아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에 앞장서더니,

2년 후에 장로 장립가 되었다.

그의 아들 조영호, 손자 조세형도 그 교회에서 3대째 장로가 되었다.

 

이자익 장로는 조덕삼 장로의 도움으로 평양신학교를 나와 목사 안수를 받고

금산교회 담임이 되었다.

1924년에는 농촌의 작은 교회 목사이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3회 총회장이 되었다.

그 후로도 1947년에 제33회 총회장,

1948년에 제34회 총회장이 되어 장로교회의 기둥 같은 역사적 인물로 살았다.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

그들의 만남과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한 축복이었다.

옛 예배당에서 그 때 교인들의 미담을 듣고 무릎을 꿇으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이자익 목사님이

             부자 조덕삼 장로의 마부로 예수 믿고 출석했던 금산교회

             이 목사님은 이 교회에 장로가 되었고, 뒤에는 목사가 되어 이 강단에서 설교했다.

             황영준 목사 안내로 금산교회를 방문한 전남과학대학 양회성 교수와 기독교영상학과 학생들

 

 

 

 

 

출처 : 남도 물댄동산
글쓴이 : 남도샘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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