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자익 목사-이 목사의 겸손, 나는 마부였는데

2015. 5. 11. 22:49운영자자료/1.운영자 자료실 1

 

 

 

이자익 목사-

이자익 목사의 겸손, 나는 마부였는데

 

근래에 어느 종교 지도자들이 도박을 했던 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판이 물 끓듯 한다.

도박만 아니다. 돈 관리를 잘못하고, 행실이 부도덕하며, 파벌과 집단 간의 갈등 가지 듣기가 민망스럽다.

이러한 보도 태도에는 세상에 소망을 주어야 할 종교에 대한 실망이 큰 것 같다.

교회 문제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도 자신의 부끄러운 일들을 각성해야 할 경고라 생각한다.

 

이자익(1879-1958. 12.) 목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3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던 총회가 1924년 9월13일,

지금은 북한 땅이 되어버린 함경도 함흥 신창리교회에서 모였다.

직전 회장인 함태영 목사가 사회를 했고, 길선주 목사도 참석해서 기도하는 순서를 맡았다.

부잣집 조덕삼 씨의 마부로 살던 이자익에게 전도해서,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미국 남장로교의 테이트(L. B. Tate, 한국명 최의덕) 선교사도 참석했다.

초기 한국 교회에 이름 있는 인물들이었다.

 

함태영 목사의 사회로 총회장 선거를 했는데

총대 196명 가운데 이자익 지지표가 과반으로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통상 예로 지난 회기 부총회장이 총회장에 당선 되었는데 이런 경우는 이변이었다.

이 목사는 대형 교회 목회자도 아닌 농촌교회 담임이었고,

정치적인 수완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인물이었다.

 

테이트 선교사가 누구 보다 기뻐했다.

그가 조덕삼의 집에 드나들면서 전도해서 조덕삼과 이자익 중심으로 금산교회를 설립했고,

그들에게 한 날 세례를 베풀고, 집사와 영수로 임명했었다.

그리고 이자익을 장로까지 세웠다.

나중에는 그의 추천으로 이자익이 평양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다.

그는

“이자익 목사가 총회장으로 당선된 이 일은 제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합니다.

미국 선교부에 이 소식을 알리겠습니다.”

하며 감격했다.

 

 

총회 개회 다음 날은 주일이었다.

이자익 총회장이 신창리교회 주일예배 설교를 하면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저는 전라도 김제군 금산리에 있는 조덕삼 장로의 가정에서 마부 생활을 하다가

최의덕(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로 조덕삼 장로와 함께 예수를 믿고,

우리 총회의 총회장이란 명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자신의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주었던 분들에 대한 감사 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밥이라도 얻어먹을 심사로 객지로 나와서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났고,

그 집 마부로 일하면서 주인과 함께 예수 믿어 총회장이 되었으니,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그가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조덕삼 장로가 학비와 가족 생활비까지 지원했다.

조덕삼 부자와 마부 이자익의 아름다운 신앙 이야기는 한국 교회에 전설처럼 널리 알려졌다.

 

이자익 목사는 1953년 제38회 총회 헌법 수정위원장을 맡은 일이 있어서

그 일로 총회신학교(교장 박형룡)에서 헌법을 강의했다.

한 번은 설교를 맡아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초등학교 문턱도 가 본 일이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평양에 있는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서

김제군 금산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지주 조덕삼 장로의 마부로 일을 했습니다.

만일 제가 그냥 남해도(고향)에 있었으면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자익 목사는 총회장을 세 차례나 맡았지만 법과 질서 그리고 겸손함으로 총회를 섬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겸손하게 “나는 조덕삼의 마부였습니다.” 말하며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했던 것 같다.

 

언론이 교회 문제를 비판 할 때면 과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바른 보도에 정의로운 비판이겠지만

한 편으로는 세상이 어두울 때 종교가 빛이 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기대를 담은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진리를 선포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 함을 닮아야 할 것이다.

 

 

  이자익 목사님이 신앙생활을 했던 

  그리고 목사로서 목회했던 금산교회 예배당 종탑.

  1908년에 건축한 목조 'ㄱ'자 예배당이 그 때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황영준 목사 안내로 금산교회를 방문한 전남과학대학 기독교영상학과 양회성 교수와 학생들) 

 

 

 

 

 

출처 : 남도 물댄동산
글쓴이 : 남도샘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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