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중국기독교연구의 발전상황: 개혁개방(1978)이래의 연구 (쟝쯔강)

2013. 5. 10. 18:02운영자자료/중국교회에 관한 자료

중국기독교연구의 발전상황: 개혁개방(1978)이래의 연구
쟝쯔강(張志剛:북경대학 철학,종교학과 교수))


1. 相關된 歷史 大時期

1977년 12월 27일 중공중앙 부주석, 전국정치협상위원회 주석 예찌엔영(葉劍英)이 제4기 全國政協常務委員會 제7차 확대회의 강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당의 喬務政策, 종교정책 등은 모든 적극적인 요소들을 동원하여 사회주의를 위하여 복무하자는 기본방침에 의하여 제출되는 것이다. 우리는 견걸히 이런 정책들을 집행해야 한다.

1978년 2월 26일 중공중앙 주석 화국봉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한 政府工作報告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헌법의 규정에 따라 종교자유정책을 계속 관철 집행해야 한다. 여기에는 신앙종교의 자유와 종교를 신앙하지 않는 자유를 포함하고 무신론을 선전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한다.”

1979년 2월 3일 중공중앙은 통전부에서 제출한 보고 「全國의 統戰, 民族, 宗敎工作部分에 씌여진 “投降機會主義를 執行하는”이란 모자제거에 관한 건의 보고」가 비준되었다.

1979년 3월 2일 중공중앙 통전부는 「종교계 인사들에 대한 정책략실에 대한 의견에 관하여」라는 문건을 하달하였다.

1979년 4월 29일 중공중앙 국무원에서 국무원 종교사무국1) 당조 서기와 정, 부국장을 임명했다.

1980년 1월 1일부터 「중화인민공화국형법」2), 제147조항의 규정: “국가공작인원(정부공무원)이 불법으로 공민의 종교신앙자유와 소수민족의 풍속습관을 침해하는 경우가 엄중한 자는 2년 이하의 유기도형 혹은 强制勞役刑에 처한다.”이 시행되었다.

1980년 5월 22일에서 30일까지 中國天主敎愛國會第三期代表大會가 북경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章程(定款)을 수정했고 금후의 임무를 제정했으며 「中國天主敎愛國會第三期代表大會決議」와 「全國天主敎新疆敎友들에게 고하는 서한」을 통과하였고 간행물 「中國天主敎」출판을 결정하였으며 중화이더(宗懷德)을 中國天主敎愛國會 주석으로 선거했다.

1980년 10월 6일에서 13일까지 中國基督敎第三期全國會議가 남경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30년의 중국교회 사역에 대해 회고했고 장정을 수정했으며 금후의 임무를 제정했고 「中國基督敎第三期全國會議決議」를 통과시켰으며 中國基督敎三自愛國運動委員會第三期委員會와 中國基督敎協會第一期委員會 임원들을 선거했으며 띵광쉰(丁光訓)이 주석과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80년 12월 중공중앙 통전부는 국무원종교사무국이 제안한 「각 종교원교의 회복에 관한 의견에 관하여」를 인허했다.

1981년 6월 27일까지 중공11기전회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 「中國共産黨中央黨委員會의 建國이래 黨의 몇몇 歷史問題의 決議에 關하여」를 통과시켰는데, 그 내용 중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종교신앙자유정책을 계속 관철집행해야 하며 4항 기본원칙을 견지하는데 이것은 종교신도들을 그들의 종교신앙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마르크스 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을 반대하는 선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며 종교는 정치와 교육을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1982년 3월 31일 중공중앙은 「우리나라 사회주의시기 종교문제에 관한 기본관점과 기본정책」(중공중앙 82. 19호 문건)을 하달했다. 이 문건은 新中國(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말함) 건국이래의 종교사무를 正, 反 양면의 경험과 교훈을 총체적으로 총결하였으며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시기에 있어서 종교문제를 처리하는 기본관점과 방침정책을 천명하였다.

1982년 9월 10일 국무원 사무청에서는 「國務阮宗敎事務局이 종교원교를 설립하는 데 관한 제안」을 하달했다.

1982년 12월 4일 제5기 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인민공화국헌법」을 통과시켰는데 그 중 제2장 26조항에 이렇게 규정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종교신앙의 자유가 있다. 어던 국가기관이나 사회단체나 개인은 공민을 강제로 종교르 신앙하게 하거나 종교를 신앙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며 종교를 신앙하는 공민을 기시하거나 종교를 신앙하지 않는 공민을 기시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장상적인 종교활동을 보증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공민의 신체건강을 해치며 국가의 교육제도를 방해하는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종교단체와 종교사무는 외국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제삼단계의 기독교연구상황의 이해에 있어서 상술한 중대한 역사사건들의 의의는 현저한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비록 대개가 정치적 색채가 농후하지만 기독교연구가 중국대륙의 社會主義制度下에서 능히 회복될 수 있었던 “필요조건”이며, 여기서 “상관된 역사대시기”를 “1977년말부터 1982년까지”에 착안한 것도 중국대륙의 기독교연구가 바로 이 시기에 회복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며 혹자는 이를 기리켜 “제3단계의 시작시기”라고 하였다.


2. 敎學硏究機構의 恢復과 發展

중국의 종교연구는 주로 세 가지 배경에서 오는데, 이들은 종교계, 학술계와 정부의 관련 부분이다. 기독교 연구 역시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배경에 착안하여 교학과 연구기구의 회복과 발전상황에 관하여 알아보자.

(1) 기독교의 교육과 연구기구.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天主敎神哲學阮과 新敎神學阮과 교회에서 설립한 연구소들이다.

(a) 天主敎神哲學阮

 

1950년까지 천주교회가 중국에서 개설한 수도원이 20여개처나 있었으나 후에 모두 문을 닫았는데, 문화대혁명 전에는 북경교구에 속한 수도원 한 곳만 남았다. 1962년 중국천주교애국회는 교무의 수요를 고려하여 제2기대표회의에서 이사회를 열어 중국천주교철학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문화대혁명이 발발함으로 인해 이일이 추진되지 못하였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의 천주교회는 11개소의 신학교를 회복하거나 신설하였는데 그 중에 大修院 7개소와 備修院 4개소가 있다. 아래에 설립된 시간의 순서에 따라 학제와 학교의 위치와 학교설립기구들을 열거해 보겠다.

舍山修院, 1982년, 학제4-6년, 상해, 화동지구 6성-1시 천주교교무위원회
북경천주교신철학원, 1982년, 학제 4년, 북경, 북경시천주교교무위원회.
중국천주교신철학원, 1983년, 학제6년, 북경, 중국천주교교무윈원회.
심양천주교신철학원, 1983년, 학제 4년, 심양, 요녕, 길림, 흑룡강 3성 천주교교무위원회.
사천천주교신철학원, 1983년 학제 4년, 성도. 사천,운남,귀주 3성 천주교교무위원회.
중남천주교신철학원, 1983년, 학제4년, 무한, 중남지구 6성(호남,호북,광동,광서,하남,해남) 찬주교교무위원회.
山東聖神修院, 1983년, 학제4년, 제남. 산동성천주교교무위원회.
하복천주교신철학원, 1984년, 학제4년, 석가장. 하북성천주교교무위원회.
산서천주교수원, 1985년, 학제 4년. 산서성천주교교무위원회.
내몽골자치구천주교수원, 1985년, 학제 5년. 내몽골자치구천주교교무윈원회.
서안천주교신철학원, 1991년, 학제 4년. 서안, 서북5성천주교교무위원회.

(b) 新敎神學阮

 

1917년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중국 전역에 신교신학원이 64개소 있었는데, 그 중 남학교 48개, 여학교 16개였다. 그후 경제문제와 전쟁으로 인해 학교수가 급감하였는데, 1949년에 이르러서는 다시 48개로증가했었는데, 그 중 3개교는 신학학위를 수여하였다. 그 3개쇼는 中華浸禮會神學阮, 金陵神學阮, 燕京宗敎學院이다. 1952년 전국대학교 편제조정 때 화동지구의 12신학교들이 연합하여 금릉협화신학원을 설립하였고, 1953년 화북지구의 11개 신학원들이 모여 연경협화신학원을 설립하였다. 1961년 남북의 두 신학교가 합병하여 金陵協和神學阮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는데, 그 때 이 신학원은 중국에 유일한 신교의 신학원이 되었고 문화대혁명 초입(1966년 8월)에 해체되었다.

아래의 신교신학원들은 1981년부터 회복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 신교신학원은 18개소와 4개의 훈련센터가 있다.

금릉협화신학원, 1981년, 학제 본과4년, 연구과3년, 남경. 중국기독교협회.
동북신학원, 1982년 학제 4,3년 심양, 동북3성기독교협회.
복건신학원, 1983년, 학제 2년. 복주, 복건성기독교협회.
절강신학원, 1984년, 학제 2년, 항주, 절강성기독교협회.
사천신학원, 1984년, 학제 3년, 성도, 사천,운남,귀주 3성기독교협회.
회동신학원, 1985년, 학제 2년 혹은 3,4년. 상해,화동지구4성 1시(산동,강서,절강,
복건,상해)기독교협회.
중남신학원, 1985년 학제2년, 무한, 중남지구6성(호남,호북,광동,광서, 하남,해남)기독교협회.
연경신학원, 1986년, 학제 4년. 북경, 화북,서북 10개성,시,자치구(북경, 천진,하북,섬서,강숙,녕하,청해,신강,내몽골)기독교협회.
안휘신학원, 1986년, 학제 2년, 합비, 안휘성기독교협회.
광동협화신학원, 1986년, 학제 2년. 광주, 광동성기독교협회.
산동신학원, 1987년 학제 2년. 제남, 산동성기독교협회.
운남신학원, 1989년, 학제 3년. 곤명, 운남성기독교협회.
섬서성경학교, 1988년, 학제 3년. 서안, 섬서기독교협회.
호남성경학교, 장사, 호남성기독교협회.
강서성경학교, 1992년 학제 1년. 남창, 강서기독교협회.
하남성경학교, 정주, 하남성기독교협회.
내몽골기독교훈련학교. 후허로우터, 내몽골자치구기독교협회.
강소성경전문학교, 남경, 강소성기독교협회.
하북성기독교훈련중심, 석가장, 하북성기독교협회.
감숙성기독교훈련중심, 난주, 감숙성기독교협회.
귀주성기독교신학반, 반현, 귀주기독교협회.


(c) 교회에서 설립한 硏究所(中心)

 

교회에서 설립한 연구기관은 아직 많지 않다.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유명한 연구기관은 남경대학 종교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금릉협화신학원의 교수들이 1978년 5월부터 준비하여 1979년 1월1일에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이 연구소의 명칭이 남경대학 종교연구소로 되어 있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 때문에 남경대학에 이름을 걸고 띵광쒼(丁光訓)이 남경대학 부교장겸 종교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외에 또 있다면 중국천주교신학연구중심(북경), 상해천주교교구(光啓社)와 북경천주교문화연구소가 있다.

(2) 학술계의 교학과 연구기관

 

학술계의 연구기관은 주로 兩大系統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사회과학원계통의 상관기구와 대학계통의 상관기구이다.

(a) 사회과학원계통의 상관 기구

 

중국의 사회과학원은 1949년 이후에 점차 조직 설립된 하나의 尨大한 國家的 科學硏究系統3)이다. 이전까지 이 계통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관들과 학자들이 기독교 연구에 종사하는지에 대해서 아직 발표된 공식 자료가 없어서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연구와 관계있는 연구소들, 즉 종교연구소, 철학연구소, 역사연구소, 문학연구소, 언어학연구소, 사회학연구소, 정치학연구소, 동아학연구소, 미국연구소 등 연구기관들에서 기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전문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연구를 연구의 중심영역 중의 하나로 하는 사회과학연구소는 숫자가 그리 많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中國社會科學阮의 世界宗敎硏究所는 1964년에 설립되었는데 원래의 명칭은 中國科學阮世界宗敎硏究所였다. 이 연구소는 현재 중국에서 제일 큰 종교연구기관이며, 연구에 종사하는 학자가 70여명이나 되며 8개의 연구실: 불교연구실, 기독교연구실, 이슬람연구실, 도교와 중국민간종교연구실, 유교연구실, 중국학원리연구실, 당대종교연구실, 불교문화연구실 그리고 전문적인 편집부를 설치하여 「세계종교연구」(계간)과 「세계종교문화」(쌍월간)을 편집 출판한다.

中國社會科學阮基督敎硏究中心(一名 中國社會科學阮基督宗敎硏究中心)은 1998년에 설립되었다. 이는 하나의 “비실체형적 과학원 소속의 연구중심”4) 이며 연구자들은 중국사회과학원 계통의 세계종교연구소, 철학연구소, 역사연구소와 세계역사연구소 등에서 연구에 종사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과학원 외 학술연구기관에서 일하는 학자들과 전문가들도 흡수하여 참여시킨 것이다. 이 연구중심에서는 세 방면의 학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과제연구를 진행시키고, 학술회의를 소집하며, 간행물 시리즈 「기독종교연구」와 「종교비교와 대화」를 출판하는데 모두 서적으로 간행물을 대신하는 것이다.

上海市科學阮宗敎硏究所는 1980년에 설립되었다. 주요 연구 범위는 사회주의시기의종교문제, 중국종교의 역사, 현황과 추세에 대한 연구이며 간행물 「當代宗敎硏究」(季刊, 국내발행)의 편집 출판이다.

云南省社會科學阮宗敎硏究所는 1984년에 설립되었다. 주요 연구 범위는 운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들의 종교역사와 현황과 발전 추세에 대한 연구이며 편집하여 발행하는 간행물은 「云南宗敎硏究」(半年刊, 내부발행)이다.

섬서성사회과학원종교연구소는 1995년에 설립되었다. 주요 연구 범위는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 민간신앙, 지방역사고고, 종교학이론 등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과학원은 전문적인 연구기관이지만 중국사회과학원은 연구하는 전문인재를 양성하는 과학기관이기도 하기에 中國社會科學阮硏究生員(大學院)도 사회과학원의 한 기관이다. 이 연구생원은 1981년에 설립되어 世界宗敎硏究系(學科)에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설치하였는데 주요 연구 방향은 종교학원리, 중국과 일본의 불교, 기독교사상문화사, 이슬람교, 도교와 중국민간종교 등이다. 이외에 지방 사회과학원으로 제일 큰 상해시사회과학원의 종교연구소도 종교학성사 학위를 주는 교학기관이 설치되어 있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연구가 점차 활발히 심화됨에 따라 사회과학원 계통의 연구소와 연구중심들이 더 많이 세워지게 될 것이며 이 영역의 연구와 교학이 한층 더 강화되게 될 것이다.

(b) 대학계통의 상관 기구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한다.

 

a) 종교학과

 

1982년 북경대학 철학과는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와 협력하여 중국대학 역사상 첫 번째 종교학전공을 설립하여 종교학 전공 본과생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995년 북경대학에서는 중국국립대학의 첫 번째 종교학과를 설치하여 북경대학 철학과와 연체은행의 새로운 모델을 채용하였고 종교학전공의 학사, 석사, 박사학위와 박사후 연구 과정을 설치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각지의 종합대학들은 앞 다투어 종교학전공 혹은 종교학과를 설립하였는데 대체의 상황은 아래와 같다.

무한대학 종교학과, 1997년 설립, 동대학의 인문학원에 소속되어 있고 종교학전공본과(학부)와 기독교연구전공의 석, 박사학위 수여 과정이 설치되어 있다.

중국인민대학 종교학과, 1999년 설립, 동대학의 철학과를 의탁하여 설립되었는데, 종교학 전공 본과와 기독교연구전공의 석사, 박사학위 수여 과정을 설치하였다.

 

산동대학종교학과, 1999년 설립, 동대학의 철학과사회발전학원에 에속된 학과로서 종교학전공의 본과와 석사학위 수여 과정을 설치했다.

 

중앙인민대학 철학과종교학과, 원명은 철학과였는데 2000년에 학과명을 이 명칭으로 개칭하여 종교학 전공 본과와 석, 박사학위 수여 과정을 설치했다.

 

복단대학 철학과에도 종교학 전공 석, 박사학위 수여 과정이 있다.
남경대학 철학과에도 종교학 전공 석, 박사학위 수여 과정이 있다.
중산대학 철학과에도 종교학 전공 석, 박사학위 수여 과정이 있다.
남개대학 철학과에도 종교학 전공 본과 과정이 설치되어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대학들의 상관 전공의 학위 수여 과정이 기독교연구를 섭렵하는데, 에를 들면 절강대학 철학과와 서방철학 전공의 석, 박사 과정, 산서대학 철학과의 서방철학 전공의 석사과정, 섬서사범대학의 문학전공 석사 과정, 남개대학 역사학과의 세계역사전공 박사학위 과정 등은 모두 기독교연구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b) 硏究所(혹은 中心)

중국인민대학 불교와 종교학 연구소는 1991년에 설립되었는데 원 명칭은 중국인민대학종교연구소이며 동대학의 철학과에 의지한다. 2000년에는 敎育部 人文社會科學重點硏究基地로 평가받아 선정되었다.

절강대학 기독교연구중심의 원명칭은 항주대학기독교연구중심인데 1991년에 설립되엇다. 연구중심은 고대 헬라철학과 초기 기독교이다.

화중사범대학 중국교회대학연구중심은 1992년에 동대학의 역사학과에 의지하여 설립되었다. 중국교회대학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겸하여 중국근대기독교문화사아 중서문화관계사를 연구한다.

북경대학 종교연구소는 1994년에 북경대학위 철학과에 의지하여 설립되었다. 주요 연구 범위는 불교와 도교의 경서, 기독교사상사, 기독교와 동서문화 등이다.

복건대학 종교문화연구소는 1994년에 설립되었는데 기독교, 도교문화와 민간종교 3개의 연구실로 구성되었다. 기독교 연구의 주요 방향은 명대와 청대의 예수회 선고사들, 복건기독교, 청말의 교안, 교회대학 등이다.

상해교육학원 종교문화연구중심은 1995년에 설립되었다. 주요 연구 범위는 도교사, 천주교, 불교논리사와 당대종교문화이다.

중국인민대학 기독교문화연구소는 동대학의 종문학과에 의지하여 1995년에 세워졌다. 연구의 중점은 서방문화와 기독교, 출판물은 「기독교문화학간」(매년 2기, 서적으로 간행물 대체)이다.

북경대학 기독교연구실(연구중심)은 1996년 북경대학의 종교학과 설립에 따라 본래의 종교학과 교학연구실을 개편하여 세운 것이다. 연구 중점은 중국화한 기독교철학(Christian Phiolsophy in China)인데, 즉 중국인의 관점에서 역사연구, 이론탐구와 비교대화 등 세 각도의 연구를 통해 기독교철학의 새로운 구성에 주력하는 것이다.

복단대학 기독교연구중심은 1996년에 동대학의 철학과에 의지하여 세워졌다. 주요 연구 범위는 기독교신학, 철학 및 문화연구 등이다.

북경외국어대학 해외한학연구중심은 1996년에 설립했는데 주요 연구 범위는 서방초기한학과 중국천주교역사이다. 출판물은 「國際漢學」(매연 2기, 서적으로 간행물 대체)이다.

중산대학 인문학원 종교연구소는 1997년에 설립되었다. 주요 발전 방향은 기독교와 중국종교, 철학의 비교연구 등이다.

산동대학 종교연구소는 1998년에 동대학의 철학과와 사회발전학원을 의지하여 세워졌다. 주요 연구 영역은 유대교, 기독교,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 등이다.

섬서대학 기독교문화연구소는 1998년 동대학의 인문학과에 의지하여 설립되었다. 연구의 중점은 기독교사상, 철학과 신학 등이다.

(3) 정부부문의 연구기관

 

이것은 국가와 성급(직할시 포함) 정부기관에서세운 연구 기관을 지칭한 것이다. 예를 들면 국가 일급 국무원종교사무국에서 설립한 中國宗敎硏究中心,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소속의 民族과 宗敎政策硏究室이 그런 기관이다. 또 더 든다면 상술한 두 개의의 정부부문과 같은 각급 성정부에 민족과 종교사무청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아래에도 그들에게 소속된 민족과 종교정책연구실들이 있다. 이런 기구들의 연구중심은 국내외의 종교현황과 중대한 문제, 종교법규와 정책, 종교와 국내 여러 민족의 관계 문제 그리고 종교와 사회주의 관계문제 등인데 기독교 방면의 연구는 자연히 그중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늘날 중국기독교연구의 영역의 주역 혹은 주요 추천자는 학술계이다. 위에서 연구기관들의 회복과 발전상황에 대한 윤곽을 대략 그려보았으나 이제 필자는 이 주장에 대한 초보적인 논증을 시도해 보겠다.

먼저, 비록 중국정부부문의 상관 연구기관들도 기독교의 현황과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으나 많은 나라들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이런 종류의 연구기관들은 기독교의 발전을 촉진하려고 하지 않으며 이 방면의 연구를 추진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현대국가의 입헌원칙의 하나인 政敎分離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그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한번도 진정한 의미의 國敎가 형성된 적이 없으며 政敎合一의 神政統治時代는 더욱 없었다. 그러므로 정부부문의 상관 연구기관의 성질과 기능으로 놓고 말하더라도 본고에서 한정한 主役과 主要 推薦者의 가능성에서 배제되어야 하며 심지어 이 점에 대해서는 논증할 필요조차 없다고 보여진다. 그래도 필자가 그래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의 근 25년의 기독교연구를 이해하려면 이런 종류의 연구기관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이런 종류의 연구기관들의 구성원들은 비록 국가공무원에 속할지라도 대부분이 명문대의 문과대학 출신들로써 그 중에 적지 않은 자들이 석, 박사학위 소지자들이며 혹은 명문대나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재적성사 혹은 박사과정에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의 중심맴버들은 학자적인 관원이다.

 

둘째, 위에서 언급한 교육배경 때문에 이런 학자적인 관원들이 학술계와 계속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연구에 관한 학술 세미나에 참석한다든가, 사회과학원 혹은 대학의 연구항목에 참여한다든가, 전문가 학자들을 초청하여 그들이 조직하는 세미나에 출석케 하거나 그들이 주최하는 조사연구 항목에 참여케 한다든가, 그들 중에 일부는 기독교연구 전문서적 편집 혹은 저술을 하는 자도 있다.

 

셋째, 이런 종류의 연구기관의 연구성과가 비록 대부분이 조사연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상술한 연구중심을 둘러싸고 완성된 연구보고이기에 이 방면의 연구성과는 정부부문에 정보동태와 정책결정 빙거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독교계와 학술계의 대부분 연구자들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연구성과는 자주 정부종교사무관리부문의 소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일반적으로 혹은 세계범위의 기독교연구를 놓고 볼 때에 이 영역의 주요 추천자는 응당히 교회의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이어야 하는데 중국의 기독교계가 오늘날 이 소임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주관과 객관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 원인에 대해서 논술한 아래 조사연구보고의 현상과 통계수치를 보면 깊은 인상을 줄 것이며 사람들로 깊이 생각하게 할 것이다.

총체적인 상황을 놓고 논한다면 중국의 5대종교5) 중에 비교적 젊은 기독교와 천주교가 소질을 높이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더욱 어려울 것이다. 상대적으로 교직인원들이 많은 기독신자라 할지라도 그들 신학교의 교수진, 도서관 장서량, 과목설치 및 학생 등 의 면에 모두 이상적이 되지 못하고 있다. 17개소의 신학교는 교수요원이 총 300명도 안되며 그 중에 전문직 강사는 겨우 120명 수준이다. 신학교의 도서관 총 장서량은 겨우 10만여권(중국어 서적 7만여권, 외국어 서적 3만여권)인데 그 중에 약 48,000권은 남경의 금릉협화신학원에 있으니 기타 신학교들의 장서량 부족은 상상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적으로 과목갱신이 불가능하다. 갱신되지 못한 지식구조와 몇십년 전의 낡은 교재들은 이미 학생들의 수요를 전혀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6) 신학교의 상황과 같이 신학발전의 장기적인 뒤처짐이지만, 중국에서 기독교신학사상에 대한 중시와 탐구는 여전히 양춘백설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어떤 해석을 하더라도 목전 기층교회의 광대한 신도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기본적인 신학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다. 기층교회에서 주도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복음파와 기요파)(근본주의) 신학인데, 대개 비교적 간단하게 信과 不信의 대립을 강조하여 필요한 신학사고를 배척하기에 그들의 신앙이 시대의 발전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기독교 내부에서 먼저 비평을 불러 일으켰다. 예를 들면 중국 기독교의 지도자 띵광쉰(정광훈) 주교는 근래에 들어서서 여러번 이신칭의의 한계에 대해 논하면서 복음 중의 윤리 내용 및 救贖과 섬김의 통일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이런 유의 문제는 기타 종교들에서도 일정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7)

최근 몇 년에 들어서서 일부 신학교의 강사들과 학생들이 각종 방법을 통하여 정규대학의 상관 과목들을 선택하여 듣거나 방청하기 시작하고 있다. 요즘의 추세로보아 그중에 적어도 세 가지 재미있는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 정규대학의 상관 과목 선택과 방청은 완전한 개인적인 행위에서 조직있는 단체적인 움직임으로 변화하고 있다.

 

둘째, 선택하는 과목이 지식적인 고대한어, 현대한어, 문학사, 외국어 등에서 보다 더 신학훈련과 관련된 서방문화이론, 철학사 심지어는 직접 기독교와 관계있는 학술강좌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셋째, 정규대학과 과학연구기관들 중에서 한 편으로는 기독교신학과 문화가 이미 더 많이 일상적인 교학과 연구 사이에 납입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해외의 기독교계와 직접 연계하여 합작하는 현상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역사가 비교적 오래된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 외에도 근래에 비교적 활약하는 북경대학의 종교학과, 중구인민대학의 기독교문화연구소, 복단대학의 종교연구중심 등이 있다. 만약 이런 추세가 진일보 발전하면 일련의 새로운 문제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세속대학의 교육이 중국 각 종교와 그들의 이론 건설의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중국 종교연구의 중심이 체제성 교육의 내부로 전이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8)

위에서 개술한 세 가지 종류의 연구기구들의 회복발전 상황과 위에서 인용한 두 문장의 조사연구 보고서의 고찰을 통하여 학술계, 특히 명문대학들의 상관교학과 연구기관들이 현재 중국기독교연구 영역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와 영향을 가히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필자는 연구영역과 주요성에 치중하여 이 점을 진일보 논증하겠다.


3. 硏究領域과 그 成果 槪要

중국종교연구의 성과와 종교연구의 발전과정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적 소수라는 원인과 후에 좌파사상의 영향으로 연구성과가 비교적 적었다. 1978년 이후 연구과제도 날로 광범위하게 되었고, 내용은 날로 깊어지게 되었으며 풍성한 연구성과를 거두게 되었다.9)

위의 평론은 중국학술계의 기독교연구를 가리킨다면 더욱 적합할 것이다. 왜냐하면 몇몇 대종교를 놓고볼 때 중국학술계는 불교와 도교에 대한 연구 전통이 잇고 이슬람교는 일부 소수민족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유독 洋敎인 기독교(천주교, 신교와 동방정교를 포함)에 대한 연구가 제일 박약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연구는 1978년이후 중국종교학계 중에서 발전이 제일 빠르고 학술성과가 제일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발전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짧은 25년 동안에 중국학술계의 기독교연구는 이미 거의 모든 영역과 주요 과제들을 섭렵하고 있다.

중국학자들의 기독교연구가 섭렵하는 범위는 대체적으로 세계기독교교역사연구, 기독교신학, 철학, 미학과 윤리사상, 성경연구, 중국기독교역사연구, 기독교각대교파 및 수도회, 선교회 등에 대한 연구, 당대기독교종교상황과 발전추세에 대한 연구, 기독교조직기구와 저명인물연구, 기독교문화예술연구 등이다.9)

이상의 개괄이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독자들로 하여금 이 연구영역에서 중국학술계의 발전 속도와 탐구의 넓이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이 25년 동안의 중국어 출판물을 검색해 보면 과장해서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기독교연구의 거의 모든 분야와 주요과제에 대한 참고할 만한 전문 서적과 역서와 논문을 몇 권 쯤은 다 찾을 수 있다. 때문에 필자는 여기서 일일이 이 방면에 대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두 개의 큰 연구 영역인 基督敎史와 神哲學硏究와 漢譯基督敎學術書籍의 주요 성과를 열거해 보겠다.

(1) 基督敎史 硏究

 

기독교 通史, 斷代史, 當代史 방면의 주요저서들은 아래와 같다.
「기독교사상」(양전 저, 1979),「기독교사」(탕이 주편, 1993),「기독교회사」(장수이 저, 1993),「동정교사」(허윙 저, 1999),「고대기독교사」(쉬화이 치 저, 1988),「중세기 上帝의 문화: 중세기기독교회사」(장수이 저, 1987),「당대기독신교」(워커 주편, 1993),「당대천주교」(후러안 주편, 1996) 등, 동시에 이 영역의 연구 성과에 대한 반영은 일부 전문가들의 공동 저서에도 나타나는데, 영향있는 종교통사 및 개론성 저작에는 「세계삼대종교」(황씬촨 등저, 1979),「세계십대종교」(황씬촨 등저, 1988),「세계삼대종교와 그 유파」(워커 주편, 1988),「세계통사간편」(뤄주휭 주편, 1990) 등이 있다.

상상할 수 있다시피 대다수의 중국학자들의 연구 흥미가 중국교회사에 집중되어 있다. 대략 잡더라도 약 25년 동안 발표된 논문 천여 편10)에 저서, 역저와 사료모음 등도 백여 부가 된다. 이 많은 논저들을 보면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연구 중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a) 서방열강들이 기독교를 이용하여 중국을 침략한 문제와 敎案史 연구

 

이것은 1949년 이후 중국기독교연구의 주요 경향 중의 하나이며 그의 연속과 추진이라고 가히 말할 수 있다. 1978년 이후 정리 출판한 주요 사료집은 「산동교안사료」(리앤리싼 등편, 1980),「반양교서문적첩선」(완밍룬 편, 1984),「천주교기독교재광서자료회편」(경뤄리앙 등편, 1985),「사천교안과 의화단당안」(사천당안관 편, 1985),「청말교안」(중국제일역사당안관, 복건사범대학역사계 합편, 1-3책, 1996-1998) 등이 있으며, 주요 저작은「짜러이용종교칭화간사」(황씬촨 저, 1980),「귀주상교안」(쩌우쩐중 저, 1980),「러국동정교침화사략」(우커밍 저, 1985),「광서인민반양교투쟁」(겅위민 저, 1986),「근대중국교안연구」(사천사회과학연편, 1987)「중국교안사」(장리 등저, 1987) 등이 있다.

(b) 기독교와 중서 문화교류사 연구

 

이 연구는 먼저의 연구를 이어서 형성된 것인데 그 주요 경향은 왕래연구의 주도적이었던 政治態度와 批判觀念이 점차 중서문화의 비교, 특히 문화교류사의 연구로 전환되고 있으며 기독교의 선교운동이 중국근대사회와 오랜 문화 전통에 미친 복잡한 영향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다 전면적이고 깊이 잇게 고찰하려는 것이다. 이런 전환은 아래에서 열거하는 전문서적(출판사간의 배렬에 따라)들의 標題들에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선교사와 근대중국」(꾸창성 저, 1981)「모리슨에서 스투레이딩까지-내화신교선교사평전」(꾸창성 저, 1985),「동정교와 동정교재중국」(장수이 저, 1986),「명청간재화의천주선예수회선교사」(짱원한 저, 1987)「명청시기중서관계간사」(짱웨이화 저, 1987)「십자가와 용」(쑨지앙 저, 1990),「명청시기의 과학-17,18세기중서문화관계인론」(리아닌 저, 1992),「제일쪽과 배태-명청시기중서문화비교」(촌웨이핑 저, 1992),「耶蘇會史와 중국과학」(환훙예 저, 1992),「早期宣敎師西藏活動史」(우쿤밍 저, 1992),「中西文化交流先驅」(쉬밍룽 주편, 1993)「리마떠우와 쉬꽝치」(린찐수이 저, 1996),「기독교와 근대중국」(앙티엔홍 저, 1994)「서학동점과 만청사회」(슝웨즈 저, 1994),「기독교와 명말유학」(쑨쌍양 저, 1994),「기독교회와 近代山東社會」(토우훼이야 등저, 1995),「리마떠우와 중국」(린찐수이 저, 1996),「기독교와 근대중국사회」(꾸웨이민 저, 1996), 「팡디워회와 중국-예수회 적응 책략 연구」(징카이 저, 1997),「미국선교사와 만청중국현대화-근대기독교신교선교사 재화 사회문화와 교육활동 연구」(왕리씬 저, 1997)「中國禮儀之諍-歷史, 文獻과 意義」(라덴깡 저, 1988) 등등.

(c) 중국교회대학사 연구

 

이 분야의 연구는 최근 10년 내에 형성된 연구의 중점인데 자료집 10연부와 전문 저서와 논문집이 20여부 출판되었다. 주요 논저는 「중서문화와 교회대학」(짱카이어왼 주편, 1990),「디코우웬과 스투레이덩의 재화 교육활동」(스찡환 저, 1991),「중국교회학교사」(가오스량 주편, 1994),「中國敎會大學史論叢」(꾸쉐자 등편, 1994),「중서문화를 넘나든 거인」(마민 등 주편, 1995),「문화전파와 교회대학」(장카이왼 주편, 1996), 「사회전형과 교회대학」(장카이왼 주편, 1998),「기독교대학과 국학연구」(카우야훼이 등저, 1998),「교회대학과 신학교육」(쉬이화 저, 1999) 등이 있다.11)

(2) 基督敎神哲學硏究

 

이 분야의 연구는 基督敎神學과 基督敎哲學을 合稱하여 基督敎神哲學이라고 하는 것은 양자가 본래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국학자들의 연구 중에서 양자를 모두 중시하면서도 그 철학적 의미 탐구에 더욱 치중한다고 말할 수 있다.12)

기독교신학연구 방면의 주요 저서들은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진-20세기 기독교 신학인론」(리우쇼우횡 저, 1990),「니버」(쥐신핑 저, 1992),「당대서방신교신학」(쥐신핑 저, 1998),「당대서방천주교신학」(쥐신핑 저, 1998),「당대동정교신학사상」(장바이춘 저, 2000),「기독교신학범주-역사적과 문화비교의 고찰」(징칭슝 저, 2003) 등이 있다.

기독교철학연구 방면의 주요 저서들은 「기독교철학」(인따이 저, 1988),「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독교철학」(후러안 저, 1990),「부엉이와 하나님과의대화-기독교철학문제개요」(장쯔깡 저, 1993),「기독교철학 1500년」(짜오뚠화 저, 1993),「기독교철학재중국」(쑨쌍양 저, 2002), 「교부학연구-문화시야에서의 교부철학」(왕쇼우초우 저, 2003) 등이 있다.

아래에 열거한 저서들은 현저하게 양자들을 방증하면서 철학의 탐구에 차중하는 특징을 가진 서적들이다. 「다원적 상제관-20세기서방철학개람」(허광후 저, 1991),「서방문화와 중세기신철학사상」(탕이 저, 1992),「상제, 우주, 인」리치우링 저, 1992)「후기헬라철학과 기독교신학-동서문화의 회합」(환밍썽 저, 1993),「당대서방저명철학자평전, 제5권 종교철학」(후러안 주편, 1996), 「이성의 방황-현대서방종교철학이성관비교」(장쯔깡 저, 1997),「토마스 아퀴나스 전」(후런안 주편, 1997),「신비와 이성의 교융-기독교신비주의 근원탐구」(왕쇼우초우 저, 1998),「대화ㅓ-儒釋道와 기독교」(허꽝후, 쉬쯔웨이 주편, 1998),「상제에게 묻는다-신앙과 이성의 변난」(양후리인 저, 1999),「종교해석과 화평-죤. 히크의 종교다원론 철학에 대한 건설적 연구」(왕쯔청 저, 1999),「평화의 갈망-당대종교대화이론」(왕쯔청 저, 2003), 「종교철학연구-당대관념, 관건고리와 방법론 비판」(장쯔깡 저, 2003) 등이 있다.

(3) 漢譯基督敎學術著作

 

최근 25년의 중국기독교연구 성과를 거론할 때 漢譯基督敎學術著作 방면의 돌출한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방면의 공헌은 數量面에서 기타종교 학술저작의 漢譯成果를 훨씬 능가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質量面에서 중국의 종교연구, 특히 종교학이론 기초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13)

漢譯基督敎學術著作의 수량에 관하여, 즉 근 25년래 중국의 학자들이 조직하여 번역한 명저, 전문 저서 및 상관 논저들의 수량이 도대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지 않으나 필자의 추측에 의하면 2,3백 종류가 넘을 것이다. 이런 역작들은 아래의 몇 가지 출판 형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① 기독교학술총서, 예를 들면「역대기독교학술문고」(상해삼련서점),「기독교연구문고」(북경삼련서점),「당대기독종교역총」(상해삼련서점)「기독교학술역총」(사회과학문헌출판사),「기독교사상사역총」(북경대학출판사).

 

② 종교학술연구역총, 예를 들면「종교와 세계역총」(사천인민출판사).

 

③ 상관 정공의 혹은 연구 영역의 번역총서, 예를 들면 「중외관계사명저역총」(중화서국),「캠브리지과학총서」(복단대학출판사) 등.

 

④ 서방학술총서, 예를 들면「현대서방학술문고」(상해인민출판사),「현대서방사상문고」(화하출판사),「서방사상경전문고」(중국성시출판사) 등.

 

⑤ 종합적인 철학, 사회과학, 인문연구역총, 예를 들면 「한역명저」(상무인서관), 「신세기학술역총」(중앙편집출판사),「신세기만유문고」(요녕교육출판사) 등.

단행본도 적은 수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꼭 짚고 나가야 하는 것은 어떤 출판사는 계속 총서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시리즈로 역저들을 출판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종교문화출판사에서 근년에 출판한 많은 종류의 기독교 혹은 상관 학술역작들이 그것이다. 상술한 복잡한 상황을 감안하여 세 가지 예만 들어 설명하겠다.

(a) “歷代基督敎思想學術文庫” 리우쇼우윙 주편, 홍콩한역기독교문화연구소 출판, 번자체판, 상해삼련서점 출판, 간자체판.
이 문고는 삼대 시리즈로 나뉜다.

 

① 古代시리즈(헬라화시기부터 15세기까지의 기독교사상문헌) 예를 들면 「은밀한 상제를 논함」(니콜라, 쿠사 저),「헬라인들에게 권한다」(클레몬 저),「키스신학」(말브라드 저),「신비신학」(디오니시우스 저) 등.

 

② 現代시리즈(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기독교사상문헌), 예를 들면「순수이성ㅅ한도내의 종교」(칸트 저)「철학편단」(크리마르크 저)「기독교대사상가」(한스 쿰 저)「십자가에 못박힌 상제」(몰트만 저)「과학적 신학」(토론스 저)「교리의 본질」(린베이크 저) 등.

 

③ 硏究시리즈(19세기 말에서 오늘까지 인문학의 시각에서 연구한 기독교사상의 학술명저) 에를 들면,「사랑이란 무엇인가」(판능버 저)「러시아의 종교」(헉크 저)「무형의 종교」(푸크만 저)「역대의 예수 형상」(파리칸 저)「해석학, 종교, 희망」(트레이시 저)「모자이크의 자유와 초형적 종적」(바르트 증저),「천사의 전언」(베이걸 저), 「세계역사와 구속역사」(로베이터 등 저) 등등.

(b) 종교와 세계 역총, 허꽝후 주편, 사천인민출판사 출판.

 

현재 이미 30여권이 출판되었는데 내용은 대개 종교학이론과 기독교연구에 관한 것들이다. 에를 들면 「종교사회학」(야부로코 저), 「종교심리학」(에이드 등 저), 「사회속의 종교」죤스톰 저), 「정치대」(틸리히 저), 「종교기원탐색」트람포 저), 「神性을 논함」(오토 저), 「종교와 과학」(바버 저), 「종교와 문화」(가드나 저), 「종교와 예술」(베이스 등 저),「종교와 이념」(바오커크 저), 「종교와 현대과학의 흥기」(호이카 저),「종교와 서방문화의 흥기」(도우슨 저), 「한 역사학자의 종교관」(토인비 저), 「기독교와 문화」(아이로트 저), 「부녀와 세계종교」(카모디 저), 「글로벌 윤리: 세계종교회의 선언」(한스 쿰 등 편),「현대기독교사상」(상,하. 리빙스턴 저), 「당대미주신학」(푸머 저),「신학과 형이상학」(리기뭉터 저),「담론상제」(맥큐리 저)「옥중서간」(본훼퍼 저)「晩淸기독론」(커이린 저 등)

(c) 중국관계사명저역총, 중화서국 출판.

 

이 중에 섬렵된 기독교연구 저작은 「어도리크 동유기」, 「리마더우 중국일기」(리마떠우, 찐니거 저), 「1550년전의 중국기독교」(무어 저), 「보랑카빈 몽골행기, 루부루커 동행기」, 「몽골과 교황청」(보시허 저), 「유럽과 중국」(허드슨 저), 「재화예수회사열전 및 서목보편」(상, 하, 룽쩐화 저) 등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것은 비록 부분적인 연구성과 출판상황에 대한 소개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중국 학술계의 기독교연구가 짧은 25년내에 거둔 활잘한 발전의 독특한 국면과 그 중대한 영향을 절실히 느껴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독특성과 중대한 독특성과 영향에 관해서 대륙의 학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홍콩침례회대학 철학과 종교학과의 교수 뤄빙샹은 감개무량해 하면서 출판의 시각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콩과 대만에서는 일반적으로 기독교서적과 기타 서적이 출판과 발행에서 명확히 구분된다. 기독교출판사는 통상적으로 기독교서적만 출판하고 기독교서점에서도 기독교출판사에서 출판한 서적만 판매하며 비기독교출판사와 서점들은 대개 기독교서적을 취급하지 않는다. 이런 楚河漢界의 분명한 현상은 오늘의 중국에서 도리어 이미 파괴되고 있다. 많은 아주 좋은 서방의 신학저작들이 크고 작은 국영출판사들에서 출판되고 일반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대륙에는 기독교서점이 전혀 없다고는 것이고,

 

둘째, 대륙의 교회와 신학원에 거의 신학저술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혹시 극소수의 능력을 구비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극히 무거운 목회와 행정사역의 책임을 지고 있어 전혀 연구할 수 있는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대륙출판계에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담력있는 소수의 편집인들이 독자들을 협조하여 전면적으로 서방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사상에 대한 소개와 출판을 추진하기를 원한다.

 

넷째, 대륙의 종교열이 기독교서적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에 이런 책들의 출판은 출판사들로 돈을 벌게 한다.

 

이런 네 가지 원인이 중ㄱ구의 아폴로의 출현과 화합하여 근래에 들어서서 기독교사상이 교회외에서도 신속히 전파하게 되고 학술계에서도 한 석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학술계의 주류로 진입하고 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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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기관은 1951년 1월에 설치되었는데 초기의 명칭은 “국무원종교사무처”이었다. 1954년 11월에 “국무원종교사무국”으로 개칭하였다가 1975년에 철수했다.
2) 1979년 7월 1일 제5기전국인민대표대회제2차회의에서 통과되었다.
3) 아래의 몇 가지 설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함이다. ⑴ 역사배경. 1949년의 신중국 건국후 국가적인 과학연구기관은 주로 “전소련모델”을 참조하여 세운 것이다. 시작 초기에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연구기관이 모두 중국과학원 산하에 속해 있었다. 중국과학원은 1949년 11월 1일에 정식 설립되었다. 최초에는 剖級정부기관으로 정무원의 영도를 받았다. 1954년 중국인민광화국헌법과 조직법에 의하여 국가최고학술기관으로 고쳤고 국무원의 영도아래 두었다. 1955년 4개의 학부를 설치하였는데 곧 물리수학화학부, 기술과학학부, 생물지학학부와 철학사회과학학부였다. 1978년 원래의 중국과학원철학사회과학학부를 확대하여 중국사회과학원을 설립하였다. ⑵ 건제상황, 사회과학원계통은 대체적으로 三級社會科學阮으로 구성되어 있다. a) 國家級. 이것은 중국사회과학원인데 그 속에 20개의 연구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연구인원들도 상당수에 달하며 연구범위는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영역을 섬렵하고 있다. b) 省級(直轄市 포함), 사천사회과학원, 내몽골자치구사회과학원, 북경시사회과학원 등이다. 그 중에 상해시사회과학원은 전국최대의 지방사회과학원이라고 불리우며 산하에 15개의 연구소와 700여명의 연구자와 보조인도 있다. c) 市級. 에를 들면 광주사회과학원, 청도시사회과학원 등. ⑶ 급별관계. 중국사회과학원은 하나의 부급학술단위로써 직접 중앙선전부의 영도를 받으며 국가최고의 인문사회과학연구기구라 할 수 있고, 성, 시 양급의 사회과학원은 각 지방의 당과 정부의 이중영도를 받는다. 상해시사회과학원을 에를 든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상해시당위원회와 시청의 지낭단과 사상고”라고 지칭한다. 이상의 몇 가지 설명을 통해 사회과학원계통은 중국학술계에 특유한 構造體系임을 보여주며 그 규모의 크기와 전면적인 것과 인원의 많음과 권위의 높음 등은 인문사회과학계 최고라 할 수 있다.
4)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 이 연구중심의 명예주석 라우지의 말에 의하면, 여기에서 가리키는 것은 “編制를 설치하지 않고 경비는 스스로 모금하여 세계종교연구소를 의지하여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원, 소의 감독과 관리를 받는” 것이다. 참고. 라우지, “중국사회과학원 기독교연구중심 설립대회에서의 강화”, 「기독종교연구」 제1집,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1999년, pp.16-17.
5) 여기서 말하는 5대종교는 불교, 도교, 이슬람교, 천주교와 기독교를 가리킨다.
6) 여기까지 말하고 저자는 다른 한편의 조사연구 보고에서 보충설명하여 말하기를 “목전 중국의 각종 종교학교의 학생들은 입학시에 문화정도가 대개 응당히 도달해야 하는 요구에 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중졸이 66.4%나 되며 심지어 초졸생도 3.1%까지 차지한다. 리핑예 등 ”90년대 중국기독교발전상황보고“, 「기독교문화학간」, 1999 제1집, 북경: 동방출판사 1999, P.323.
7) 리핑예 등 ”90년대 중국기독교발전상황보고“, 「기독교문화학간」, 1999 제1집, 북경: 인민출판사 1999, PP.206-207.
8) 상계서 pp.207-208.
9) 츠나위 주편: 「당대중국의 종교공장」(하) p.300.
10) 쥐신핑: “당대중국의 기독교연구”, 「기독교종교연구」제1집, p6.
11) 중국기독교사적 논문 발표상황에 관해서는 벤쇼우리 편; “중국기독교사논문색인(1949-1999)”, 「기독종교연구」제 1집,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1999년 참조.
12) 이 방면의 연구개황과 동정에 대해서는 허찌엔밍: “교회대학사연구와 당대중국기독종교문화”, 「기독종교연구」제2집,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2000년, 참조.
13) 예를 들어 어떤 학자들이 보기에는 목전 중국의 종교학이론연구는 “서학색채”가 너무 농후한 것 같고 심지어 어떤이는 아예 이 연구를 西方的이라고 성격을 정하는데 이런 견해가 생기는 이유는 현재 이루어지고 잇는 이 방면의 연구가 주로 서방종교학자들과 기독교신철학자들을 포함한 이론 관점들을 소개하고 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생각에는 이런 견해가 너무 表面化한 것이다. 이들은 종교학의 역사와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학술계 20세기 초 이래 대규모로 引進西學의 동기와 목적을 더욱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4) 뤼빙샹:“중국아폴로와 홍콩신학계의 97위기”, 「文化基督徒: 현상과 쟁론」, pp.100- 101.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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