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0. 17:47ㆍ운영자자료/중국교회에 관한 자료
중국 가정교회의 유형
'삼자애국운동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중국교회를 말한다. 대부분 가정교회는 시골지역에 있다. 왜냐하면 시골에는 종교를 통제하는 국가기관이 설립되지 않은 지역이 많으며, 설립되 있다고 하더라도 지역이 넓은 관계로 일일이 감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교회가 중국교회의 주류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는 약 7-8천만의 교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가정교회는 다음과 같이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첫째,
동부지역에 있는 절강과 강소성에서 발전하고 있는 독립교회 유형. 이것은 외국종교를 추종하고 있다는 오명을 벗어나기를 원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에 의해 1906년 상해에서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그들은 외국선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교회들을 조직하였다.
둘째,
1910-1921년 동안 천진, 북경, 제남, 청도와 같은 북부도시들에서 발전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그러한 도시 혹은 소읍들의 '중화인 기독교회'라고 불렀다. 이 교회들은 서구의 여러 교파들로부터 벗어나서 자치, 자전, 자양의 교회를 세우기를 원했던 여러교파 출신의 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셋째,
1917년 조직되어 여러 성으로 확산되었던 참예수교회이다. 오순절계통의 교회로서 대만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넷째,
'예수가정'이라 불리우는 것으로서 1926년 북부의 산동성에서 조직되었다. 재산의 공동 소유를 주장하며, 구성원들을 '가족'으로 조직하였다. 모든 개인소유물을 가족에게 기증하고, 식량을 공동생산하고 또한 그것을 팔아 수입원으로 삼았다.
다섯째,
1928년 '워치만니'에 의해 설립된 '지방교회'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을 집회소(集會所)라고 부르고 있지만, 외부에서는 소군파(小群派)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49년 공산정권이 수립된 이후에도 가정교회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1950년과 1958년 사이에 모든 교회들은 실질적으로 삼자애국운동위원회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폐쇄되고 목회자들은 경고도 없이 해입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발생하자 박해는 심화되었으며 약간의 비밀집회도 홍위병의 광란적인 공격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70년대 초에 다시 가정교회가 시작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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