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0. 17:47ㆍ운영자자료/중국교회에 관한 자료
중국 가정교회의 신학 논쟁---
가정교회의 인간론과 영성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
-쩌우꽁허(周功和-대만 중화복음신학원 교무처장)
들어가는 말
최근 20년 동안 중국대륙은 종교붐이 일어났는데, 교회 역시 놀라운 성장을 하였다.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중국교회 내의 분열현상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교회의 분열현상은 그 원인을 다각도로 찾아 볼 수 있겠지만 신학적인 문제도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중국교회의 분열현상은 가정교회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에 본 글은 중국 가정교회의 신학문제를 주로 논의하고자 한다. 가정교회의 신학문제에 있어 특히 인간론과 이에 따른 영성관이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며, 이것이 중국교회와 기독교인에게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본 글은 중국 가정교회의 신학 사상 가운데 인간론과 영성관을 다루길 원하며, 비판적인 시각과 교회 일치적인 시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영, 혼, 육에 대한 논쟁
중국 가정교회의 인간론은 주로 워치만 니(倪柝聲)의 삼원론(三元論)적 인간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워치만 니는 인간을 영(靈), 혼(魂), 육(體)으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독교인은 자기 안에 어떤 것이 영에 속하고, 어떤 것이 혼에 속하는 지를 구분하여, 영으로 혼을 무찌르도록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화(聖化)의 길은 쉽게 율법주의로 흐르게 되며, 심지어 성화하는 데 있어 더욱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율법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자기의 의(義)로움을 세우는 것이다(롬 10: 2-3).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매일 무엇이 영이고, 무엇이 혼인지를 분별하라고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다 전인(全人)적인 사람으로 인간이 죄를 지을 때도 바로 이 전인이 죄를 짓는 것이요, 섬김의 생활도 전인이 섬기는 것이다.
중국 가정교회의 지도자인 양(楊)형제는 70세가 넘으신 분으로 가정교회를 순회하면서 말씀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삼원론적 인간관을 지닌 분으로 가정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때 항상 삼원론을 강조하고 있다. 양형제는 인간의 영 속에는 오성(悟性)과 의지(意志)와 감정(感情)이 있으며, 혼과 육체 속에도 이 세 가지가 각각 들어 있다고 하였다.
결국 사람들 속에는 아홉 가지의 요소들이 있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사람이 구원받을 때는 단지 영만 구원받는 것이고, 혼은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있어 혼의 깨어짐이 필요하다. 혼이 깨어졌다 해도 육체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상태이며, 육체는 부활한 후에야 비로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구원은 삼단계로 나누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람의 이성, 의지, 감정이 모두 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옳은 견해이고, 또 말세에 육신이 구원받는 다는 것도 성경에 부합되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구원받지 못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기독교인은 불안감을 갖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이 날마다 영이 혼과 육신을 제압하고 있는가에 대해 근심 걱정한다면, 이것은 로마서 8장 15절의 말씀인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의 내용과 위배된다. 사실 성경의 종말론에 대한 관점을 볼 때 구원은「이미」와 「아직」두 측면이 있지만, 만약 기독교인이「아직」구원을 전적으로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구원의 확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구원론 전개에 있어서 균형을 잃게 하는 것이다.
교회일치의 차원에서 인간론에 대한 주장은 영, 혼, 육과 그들간의 상호관계적인 차원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자」라는 차원에서 전개해야 할 것이다. 옛사람과 새사람은 모두「사람」을 전인으로 보고 있다. 또 신도의「혼」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희랍어 원문을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에서는 오순절에 믿고 회개한 자의 수가 3천 명이라고 했다. 희랍어 원문에는 3천의「혼」으로 표현하고 있다(행 2: 40-41). 그래서「예수를 믿지만 혼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영과 혼의 사용이 통일적이지 못하다. 또 성경 전체를 볼 때에도 혼은 깨어져야 하고, 영은 부흥되야 한다는 원칙을 도출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도 희랍어 원어에는「영」이 궁핍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되어져 있다. 그래서 영이 깨어져야 한다는 뜻은 겸손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어떤 성경에는「혼」이 깨어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잘 되야 한다고 말한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영혼」은「혼」을 가리키고 있다.「혼」의 잘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영」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성경 말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특히 창 2: 17, 요 3: 6, 요일 3: 9, 5: 18).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1절에서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고 하였다.
여기서 「영」의 더러움을 말하고 있어 영이 범죄치 않는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범죄를 할 때는 전인이 범죄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는 영과 혼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이 없지만「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자」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거룩한 삶을 추구할 때 우리는 영과 혼 그리고 육 사이의 관계와 작용을 분별할 필요는 없다.
일원론, 이원론, 삼원론은 모두 세 가지 서로 다른 관점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컴퓨터로 학생들의 성적을 계산한다고 할 때 그 사람과 컴퓨터는 하나의 작업하는 자리로 보여질 수 있다. 만약 일원론적인 시각에서 볼 때 이「작업하는 자리」가 성적을 계산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원론적인 시각에서 이「작업하는 자리」를 볼 때 사람과 컴퓨터를 두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또 컴퓨터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에 사람을 합하면 삼원론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일원론, 이원론, 삼원론이라는 것은 세 가지의 서로 다른 관점이며, 모두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한 가지 관점만을 고집하면 온전한 시각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성경은 지역과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각도로 사람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자」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육신의 정욕과 옛습관을 극복하여 성결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신앙이 성숙될 때 인간의 어느 부분이 다른 어떤 부분을 억눌렀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이런 분석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과거에 위트니스 리(李常受)의 한 제자와 매일 아침 소위 영으로 말씀을 보고 기도를 드리는 경건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제자에 의하면 이성이 아니라 오직 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것이 바로 영으로 혼을 제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매번 우리가 성경을 펴서 읽을 때 먼저 글자를 식별해야 하는데, 이것은 이성이 필요하며 이성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또 그런 즉흥적인 영으로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것은 사실 오른쪽 뇌를 왼쪽 뇌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예를 들면 피아노를 칠 때 악보대로 칠 수도 또는 즉흥적으로 칠 수도 있는데 전자는 왼쪽 뇌를 보다 많이 사용하는 것이요, 후자는 오른쪽 뇌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옛사람이 깨어지고 새사람이 나타나는 과정에 있어서 삼원론적인 논리보다는,「벗어버리다」와「입다」는 말로 대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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