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9. 01:07ㆍ목양자료/5.절기자료
교회력에 비추어본 고난주간과 설교
신학이야기
2006/04/11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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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에 비추어본 고난주간과 설교
부활절과 분리된 수난주간 기념은 4세기부터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 안에서 완성된 우리의 구원 역사를 매년 재현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회력은 주후 4세기말에 이르러 거의 완성되었다. 4세기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동시에 기념하고 감사하면서 부활절기를 지키던 초대교회는 수난주간(Holy Week)을 부활절과 분리하여 기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분리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시릴(Cyril)의 주도하에 일어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건이나 장소에서 각각 따로 분리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사역, 즉 십자가에서의 수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한 구속사역을 완성시킨 곳이어서 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례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순례여행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교회는 전세계로부터 밀려오는 순례자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주간에 있었던 가장 귀한 구속의 사역, 즉 십자가의 사역을 중심으로 한 시간과 장소에서 예배드리며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 자체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한 주간 지내신 행적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지라 그들은 마지막 주간, 즉 유월절 주간 동안에 예수님의 행적에 맞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그리고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배와 행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사순절의 절정으로서의 수난주간(고난주간)이며, 이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의 그 당시 모습이 주후 384년에 예루살렘으로 순례여행을 한 스페인의 수녀 이제리아(Egeria)의 기록을 통해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예루살렘에서의 수난주간 행사는 점차로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성주간의 의식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사역과 죽음의 극적인 순간들을 기념하는 것들로 발전되어 나갔다. 예수님의 죽음 이전과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의 실제 현장인 예루살렘에서 이런 예배들이 발전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특별히 부활절 직전에 오는 이 성주간은 우리 주님의 고난에 대한 집중적인 추모의 주간으로 지켜지게 된 것이다.
본 글은 역사적으로 이 주간 동안에 이루어진 행사를 소개하고,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설교의 분문들과 주제와 관련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고난주간의 행사
1. 종려주일/수난주일
이 날(Palm Sunday/Passion Sunday) 교회는 예배 도중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행진하며 몇 명이 복음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을 극적으로 읽었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행진하는 것은 4세기 예루살렘 관습에서 발견된다. 그 때 감람산으로부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종려주일 오후에 주님의 무덤교회로 행진하며 가던 관습이 그 기원을 이루고 있다. 이 날은 주로 마태복음에 나타난 수난설화(26, 27장)를 중심으로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명상하였다. 그러므로 이 날의 주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승리의 입성(Triumphal Entry)이며, 또 하나는 주님의 수난(The Passion of Our Lord)이다. 그래서 흔히 이 날을 가리켜 ‘대조의 날 또는 아이러니의 날’(Day of Contrast/Irony) 이라고 부른다.
2. 전반부 3일
교회는 전통적으로 고난주간의 전반부 3일(Three Minor Days: 월, 화, 수)이 후반부 3일(목, 금, 토)에 비하여 조금은 덜 중요한 날들이라 하여 특별한 행사를 가지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월요일에는 예수님의 성전 일소하신 사건에 대하여 기억하며, 화요일에는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를 들었다. 이 때에는 주로 마가복음 14, 15장의 수난설화를 읽었다. 그리고 수요일은 전통적으로 유다의 배반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교회는 이 날 전통적으로 누가복음의 수난설화(22, 23장)를 읽었으며, 유다의 배반에 초점을 맞춘 결과 전통적으로 금식하며 또한 동시에 구제를 위해 헌금하였다.
사실 이 구제헌금(Almsgiving)은 현대교회가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모습인데, 오늘 한국교회는 이 기간 동안 교인들로 하여금 금식을 선포하고, 그것으로 구제를 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별히 IMF시대에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책임을 한국교회가 솔선수범하여 행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한국교회가 올해 수난주간을 진정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3. 성목요일
이스터 트라이둠(Easter Triduum: 주님께서 체포되어 수난 당하신 ‘3일’을 지칭하는 말)으로 알려져있는 3일 중 첫날인 성목요일(Holy /Maundy Thursday) 저녁에,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수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념하는 성만찬(고전 11:23~26)을 베풀었으며, 때로는 세족식(요 13:1~5)도 거행하였다. 이 두 가지 행사는 모두가 다 서로간에 종으로서 섬길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즉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희생과 섬김에서 이루어짐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 날을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mandatum novum: A New Command-ment, 요 13:34)을 주신 것을 뜻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날을 화해와 용서의 날로 정하여 지키게 되었는데, 특별히 이 날 죄를 짓고 출교(Excommuni-cation)를 당한 사람들이 온 회중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 고백하고(Public penitence), 회중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날로서의 의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Reconciliation).
그러므로 ‘공중 회개자들의 화해’는 성목요일의 세 번째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오늘 한국교회는 이미 권징을 잃어버린지 오래인지라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던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소개할 것은, 교회의 예배 역사를 보면 후에 이 날에는 테네브레(Tanebrae)라고 하는 예배가 행하여졌다. 이 예배는 7개, 혹은 12개의 촛불을 정해진 구약 또는 신약의 말씀(주로 수난설화)을 읽으면서 촛불을 하나하나 차례로 꺼가는 예배이다. 이 예배는 목요일 밤 이후에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어두움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감람산에서의 배신, 예수님의 체포, 그리고 재판에서의 저주 등을 통해서 더욱더 어두움의 세계로 들어감을 상징하는 예배이다.
이 예배의 마지막에는 물론 축도가 없으며, 회중들은 어두운 가운데서 조용히 돌아가게 된다. 아직 한국교회에는 생소한 예배이지만, 예배 인도자들이 잘 계획하여 진행한다면, 예수님의 수난설화를 읽는 가운데 그리고 점점 더 빛이 사라져가는 모습 속에서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성금요일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금요일(Good Friday)로 알려진 이 날 요한의 수난설화(18, 19장)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을 회상하였다. 그러므로 이 날 드리는 예배의 중요한 성격은 ‘회개’(Penitential service)였다. 그러나 이 날은 역설적으로 십자가의 좋은 소식(복음)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를 이야기하는 십자가의 복음(Good News)을 전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주어졌으니, 이 날은 주님께서 죽으신 슬픈 날이기도 하지만 모든 죄인들에게는 구원의 복된 소식이 시작된 좋은 날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이 날을 가리켜 성금요일(Good Friday)이라고도 부른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날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하며 또한 전세계의 고통받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였다. 이번 성금요일에는 한국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금식기도의 날로 선포하여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한국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를 한다면 좋을 것이다.
5. 성토요일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날(Holy Saturday) 역시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수난과 죽으심을 강조하며 묵상하였다. 특별히 이 날은 성금요일과 함께 전통적으로 금식을 하는 날이었고, 전 교인들은 이 금식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았다. 또한 성금요일과 함께 이 날은 피정의 날이었다. 즉 성금요일과 이 날에 교인들은 세상에서의 삶을 떠나 조용히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는 가운데 영적 수련을 쌓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날은 부활주일 새벽 또는 아침 예배 시간에 세례를 받을 사람들을 위한 최종적인 세례교육의 날이었다.
고난주간의 설교
교회력의 어떤 절기에 해당하는 때에라도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회상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과거의 사건이 오늘의 사건으로 다가오게 된다. 초대교회는 부활절을 하나의 통합적인 축제로서 지켰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을 축하하고 기념한 것이 아니라, 그의 고난, 죽음 그리고 승리를 다 함께 축하하고 기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사건들은 함께 기념되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의 사건들-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그리고 승리 등-은 여러 가지 주제를 지닌 채 발전하였다.
그 결과 여러 예식들이 주간 전체에 걸쳐 나타나게 되었으며, 각각의 예식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승리와 우리의 승리’의 회상(anamnesis)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스페인의 수녀 이제리아(Egeria)가 4세기에 수난주간 동안 예루살렘에서 행해지고 있던 바로 그 예식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녀가 고난주간 동안 예루살렘 교회가 드리던 각각의 예배에서 사용된 본문 말씀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여러 다른 자료들에 의해서 고난주간 동안 교회가 읽고 설교하였던 말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수난주간 동안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말씀을 읽고 설교를 하되 수난주일과 성목요일 그리고 성금요일에는 보다 길고, 형식을 갖춘 설교(sermon)를 했다. 그리고 월, 화, 수 그리고 토요일에는 짧은 형태의 단편설교(homily)를 하였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설교자들도 수난주간 동안의 예배를 위한 설교 준비를 할 때 위의 형태를 따라서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교회에서 수난주간 동안 성목요일이나 혹은 성금요일에 예배를 드린다면(주로 저녁시간) 설교자는 주일 낮예배 때의 설교와 같은 완전한 설교(full sermon)을 준비하여야 할 것이며, 그 외의 날들(월, 화, 수, 토)에는 새벽기도회 시간을 이용하여 수난과 관련된 말씀들을 읽고 묵상하는 짧은 설교(homily)를 준비함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전통적으로 수난주간 동안 읽고 설교한 본문들은 무엇인가?
1. 종려주일/수난주일
앞서서 이미 지적한 대로 이 날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과 ‘수난’이라는 두 가지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날 예수 그리스도의 입성을 말해주고 있는 본문들(마 21:1~11, 막 11:1~10, 눅 19:28~40)과 복음서에 있는 수난설화(마 26:14~27:66, 막 14:1~15:47, 눅 22:14~23:56)를 읽고 설교하였다. 그리고 서신서에서는 예수님의 겸손과 찬양의 노래인 빌립보서 2:5~11이 읽혀졌다.
이 날 읽혀진 구약의 말씀은 전통적으로 이사야 50장에 나오는 ‘고난의 종의 노래’(사 50: 4~9)이며, 시편 말씀 가운데는 22편, 31:9~16, 118:1~2, 19~29 등이다. 이 날 교회의 전통 가운데 읽혀지고 설교된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일곱 말씀(가상칠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고난주간 내내 새벽기도회 시간에 한 말씀씩 묵상하고 설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2. 전반부 3일
먼저 복음서를 살펴본다면, 월요일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말씀(요 12:1~11, 막 14:1~9, 마 26:1~5)을 읽었다. 설교자는 이 날 마리아와 그녀의 헌신에 대해 비난을 가하고 있는 유다를 비교해보는 가운데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줌이 좋을 것이다. 화요일에는 메시아의 교훈의 말씀(요 12:20~36)이 읽혀졌다. 수요일에는 전통적으로 유다의 배신에 대한 말씀(요 13:21~35)을 읽었다.
설교자는 월요일과 수요일의 말씀 속에 등장하는 유다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왜 예수님을 배신하게 되었을까 -탐욕? 메시야에 대한 실망? 진리 앞에서의 굳어진 마음?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 를 함께 묵상하는 가운데, 오늘 우리 속에도 잠재해있을지 모르는 신앙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 구약의 말씀과 관련하여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기간 동안 이사야의 고난의 종에 대한 노래를 읽고 설교하였다. 고난의 종의 노래는 4개가 있는데, 그 중에 세 노래(사 42:1~9, 49:1~7, 50:4~9)를 월요일부터 차례로 읽어 나갔고, 네 번째 종의 노래(사 52:13~53:12)는 성금요일에 읽혀졌다. 만일 설교자가 매일 새벽기도회 시간에 가상칠언을 차례로 설교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 종의 노래들은 좋은 설교 본문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설교자는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종의 고난을 매일 새벽 하나씩 묵상해 감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을 더욱 깊이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월요일에는 종의 인내를, 화요일에는 종의 절망을 그리고 수요일에는 종의 고통을 묵상하는 가운데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종의 고난을 함께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기간 동안 읽혀지는 시편 말씀은 시편 36:5~11(월), 시편 71:1~14(화) 그리고 시편 70편(수) 등이다.
3. 성목요일
전통적으로 이 날 읽혀진 말씀은 바울의 성만찬 제정의 말씀(고전 11:20~29)이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때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말씀인 요한복음 13:1~17, 31~35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이미 앞에서 소개하였다. 구약의 말씀은 출애굽기 12:1~14인데, 이는 유월절 규례에 대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구약의 출애굽 사건과 연결하여 묵상할 수 있는 귀한 말씀이다. 그리고 이 날 읽혀진 시편의 말씀은 시편 116:1~2, 12~19이다.
이 날 설교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성례전적인 행위를 통한 ‘참여’이다. 회중들은 성만찬에 참여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 세족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섬김에 참여하게 된다. 즉 죄의 씻음과 함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이 이 날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것이다.
4. 성금요일
성금요일은 수난주간의 중심이요, 절정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날 정오에,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의 고난이 절정에 다다른 시간에 복음서를 읽으면서 3시간 동안 예배(이것을 흔히 The Three Hours라고 부른다)를 드렸다. 그러나 낮에 예배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침 일찍 혹은 저녁에도 간단한 예배를 드렸다.
이 때에는 주로 아침에는 베드로의 제자도에 대한 말씀(요13: 36~38)을 읽고 묵상하였으며, 저녁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과의 관계를 주제로 하여 설교하였다(요 19:38~42). 세 시간의 예배(The Three Hours)는 교회의 전통에서 아주 유명한 예배인데, 이 때에는 주로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중심으로 그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이 날에는 주로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순간들을 묵상하는 것이 교회의 전통이었는데, 거기에는 많은 주제들이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성금요일 설교의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외에도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명패가 히브리, 라틴, 그리고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것도 좋은 설교의 주제가 될 수 있다(요 19:17~22).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권능이 모든 세계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종교’의 언어인 히브리어,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 ‘문화’의 언어인 헬라어로 그 분의 명패가 기록되었다는 것을 통해서 설교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종교와 나라들과 그리고 우리의 문화적, 지적인 모든 세계에 있어서 진정한 주님되심을 선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이 날 읽혀질 수 있는 말씀들은 이사야의 네 번째 종의 노래(사 52:13~53:12)와 이삭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의 이야기(창 22:1~18), 시편 22, 40:1~14 그리고 히브리서 10:16~25 등을 꼽을 수 있다.
5. 성토요일
이 날에 교회에서 읽혀질 말씀들은 욥기 14:1~14, 예레미야 애가 3:1~9, 19~24, 시편 31:1~4, 15~16, 베드로 전서 4:1~6 그리고 마태복음 27:57~66, 요한복음 19:38~42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이 날은 어두움의 날이다.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날이다.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이 온 인류를 뒤덮은 날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가 새벽이 가장 가까운 때이기도 하다. 설교자들은 어두움을 헤치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부활의 새벽을 기다릴 수 있도록 오히려 소망을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토요일 밤부터 주일 새벽까지 함께 모여서 밤이 새도록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부활의 새벽을 맞이하였는데, 그 예배를 이스터 비질(Easter Vigil)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밤이 가장 깊은 때가 곧 새벽이 오는 때임을 알고, 밤을 새워가며 말씀을 읽으면서 부활의 새벽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부활절 새벽연합예배를 잃어버려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나가는 말
수난주간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정연한 연속으로 상세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올해도 다가오는 이 기간 동안 설교자들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여러 말씀들을 통하여 깊이 묵상하고 전함으로 오늘 현대교회 속에서 너무나도 ‘값싼 은혜’로 전락해가고 있는 십자가의 수난과 구속의 은총을 다시 한번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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