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틸리히의 신관('God above God')을 중심으로

2012. 3. 9. 12:19운영자자료/5.논문자료 모음

폴 틸리히의 신관('God above God')을 중심으로

"Theology of Paul Tillich as I Understand It"


                             목  차



    서론   ---------------------------------------------  1
    제1부 폴 틸리히 신학 개관  -------------------------  2
     1. 틸리히의 생애 ----------------------------------  2
     2. 틸리히의 신학적 전제들 -------------------------  4
     3. 상관성의 방법 ----------------------------------  6
     4. 프로테스탄트의 원리 ----------------------------  9
     5. 전반적인 신학 개요 -----------------------------  10

    제2부 폴 틸리히의 신관  ----------------------------  13
     1. 틸리히의 신관 ----------------------------------  13
     2. 틸리히의 신관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  16
    결론  ----------------------------------------------  19
    침고문헌  ------------------------------------------  21


서 론


폴 틸리히는 20세기의 다른 어느 신학자보다도 '지성인들에게 보내진 사도'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와 같은 2세기 기독교 변증가들을 연상시키는 폴 틸리히는 동시대의 지성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진리들을 그들의 사고 형태로 전달하려고 했다.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폴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고백함으로써 이러한 변증적 목적과 열정을 인정하였다. "나의 전 신학적 작업은 세속적인 사람들 -우리는 모두 세속적이다 - 이 이해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종교적 상징들을 해석하는 데 집중되었다."
틸리히의 신학적 기여는 전체적인 영향력과 그 여파의 견지에서 볼 때, 접근 방식은 꽤 상반되지만 칼 바르트(Karl Barth)에 견줄 만하다. 바르트처럼, 그는 전 시대의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방대한 신학 체계를 갖추었고 동시에 세속 사회의 주목과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바르트와는 달리 현대 세속 철학과 기독교 신학 사이의, 비록 종합은 아니지만 긍적적인 상관 관계를 위해 노력했다.
틸리히는 1965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업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아마도 21세기까지 좋은 성과를 보일 것이다. '북미 폴 틸리히 협회'로 불리우는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국제적인 협회는 그의 작품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을 지속하고 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86년에는 그의 신학적인 기여와 그것의 영속적 의미에만 몰두한 수많은 모임들이 있었다. 1977년에 발행된 북미 신학자들의 연구 보고서는 폴 틸리히를 미국의 조직신학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유일한 사람으로 확언했다.
그의 생애 동안에 폴 틸리히는 세속 문화에 의해 기독교 신학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폴 틸리히에 견줄 만큼 정치가, 정부, 대학기관, 재단에 의해서 명예와 인정을 받은 신학자는 많지 않다. 심지어 대중 매체도 1959년 3월 16일 Time誌의 표지에 그의 모습이 실린 것에서 상징화되듯이 그의 업적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본 소논문에서는 이러한 폴 틸리히의 신학을 그의 신관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제1부에서는 폴 틸리히 신학을 전반적으로 개관한다. 먼저 그의 생애를 살펴보고, 신학적 전제들, 상관성(corelation)의 방법, 프로테스탄트의 원리, 전박적인 신학 개요 등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제2부에서는 폴 틸리히의 '신관'을 중점적으로 고찰하고,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그의 신관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제1부 폴 틸리히 신학 개관

1. 틸리히의 생애

폴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베를린(Berlin) 근처에 있는 스타체델(Stalzeddel)이라는 독일의 한 시골에서 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마 여덟 살 때부터- 신학과 철학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듯 싶고 열여덟살 때에 목사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 학생들처럼 틸리히는 비판 철학과 신학 및 성서학의 영향 아래에 있던 할레(Halle)와 베를린을 비롯한 몇몇의 주요 독일 대학에서 공부했다. 목사 안수식을 위한 교육 기간 동안에 그는 신학 교수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그 결과 개신교 국가 교회에서 안수식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할레 대학의 개인 교수로도 임명되었다.
틸리히의 학업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되었는데, 당시 그는 채플 인도자로 봉사했다. 그는 최전선에서 시간을 보냈고, 가장 친한 친구 몇 명을 포함한 수많은 병사들의 장례식을 집행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매장하는 일을 도왔다. 엄청난 죽음과 파멸과의 조우는 그의 삶과 신앙에 있어서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두 번의 신경쇠약의 고통을 맛보았고 그의 신관을 변화시킨 심각한 의심의 위기를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 틸리히는 명성있는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 직위를 받았고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치학에 몰두했다. 그는 종교적 사회주의 운동을 형성하는 데에 힘이 되었으며, 그 결과로 그 주제에 관한 책 The Socialist Decision (사회주의자의 결심)을 출간했다. 1920년대에 틸리히는 독일 학문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맨 먼저 말부르그(Marburg)로 떠난 다음 드레스덴(Dresden) 기술 연구소를 거쳐 마지막으로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대학에 정작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나찌(Nazis)와 공공연하게 충돌하게 되었고, 그들이 득세하자 '국가의 적'으로 정죄되었다. 그의 책 The Socialist Decision 은 1933년 10월 10일 공개적으로 불태워졌으며, 같은 해 10월 비밀경찰들은 그를 어디서나 뒤쫓기 시작했다.
만일 그가 독일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그의 삶은 집단 수용소에서 끝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뉴욕(New York) 시에 있는 콜롬비아(Columbia) 대학과 유니온(Union) 신학교의 초청으로 1933년 그곳으로 이주하면서 그러한 운명을 모면했다. 틸리히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는데, 특히 영어를 배우는 것이 최우선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같은 친구들의 특별한 도움으로 그와 그의 아내 한나(Hannah)는 미국 생활에로 전이하게 되었고 1940년에 시민이 되었다.
틸리히는 1955년 은퇴할 때까지 유니온 신학교에 남아있었다. 23년 동안 그는 그의 설교와 발행된 많은 책들, 그리고 동시대의 전 문화 영역에 대한 신학적인 통찰로 인해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1940년에 그는 예일(Yale)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신학자 중의 철학자, 철학자 중의 신학자"로 소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그는 비밀리에 독일 국민들에게 '미국의 소리'(미국 국무성의 해외 선전 방송)로 라디오 연설을 했으며 1944년 백악관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만났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는 두루 여행하면서 열광적인 청중들에게 수많은 강의를 해서, 그의 전기작가의 말에 의하면 "신학교에서 은퇴하기 불과 몇년 전에 그는 그의 말을 듣기 위해 아우성치는 광범위하고도 열정적인 대중을 얻었다. 1951년에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 1권을 발행했는데, 그 책에서 그는 신학적인 방법, 이성과 계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다. 2권은 인간의 곤경과 그리스도를 다루는데 1957년에 나왔다. 3권은 1963년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삶에 관한 주제와 성령뿐만 아니라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었다. The Courage to be (존재에의 용기)나 The Dynamics of Faith (신앙의 역학)을 비롯한 다른 발행 도서들은 그의 설교나 강의가 그러하듯이 보다 대중적인 청중들에게 호소했다.
신학교에서 은퇴하자마자 틸리히는 '대학교수'-미국에서 아마도 가장 명성있는 학문적 지위인-가 되어달라는 하버드(Harvard) 대학교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은 어느 것이든 가르치라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여행하고 연구하고 저술할 엄청난 자유를 부여받았다.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 굉장한 인기였다. 수백명의 학생들이 좌석 확보를 위해 한시간 전에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일종의 개인 숭배가 틸리히 주위에 형성되어, 학생들은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 위해 인도에서 건물까지 줄을 잇는다. 다른 대학에서 그의 강의들은, 많은 비판가들이 그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수백, 심지어 수천의 청중들을 끌어들였다.
틸리히는 1961년 존 에프 케네디(J.F.Kennedy)의 취임식에 초대를 받았으며 소수의 특별 초대자들을 위한 연단에 앉았다. 그는 미국의 주요 대학들로부터 12개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베를린 대학을 비롯한 유럽 대학들로부터 2개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하바드에서 은퇴한 뒤 그는 시카고 신학 대학교에서 누벤신학교수가 되었고 관내에 거주하면서 탁월한 신학자로서 봉사했다. 1965년 10월 22일 틸리히의 죽음은 뉴욕 타임즈에 간략한 편집기사 및 첫면의 사망기사와 함께 실렸다.
분명 틸리히 만큼 공적인 갈채를 받은 신학자들은 드물다. 그는 진정 "당대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자로서 그의 삶은 엄청난 모호성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는 자신의 구원에 대한 의심으로 줄곧 시달렸고 죽음을 몹시 무서워했다. 그는 사회주의를 추진한 반면 중상층 생활 양식의 혜택들을 즐겼다. 그는 위대한 에큐메니칼 그리스도인으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교회에 거의 출석하지 않았으며 혼잡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임종시에는 성경을 가까이 하며 자신의 구원에 대해 회의(懷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틸리히의 주요 저서로는 The Protestant Era (프로테스탄트 시대), The Courage to be (존재에의 용기), 그리고 세 권으로 된 Systematic Theology (조직신학)이 있는데, 특히 그의 Systematic Theology 는 그의 평생의 역작으로서 중세기의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Summa Theologica (신학대전)와 견주어 볼 만한 '20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숨마(summa)'라는 평가를 신학 평론가들로부터 받기까지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틸리히의 신학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그의 신학은 상관성(相關性)의 방법을 신학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상광성의 방법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철학과 신학을 서로 관련지어 주는 것이다. 철학은 인간이 실존적 상황 속에서 물어야 할 물음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신학은 우리로 하여금 실존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준비케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틸리히의 신학을 '철학적 신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둘째로, 틸리히의 신학은 종합적 신학이다. 그의 신학은 철학과 신학 외에 존재와 비존재, 내재와 초월, 무한과 유한, 정신과 물질, 자유와 자연,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등의 대응적 개념들을 조화 종합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폴 틸리히의 신학은 문화의 신학이다. 틸리히는 신률적 문화의 개념을 통해서 문화 일반을 신학의 영역으로 삼았고 실존주의 철학과 프로이드 심리학과 현대 미술, 조작, 건축, 음악 등 제분야에서 얻은 전문적 지식을 도구로 구사하면서 현대 문화에 관한 해석과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신학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2. 틸리히의 신학적 전제들

2.1 신학은 변증적이어야 한다.
틸리히의 기본적인 가정들 중의 하나는 신학은 변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참으로 동시대의 상황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그 개념들을 구성하고 전달해야 한다. '상황'이란 틸리히에게 있어서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의 특별한 질문들과 관심들, 즉 "그들이 그들 자신의 실존에 대한 해석을 표현하는 과학적, 예술적,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인 형식들"을 의미한다. 그는 근본주의 신학이나 '케리그마 신학'(신정통주의)을 날카롭게 비판하는데, 그 이유는 이 신학들이 이러한 상황의 역할을 무시할 뿐 아니라, 동시대의 문화에 의해 기독교의 메시지에 제기된 물음들에 대답하기보다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마치 돌 던지듯이 던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학은 반드시 '대답하는 신학'이어야 한다. 신학은 기독교의 메시지를 그 본질적인 진리와 독특한 특성는 보존하면서 현대 정신에게 적용시켜야만 한다.

2.2 기독교의 메시지와 그것이 표현되어지는 동시대의 문화 사이에는 공통된 지반이 현존한다.
변증적 신학은 기독교의 메시지와 그것이 표현되어지는 동시대의 문화 사이에 어떤 공통된 지반을 전제한다. 그러한 공통된 지반의 현존은 틸리히 신학의 또 하나의 가정이다. 틸리히는 동시대의 실존이 함유하고 있는 질문들은 그것이 신적 계시로 데려와졌을 때 신학에 의해 대답될 수 있고 대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신학은 쓸모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 질문들에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동시대의 실존에 의해 제기된 근본적인 질문들이 신적 계시의 상징들 속에서 대답된다고 믿었다.

2.3 신학의 변증적 임무와 관련하여 철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틸리히 신학의 세 번째 전제는 신학의 변증적 임무와 관련하여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와는 대조적으로, 틸리히는 철학이 신학에 있어서 절대 불가결한 요소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철학은 신학이 대답하는 질문들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답이 취해야 할 형태들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거의 대부분 제공하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철학을 매우 중시했다. "비록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요 위대한 학자라 할지라도, 만약 어떤 신학자가 철학을 진지하게 취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의 작품이 보여준다면 그가 누구든 그는 신학자로 인정되어서는 안된다." 파스칼과 같은 경건주의 사상가들과는 반대로, 틸리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철학자들의 하나님과 같다"고 말했다.

2.4 실존주의 철학이다.
세 번째 전제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네 번째 전제이다. 즉 신학에 매우 유용한 것으로서 철학의 독특한 분야인 존재론, 특히 실존주의 철학이다. 틸리히는 존재론과 동떨어져 있는 어떤 개념이나 철학의 사용을 정립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존재론은 모든 철학의 참된 중심이며, 그것의 질문이나 관심은 철학에 대한 다른 모든 접근 속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학에 있어서 존재론의 유용성은 그것의 대답에 있기보다는 그것이 제기하는 질문에 있다. 한 예로 '비존재'(non-being)의 질문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 수 있다. 이 개념은 고대 헬라 철학자들이 씨름했고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비록 약간 다른 방식으로지만 재생시킨 개념이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비존재는 비존재의 위협을 극복하고 유한 존재를 존속시키고 유지시키는 존재의 힘에 관한 물음을 제기한다. 그러한 힘은 절대 유한할 수 없으며 "존재 자체" 또는 "존재의 지반"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없다면, 유한 존재는 비존재나 무(無)로 전락할 것이다. 잘라 말해서, 비존재와 존재의 힘에 대한 존재론적인 물음은 하나님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틸리히는 신학이 제시하는 대답 -"하나님"- 은 이해될 수 없다고 논증한다. "일시적임에 대한 충격, 자신들의 유한함을 알고 있음에서 오는 불안, 비존재의 위협 등을 경험한 자들만이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따라서 존재론은 동시대의 변증적인 신학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물론 존재에 대한 질문과 관련하여 철학과 신학의 접근은 상당히 다르다. 철학은 떨어져 있는 객관적 대상에 대한 태도를 취하는 반면 신학은 궁극적인 존재, 비존재의 위협을 극복하는 힘을 "열정, 두려움, 사랑"으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론적인 이슈와 관심사들을 충분히 다루기 위해 두 역할 즉 철학자와 신학자의 역할을 취해야 한다고 틸리히는 단언한다. 모든 창의적인 철학자들은 어떤 면에서 그 시대의 신학자이고 모든 신학자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과 그 안에 암시된 질문들을 분석하기 위해 철학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철학과 신학은 구분되나 떼어놓을 수 없고 상호 의존적인 둥근 원 모양의 존재론의 두 "순간들" 또는 양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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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제들은 틸리히의 사상 전체의 주저를 이루고 있고 또한 본질을 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매우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수많은 학적 논쟁의 근원이 되어 왔다. 대부분의 철학자들, 특히 영어권의 철학자들은 틸리히가 주장한 철학과 존재론의 동일시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신학과 철학의 불가분리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한편, 많은 철학자들은 기독교를 "존재론적 사변"의 포로로 삼아서 신학의 자율성과 성서적 인격주의를 내팽개치고 있다고 틸리히를 비난했다. 아마도 가장 심한 비판은 틸리히의 존재론이 절충적이라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병합될 수 없는 철학의 요소들 즉 플라톤, 어거스틴, 독일 관념주의 철학자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전통적인 존재론과 하이데거와 샤르트르에 의해 구성된 현대 실존주의적 존재론을 결합시키려는 데 있다.

3. 상관성의 방법

어쨌든, 틸리히는 이러한 전제들의 기초 위에서 원래의 기독교 메시지와 표현되고 있는 현대의 메시지에 공히 충실할 수 있는 신학 방법론 -상관성의 방법- 을 제안한다. 이러한 신학 방법론은 그의 Systematic Theology (조직신학)의 전체 구조와 형태를 결정했으며, 현대신학에 끼친 그의 가장 지속적인 기여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그렇다면, 상관성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상관성의 방법은 철학과 신학, 종교와 문화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편을 조정하고 중재하여 양자 모두를 수용하는 신학체계를 건설하려는 틸리히의 방법론이다. 이 방법은 한 마디로 철학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틸리히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상관성의 방법은 기독교의 메시지와 현대 상황을 결합하는 방법이다. "상황 속에 암시된 질문을 메시지 속에 암시된 대답과 관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상관관계 방법의 근본적인 목적은 기독교 신앙과 현대 문화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관성의 방법은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인간에게 의존될 수 없지만, 자신을 나타내는 계시에 있어서는 불가피하게 인간에게 의존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계시를 받아들이고 응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적절한 질문을 할 때, 자신을 계시한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질문과 대답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신적인 계시가 주는 대답은 인간 실존 전체에 관한 질문과 상관될 때 의미가 있다. 우리가 궁극적인 질문을 할 때만, 계시는 대답이 된다.
틸리히는 Systematic Theology 에서 이 상관성의 방법, 즉 실존적인 질문과 신학적인 대답의 상호 의존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설명했다. 서론에서 그는 신학 방법론, 즉 상황과 케리그마의 대화 방법론을 제시한 후, 본론에서 이성(질문)과 계시(대답), 존재(질문)와 하나님(대답), 실존(질문)과 그리스도(대답), 삶(질문)과 성령(대답), 역사(질문)와 하나님의 나라(대답)를 변증법적으로 상관시켰다. 따라서 틸리히의 신학은 변증적인 관점에서 역동적인 상관의 원리에 근거하여 형성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실존적인 질문이 일어나는 인간의 상황을 분석하고, 기독교의 메시지에서 사용된 상징이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조직신학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메시지와 상황의 상관성을 강조하는 틸리히의 신학은 타당치 못한 세 가지 방법론, 이를테면 초자연주의적 방법, 자연주의적 방법, 이원론적 방법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틸리히에 따르면, 신학은 그 기초가 되는 두개의 극(pole)을 가지고 있다. 영원한 진리와 이 영원한 진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즉 메시지와 상황이 그것이다. 신학은 항상 이 양자 중 어느 하나를 희생시킴으로써 균형을 잃을 위험성이 있다. '초자연주의적'인 방법은 메시지를 강조한 나머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방법은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물음과 관심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진리를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기대한다. 바로 근본주의와 바르트적인 신정통주의 신학이 그러한 예이다. 한편, '자연주의적' 혹은 '인본주의적' 방법은 첫번째와는 반대로 상황을 강조한 나머지 메시지를 희생시킨다. 이 방법은 신학적인 대답을 자연적인 인간 상태에서 끌어온다. 그로 인해 이 방법은 인간 실존의 소외를 간과하며, 계시란 인간이 인간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인간에게 말해진 무엇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바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이 그러한 예이다. 마지막으로 '이원론적인' 방법은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을 이용하여 신과 인간 사이의 다리를 놓아 보려고 하며, 대답(하나님)을 질문의 형태에서 유출해 내려고 한다.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Thomism)이 그러한 예이다.
틸리히의 상관성의 방법은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며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로, 그것은 기독교의 메시지와 현대의 상황을 결합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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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는 그의 상관성의 방법과 관련하여 "나는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이기를, 또한 철학자이면서 여전히 신학자이기를 바라고 있었다."라는 중요한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두 주인을 꼭 같이 존중하고 섬기려는 태도는 분명 백해무익한 일이 아닐 수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신학이 철학 안에서 망하게 되던지 아니면 철학이 신학 안에서 망하게 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틸리히의 상관성의 방법과 관련하여, 조지 토마스(George F. Thomas)는 다음과 같은 올바른 비평을 내리고 있다.
"틸리히의 상호연관의 방법과 여기에 기초를 둔 그의 신학체계가 지닌 중대한 난점은 그가 그 방법에 따라 인간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신률(Theonomy)에 뿌리를 두지 않은 자율(autonomy)을 철학에다 적용하고 있다고 점이다. 틸리히의 견해대로 한다면, 상황의 진리를 분명하고 심오하게 보기 위해서는 신률적인 이성 즉 구원받은(saved) 이성에게만 기대를 걸 수 있다. 그와 같은 이성만이 기독교의 메시지가 대답을 줄 수 있는 질문을 정직하게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의해 철저하게 '회심하지' 못한 철학적 이성이 존재의 구조와 범주들을 올바로 처방한다고 할 수 있으며, 실존 속 깊숙한 곳에 암시되어 있는 질문들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을까?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형식이 문제의 성격에 따라 좌우되어 버린 기독교의 대답들이 비툴어지고 애매한 것이 되지 아니하였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토마스는 그가 지적하는 의미를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틸리히가 말하는 하나님은 존재에서 암시된 문제 즉 가능한 비존재의 충격으로 생긴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이것은 철학에서 나온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 그가 내어 놓은 철학적 대답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존재는 '존재 자체'라는 것이다."
토마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결국 상관성의 방법을 통해 틸리히가 이끌어 낸 추론은 그의 하나님이 기독교의 메시지와 상반되는, 하나의 존재(being)도 아니며 인격(person)도 아닌 신(神)이라는 것이다. 인간 소외에 대한 틸리히의 대답인 그리스도로서의 예수(Jesus as Christ) 안에 있는 새 존재라는 것도 역시 비인격적인 요소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로버트 레이몬드(Robert L. Reymond)의 말은 퍽 설득력이 있다. "틸리히의 경우에 대해 우리가 심각한 의심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도대체 그가 실제로 성경에나 기독교의 신앙에 귀를 기울여 본 일이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가 성경의 사건들이나 표준들을 언급한 곳에는 어디서나 완전히 상징적으로 재해석하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기독교적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비인격적인 철학으로 다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4. 프로테스탄트의 원리(the Protestant Principle)

폴 틸리히의 상관성의 방법은 그가 '프로테스탄트의 원리'라고 부른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프로테스탄트'란 긍정적인 '항의' 혹은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나온 구원에 대한 신앙고백을 가리키나, 틸리히의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형식에 대한 반항의 태도"를 확립하는 부정적이고 추상적인 원리를 말한다. 그것은 무한이 유한에서는 어떤 형태의 것으로든지 그 자체를 나타낼 수 없다는 신앙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실재를 망라할 수 있는 유일한 사고 체계란 없기 때문에 신학은 결코 최종적일 수 없다. 신학은 항상 과정이어야 하며 수정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 자체의 체계화를 포함한 모든 신학적 체계화 위에(above) 계시며 그 너머(beyond)에 계신다. 목회적인 측면에서, 틸리히는 이러한 원리를 우상숭배에 대한 방어책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하나님의 축소된 모습만을 마주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았다고 또는 거부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궁극적이다. 틸리히의 언어를 빌린다면, 하나님은 "궁극적인 관심"이다. 궁극적인 관심의 태도는 궁극적인 자(者)만을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임을 틸리히는 논증하려고 한다. 따라서 '궁극적인 관심'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곧 궁극적인 관심의 태도와 궁극적인 관심이 돌려지고 있는 실재이다. 이러한 수단들에 의해 틸리히는 신학적인 내용에 대한 전통적인 기준을 궁극적인 진지함의 태도에 대한 시험(test)으로 대치시키려 한다.
틸리히는 그의 책 The Protestant Era (프로테스탄트 시대)에서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원리는 특별한 종교적 개념도 문화적 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변화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종교적 경험이나 영적인 힘의 증감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와 모든 영적 경험의 궁극적인 기준이다. 그것은 그것들이 인식을 하고 있든 하고 있지 않든 그것들의 기저(基底)에 있다. 이러한 원리가 실현되고 표현되고 적용되고 결합되는 방식은 시기와 장소와 그룹과 개인에 따라 다르다. 원리로서의 프로테스탄트주의는 영원하며, 일시적인 모든 것의 영구적인 기준이 된다. 어떤 특징적인 역사적 시기의 프로테스탄트주의는 일시적이며, 영원한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종속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원리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며, 이러한 심판은 부정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프로테스탄드 시대는 종국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국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반박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프로테스탄트 시대의 종국은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진리와 힘에 대한 또 하나의 명시(明示)가 될 것이다."

5. 전반적인 신학 개요

5.1 틸리히에 의하면, 종교는 어떤 신념들 혹은 특정한 관심들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종교적인 때는 그가 "궁극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을" 때이다. 궁극적인 관심이란 인생의 기타의 관심사를 모두 초월하여 우선적으로 갖는 관심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무엇, 바로 그것이 신학의 대상이다.

5.2 무엇이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인가?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은 우리의 존재 또는 비존재를 결정하는 무엇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 전 인간 실재, 실존의 구조, 의미 및 목적 등을 멸하거나 구원할 힘이 있다고 믿는 것에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 궁극적인 것은 존재 자체이며 우리가 전통적으로 하나님이라 불려오던 것이다.

5.3 틸리히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사물(a thing)도 아니고 어떤 존재(a being)도 아니다. 하나님은 존재 이상이며 사물 이상이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요, 존재의 힘이요 존재의 지반(地盤)이다. 하나님을 최고의 존재로 간주하는 것까지도 그를 피조물의 차원으로 떨어뜨리는 일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은 이를 부정하는 것 만큼이나 무신론적이다. 왜냐하면 존재 자체란 상대적 의미로서의 존재와 비존재, 유와 무, 긍정과 부정, 삶과 죽음의 개념들을 초월하는 근원적 '있음' 그 자체를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의미와 우연의 위협과 비존재의 위협에 처한 인간의 불안을 극복할 용기의 추구에 상응하는 무엇을 가리키는 인간의 상징적 표현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제2부로 미룬다.

5.4 동일한 맥락에서, 틸리히는 죄를 존재와 존재로부터 소외 또는 소원(疎遠)해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죄는 현대의 생활에 긴장만을 초래했다. 죄에 대한 참 정의는 우리 존재의 지반에서 소외 또는 소원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존재의 근거로부터, 다른 존재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실존적 소외는 인간에게 죽음의 두려움, 죄책감, 무의미와 절망을 가져다 준다. 틸리히에 따르면, 인간은 율법, 금욕, 신비, 경건 등을 통하여 실존적 소외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실패했다. 실존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새로운 존재에 의해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5.5. 틸리히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소외 또는 소원해진 것의 극복됨의 상징이요, 하나님과의 연합을 파괴하려는 모든 소외의 세력이 그 안에서 소멸된 "새로운 존재"(The New Being)의 상징이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자기 존재의 영원한 지반에 투명하게(transparency) 되어 하나님을 계시했으며, 본질과 실존 사이의 분열이 극복된 존재인 새로운 존재의 지참자(bearer)이다. 그는 그 자신으로서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존재로 옮겨지는 전달체이다.
그런데 틸리히의 그리스도관은 역사적 예수의 선재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부활, 승천 등을 부인한다. 박아론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틸리히는 '신'에 관하여 말할 때 Being이라는 철학적 개념 때문에 인격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철학적 허구 속에서 배회한 것같이 그의 기독론에 있었서도 New Being이라는 철학적 개념 때문에 역사적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철학적 허구 속에서 갈팔질팡했던 것이다." 틸리히는 특히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라는 교리적 용어를 반대하는데, 박아론 교수는 그것을 이렇게 기술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神人)이다'라는 생각은 너무 지나치게 개념적인 생각이며, 역동적이 못되는 생각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신인이라고 한다면 그는 본질과 실존의 이중 구조를 초월할 수가 없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다'라는 주장을 버리고 그대신 신과 인간의 영구적 합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 실재로 나타났다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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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로버트 레이몬드는 이렇게 비평한다. "틸리히의 기독론이야 말로 정통적인 모든 기독론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진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는 나사렛 예수를 단순한 인간 수준으로 격하시켜서 인간의 관심이나 숭배의 대상으로는 별 가치가 없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틸리히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기(being)보다 그리스도가 되는(becoming) 자로 이해한 것은 아주 비성경적이다." 김의환 교수도 이렇게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는 상징으로 간주될 때, 신(神)도 아니며, 새 존재도 아니다. 다만 새 존재의 지참자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절대적 종교가 될 수 없고 다만 절대적이며 우주적 종교를 향한 증거일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틸리히의 그리스도관은 "힌두교인이나 불교도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물 탄 맛 잃은" 그리스도관이다.

5.6 사람은 어떻게 이 존재로부터의 소외의 극복에 참예하는가? 전통적인 해답인 중생, 칭의, 그리고 성화는 틸리히에 의해 재해석된다. 중생은 새 존재를 가져오는 자이신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현실 속으로 끌려 들어온 상태가 된다. 칭의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가 아니요 인간이 자신의 여러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용납되었음을 표시하는 상징어이다. 성화도 새 존재의 능력이 교회의 내외부를 막론하고 인격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재규정된다. 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 존재는 인생의 궁극적인 관심과 모든 존재의 지반에 대한 추구의 해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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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이몬드는 이렇게 비평한다. 틸리히의 구원관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실존적 체험을 묘사하기 위해 칭의니 성화니 하는 성경적 용어들을 이용한 또 하나의 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근본적으로 도달하게 된 결론은 예수에 대한 상징들인 죽음과 부활을 명상함으로 인간 안에 새로운 자아를 각성케 하는 것이다. 틸리히의 방법론과 대답을 적용시키면 마하트마 간디나 석가모니의 생애와 죽음을 묵상하는 가운데서도 꼭 같은 구원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5.7 틸리히는 문화에 관해 논하면서 세 종류의 문화를 말했다. 그는 자율적 문화, 타율적 문화, 신률적 문화가 존재함을 말했다. 자율적 문화는 인간들의 궁극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표명 없이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의 제 형식을 합리적 실천적 이성을 좇아서 창조하려는 시도의 결과라고 하겠고, 타율적 문화는 인간들의 이성의 Gestalt를 파괴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고와 행동과 생활을 어떤 교회종교나 정치적 유사 종교의 권위적 표준에 예속시키려 하는 시도의 결과라고 하겠다. 한편 틸리히가 내세운 신률 문화는 앞의 두 문화의 잘못을 교정할 힘을 내포한 문화 형태로서 틸리히가 내세운 신률적 문화는 인간들이 궁극적 관심과 초월적 목적론을 그들의 정신생활의 바탕이 되도록 창조적인 표현을 시도하는 문화이다. 신률적 문화는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는 생각에 가장 충실한 문화이다. 신률은 인간의 자율 법칙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한편 신률이란 외계로부터 인간에게 부여된 어떤 법칙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적 법칙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신적 지반 위에 서 있는 법칙은 곧 인간 자신의 지반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틸리히의 신학을 개략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케넷 하밀톤은 이와 같은 틸리히의 신학을 총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유연하고 정확하여 백과사전적이며 굉장히 독창적이고 인상적인 소작(所作)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신학이 아니요, 기독교 신학을 신지학적(神知學的) 존재론적 사색으로 해석한 것이다. 때로는 이 해석이 좀더 밝은 빛에서 기독교 신학의 원형을 살피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그 해석은 그것이 해석한 내용과 정신과 글자에서 탈선하는 예가 허다하다."

제2부 폴 틸리히 신관

1. 틸리히의 신관 - "하나님 이상의 하나님(God Above God)"

틸리히의 신관을 살펴보려고 하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그것은 틸리히의 신관이 그의 신학의 다른 어떤 영역에서보다도 더 큰 논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논쟁이란 대부분은 잘 알여진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본질과 실존 너머에 계시는 존재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논증하는 것은 그를 부인하는 것이다."
틸리히는 그의 주저(主著) Systematic Theology 제1권 제2부 '존재와 하나님'에서 그의 신관을 체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거기서 틸리히는 하나님을 '존재 자체'라고 부른다. 만일 하나님이 하나의 존재라고 한다면 그는 비록 최고의 존재라 할지라도 상대적인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존재 자체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다른 것과 병행하거나 다른 것 위에 있는 존재로 이해될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하나의 존재라면 그는 유한된 세계의 범주, 특히 공간과 물질에 종속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있게 단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신론이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지 하나의 존재(a being)가 아니다."
틸리히는 하나님이 존재 자체이어야 함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신학이 출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쉽게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다. 당신이 그 존재의 유무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그 하나님은 우준 안에 존재하는 만상(萬象)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그러한 존재가 정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그러므로 그러한 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것도 매우 정당하다."
한편,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려면, 즉 하나님이 참으로 절대자가 되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거나 존재의 지반 또는 존재의 힘이라야 한다.
하나님이 존재 자체가 된다는 말은 유한한 존재에 속한 삼라만상을 초월하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것은 틸리히가 존재를 유한한 수준에 다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월성을 기술하면서, 틸리히는 끊없이 깊은 심연과 같은 하나님의 본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유한한 존재들을 초월하시되 무한히 초월하시기 때문에 개개 존재가 다 그 깊은 심연에 삼켜져 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편재성을 서술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적 본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유한한 만물은 존재의 무한한 힘을 공히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존재의 지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존재 자체라는 것과 절대자라는 것 외에는 하나님에 관한 어떤 진술도 문자적인 진술이 아니라 상징적인 진술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틸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존재 자체라고 하는 단적인 주장을 제외하면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말은 다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불트만이 성경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를 주장했다면, 틸리히는 성경의 비문자화(deliteralization)를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아나 세계라는 개념을 통해서 포착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아'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자아의 개념을 부여한다면 하나님은 비자아 즉 자아 아닌 어떤 것과 대응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므로 절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세계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하나님은 초월해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격적인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등으로 부르는 것은 다 상징적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단지 간접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만 말해질 수 있다. 따라서 틸리히는 하나님이 비인격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인격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 열정, 기대, 기억, 고난, 기쁨 등과 같은 인격적인 표현은 존재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만들려는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한 인격 혹은 한 인격자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모든 인격적인 모든 것의 지반이 되며 모든 인격적인 것들 안에서 존재의 힘이 됨을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틸리히에 따르면, 고대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인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격이란 용어를 하나님 자체가 아닌 삼위일체의 개체에 사용했을 뿐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간주하게 된 것은 19세기 현대신학자들에 의해서였다. 그러므로 틸리히는 하나님의 인격을 상징적인 의미로 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틸리히는 그의 다른 저서 The Courage to be 에서 "하나님 이상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 말은 진정한 하나님은 신학적 유신론의 하나님을 초월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틸리히에 의하면 신학적 유신론의 하나님은 한 존재는 될지언정 존재 자체는 되지 못하므로, 주체와 객체의 이율적 구조 속에 얽매이게 된다. 주체로서의 하나님은 나를 객체, 즉 한 개의 물건으로 만든다. 그는 나의 주관을 빼앗아간다. 그는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앞에서 무능무력하게 된다. 나는 그와 같은 하나님에게 반기를 든다. 따라서 틸리히가 말하는 '하나님 이상의 하나님'은 주체와 객체의 이율적(二律的) 구조 속에 얽매이는 하나님, 즉 신학적 유신론의 하나님을 초월하고자 하는 노력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틸리히는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 이상의 하나님'은 인간의 회의와 번뇌 속에서 하나님이 사라질 때 나타나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틸리히가 신학적 유신론의 하나님의 부정을 통해서 어떤 다른 의미에있어서 유신론의 수립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와 같은 부정을 통해서 '초인격적인 하나님', '하나님 이상의 하나님'의 개념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틸리히가 '초인격적인 하나님', '하나님 이상의 하나님'의 개념에 도달하기 위하여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은 '인격적인 하나님'은 바로 우리 기독교 성경이 말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틸리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철학적 제단 앞에 희생의 제물로 바침으로써 그의 '초인격적인 하나님'곧 '하나님 이상의 하나님'을 획득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파스칼(Pascal)에 반대하여 나는 말하고자 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과 철학자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한 인격체이시며 또한 한 인격체로서의 자신의 부정이다."
우리는 틸리히의 신관과 관련하여 이러한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틸리히는 무신론자(無神論者)인가?' 우리는 위의 고찰을 통해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다. "틸리히는 무신론자이다. 그러나 단 무신론자에 대한 정의가 유신론적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그런 사람으로 판단내리려 할 때 한해서다. 안셀롬(Anselm)이나, 아퀴나스가 말한 바와 같이 그런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견지에서 볼 때 틸리히는 무신론자이다. 그러나 반대로 '무신론주의자'란 말이 인간의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궁극적인 실제의 원칙이 있음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그런 사람으로 정의될 때 한해서는 틸리히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무신론이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참람하고 또 신비적인 개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대항 태도를 취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2. 틸리히의 신관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우리는 위에서 틸리히의 신관을 살펴보았다. 비록 그의 난해한 언어 사용으로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그의 신관을 다음과 같이 비평해 볼 수 있다.

2.1 틸리히의 하나님은 성경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추리의 하나님이다.
틸리히의 신관은 우리가 가진 하나님이란 개념을 지나친 신학적인 단순화와 곡해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상징들을 존재 자체, 비존재, 유한 존재라는 그의 분석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을 오히려 그의 존재론적인 경계선 안에다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틸리히는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무한과 유한 사이의 존재 유추는 하나님에 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마련하여 준다고 선언하는데, 이 말로서 우리는 그의 신관이 그의 존재론적 용어 때문에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틸리히의 하나님은 구약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체험하거나 신약의 사도들이 믿었던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철학적 존재론적 추리의 결론으로서의 하나님인 것이다. 그 하나님은 기독교의 신조가 선언하는 천지의 창조주가 아니다. 그는 선지자들이 말하고 마지막 날에 자기 아들로 말씀하신(히 1:1,2) 하나님이 아니다. 틸리히가 우리에게 남기고 떠난 하나님은 인격적인 'I - Thou'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하나님, 우리를 무한으로 이끌어 가는, 우주 안에 내재하는 힘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성경 대신에 철학을 모든 판단의 표준으로 삼은 틸리히의 신관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 이르렀고 철학적 허구 속에서 배회하다가 철학적 허구 속에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2.2 틸리히의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하나님이다.

틸리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강조한 반면, 인격적인 하나님을 거부했다. 그는 하나님이 인격적이라는 진술을 상징으로 간주했으며 그것은 한 인격이 아닌, 인격적인 모든 것의 근거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틸리히의 신관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 왜 하나님이 인격적이다 라는 진술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하는 것이다. 하트숀(C. Hartshorne)은 하나님에 대한 진술 가운데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 많다고 주장했다. 둘째, 성서의 하나님은 왜 인격적인 분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틸리히는 하나님은 인격적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역사 속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은 지성적이라는 주장이 그 반론으로 끊임없이 제시되었다. 더구나 틸리히의 신관은 정서적으로 중립적이며 비인격적이어서 기도와 예배의 활력적인 경험을 뒷받침할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신관은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상반된다.

2.3 틸리히의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내재적인 하나님 즉 범신론이다.

틸리히의 신관은 초월적인 면보다는 내재적인 면이 강하다. 마크 클라인 테일러(Mark Kline Taylo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틸리히의 초월 이해는 시종일관 내재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타자성' 또는 '초월성'에 대한 그의 의미에 대한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 틸리히는 존재 자체인 하나님이 유한 만물을 무한히 초월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절대적이면서도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들의 지반과 목적으로서 모든 것들에 참여한다. 유한 만물은 존재 자체 즉,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존재의 구조에 참여한다.
따라서 틸리히의 하나님은 범신론적인 하나님이라는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그의 하나님은 결국 만물을 자신 속으로 흡수해 버리는 하나님이다. 그의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포괄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비록 모든 존재들을 무한히 초월해 있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존재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틸리히는 말한다. "세계는 하나님에게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창조하고 자신이 원하는 자들을 구원하는 '분리되어 있는 자충족적인 실체'가 아니다. 오히려 창조의 영원한 행동은 오직 사랑을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 타자를 통해서만 성취되는 사랑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님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현실화와 본질화를 향해 움직인다. 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것의 영원한 공간은 신적 생명 그 자체이다. 그것은 신적 축복의 내용이다." 틸리히는 유한 만물과 존재 지반과의 신비스러운 생명적 연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 일종의 범신론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하나님과 세계는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고도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 폴틸리히의 하나님은 존재들, 세계, 타종교의 신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그의 신관은 "철학적 유신론의 형태로 위장한 범신론"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틸리히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실존을 초월해 있는 절대자, 즉 존재 자체인가? 아니면 초월은 단지 유한 만물이 굴복하는 제한과 갈등에 종속되지 않음을 의미할 뿐, 본래적으로는 세계의 진행 과정과 연루되어 있는 하나님인가? 우리는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며, 결국 그의 신관을 내재적인 하나님 즉 범신론으로 규정짓지 않을 수 없다.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폴 틸리히의 신학을 개략적으로 고찰했다. 특히 그의 신관을 중점적으로 고찰했으며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비평했다. 우리는 그의 생애를 살펴보았고, 신학적 전제들, 상관성(corelation)의 방법, 프로테스탄트의 원리, 그리고 그의 조직신학의 내용을 개관해 보았다. 또한 그의 신관을 상세히 고찰한 후 세 가지 점에서 비평을 제기했다.
한 마디로, 폴 틸리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현 대 기독교 사상가 중에 한 사람이다.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은 이렇게 말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판단이 어떻든 간에 그는 인간의 전 문화로 하여금 빚을 지게 했다고 할 수 있는 진귀하고 위대한 사상가임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틸리히는 변증법적 신학의 초기에는 바르트의 동지로서, 그 후에는 바르트에 대한 비판가로서 독일 신하계에 명성을 떨쳤으며, 라인홀드 니버의 동료요 친구로서 미국 신학의 흐름을 주도했다.
그의 탁월성은 분명 현대의 역사적 관점과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근거하여 기독교 신학을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재해석한 것에 있다. 그는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모색했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성경의 메시지를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틸리히는 인간, 역사 및 문화에서의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상황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통신학에 대해 늘 도전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성경의 비문자화를 주장하여 인격적인 하나님의 개념,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같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단지 상징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격적이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전통적인 신관, 그리스도관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 틸리히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기독교를 상징에 근거한 기독교로 전락시키고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토대를 손상시켰다.
특히 틸리히는 그의 신관을 전개함에 있어서 범신론으로 기울어져, 극단적인 내재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말았는데, 이로 인해 그는 알타이저(Thomas J.J. Altizer) 등으로부터 사신신학(死神神學)의 스승으로 불리움을 받기에 이르렀다. 알타이저는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의 많은 신학자들 중에서 참으로 현대적 신학을 수립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 신학자는 틸리히였다."  
1967년 10월 13일자 Christianity Today의 표지는 이를 단명적으로 잘 보여준다. "거기에는 한 무더기의 책이 그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는 바하니안(Gabriel Vahanian)의 No other God (다른 하나님이 아니다), 하밀톤(William Hamilton)의 The New Essence of Christianity (기독교의 새로운 본질), 알타이저의 Twoards a New Christianity (새로운 기독교를 향하여)와 The Gospel of Christian Atheism (기독교적 무신론의 복음)와 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 (급진신학과 하나님의 죽음), 그리고 반뷰렌의 The Secular Meaing of the Gospel(복음의 세속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저자들은 오늘날 사신신학으로, 좀더 학술적으로는 급진(혹은 세속) 신학으로 알려진 현대 신학운동의 지도자들이다. 이 한더미의 책 밑바닥에는 세권으로 된 틸리히의 조직신학이 놓여 있었다. 이것은 현대신학에서 틸리히가 차지하는 위치를 암시한 것이었다."
물론 틸리히는 분명 기독교적 무신론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케넷 하밀톤이 말했듯이 "초자연주의의 애굽에서 백성을 이끌어내서 사신의 요단강가로 인도한 모세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이러한 운명은 역사적 기독교에서 멀리 떠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끌어내려 실존의 옷을 입혀 존재의 지반이란 밑창으로 내려 보내는" 인간의 철학적 허구를 추구하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인의 철학적 고민 속에서 신학적 해답을 주고자 하고 그의 변증적 동기는 매우 중요하고 값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아닌 실존주의의 옷을 입힌 철학적 범신론의 하나님을 제시하고자 했다. 결국, 틸리히의 신학의 실패는 궁극적으로 성경적 진리를 조직적으로 체계화시키기 보다 역(逆)으로 자기의 조직적 사상 체계 속에 성경적 진리를 부합시키려 하는 데 있다.
따라서 개혁신학은 현대인의 고뇌의 해결책으로 기독교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일과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유일한 대안임을 새삼 인식하면서 최선의 전진을 다해야 하겠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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