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스콜라 신학(Scholasticism)

2008. 7. 18. 12:26목양자료/1.기독교자료

 

스콜라 신학(Scholasticism)

1) 초기 스콜라 신학

  代表的인 學者는 Erugena였다. 9세기 초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중세 초에는 아일랜드가 중세 문화를 이끌어 갔다. 이 사람의 사상은 Neoplatonism(汎神論)에 가까운 이단 사상이었다.

 그는 권위와 이성의 문제에 대해서 성서와 교부들의 권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理性이라고 주장했다. 권위가 이성으로부터 오지, 이성이 권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우리의 이성에 맞아야 그것이 권위가 있다는 말이다. 어떤 권위, 성서의 권위에 의해서 우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저서 가운데 『자연의 분할에 관하여』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서 자유라고 하는 것은 만유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한 첫 번째 자연은 창조하고 창조 받지 않은 자연이다. 이것은 하나님이다. 두 번째는 창조 받고 창조하는 자연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이다. 세 번째 자연은 창조 받고 창조하지 않는 자연이다. 이것은 시공간의 현실 세계, 현상계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창조 받지도 창조하지도 않는 자연이다. 이것은 다시 하나님이다. 즉 만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현상계 앞에 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한 면에서 실재론자(Realist)라고 볼 수 있다. 현상계가 이데아로 그리고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간다. 머리 속에 있는 이상보다는 못하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이데아에 있는 완전한 것들을 불완전하게 모방한 것이다. 이것이 실재론자들의 생각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3단계인데 다시 이데아로 그리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에게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럼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되는가. 성경에 보면 천국과 지옥이 있다. 모두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되면 지옥은 없거나 텅텅 비는 것은 아닌가. 이 사람은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상태라고 보았다. 악인들도 결국은 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데 악인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서 양심에서 받는 고통 즉 마음의 고통을 지옥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범신론, 보편구원설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정통 기독교와는 다른 것이다.


*보편(Universal) 논쟁 - 에루게나가 실재론을 주장하면서 이러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ⅰ)극단적 實在論(스콜라 신학 초기에 우세) : 보편자는 개별적 대상으로부터 독립할 뿐만 아니라 선재 한다. (ante rem)

ⅱ)온건한 實在論(스콜라 신학 중기에 우세) : 보편자는 개별적 대상과의 관련 속에서만, 개체 안에서만 존재한다.(in re)

ⅲ)唯名論(스콜라 신학 후기에 우세) : 보편자는 추상적인 이름에 불과하다. 사물을 보고 나서 붙인 이름이다.(post rem) 보편자 논쟁에서 유명론이 우세해짐에 따라서 중세기의 종합 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동물이 어떻게 생겼는가? 동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할 수 없다. 개가 어떻게 생겼는가?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말하기 어렵다.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그냥 개, 소, 말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인간인가? 각 개체 인간은 존재하지만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Universal = Res ---> Realism(실재론) 보편자는 실제로 존재한다.

Universal = Nomen ---> Nominalism(유명론) 보편자는 하나의 이름에 불과하다.


 실재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다 남이 아니다. 이데아 계에 우리의 모형이 있는데, 이데아 계의 하나의 모범적인 인간과 모든 사람은 다 관련이 있다. 모든 사람은 한 뿌리에 있는 가지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유명론의 우세는 기독교 세계를 와해시켰다. 민족국가가 대두되면서 각 민족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인간 개인에게 있어서 개인주의가 팽배하게 된다. 중세 사람들은 실재론적 사고를 가지고 삼위일체를 이해하기가 쉬웠다. 일체는 보편자이고 삼위는 각 개체인 것이다. 유명론자들에 의하면 삼위일체는 三神論 밖에 안 된다.


  Berengar( - 1088)와 Lan franc(1005~1089)의 논쟁. 베렝가르는 우선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후의 화체설과 비슷한 교리를 비판했다. 그는 빵과 포도주에 천상의 그리스도가 불가시적으로 임재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만 그리스도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란 프랑크는 1050년 로마 회의, 1054년 투르 회의에서 베렝가르의 입장은 이단으로 정죄 되었다. 란 프랑크의 입장은 화체설의 입장이다. 이 논쟁에 Humbert 추기경이 자기의 직위를 이용해서 자신이 작성한 문서에 베렝가르가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그 내용은 성찬 때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만지고, 성찬을 씹는 사람은 자기의 이(齒)로 그리스도의 몸을 씹는다는 것이다. 베렝가르는 강압에 못 이겨서 여기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다시 자신의 입장을 주장했다. 또 공격이 있자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였다.

이러한 논쟁이 있은 후 1215년 제4차 라테란 총회에서 화체설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성찬에 대한 논쟁(크게 다른 3가지 입장)

Berengar - 빵과 포도주는 그냥 빵과 포도주인데 믿음으로 받는 사람에게는 함께 해 준다는 것이다. 상징설의 입장이다.

Lan franc - 화체설에 가깝다. 빵의 겉모습은 우연성이다. 그러나 빵의 실체(영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다.

Humbert - 빵에 실체(영혼)뿐만 아니라 우연성(겉모습)까지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그냥 빵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것이다.


안?(Anselm)

 롬바르드 족의 귀족 가문에서 1033년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경건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 생활은 아주 금욕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도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집안의 반대로 가출해서 돌아다니다가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베크라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당시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란 프랑크을 만나게 된다. 이 수도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란 프랑크가 다른 곳의 수도원장으로 옮긴 뒤 이 사람이 수도원장이 되었다. 1093년에는 란 프랑크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켄터베리 대주교에 임명되었다. 보통 안?을 스콜라 신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1)계시와 이성의 문제

  안?은 모든 가톨릭 교리는 하나님이 계시해준 것이기 때문에 진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는 이런 교리들은 이성적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계시에 의하지 않고 이성만으로도 이해하고 입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면에서 신학자가 해야 할 일은 이중적이다. 우선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는 계시의 진리를 설명해 주는 일, 그리고 불신자들에게는 계시의 진리가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진리들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입증해 주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바로 스콜라 신학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스콜라 신학은 기독교의 진리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단순히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2)존재론적 하나님 존재 증명

 그는 아무리 바보라 할 찌라도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이성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장 큰 존재라는 개념을 들었을 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은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 즉 가장 큰 존재를 이성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고 實在하지 않는다면, 이성 속에 있는 것은 실재에 있는 것보다 더 크지 못하다.(두개는 모든 선과 완전한 것이 들어 있다는 의미에서 같지만 實在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더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보다 더 큰 자를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전제에 모순이 된다. 그러므로 가장 완전한 자는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분명한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면 그는 바보이다.


  안?이 이 책을 쓴 후, Gaunilo라는 사람이 '바보를 위하여'(In Behalf of Fool)라는 책을 썼다. 이 사람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내 머리 속에는 이상적이고 완전한 섬에 대한 생각이 있다. 만약 안셀름 당신이 이 완전한 섬을 바다 한가운데서 찾아준다면 당신의 神 존재 증명을 받아들이겠소." 가장 완전한 섬은 내 머리에는 존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논쟁에서 가우닐로는 유한적인 섬이라는 개념과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같은 것으로 놓는 실수를 했다고 폴 틸리히는 비판한다. 즉 모든 존재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과 하나의 존재를 같은 것으로 놓았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나 헤겔과 같은 사람들은 안?을 지지하는 쪽이었고,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안?의 사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3)속죄론

  'Cur Deus Homo'(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었는가?)에서 그는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시킨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대응할 것은 두 가지인데 형벌 아니면 보상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형벌을 내려서 죽여 버리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상실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상을 받는 편을 선택했다. 그런데 인간은 여기에 대해서 보상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예는 하나님만이 보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했기 때문에 인간 차원의 보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신인 동시에 인간이신 분, 즉 신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인이 자신의 성실한 삶만으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러스 고난이 필요했다. 인간의 죄도 무한하지만 신인의 고난도 무한하다. 하나님은 신인의 고난 때문에 인간을 용서하셨다. 안?의 이런 속죄설을 보상설(Satisfaction)이라고 부른다. 안? 이전에 나타났던 속죄론(Atonement)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속전설(Ransom Theory)-원래 인간은 하나님께 속해 있었는데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서 악마에 예속되었는데 그리스도가 몸값을 주고 악마의 노예 된 우리를 구속했다는 것이다. ②그리스도 승리설(Christus Victor)-악마에게 구속되어 있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악마를 쳐부순다. 고대 교부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께서 낚싯대 낚시 바늘에 미끼를 끼어서 던졌다. 악마가 그냥 인간 인줄 알고 삼켜버렸는데 그 안에 바늘이 있었다. 예수님이 보통 인간 인줄 알고 점령하려 했는데 그 안에 신성이 있었다. 그래서 포로가 되었다. 고대 교부들의 그리스도 승리설이라는 학설이었다. 3)보상(Satisfaction)-이것을 주장한 사람은 안?이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인간들이 더럽혔다.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하나님께서 명예훼손을 보상받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간을 처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처벌하면 인간의 창조 목적이 없어진다. 둘째는 인간이 보상하는 방법인데 인간이 보상을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보상을 해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반대하고 나선 사람은 아벨라드였다. 아벨라드는 도덕 감화설을 주장하였다. 도덕 감화설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순간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이고, 화해하는 것이 속죄를 받는 길이고, 구원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그레고리의 사상은 하나님에게 새 인간상을 제시했다고 하는 것은 보상에 가깝고, 우리 안에서 새 인간성을 창조한다는 것은 도덕 감화설에 가깝다. 안?은 구원을 인간과 악마의 관계로 본 사상을 비판하고, 구원을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로 보았다.


아벨라드(Abelard : 1079 -1142)

그는 기독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그의 아버지를 이어서 영주가 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학문에 전력했다. 그는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일생을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싸우는데 보냈다. 그의 방법론은 한마디로 변증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저서 가운데는 'Sic et Non'이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 교부들의 저작 가운데 서로 반대되는 의견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의 사고'의 구조를 보면 먼저 명제에 대한 찬성 반대의 입장 그리고 아퀴나스 자신의 의견을 쓰고 난 뒤 그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정, 반, 합이 있다. 그러나, 아벨라드의 책에서는 정과 반은 있으나 합은 없다. 아벨라드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다. "의심함으로써 탐구하게 되고, 탐구함으로써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아벨라드는 교부들의 상반된 의견만을 제시했을 뿐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벨라드는 속죄론 중에서 도덕감화설을 주장했다. 그는 자기 이전에 나타났던 속전설, 안셀름의 보상설과 같은 속죄론들을 다 비판했다. 하나님이 보상을 받고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거저 용서를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 편에 있다. 즉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화육 하시고, 인간들 가운데 사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들에게 응답적인 사랑을 환기시켜 준다. 이 사랑이 바로 화해이고 구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볼 때 우리 안에 넘치는 사랑이 곧 화해이고 구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이고 구원을 얻는 길이다. 그 다음 아벨라드의 중요한 사상은 의도의 윤리이다. 덕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intention)에 있다. 그래서 양심에 위배가 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고 박해를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P. Tillich는 이런 의도의 윤리를 교육적 측면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통의 대중들은 양심에 따라 살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엄격한 객관적 규범 없이 자유에 맡겨 두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버나드는 아벨라드에 대해, 지식을 위한 지식은 맹목적이라고 비판했다. 지식은 사랑과 합일될 때만이 참된 지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이라는 중세의 사상가는 인간의 영혼이 의심이라는 대중의 밥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롬바르드(P. Lombard : 1100–1160)

  'Sentences'(명제집)이라는 책은 중세기 신학의 교재였다.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종합적인 책이었다. 위대한 중세의 신학자들은 이 명제집을 공부하고 주석 했다. 이 명제집을 주석할 자격을 얻는 것은 신학 교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기독교 교리들, 신조들, 교부들의 인용문들을 모은 것이다. 그는 아벨라드의 제자로서 아벨라드가 썼던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모든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아벨라드는 모순되는 문제만 제시하고 읽는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랐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도 롬바드와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롬바드는 전통적 신념에 대하여 동정적이었다. 명제집에는 ⅠⅡⅢⅣ권이 있었다.

Ⅰ권 - 삼위일체론, 신 인식론, 신의 섭리 예정론

Ⅱ권 - 창조론(천사, 인간, 타락, 은총, 자유의지)

Ⅲ권 - 화육(그리스도의 인격과 싸움, 믿음 소망 사랑, 악덕과 미덕)

Ⅳ권 - 성례, 종말론

조직신학의 첫 번째 책인 오리겐의 제일 원리론도 이 책만큼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


2) 중기 스콜라 신학

 중기 스콜라 신학은 두 개의 커다란 학파, 프랜시스 학파와 도미니크 학파가 주도하였다. 프랜시스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는 Bonaventura(1221-1274)다. 그의 별명은 서랍 박사(Doctor Seraphius)다. 고대의 위 이레니우스는 천사는 9가지의 등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중 가장 높은 등급이 서랍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교황청이 지배하는 교회 국가에서 태어났다. 1238년 프란시스회에 들어갔다. 1257년에는 프랜시스회의 총장이 되었다. 프랜시스회는 처음부터 온건파와 엄수파의 두 파가 있었다. 그는 교단 내의 알력을 해결하는데 공헌하였다. 1273년에는 추기경이 되었다. 그는 자연 안에 하나님의 그림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영혼 안에는 하나님의 이미지(Imago Dei)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으므로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식 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가 만물을 봄으로써 만물의 원인으로 추론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과 대칭 된다. 인간 내부의 신적인 빛에 의해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거스틴의 조명설과 비슷하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주셨기 때문이다. 서양의 인식론의 역사를 말한다면, 플라톤(回想說) - 어거스틴(조명설) - 보나벤투라 - 라이프니쯔(대륙의 이성론)로 이어지고 아리스토텔레스 - 토마스 아퀴나스 - 로크(경험론)으로 이어진다. 크게 보아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어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은 원래 날 때부터 백지와 같은 상태였으나 경험에 의하여 인식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보나벤투라는 이런 입장에서 세가지를 주장했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신비적 명상이다. 둘째로,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지성을 자발적으로 예속시켜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다(Frui Deo; Enjoyment of God). 셋째로, 교회의 법과 계명에 양심을 맹목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절대 순종)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4~1274)

  1225년 태어나서 보나벤투라와 같은 해인 1274년 사망했다. 아퀴나스와 보나벤투라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죽고 난 후 교회가 학문을 제한하게 됨에 따라 스콜라 신학이 쇠퇴하게 되었다. 아퀴나스는 중앙 이탈리아의 아퀴노라고 하는 곳에서 출생하였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갔다. 그는 파리로 가서 위대한 스승 Albertus Magnus를 만났다. 나중에는 알베르투스가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고 제자의 입장을 따랐다. 대표적인 저서는 '이교도 대전'이 있는데 이 책은 이성을 사용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하려 한 것이었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을 상대로 하나님의 존재 등을 설명하려 한 것 이었다.그 다음으로는 기독교의 교리들을 집대성한 '신학 대전'이 있다. 안?은 신학자가 해야 할 일은 이중적이라고 주장했다. 우선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는 계시의 진리를 설명해 주는 일, 그리고 불신자들에게는 계시의 진리가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교도 대전'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신학 대전'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323년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1467년 교회 박사(doctor ecclesiae)로 불리웠고, 1880년 교황 네오 13세는 아퀴나스를 모든 카톨릭 학교의 수호 성자로 선포했다. 지금까지 어거스틴 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교회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들어오면서 크게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하나는 어거스틴 주의를 고수하려고 하는 입장이다. 어거스틴 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은 보나벤투라였다. 또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따라 가려고 하는 생각들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Latin Averroist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은 Siger라고 하는 사람이다. 시제르는 철학은 신학에서 독립하여 연구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세계의 영원성을 주장했다. 어거스틴 주의자들은 無로부터의 창조를 주장했고, 아베로이스트 주의자들은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하다고 주장했다. 천체의 운동이 땅위의 존재들의 운동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능동 지성의 단일성을 주장했다. 교회는 아베로이스트 주의자들을 공식적으로 정죄 했다. 어거스틴 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주의 이렇게 두 가지가 대립하고 있을 때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두 가지를 종합했다고 볼 수 있다. 질송의 '중세철학 입문'에서 볼 때는 중세기에는 아랍의 문화가 기독교 문화보다 앞서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기독교 문화가 아랍 문화보다 앞서게 되었는가. 왜냐하면 아랍 사람들은 철학과 신학의 분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코란은 일반 대중을 교육하기는 좋으나, 진리는 철학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폴 틸리히도 프랑스에서 별로 신학자들이 안 나온 것에 대해서 프랑스는 이러한 철학과 신학이라는 것이 팽팽히 대립되었고, 독일은 이 두 가지를 종합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위대한 신학자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사상


(1)인식론

아퀴나스에 의하면 감각에 의하여 인식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능동 지성이 지성에 맞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의 밖에 있는 물질적 에이도스가 우리의 지성적 에이도스로 바뀌어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신학의 목적을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간의 기원과 운명을 아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에는 자연이 빠졌다. 중세기에는 자연에 대해서는 관심 밖 이었다.이러한 지식은 이성과 계시로부터 온다고 보았다. 이성이 주는 지식은 불완전하고, 계시로써 완전해진다고 보았다. 아퀴나스는 계시가 이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보완하는 것으로 보았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은총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완하는 것이다. 계시는 성서 안에 내포되어 있다. 해석은 교회가 해야 한다고 보았다. 아퀴나스는 철저히 교회의 아들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나 칼 바르트는 신학이 교회의 학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신론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的 계명과 어거스틴的 계명을 결합시켰다.

ⅰ)신 인식론

자연을 봄으로써 하나님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ⅱ)신 존재 증명

  안?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거명 하지는 않았지만, 존재론적 신존재 증명을 비판했다. 그의 비판의 요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은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다른 하나는 무신론자들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를 생각은 하지만 그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을 이야기 한다.

 ①운동을 가지고 설명을 한다. 최초의 부동의 動者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을 보면 움직인다. 이러한 움직임 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다. 누군가 다른 존재가 움직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끝이 있다. 그 끝은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도록 하는 부동의 동자이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②動因으로 설명한다. 이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역시 원인에서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끝이 있다. 그 끝이 바로 제1원인이다. 자기 안에 원인을 가지고 있는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③蓋然性에서 必然性으로의 정의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다 개연적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없다가 있다가, 있다가 없어지는 존재이다. 이 세상의 존재들이 모두 개연적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아무것도 없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가 나오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필연적인 존재는 하나는 있어야 한다. 바로 그 필연적인 존재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④등급에 의한 증명이다. 등급을 매기기 위해서는 최상의 선이나 최상의 미가 있어야 한다. 인간사회에 등급이 있다는 것은 최선의 선이나 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최선의 선이나 미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⑤만물의 통치를 통한 증명이다. 이 세상에는 해나 달과 같은 의식이 없는 존재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의식이 없는 존재들도 잘 조화롭게 운영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서 이 우주에는 이것들을 지배하는 존재가 있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질서로부터 증명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이 아퀴나스는 안?의 존재론적 神存在 證明을 부정하고 신존재를 자연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러 가지로 하나님을 표현하지만 가장 아퀴나스의 가장 좋은 표현은 제1원인일 것이다. 그는 동시에 하나님은 잠재성이 없는 100%개발된 상태인 순수 현실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장 현실적이며, 잠재성이 없이 다 개발한 완전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존재이므로 완전선 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한다.

{이러한 아퀴나스의 생각은 나중에 스코투스와의 하나님이 위인가, 의가 위인가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토마스주의와 스코투스 주의와의 논쟁이라고 볼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시는 분이 아니라 선하고 옳은 것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보다 의가 더 높은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스코투스 주의자들은 반발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은 다 옳다. 그래서 여기에서 예정설 같은 것이 나온다. 스코투스 주의에서는 하나님이 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가 무엇을 만드는 것은 필요에 의해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데 왜 세상을 만들었는가?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을 섭리하시는 것으로 보았다. 아퀴나스는 신론 부분에서 이중 예정을 다룬다. 어떤 사람들은 영생하도록 예정하셨고, 어떤 사람들은 죄 속에 살도록 내버려두셨다. 선택과 유기를 주장하신 것이다. 여기서 아퀴나스는 예정과 예정의 효과를 구분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예정하시는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학설을 비판한다. 지금까지의 학설을 보면, 오리겐은 선재한 영혼의 죄에 따른다고 주장하였다. 즉 영혼이 지상에 오기 전 천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리겐의 영혼선제설이라고 한다. 그때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유기 하신다는 것이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버리시고 어떤 사람은 선택하셨다고 주장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것들을 다 부정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공로에 의해서 선택하시고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퀴나스는 예정과 예정의 효과를 구분했다. 예정 받은 사람도 기도하고 선행을 해야 만이 예정이 성취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을 그는 예정의 효과라고 보았다. 하나님이 악을 허락하시는 것은 더 높은 전체의 선을 위한 것이다.


(3)인간론, 구원론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 혼, 몸의 삼분법을 배격하고, 영혼과 몸의 이분법을 받아들였다. 인간의 영혼은 비물질적이다. 그리고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최고선은 하나님을 보고 즐거워 하는 것(The vision and enjojment of God)이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다분히 지성적이라고 볼 수 있고,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의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의 신비주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성적 신비주의이다. 이 지성적 신비주의는 명상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정의적 신비주의이다. 이 정의적 신비주의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감정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지성적 신비주의자들이었으나, 정의적 신비주의도 완전히 배격하지는 않았다. 처음 창조된 인간은 자연적 능력에다 부과된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이 부과된 은사를 가지고 최고선을 추구하고, 세가지 기독교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아담의 범죄 때문에 原義(original righteousness)가 상실되었다. 즉 초자연적인 은사 곧 부과된 은사가 상실된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은 자연적 덕은 가지고 있다. 이 자연적 덕은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사려, 용기, 절제, 정의를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도덕 신학에 우리 인간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은 7가지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말한 사려, 용기, 절제, 정의와 사도 바울이 말한 믿음, 소망, 사랑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총을 주시면 이 부과된 은사가 회복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죄가 사하여지고, 신앙의 삼덕을 수행할 능력이 주입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이 말하자면 구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희생 없이 사죄하고 은총을 주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안셀름과 비교해보면 그리스도의 희생은 필연적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지 않으면 구원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하시려고만 한다면 또 다른 방법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나중에 스코투스 파에서는 사람이 아닌 나귀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이 나귀의 몸으로 화신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어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구원을 이룰 수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 방법을 쓰셨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인간의 죄를 보상하고(이 입장은 안셀름의 보상설의 입장과 비슷하다),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하게(아벨라드의 도덕감화설과 비슷하다) 만든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는 복음의 계율과 조언을 행할 수 있다. 복음에는 계율과 조언(Counsel)이 있다. 복음의 계율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이다. 복음의 조언은 마태복음19장 12절, 21절에서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모든 신자를 향한 계율이 아니라 조언으로 볼 수 있다. 천국을 위하여 고자된 자와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따르라는 것은 완전해지고자 하거든 그렇게 하라는 복음의 조언으로 볼 수 있다. 위 구절에서는 자발적 독신과 자발적 빈곤이 나타난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공(supererogation)을 쌓는다. 여공은 자신을 구원하고도 남는 공적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겨우 자신을 구원할 만큼의 선행밖에 못하는데 수도사들은 자신의 공적을 120%정도 쌓아서 100%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사용하고 나머지 20%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적과 성인들의 여공은 천국 창고에 보관된다. 교회의 권위에 의해 필요한 죄인들에게 제공될 수 있다. 천국 창고의 열쇠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었는데,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면죄부가 연결된다. 공적에 대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불완전한 공적(congrous merit)과 완전한 공적(condign)이다. 모든 인간들이 쌓는 공적은 불완전하다. 여기에 하나님의 공적이 들어오면 완전한 공적이 된다.


(4)성례론


성례는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지는 통로이다. 그리스도가 쌓아 놓은 공적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통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해서 성례의 요소는 Form(형상)과 Matter(질료)의 두 가지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면 세례 때의 물, 성찬 때의 빵과 포도주는 질료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든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든가 하는 말씀이 형상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야 은총을 주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례에 있어서 ex opera operato (=opus operatum)를 주장했고, 사역에 있어서는 ex opera operantis (=opus operantis)를 주장했다.

 ①세례

 세례 받는 자는 재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세례를 받으면 원죄와 이전의 죄가 다 용서를 받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아직도 죄를 지을 경향이 남아있다. 세례를 받고 나서 또 죄를 지으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성찬이다. 성찬에 있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화체설을 받아들였다. 1215년 결정된 이 화체설은 성별의 말씀으로 빵과 포도주의 우연성은 남아 있지만,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한 요소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 전체가 임재 하는 것으로 보았다. 빵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몸만 임재 하거나 포도주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피만 임재 하는 것이 아니라 빵 하나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 전체가 동시에 임재 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관례화 되어서 평신도에게는 빵만 주게 되었다. 빵만 준 전통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이것을 신학화 한 사람은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빵 속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다 임재 하니까 굳이 빵과 포도주를 다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평신도들이 거룩한 피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포도주를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②고해

세례를 받은 다음 지은 큰 죄는 고해로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해의 4단계

그레고리는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고해의 4단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첫번째로는 참회(Contrition)로써 죄를 선포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이다. 회개에도 두 가지가 있다. attrition은 불완전한 참회 즉 하나님이 무서워서 참회하는 것이다. contrition은 완전한 회개로써 하나님을 사랑해서 회개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고백(Confession)이다. 이것은 그냥 자기 맘속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는 신부님께 하는 것이다. 신부님에게 말로 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사죄 선언(Absolution)이다. 신부님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죄가 용서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형벌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보상(Satisfaction)이다. 죄에 따라서 신부님이 정해 주는 데로 일주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한다던가, 며칠 동안 철야 기도를 한다던가, 보상을 하나님께 갚아야 한다.

원글보기

메모 :

'목양자료 > 1.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아나밥티스트(Anabaptist)  (0) 2008.08.08
[스크랩] 칼빈주의 5대교리와 알미니우스  (0) 2008.08.08
이스라엘(Israel)  (0) 2008.05.05
안식일과 주일  (0) 2008.05.04
콘스탄틴과 십자가  (0) 2008.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