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역사에 나타난 한민족의 대륙성과 세계선교 비젼과의 접목

2010. 5. 16. 00:58교회사자료/7.한국교회사

1. 역사로 본 한민족의 대륙진출

- 고구려,신라,백제,발해


우리 나라의 고대사를 살펴보면 한민족은 결코 한반도에서만 세력을 유지했던 것이 아니라 서쪽으로는 중국대륙과 북으로는 만주삼성과 연해주지역으로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에 까지 영토를 갖고 있었으며 해상을 통한 중국과 일본에 문화와 행정구역을 두고 다스린 사실이 분명히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최근들어 발해와 백제의 역사가 새롭게 연구되면서 새로운 평가와 사실을 조명해 주고 있다.

 

선교 2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 교회는 과거 우리 조상의 외향적 대륙성 기질을 계승하여 세계선교에 적용 발전시킨다면 새로운 세계선교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는 통일된 한국교회를 통한 세계선교는 이 시대에 우리의 역사적 사명임이 틀림없다 하겠다. 지금 한국은 분단된 상태에서도 경제선진국 대열에서 세계에서 10대 무역국으로 발돋음하고 있으며, 정치분야에서도 착실한 민주화를 다져 나가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도 이러한 역량을 세계선교회를 위해 장,단기 전략을 세워 준비하여 추진한다면 세계를 향해 복음의 빛을 비추는 택함을 받은 백성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를 지향하고 있는 이즈음에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선교적 시각을 갖고 조명해 보는 것도 유익한 할 것이다.

<고구려>


고구려의 영토가 처음부터 그렇게 광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는 조그마한 나라로 출발하여 4세기 무렵부터 영토확장에 나서 미천왕대에 낙랑군에 대방군을 멸망시키고 요동평원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5세기 초 광개토왕대에 이르러 강대국의 틀을 다지고,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여 선왕의 업적을 공고히하면서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이때 중국은 남북조로 나누어져 있었으며,중국과는 대등한 외교를 펼치고 멀리 몽고고원의 유연이나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는 한편 북방 유목세력과 남중국의 외교관계를 중개할 정도로 독자 인 외교망을 구축하였다.

 

고구려와 중국은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여러차례 대결하였었다. 그 대표적인 싸움이 살수대첩과 안시성 싸움이다. 특히 살수대첩에서 백만대군을 잃고 폐한뒤로 이를 만회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중국의 당 태종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요하를 건너 요동 방면으로 공격해왔다. 최신 무기를 갖춘 30만 대군으로 60여일간,하루 6-7차례식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을 함락시키지 못함으로 중국의 위신은 크게 추락하게 되었다.특히 안시성의 군민 모두가 힘을 합쳐 당을 물리친 것은 고구려인의 폐기와 외세의 침략에 대한 불굴의 저항 정신을 보여준 것이다.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의 수도 국내성을 천하사방의 중심지로 생각하였다. 즉 고구려를 둘러싼 세계는 모두 고구려에 신속되거나 신속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고구려왕은 천체의 아들이자 천하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자부심에 차 있었다. 당시 이들은 이러한 원대한 천하관이 광개토왕비에 잘 나타나고 있다.이 비문 속에서 고구려인들은 광개토왕의 광활한 대륙정복을 만천하의 백성을 풍요롭게 살도록 하는 조치로 예찬하고 있는 것이다.

<발해>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668년 고구려의 평양성이 함락되어 고구려의 많은 사람들이 당나라 영토안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이곳엔 말갈인,거란인들이 함께 살았으며 698년 고구려출신인 대조영은 당나라군과 일대접전을 벌인가운데 당군을 물리친후 지금의 길림성 돈화현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진이라 명하였다.

당은 발해의 건국이 기정 사실이 되고 요하지역과 만주 일대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어렵게 되자,705년 사신을 보내어 발해의 건국을 인정하였다. 이어 713년에는 발해의 고왕 대조영을 정식으로 발해군왕에 봉해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대조영은 계속하여 세력을 뻗쳐 지금의 할빈지역과 북동쪽의 연해지역 지금의 하바로브스크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남으로는 평양지역까지 차지하여 한반도 크기의 2배에 가까운 큰 나라를 이루었다. 이 발해국은 220년을 존속하였다.

<백제>


백제의 역사가 최근에 와서 재조명되면서 한 때 중국 본토로 진출하여 통치하였다는 사실이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 사료가 중국의 여러 사서를 통해 뒷받침해주고 있다. 여기에 대한 중국의 관련 기록들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송서"와 "양서"는 중국 남조의 송나라, 양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동쪽 천여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후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격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하였다"(송서)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나라 때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격하여 차지하자 백제 또한 요서,진평2군을 점거하고 백제군을 설치하였다."(양서)

이 두 기록은 종합해 보면 백제가 중국의 진(265-420)나라 때 요서지방(진평군)을 점령하고 통치기관으로 진평군 진평현(백제군)을 두었다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지금의 산동성지역과 화복지역을 가리킨다.

또 다른 중국의 역사책"자치통감"에는 "앞서 부여는 녹산에 자리잡고 있다고 백제의 공격을 받아 부락이 쇠퇴하였다. 그래서 서쪽으로 연에 가까운 곳으로 근거지를 옮겼다"는기록이 나온다. 부여는 만주지역에 있던 나라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있던 부여가 백제의 침략을 받았다면 백제 역시 만주지역 일대에 세력을 미치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건대,백제가 요서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였다는 두 기록을 증명해 주고 있다. 백제는 이와같이 북만주와 부여와 중국본토의 대륙까지도 해상을 통해 진출하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쪽의 일본에도 일찌기 문화를 전해주므로 동북아 문화발전에 공헌한바가 있었다.

<신라의 장보고>


한반도의 작음섬인 완도를 근거지로하여 9세기에 당나라와 신라,일본을 잇는 바다길을 장악하여 해상왕국을 건설한 인물이 장보고이다. 그는 산동성반도에 법화원이라는 절을 짓고,산동반도에서 양자강 연안에까지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신라인들의 후견인 역활을 하면서 동지나해의 국제무역을 장악하였다.

당시 당나라 동해안 지역에는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였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초주의 신라인 거주지역을 신라방이라 하여 신라인 스스로 자치권을 행사하였다. 이들 중에는 연안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자들과 양주,소주,명주,등지에서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과 교역하는 자들,그리고 당과 일본을 오가며 국제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보고는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아울러 이들의 지원을 받아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장보고의 무역사절이 회역사,견당매물사 등으로 불린 것은 그의 무역활동이 순수하게 사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간 공식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뜻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라이샤워는 장보고의 활동에 대해 청해진은 상업제국의 중심지였고, 장보고는 틀림없는 무역왕이었다라고 하였다.

그는 일개 평민출신으로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서 중국댈ㄱ에 진출하여 국제무역을 하면서 동북아의 해상권을 통치한 외향적인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광개토왕이 동북아대륙을 지배했다면 장보고는 동북아 해상을 지배한 걸출한 인물이었다. 21세기를 맞아 세계의 복음화를 꿈꾸는 우리들에게는 이와 같은 인물이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비젼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하겠다.

2.21세기와 한국교회의 사명

한국교회는 1980년대 후반 특히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선교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어 바야흐로 선교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현재 세계 기독교의 상황은 이제 서구 기독교의 시대는 서서히 사라지고 기독교의 중력이 제3세계로 이전하고 있으며, 제3세계 기독교 가운데서 한국교회는 영적자원,물적자원, 인적자원을 확보한 나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선교는 국력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과거에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민주화투쟁과 인권시비로 인하여 비민주적인 국가라는 지탄도 받았다. 이것은 선교에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경제성장과 더불어 권위주의적인 유교문화권에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서구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국가가 되었다.

일본을 제외한 홍콩,싱가폴,대만,한국 등 소위 아시아의 4용은 경제대국으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권위주의 사회이다. 이들 나라들은 흔히들 개발독재,혹은 유교적 가부장의 정치문화가 지배하는 나라로 거론된다. 그러나 한국은 금번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완전한 서구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 세계선교는 이제 서구 선교의 시대에서 서구와 비서구 선교가 협동해야 하거니와 양적으로는 비서구 선교가 날로 증대되고 있다. 현재 세계선교의 3분지 2는 미국교회가 담당하고 있으나, 미국교회도 이제 선교를 점차 축소하여 선교의 주도권을 제3세계 국가의 교회로 이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의 많은 선교신학자들과 선교지도자들은 한국교회가 21세기에는 세계선교에 많은 책임을 감당하기를 원한다. 현재 세계선교의 서구대 비서구의 비율은 70대 30이지만 2000년도에는 50대 50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개신교 선교역사를 고찰하면 19세기는 영국교회가,20세기는 미국교회가 세계신학과 선교를 주도하였다. 이제 21세기는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를 주도해야 한다. 물론 교회역사가 짧아 신학과 선교행정,훈련 자료 부족등이 문제가 되나 선교에 대한 열정과 충분한 인적자원과 우수한 인적자질은 충분한 가능성과 잠재력은 지니고 있다.

한국교회 성장에 대해 국내의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고 선교 2세기를 맞이하여 모든 교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 연세대 총장이었던 박대선박사는 그의 "동방의 빛"이란 논설에서 "하나님께서 한국으로 하여금 제2의 선민의 책임을 수행시키기 위해 공산 침략으로부터 보호하시고 한국교회를 성장케 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교회성장의 대가라고 불리는 Mcgavran박사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선교사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실로 건실한 기독교국가로서 전 아시아의 등불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라고 강조하였으며 Nelson 박사도 "한국교회는 성장하여 그 영향력을 전 세게에 미치고 있다."라고 극찬하였다.

출처 : 고동엽의 교회개혁 지평선
글쓴이 : ikorea동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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