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4. 19:28ㆍ목양자료/5.절기자료
개혁은 곧 회복입니다(마21:12-17)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에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대학교 정문에 교황청에게 던지는 95개조항의 질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운동은 유럽전역에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이 말에 동의합니다.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과 삶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무엇이 개혁이냐는 것입니다.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 중에는 교회가 시대적 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습니다. 교회의 개혁은 낡은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부족한 것을 끊임없이 보충하는 업그레이드는 더욱 아닙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침체의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목적이 아닌 변함없는 진리에 기초하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개혁입니다. 교회의 개혁은 진리에서 벗어난 것을 고치는 것이며, 본질에서 덧칠된 것들을 걷어내는 작업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청결사건으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개혁이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개혁되기를 원합니다. 완전하신 주님의 와서 엎으신다면, 그래서 우리의 무뎌진 마음을 쟁기질 하신다면...
1.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명절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각처에서 성전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들은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종교의식을 행합니다. 사찰에 가면 종교의식에 필요한 향품이나 양초를 파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짐승을 파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엎으시고 동물을 쫓으셨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성전제도를 통째로 무시하는 듯한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성전제사와 의식은 있는데 정작 마음중심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성전에서 무엇을 팔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예배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모두가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찬송가라는 이름을 붙이고 가사가 은혜스럽다고 모두가 찬송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버린 예배, 사람이 주목을 받는 예배는 더 이상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내 모든 사람의 주인의 자리로 모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화려한 종교의식에 감동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 되길 원하시지요. 우리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인의 음성에 잠잠히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의 주인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같은 역사를 두고서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천년의 역사를 중세의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카톨릭에서는 중세의 천년을 암흑기가 아니라 흥왕기라고 평가합니다. 기독교 음악과 그림이 이 시대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화려한 교회건물들이 지어졌고 교황의 권세는 어떤 권세보다 높아졌습니다.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어떤 시대보다 교회의 힘이 컸고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암흑기라고 하는 이유는 주인이신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권세가 더 크고 높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는 이유는 교회들이 중세 시대의 교회를 닮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음악과 대규모의 집회가 있고 정기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있는데 정작 주인의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잘 지은 건물을 자랑하고, 교회 안의 시스템을 자랑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 우리는 한번쯤 질문해봐야 합니다. 이 일에 하나님은 어떻게 임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성전을 가리켜 내 집이라 하셨습니다. 비록 솔로몬 성전처럼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었어도, 거기에 거하시는 이가 하나님이 아니면 결코 성전이 될 수가 없습니다.
2. 복음이 복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제사를 가르치시고 지키게 하신 것은 인간의 죄가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받을 수 없음을 저들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를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구원을 받는 것을 구약의 모든 제도와 절기를 통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구약의 성막을 만들게 하실 때에,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속죄 받는 일들을 통해서 그들이 발견해야할 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요2:19절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과 짐승들을 내쫓으시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어떤 희생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죄가 모든 성전의 기능이 완성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실 때에 천사들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2:10)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완전한 복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 어떤 신분과 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이든지 십자가의 복음은 동일하게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완성된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완성된 복음이기에 그 가치나 범위가 끝이 없습니다.
이 복음을 만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지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종교개혁은 복음을 복음답게 취급하지 않은 때에 일어났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인간의 행위를 보태야 되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고행을 해야 했고 면죄부를 사야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미완성 복음이란 없습니다. 총체적 복음은 내 삶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며, 복음으로 우리는 가장 풍성한 삶을 누릴 것입니다. 복음으로 우리 삶을 해석하십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의에 도취된 종교인들은 자신의 의와 행위로 만족을 합니다. 자신들을 의인으로 행세하며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준 사람들... 혹시라도 우리 안에 나의 과거 경력이나 헌신을 자랑하고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긴 부분이 있다면 회개해야만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교회가 교회의 목적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상을 엎으시고 짐승들을 내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 어떻게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될 수가 있을까요? 강도는 남의 것을 가로채거나 독차지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사람의 것으로 가로채는 일... 교회가 하나님의 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이 될 때에 강도짓이 되는 것입니다.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버럭명수라는 별명을 가진 박명수씨가 멤버들에게 “내 위주로 해” 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사람을 웃기려는 말이지만 사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자기중심적인 마음들이 있지요. 내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던 우리들... 그것이 바뀌지 않고 기독교라는 옷을 입으니까 교회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으로 변질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 “내 집은 기도하는 집” 이라 하셨는데 마가복음에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고, 영어성경에서는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이라 번역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누구나 와서 기도할 수 있는 집이지만, 이 말씀은 교회가 모든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교회는 말 그대로 모든 민족을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나아와서 기도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에도 기도하는 이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문제나 소원성취가 아닌 모든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은 적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기도들이 우리의 문제해결이나 소원성취를 위해서만 사용되고 있는지요. 하나님이 교회에게 기도할 특권을 주셨고, 그 기도가 모든 민족, 곧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것인데 그것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자기 민족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분명 강도짓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15절에 예수님께서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시고,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는 외침을 보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분노하는 장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만민이 함께 모여 복음으로 치유함을 받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민족도 복음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합니다. 새로운 무엇을 찾아 방법을 바꾸고, 시스템을 현대식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며 하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복음을 예수님의 피 값만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람 중심이 되었던 교회를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 바꾸어야 합니다.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 만민을 찾아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열방을 품는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종교개혁은 가장 먼저 내 마음 안의 성전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질문으로 끊임없이 나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네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너는 복음으로 충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네 마음의 성전은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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