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조직과 정치 그리고 직분

2008. 5. 4. 20:01목양자료/1.기독교자료

교회의 조직과 정치 그리고 직분

 

 

1. 교회의 조직과 정치

교회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면에서 볼 때, 조직은 비록 교회의 본질적 요소는 아닐지라도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성경은 초대 교회가 어느 정도의 조직을 갖고 있었음을 증거한다. 예를 들면, 세례를 통해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마 28:19), 장로와 집사의 직분을 위한 자격 규정(딤전 3장), 교회 집회의 순서들(고전 14:26), 성찬의 규례(고전 11:23-26), 헌금의 규례(고전 16:1, 2), 권징(고전 5장), 과부들의 등록과 관리(딤전 5:9), 교회에 시행되고 있는 규례(고전 11:16), 질서의 필요성(고전 14:40) 등의 말씀들이 그러하다(박형룡, 교의신학 제6권 교회론, 105쪽).

교회 역사상 교회 정치에 있어서 세 종류의 형태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감독정치(Episcopalism)이다. 감독정치는 교회가 주교들 혹은 감독들, bishops)에 의해서만 다스려지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 의하면, 주교들은 사도들의 계승자로서 교인들을 감독하며 그들에게만 교회 치리(治理)의 권한이 있고 일반 교인들에게는 없다. 주교는 여러 교회들을 관할하고 치리하며 또 성직 임명권을 가진다. 영국교회(성공회)와 감독교회가 이런 정치 형태를 취하며, 천주교회의 교황제도는 감독정치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두번째는 회중정치(Congregationalism)이다. 회중정치는 교회가 교인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 의하면, 목사는 지교회의 한 회원에 불과하며, 교인들 위에 감독의 권위를 가지는 사람들이 따로 없다. 또 지교회는 개체성과 독립성을 가지며 그것을 간섭하는 노회나 총회 같은 것은 없고 단지 서로 교제하고 협력하는 협의체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이런 정치 형태는 침례교회나 회중교회 등에서 볼 수 있다.

세번째는 장로정치(Presbyterianism)이다. 장로정치는 감독정치와 회중정치의 장단점을 성경적으로 보완한 형태로서, 교회가 교인들 스스로 선택한 대표자들, 즉 목사와 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방식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대의정치(代議政治)이다. 이 방식에서는 일반 교인들의 권한과 목사의 권한이 둘다 동등하게 존중된다. 우리는 이 정치 형태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본다.

성경은 일반 교인들의 제사장적 권한을 증거한다. 감독정치는 이 점을 무시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사도들이 증거하는 대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요한계시록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또 사도행전이 증거하는 대로,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인들 스스로에 의해 선출되었다. 이것이 성경이 보이는 모범이었다. 사도행전 6:5, 6,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택하다'는 원어(케이로토네오)는 '손을 내밀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교인들이 손을 들어 장로들을 뽑았음을 암시한다. 사도행전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러나 성경은 또한 목사 혹은 장로들의 직무와 권위를 증거한다. 목사와 장로들은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감독자들'이며 교인들은 그들이 돌보며 먹여야 할 하나님의 양떼이다. 요한복음 21:15-17, "내 어린 양을 먹이라 . . . 내 양을 치라 . . . 내 양을 먹이라." 사도행전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목사와 교인들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이다. 이와 같이 성경이 증거하는 바대로 일반 교인들의 제사장적 권한과 목사와 장로들의 감독의 직무와 권위를 고려할 때 장로정치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판단된다.

장로정치의 기본 원리들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교회의 권세의 원천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이라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다(엡 1:22). 교회 안의 그 누구도 교회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리고 그의 말씀과 그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둘째는, 주께서 교회의 권세를 교인들 전체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성도들이 존귀한 특권을 가짐을 증거한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요한계시록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또한 권징의 권세도 교회 자체 즉 회중[교인들]에 주어졌다. 마태복음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러므로 지교회에서 세례 교인들의 전체회의인 공동의회는 가장 중요하다. 또 그렇기 때문에 지교회는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나 전입 교인들을 받아들일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

셋째는, 교회의 권세가 교인들이 뽑은 대표자들에 의해 행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의정치(代議政治)의 원리이다. 주께서는 교인들이 그들의 대표자들을 직분자들로 세우게 하심으로써 교회를 다스리고 섬기게 하셨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인들 스스로에 의해 선택된 교회의 대표자들이다.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사도행전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직분자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를 위탁받는 것이므로, 교회는 성경에 교훈된 자격 조건을 따라 그들을 매우 신중하게 선택하고 장립하여야 하며, 일반 교인들은 장립된 감독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넷째는, 교회의 권세가 지교회에서부터 전체 교회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장로정치는 지교회의 치리회인 당회를 중요시하며, 치리권은 지교회에서부터 노회와 총회 등을 통하여 전체 교회들로 점점 넓게 확장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의 참된 교제와 협력을 나누게 되고 또 어떤 지교회가 탈선하지 않도록 상호 감시하고 견제하게 되기도 한다. 장로교회에서 당회장이나 노회장이나 총회장은 단지 회의를 인도하는 의장 즉 사회자의 성격을 가지지 그 이상의 것은 없다. 또 도시의 큰 교회들의 목사나 장로와 시골의 작은 교회들의 목사나 장로의 권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장로정치에 대조하여, 감독정치는 전체 교회를 지교회보다 더 중시하며 또 총회에서 지교회에 무엇을 명령하는 하향적(下向的) 성격이 있다.

장로정치에서의 치리회들로는, 지교회에는 공동의회와 당회가 있다. 공동의회는 권징 아래 있지 않는 세례교인들로 구성되며 지교회에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다. 당회는 담임목사와 시무 장로들로 구성되며 지교회의 기본적 치리회이다. 이것들 외에, 한 지역의 여러 지교회들의 목사들과 장로들로 구성된 노회와, 보다 넓은 지역에서 여러 노회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대회와, 한 나라 안의 교회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총회 등 소위 '확대회의들'이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노회와 총회의 예를 발견한다. 디모데전서 4:14, "장로의 회에서."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회의.

지교회의 당회의 권한은 확대회의들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견제된다. 그러나 장로정치에서 확대회의들은 지교회를 무조건 지배할 수 없고 또 지배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사실상, 노회나 총회 등을 '상회'라는 부르는 것은 감독주의적 맛이 있다. 총회가 노회에, 혹은 노회가 당회에, 일방적으로 어떤 명령을 내리는 것은 장로교회적이지 않고 감독교회적이다. 박형룡 박사는 말하기를, "노회나 대회나 총회가 지교회에 대하여 그 하고자 하는 바를 무엇이든지 부과할 수 있다는 관념은 본질적으로 로마 카돌릭적이다"라고 하였다(박형룡, 150쪽).

2. 교회의 직분

신약교회의 창설 시기에 있었으나 그 후 사라졌던 교회의 특별한 직분들은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등 세 가지이었다.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들)로, 혹은 선지자(들)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들)로, 혹은 목사(들)과 교사(들)로 주셨으니."

이 세 가지의 창설직분들 중 첫번째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직분은 사도이었다. '사도'라는 말(아포스텔로스)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일반적인 뜻이지만, 신약성경에서는 특히 열두 제자와 바울에게 사용된다. 누가복음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사도행전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단지 예외적으로, 신약 원어 성경에서 사도행전 14:4, 14에 바나바에게 사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사도의 자격과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사도는 예수께서 직접 불러 세우시고 보내신 자이었다. 마가복음 3:13-14,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원하고 계셨던]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갈라디아서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사울=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둘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특히 그의 부활을 직접 본 자이었다. 사도행전 1:21, 22,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고린도전서 9:1, "내가 사도가 아니냐? 자유자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셋째, 사도는 예수께서 기적을 행할 능력을 주신 자이었다. 마가복음 3:14, 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병들을 고치며--전통본문)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참음 중에]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두번째 창설직분은 선지자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들을 받는 직분이었다.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사도행전 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세번째 창설직분은 복음전도자이었다. 이것도 신약교회 창설 시기에 있었던 특별한 직분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디모데와 디도 같은 자들이 그러하며, 이들은 일반적 목사나 장로의 직분과 구별되었다. 디모데후서 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사도행전 21:8, "일곱[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

창설직분들과 달리, 사도 시대 이후 주님 재림 때까지 신약교회에 항상 있도록 주어진 직분(恒存職)은 목사, 장로, 집사이다.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들)로, 혹은 선지자(들)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들)로, 혹은 목사(들)과 교사(들)로 주셨으니."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사도행전 6:2, 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빌립보서 1:1,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목사(牧師, pastor, minister, reverend)는 넓게는 감독 혹은 장로 안에 포함되며, 그 중에서 특히 교사 혹은 '가르치는 장로'라고 표현된다. 에베소서 4:11, "목사(포이멘, 목자, shepherd)와 교사(디다스칼로스)"--헬라어 원문 성경에서는 하나의 정관사 뒤에 목사와 교사라는 두 단어가 나오므로 한 직분을 가리킨다. 디모데전서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디모데후서 2:2,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목사의 임무는 앞에 언급한 명칭들이 보이듯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고 교인들을 보살피며 감독하며 다스리는 직분이다. 이것은 지교회의 담임목사가 가지는 임무이다. 당회가 있는 조직교회의 담임목사는 또한 치리장로들과 함께 교인들을 보살피며 감독하며 다스린다. 설교는 목사에게 위탁된 전문적 일이며 따라서 목사만이 신학교육을 받지만, 행정은 치리장로들과 함께 행해야 할 일이다. 또한 담임목사는 자신의 목회의 일을 도울 부목사와 전도사 등의 조력자들을 둘 수 있다. 부목사나 전도사 등의 목회 조력자들은 교인들의 초청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담임목사의 초청과 당회의 승인으로 오기 때문에, 교회의 치리권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담임목사의 목회 사역을 돕는 위치에서 충성해야 한다.

목사의 자격은 디모데전서 3:1-7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 내용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책망할 것이 없으며"--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자.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부부생활의 순결성을 지키는 자.

"절제하며"--술, 시간, 돈, 오락, 힘 등을 절제하는 자.

"근신하며"--무분별하지 않고 침착하고 조심성 있는 자.

"아담하며"--행실이 단정하고 존경할 만한 자.

"나그네를 대접하며"--인정이 있고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

"가르치기를 잘하며"--성경을 바르게 배워 진리에 정통한 자.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술에 중독이 걸리지 않은 자.

"구타하지 아니하며"--성격이 거칠어 남을 때리지 않는 자.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전통본문)--물질 생활에 바른 자.

"오직 관용하며"--편협하지 않고, 이해심과 인내심을 가진 자.

"다투지 아니하며"--이해심과 인내심이 있어 다투지 않은 자.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하나님만 바라며 돈을 사랑치 않는 자.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신앙 단련을 받아 겸손해진 자.

"외인(믿지 않는 자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

목사의 권위는 단순히 직분의 권위가 아니고, 그가 전하는 바른 말씀과 그가 보이는 인격적 모범의 권위이다. 성경대로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사가 권위가 있고, 그 가르친 말씀대로 살며 앞서서 행하는 목사가 권위가 있다. 바른 말씀과 인격적 모범이 없이 목사직의 권위만을 주장하는 것은 옛날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과 같고 거기에서 종종 인간적 횡포도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악하며 가증스러운 일이다.

신약의 목사는 하나님과 교인들 중간에 서 있는 제사장인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신약 시대에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며, 모든 신자의 헌신과 순종의 삶이 하나님께 대한 제사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물론 이런 의미에서 목사도 제사장이며 목사의 사역도 제사장의 사역이다. 로마서 15:16,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그러나 목사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성도가 다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회에서 성직자들을 '사제'(priest)라고 불러 평신도와 구별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일이다.

오늘날 목사 혹은 목사의 어떤 부류가 사도직을 계승하는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천주교회와 영국교회와 감독교회는 일반 신부보다 한 단계 높은 성직자인 주교(bishop) 혹은 감독이 사도직을 계승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주장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신약성경은 단순히 장로와 감독이 동일한 직분임을 나타낸다. 사도행전 20:17, 28,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 . . .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직분이라는 점에서, 목사가 사도적 기능을 이어받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사도는 열두 제자들과 바울에게만 제한된다.

목사는 개인적인 성경 통독과 연구, 기도, 가정예배, 독서와 신학 교육을 통해 교리적 지식과 확신과 윤리적 인격과 인품을 잘 준비해야 한다.

먼저, 교리적으로 목사는 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진리를 바르게 파악하고 확신하여(고전 1:22, 23; 2:1, 2) 율법주의나 윤리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② 건전한 전통적 개혁신학의 체계를 파악하고 확신하여야 하며, ③ 현대교회의 배교와 타협의 풍조를 분별하고 배격하는 바른 입장과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덧붙여, 성령론, 종말론, 여성신학문제 등에 대해서도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또한, 윤리적으로 목사는 몇 가지 점들을 명심해야 한다. ① 목사는 돈에 대해 깨끗해야 한다. 목사가 생활비를 받는 것은 정당하고 성경적이다. 마태복음 10:10,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고린도전서 9:11, 13-14,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 . . .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디모데전서 5:17, 1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바울 사도의 모범을 기억하며 검소한 생활을 힘써야 한다. 사도행전 20: 33-35,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 . . ." 헌금의 집계와 지출과 관리는 직접 관여하지 말고 신실한 집사들을 세워 그 일을 맡겨 처리하게 하고 오직 목사와 당회는 감독만 하고, 거리끼는 도움을 받지 말고 물질 때문에 잘못된 일들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② 목사는 여성도들에 대해 깨끗해야 한다. 목사의 결혼은 성경적이다. 성경은 독신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디모데전서 3:2, (감독의 자격 요건들 중)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그러므로 목사는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고 자기의 자녀들을 돌아보고 자기의 가정부터 가르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그러나 특히 교회에는 여자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목사는 자기 아내 외의 다른 여성도들에게는 너무 친절하고 친근하게 대함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목사가 심방이나 상담 등 목회의 부분들에서 아내와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③ 목사는 그를 돕는 조력자들 즉 부교역자들과 교회 직원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담임목사는 목회와 행정의 제반 사항들과 건물 비품 관리의 일들까지 지시하고 점검하는 위치에 있고 그 일들을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성실히 행해야 하겠으나, 항상 겸손과 사랑과 이해심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물론 교회의 부교역자들과 직원들도 교회와 담임목사의 사역에 유익되도록 처신해야 한다.

덧붙여, 목사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서도 생각들을 스스로 정리해야 할 것이다. ① 설교 준비는 철저히 하고, 자기 생각을 전하지 말고, 성경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여 매시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실패치 않고 전할 것, ② 예배 인도는 잘 준비해서 하되, 사회는 꼭 필요한 말만 간략히 하고, 찬송들은 미리 기도하며 선택하고, 예배전이나 끝난 후의 반주는 조용하고 경건하게 준비시킬 것, ③ 세례 문답 혹은 전입교인 문답을 성실히 하여 교인수를 충실히 늘여 갈 것, ④ 교인수나 헌금액수나 건물의 규모 등 외적 건립을 힘쓰지 말고, 영혼의 구원과 성장 등 내적 건립을 힘쓰며, 기본 교리들을 잘 가르치고. 외적 치장을 극소화 하고, 예배당 내부 혹은 외부의 호화로운 장식, 값비싼 음향 장치나 오르간의 설치 등을 삼가고, 그러나 회중들이 예배 드리기에 적합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도록, 강단 뒤 휘장 색갈을 연한 벽돌색이나 옅은 하늘색이나 군청색으로 하고 천장 조명장치을 회중의 눈에 지장을 주지 않게 하고 마이크 볼륨을 너무 크지 않게 하고 전자오르간 소리를 너무 크고 울리지 않게 하고 성가대원의 얼굴 표정을 기쁘게 하는 것 등에 대해서도 마음을 쓸 것, ⑤ 주보는 없든가 검소하게 하고, 교회안내서를 준비하여 초청의 말씀, 복음의 요지, 교회의 기본 신조, 교회 연혁, 목회자 소개, 집회 소개, 위치 약도, 연락처 등을 기재할 것, ⑥ 전도인들을 모으고 훈련시키되 기본적 성경 구절들을 암송시키고 복음의 요지를 확인시키고 전도 방법을 연구하고 실습시켜 교회 주위를 가가호호 전도하게 할 것, ⑦ 장로와 집사 등의 제직들은 서서히 신중히 세우고 너무 많지 않게 할 것, ⑧ 각 부서들과 회들을 철저하게 감독 관리하고 교회 행정도 짜임새 있게 할 것 등.

장로(長老, elder, presbyter)는 목사와 함께 교회를 감독하고 다스리는 직분이며 보통 치리장로라고 부른다. 사도행전 20:17, 28,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 . . .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5:1, 2,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 .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성경에서 장로와 감독은 동일한 직분이다. 그것은 교회 혹은 교인들을 돌보는 일 곧 목회(牧會) 혹은 목양(牧羊)의 일이다.

장로교회에서 치리장로는 회중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 권한이 목사와 동등하다. 단지 설교는 목사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목사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으므로, 목회의 주도적 역할과 책임은 목사에게 돌려지고 치리장로들은 보통 목회에 보조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목회란 목사가 장로들의 협력을 받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치리장로들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목사의 목회에 제동(制動)장치가 아니고 윤활유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목사가 비성경적 설교나 행정을 행할 때에는 치리장로들이 그것을 제어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장로의 자격은 목사의 자격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교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성숙한 신앙인격자이어야 한다.

지교회에서 치리장로의 수는 보통 2명 이상이어야 바람직하다. 이것은 목사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한 부작용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주후 140-180년경의 사도적 규범들(Aposto- lic Canons)이라는 책에는, "교인들은 목사 외에  적어도 2명의 장로들을 지명해야 한다. 모든 교회는 적어도 3명의 집사들을 가져야 한다"고 쓰여 있다.

집사(執事, deacon)는 교회의 재정관리를 담당하는 직분이다. 헌금의 수금, 정리, 계획, 지출 등 교회의 살림살이와 특히 구제의 일을 행한다. 사도행전 6:2, 3,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물론, 이러한 일들은 당회 즉 목사와 장로들의 감독과 지도 아래 행해져야 한다.

집사의 자격은 디모데전서 3:8-13에 기록되어 있다. ① 단정하고, ②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아니하고, ③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④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하며, ⑥ 한 아내의 남편이며, ⑦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다. 덧붙여서, 여자들 즉 장로와 집사의 아내들도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한다.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자들과 교회들이 오늘날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세속사회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자들의 근거는, 첫째로 신구약 성경에 여선지자 등의 여성 사역자의 예들이 있다는 점, 둘째로 갈라디아서 3:28에 남녀 평등의 원리가 있다는 점, 셋째로 세속사회도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데 하물며 교회가 시대의 조류를 역행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점, 넷째로 교회 내의 여성들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의 반론들에 대하여 그러한 생각들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상 변칙적으로 허용하신 것과 교회의 정식적 규범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결코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허용치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는 디모데전서 2:11-14과 고린도전서 14:34-37은 여자 목사직과 여자 장로직을 금하는 다섯 가지의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2:11-14,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이 말씀은 여자의 가르치는 일 즉 목사직과 다스리는 일 즉 장로직을 분명히 금하고 있다. 이렇게 금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창조의 질서 때문이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자는 창조될 때 남자의 '돕는 배필' 즉 협력자(helper)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있다. 둘째는 범죄에 대한 징벌 때문이다. 인류의 타락시 아담은 여자가 주는 선악과를 먹으므로 범죄하였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즉 여자는 인류의 타락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여자는 또다시 나서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제약을 당한다는 뜻이 있다. 이 두 이유들은 어떤 시대적, 환경적 요인들이 아니고, 역사적, 불변적 사실들이다.

고린도전서 14:34-37,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너희의 아내들--전통 사본]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이 말씀에서도, 여자들은 교회 앞에 나서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을 허락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것이 율법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이른 바와 같이." 어떤 율법을 가르치는가? 예를 들면, 창세기 2:18,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세기 3:16,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세기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둘째로, 그것은 주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주의 명령인줄 알라." 에베소서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베드로전서 3:1, 5-6,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 .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사도들의 교훈은 곧 주의 교훈이다.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는 책이다. 셋째로, 그것은 교회의 보편적 규율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오늘날 파괴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 모든 교회는 이 성경적 교훈과 원리에 대해 이의(異議)를 말하지 않았다.

위에 인용된 두 성경 구절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교훈을 옛 시대의 사고방식과 풍습에 제약을 받은 사도의 인간적인 발언이나 사상으로 보는 것은, 거기에 제시된 다섯 가지의 이유들의 정당성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항하는 큰 잘못이며 죄악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박형룡 박사는 밝히 강조하여 말하기를,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금하는 것은 2천년 전의 한 지방 교회의 풍습이 아니고 만고 불변의 진리라고 하였다(145-148쪽).

남녀 평등과 여성 안수를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들은 앞에서 인용된 두 성경 구절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1: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구절들은 교회의 직분에 있어서 남녀 평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의 복에 있어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뜻이다. 또한 신약성경의 만인 제사장의 진리도 가정과 교회 안에서 남녀 역할의 차등과 구별을 가르치는 말씀들과 충돌되게 이해해서는 안된다.

물론, 신약 시대의 복음사역에 여자들의 역할이 컸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누가복음 8:2, 3,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예수님과 12제자들]를 섬기더라." 로마서 16장에는 뵈뵈, 브리스길라, 마리아 등 복음을 위해 많이 수고한 여자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는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특별한 사역이 있다. 디모데전서 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자는 자녀들을 해산함으로써 그 낮은 지위가 회복된다. 훌륭한 남자 배후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한국 교회는 필요성에 따라 위의 세 가지 직분 외에 몇 가지의 직분들을 더 만들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치리권에 따라 행한 것으로 정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임시직은 교회가 유익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직분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로, 전도사는 담임목사의 조력자이다. 지교회는 그 필요성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담임목사의 추천과 당회의 승인으로 전도사를 임명한다. 전도사는 주어진 분야에서 담임목사의 목회 사역을 돕는다.

둘째로, 권사는 여성도들 가운데서 당회의 지도 아래 병환자와 궁핍한 자와 환난 당한 자와 시험 중에 있는 자 등을 심방하여 위로하며 격려하며 권면하는 직분이다. 한국교회는 특히 비례적으로 여성도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직분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교회 헌법에 의하면, 권사 후보는 만 50세 이상의 여자 입교인으로서 흠 없이 여러 해 신앙 생활을 한 자, 특히 그의 행위가 복음에 적합하고 생활이 모범되고 건전한 판단력과 주위의 좋은 평판을 가진 자이어야 한다.

셋째로, 남녀 서리집사는 임시로 집사의 직무를 하게 하는 직분으로서 그 임기는 1년이다. 한국교회에만 독특한 이 직분은 본래 집사직을 위한 예비 과정이었을 것이다. 디모데전서 3: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무를 하게 할 것이요." 또한 한국의 초대교회는 남자 성도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 서리집사도 허용했을 것이다. 오늘날 서리집사가 정식 집사직처럼 인식되고 안수집사는 마치 한 단계 높은 직분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오늘날 서리집사들의 수가 교인들의 수에 비해 많은 경향도 시정되어야 한다.

교회의 직분들은 하나도 단순히 명예직이 아니다. 모든 직분은 봉사의 직분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큰 자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고 섬기는 자이다. 마태복음 20:26, 27,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태복음 23:11, 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더 중요한 직분을 가지게 될수록 더욱 겸손히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는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겸손은 성도가 영적으로 성숙한 가장 중요한 표이다.

교회의 직분은 주께서 주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2:4, 5,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그러면 주께서 주시는 직분의 부르심을 사람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오늘날 교회의 직분들은 계시 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직접적 음성으로(출 3:4; 삼상 3:4-10; 마 4:19; 행 9:4; 13:2) 오지 않고, 내면적 증거들을 통해 온다고 본다. 그 내면적 증거들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첫째는 그 직분을 위해 헌신하려는 강렬한 소원이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디모데전서 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둘째는 그 직분을 위해 어느 정도 재능과 은사를 받았다는 확신이다. 로마서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勸慰)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 . .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3) 셋째는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위해 길을 여시고 인도하신다는 깨달음과 경험이다. 이것은 빈번히 교회 안의 다른 사람들의 추천과 요청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이 어떤 직분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외적으로는 교회 즉 성도들의 요청을 통해 이루어진다. 만일 교회가 그 사람을 그 직분으로 청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어떤 직분에 임직될 수 없다. 또한 사람이 교회의 요청으로 목사나 장로나 집사로 임직될 경우 교회는 그에게 안수를 베푼다. 안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공식적 표와 증거이다. 이제 그는 안수를 통해 그 직분을 위해 구별된다. 사도행전 6:5, 6,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 . .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행전 13:2, 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 시대의 안수는 어떤 신비적 능력을 수반했던 것 같다. 사도행전 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디모데전서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그러나 오늘날 안수는 직분의 구별을 상징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신비적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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