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여러편

2008. 4. 20. 22:31참고자료/4,예화자료

 

영향력

디자인을 중시한 '아이팟'으로 디지털기기 산업의 지형도를 바꾼 스티브 잡스.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그는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영혼"이라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세계적으로 디자인 경영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스티브 잡스는 단기적인 매출이나 이익에 급급하기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애플은 올해 혁신, 경영의 질, 재무 건전성 등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으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포천지에 선정됐다.


영향력은 분명한 이유와 배경이 있어야 생긴다. 기독교의 영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예수 한 사람으로 모든 인류의 죄가 사해졌다. 그 영향력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 시작됐다. 우리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합당한 이유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조영진 목사(본교회)



소망은 생명입니다

샤르니라는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 황제에게 밉게 보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친구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 면회를 오던 가족들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그는 돌 조각으로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바닥에 깔려 있던 돌 틈에서 푸른 싹 하나가 고개를 들고 나왔습니다.

샤르니는 간수가 매일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서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곤 했습니다.

그 싹은 마침내 꽃 봉오리가 생기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썼던 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소망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옆방에 면회왔던 죄수의 딸이 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감옥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소문은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조세핀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여왕은 말했습니다.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이는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황제에게 건의했습니다.


그래서 샤르니는 석방되었습니다. 샤르니는 감 옥에서 핀 꽃을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다하기까지 가꾸었습니다. 소망은 생명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고 전진하여야 합니다. 소망은 좋은 동역자입니다.



당나귀와 금

서부 개척시대 '골드러시'라고 하면 멋진 이야기가 떠오른다. 금광에서 말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볼품없는 나귀였다. 금을 캐는 광부는 언제나 신실한 동반자로 당나귀를 선택했다. 왜 말이 아니고 나귀였을까? 말의 발굽은 보기는 좋았지만 구부러진 황야길, 미끄러운 강가의 돌들을 가로지를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광석 중 하나인 금가루와 금괴를 나른 짐승은 당나귀였다. 못생겼지만 신실하고 튼튼한 발을 가진 당나귀만 금을 나를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당나귀들의 건장한 어깨 사이에 있는 검은 십자가 모양은 예수님을 겸손하게 섬겼던 수고에 대한 명예로운 보상이라고 여겨졌다.


그것은 영원한 '십자가 징표'였다. 서양 사회에서 이름없는 봉사자들을 나귀라고 부른 것 역시 아름다운 명예의 상징이다.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마 21:5).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튤립의 양면성 

'박애, 명성' 등의 꽃말을 지닌 튤립은 원산지가 터키의 콘스탄티노플 (현 이스탄불)로 알려져 있다. 꽃산업의 최고봉을 자부하는 네덜란드에서는 17세기 초·중반 튤립 광풍이 불었고, 주식시장의 핵이었다. 튤립을 소유하는 건 곧 교양과 부유함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꽃이 주식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된 데서 튤립은 한때 '광기와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매물로 평가되면서 경제적 가치로 따질 때 매력은 뚝 떨어지고 만다.


사람의 얼굴은 튤립보다 아름답다. 화장이나 분장한 얼굴도 아름답지만, 인자함과 미소, 사랑이 풍기는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이 편하고 보기에 좋다. 성형한 얼굴이 더 예뻐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성형수술이 유행이 되어버린 현실은 정상적이라고 볼 순 없다. 꾸밈보다 진솔한 아름다움이 그리운 때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성숙한 공동체를 향하여 

파리 시내에 세계박람회 기념으로 철구조물인 에펠탑을 건립할 때의 일이다.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모파상을 비롯한 많은 지성인이 그 일을 무척 반대했다. 그러나 탑이 완공된 후 모파상은 매일 에펠탑 카페에 올라가 차를 마시고 글을 썼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어서 누군가 그에게 "그렇게 이 탑의 건립을 반대하고 싫어하던 당신이 어떻게 이 탑을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모파상은 "이 탑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이 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설적인 이야기다. 무슨 일을 하든지 비판과 반대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하는 사람이다. 충분한 토론과 숙고의 시간을 거쳐 일의 방향이 결정되어지면 남은 것은 비판 대신 협력을 통한 상생의 기쁨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럴 때 그 공동체는 성숙과 발전의 역사를 이루게 된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임마누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쟁에 관한 그의 연설에서 "하나님은 우리 편에 계신다"라고 역설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에 관한 연설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 말을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임마누엘은 '임'(With, 함께) '마누'(us, 우리와) '엘'(God, 하나님) 세 단어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를 버리지도 잃지도 않으신다. 내 모든 형편과 모든 사정을 아신다. 일마다, 때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함께하신다. 세상 끝 날까지 그리 하신다. 존 웨슬리는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이라"하고는 눈을 감았다.


18대 총선이 끝났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18대 국회가 되었으면 한다.


강흥복 목사(상계광림교회


원숭이의 욕심 

원숭이를 생포할 때 쓰이는 열매가 있다. 코코넛이다. 둥근 열매 안에 원숭이 먹이를 넣어두고 손가락을 쭉 펴야 넣을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뚫어놓는다. 원숭이가 구멍에 손을 넣어 먹이를 움켜 잡았을 때만 기다리면 원숭이 잡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먹이 욕심 때문에 주먹을 펴지 않고 있다가 사냥꾼들이 연결해 놓은 줄에 매여서 도망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났다. 새 국회의원들이 위임받은 권력을 '원숭이의 욕심'처럼 자신의 것으로 움켜 쥐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건강, 시간, 명예, 물질도 우리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 것을 빌려 쓰고, 입고, 사용하다가 놓고 가는 것이다. 코코넛 속에 손을 넣은 원숭이처럼 그것을 내 것인 양 꼭 쥐고 살다 보면 죄의 줄에 매인 포로가 될 뿐이다. 욕심의 끝은 불 보듯 뻔하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선택과 변화 

러시아에는 숫자 5를 의미하는 '피초르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데 바로 뛰어남, 혹은 완벽이라는 뜻이다. 지난 달 러시아 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드미트리 메드베레프는 "러시아를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만들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러자 러시아 언론들은 피초르카라는 단어를 '5대 경제대국'을 의미하는 말로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피초르카의 선택이 러시아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러시아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선택의 역사가 미래와 변화를 이끌어낸다. 무엇을,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변화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변화를 바라는 자는 선택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도 변화돼야 할 것이다. 교회도 나도 예외는 아니다. 책임감 있는 선택이 그래서 필요하다.


조영진 목사(본교회)



감사의 고백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보릿고개를 염려하던 우리였는데, 참 대단한 성취라 여겨진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찾기 어렵다. 코앞에 있는 현실은 결코 여유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감사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증손자 원한광 교수가 몇 해 전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 사는 동안 단 한번도 경기가 좋아졌다, 살만하게 되었다 라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분명히 잘살게 되었고, 이전과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오죽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으면 푸른 눈의 그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으로 비춰졌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모두가 절망하고 눈앞이 캄캄하다고 좌절하는 가운데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용기이자 신앙인이 지닌 능력이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크리스천 브랜드 

농구 황제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이 신었다는 '나이키' 운동화가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때가 있다. 국내 일선학교에서도 이 운동화를 신지 않으면 친구들 사이에 끼워주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유명 브랜드로 자리잡으면 상품 가치가 오르고 판매도 증가한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653억달러이고, 삼성전자는 169억달러에 달한다. 비싼 브랜드 가치를 지키려면 상품의 질이 좋아야 되고, 홍보에도 거액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예수와 크리스천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신앙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한대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를 지속하는 홍보는 곧 선교요 봉사다. 원조인 그리스도의 가치도 값으로 매길 수 없다. 하늘과 땅, 모든 우주 만물을 매는 권세를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윤집기중(允執基中)

윤집기중(允執基中)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의 요(堯) 임금이 퇴임할 때에 9남2녀의 자식들이 있었지만 자식들에게 세습하지 않고 당대에 가장 덕망이 높은 순(舜)에게 천하를 물려주면서 한 말이다.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라”(논어 堯曰편)는 뜻이다. 이것은 중국의 요(?), 순(舜), 우(禹) 3대의 왕에 걸쳐서 내려온 가장 핵심적인 정치철학이었으며, 하늘이 내린 중용사상의 뿌리이기도 했다.


성경에서는 왼쪽(左)이나 오른쪽(右)으로 치우치지 말고 바른 길(正道)로 가라고 가르치고 있다(사 30:21). 성경과 교회사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도(正道)를 걸어가셨다. 모름지기 모든 지도자는 중을 잡고(執中) 양 극단을 다스리면서 힘있는 통전적 리더십을 발휘해서 공동체의 질서와 균형 발전을 이루어내야 한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나무 심는 날 

오늘은 식목일이다. 한때 우리 국토는 땔감 부족과 산림 불법개간 등으로 벌거숭이가 됐다. 비만 오면 홍수가 나고 피해가 막심하여 식목일을 국경일로 삼고 전국민이 나서서 나무를 심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국토의 푸르름은 이처럼 전국민이 정성을 들여 심고 가꾼 결과이다.


사람은 종종 나무에 비유된다. 나무를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 들여 가꿔야 하듯이 사람도 어릴 때부터 어떻게 양육하고 가꾸는가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15:5).


이번 식목일에는 하나님의 나무를 심어보자. 전도대상자를 마음에 심고(품고) 열매를 맺자. 지금 개신교는 성장이 둔화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1200만명이라고 한다. 1년에 1명의 기독교인이 1명씩만 전도한다면 조국에 복음의 푸른계절이 오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강흥복 목사(상계광림교회


새 부대의 포도주 

우리나라 전통 술이 막걸리라면 유럽에서는 맥주와 포도주가 꼽힌다. 요즘에는 유리병에 포도주를 보관하지만 옛날에는 가죽부대가 쓰였다.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잘 말려 만든 부대에 물이나 포도주를 넣고 다니면 아무리 험한 길을 다녀도 깨질 염려가 없었다.


그런데 종종 문제가 생겼다. 포도주는 발효주이기 때문에 발효 중인 새 포도주는 부글부글 끓어 부대를 팽창시킨다. 신축성이 좋은 새 부대라면 문제가 없지만 낡은 부대는 위험하다. 낡은 부대는 새 부대만큼 신축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찢어지고 만다. 결국 술도 쏟고, 부대도 버린다(막 2:22).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생명력을 품고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변화에 주저하며 옛 습관, 옛 사람, 옛 교회에 안주한다면 그리스도의 생명력은 힘을 잃고 만다. 예수의 생명력을 온전히 담아낼 새 부대를 안고 변화의 삶을 이어가자.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망하지 않는 사람 

잡지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발행인이자 편집자였던 고 한창기 선생. 그는 10년을, 아니 20년을 내다봤던 사람으로 국어와 전통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보존해 한국 문화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잡지를 만들 때 잡지 이름이 네 자를 넘으면 망하고, 한글 이름이면 망하고, 가로 쓰기면 망하고, 집필자의 글을 고치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이유들 앞에서 한 선생은 당당하게 그의 방법대로 했으며, 결국 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상 보기에 망하는 일인데도 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고,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사람(고후 4:8∼9). 바로 예수의 흔적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다. 그 일에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


조영진 목사(본교회)



희망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커다란 축제가 열렸다. 사순절을 앞두고 많은 인파가 몰려 축제는 성황이었다. 거리에는 많은 노점이 들어찼다. 그 중 한 가게는 미니어처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모형들을 팔았다.


주인은 이렇게 손님을 끌어 모았다. "새 차를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자동차 미니어처를 사세요." "새 집을 장만하고 싶은 사람은 집 미니어처를 사세요." 사람들은 물었다. "오래 살고 싶으면요?"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1년에 한번씩 신발 미니어처를 구입하면 됩니다."


그 가게는 희망을 팔았던 것이다. 희망을 가리켜 아리스토텔레스는 '깨어 있는 자의 꿈'이라고 했다. 성경은 '희망이란 하나님을 바라는 것,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호 12:6)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과시적 신앙 

루이 14세 때의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함과 사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 꼽힌다. 궁전의 사치는 예술과 맞물리면서 한 시대의 풍조를 만들어냈다. 귀족은 물론이고, 일반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호화로움과 사치의 파급 효과는 컸다.


사회적으로 허영이 커지면 소비가 증가하고 물가가 상승한다. 이어지는 사치와 호화로움의 문화는 결국 경제적인 공황으로 나타났다. 결국 사치와 무능의 왕정체제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게 되었다. 마지막 왕인 루이 16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왕후도 처형됐다.


예수를 싫어했던 바리새파인들의 신앙도 사치스러운 신앙이었다. 그들은 알뜰하고 겸손한 자기행복보다는, 상대방에게 과시하기 좋아하고 허영을 뽐내는 위선적인 행복을 추구했다.


오늘도 주위에는 허영의 세파 속에 과시적 신앙이 횡행하고 있다. 구원이 메마르고 삶의 행복도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반석 위에 세우는 지혜

숭례문 화재 사건이 발생한 지 49일이 지났다. 국보1호와 함께 시커멓게 타버렸던 국민들의 자존심도 어느새 잊혀져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숭례문과 유사한 화재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600여년 된 교토 금각사가 21살 행자승의 방화로 전소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3년의 공사 끝에 금각사를 복원했지만, 국민들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쳤다. 두 차례의 추가 복원공사를 통해 소실된 지 50년 만에 금각사의 복원이 완료되었다. 반세기가 걸린 셈이다. 이후 금각사는 전과는 또 다른 관광 명소가 되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집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그 주추를 반석 위에 놓기 때문이다. 철저한 자기 점검과 견실한 계획이라는 반석 위에서 새롭게 시작할 때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실수를 기회로 삼아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는 자세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으뜸이 되어라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으뜸이 되어야 한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말아야 한다. 중간 근처도 가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과의 차이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두각을 나타내고 번성 번영 번창해야 한다. 안 믿는 사람만도 못하다느니, 별 차이가 없다느니 해서는 안 된다.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듯 형통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비결이 있다. 크고자 하면 할수록, 으뜸이 되고자 하면 할수록 첫째, 남을 섬겨야 한다. 둘째, 이웃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 둘을 합치면 '겸손'이다. 겸손해야 한다. 이를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고 본을 보여 주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겸손하면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 으뜸이 되게 하신다.


강흥복 목사(상계광림교회)



교회의 주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 생가가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위대한 인물이 살았던 집은 특별하게 보존된다. 건물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 집에 누가 주인으로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똑같은 집도 왕이 살면 왕궁이요, 죄인이 갇혀 살면 감옥이다.


중세시대 때 어느 교황이 "과거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이 없다(행 3:6)'고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교회에 재정이 풍족하니 걱정안해도 되겠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수도사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이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어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만약 교회가 은과 금을 주인으로 삼는다면 세상 모임과 무엇이 다를까. 교회의 주인은 성령님이다. 지난 주일 새벽,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는 성도 수만명이 비바람에 아랑곳없이 부활절 연합 예배를 드렸다. 부활의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자 하는 성도들이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기회

사람들이 미국을 부러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잘살기도 하지만 그보다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남녀의 구별이나 학력, 나이에 상관없이 기회가 고르게 주어진다.


기회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가난한 학생이 미국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학교를 세우고, 장학금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기회가 많은 나라라고 말하기 이전에, 기회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회만 주어지면 잘 하겠다'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은혜까지 주셨다. 기회는 축복이다. 그러나 기회를 만드는 것은 사명이다.


조영진 목사(본교회)




<예화> 벼룩을 주심을 감사

코리는 폴란드의 한 아름다운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런데 독일 나치에 의해 나라가 정복되자 유태인을 숨겨준 죄목으로 온 가족이 포로

수용소에 잡혀가게 되었다. 코리는 언니 벳시와 함께 감금되어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 나 그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느 날 신체검사를 받는 도중 한 그리스도인 간호원이 코리에게 “가장 갖고 싶은 것

을 말씀하세요.”라고 속삭였고, 코리는 그 간호원을 통해 작은 성경 하나를 얻게 되었다. 코리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코리는 들키지 않게 갖은 애를 써가며 성경 말씀을 삼키듯이 읽었다. 한마디 한마디

가 너무도 소중한 생명의 말씀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코리는 데살로니가전서 5:18말씀을 읽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 말씀은 코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런지 얼마 안 되어 코리는 언니 벳시와 함께 감방을 옮기게 되었다. 옮겨진 감방으

로 오자 코리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마음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비참한 곳에 있었지만 이곳은 더욱 비참했다. 게다가 벼룩까지 들끓어서 견딜 수 없는 곳이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지만 코리는 도저히 그 말씀에 순

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언니 벳시가 눈을 감고 나즈막하게 기도드렸다. “주님 우리에게 벼룩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할 수 없이 코리는 아멘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코리는 벼룩을 인하여 감사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벼룩

때문에 그 감방 주위에는 간수도, 독일 군인도 얼씬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자유롭게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코리와 벳시는 매일 성경 말씀을 가르치게 되었다. 온종일 강제 중노동에 시

달리고 굶주린 여인들과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아픈 곳을 만져주고 양보하며 기도하는 놀라운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나누게 되자 그곳에는 천국의 교제권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벼룩 때문에 가능했음을 코리는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예화> 성숙한 감사생활

성숙한 감사생활은 어떠한 환경과 어떠한 조건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다.

한국 전쟁 때의 일이다. 부산에 피난 가서 감사주일을 맞게 되었다. 어려움을 경험하고 그런 중에서도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축복이요 특권이었다. 저녁예배 때 저마다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가족적으로 감사하는 간증의 순서를 가지게 되었다.


어느 장로가 나와서 "저는 피난을 이곳까지 와서 장사를 했는데 솔직히 말씀드려 서울에서 살 때보다 여기 와서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간증했다.


어느 집사는 "우리 온 가족이 이런 동란 속에서도 다 평안히 지내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라고 간증했다. 어느 어머니는 "제 아들이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왔으니 감사합니다"라고 간증했다.


이때 마지막으로 부모도 없이 외로운 청년은 "저는 아무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부모님은 폭격에 세상을 떠나셨고 하나밖에 없던 형님은 전사를 당했습니다. 내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간 여기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지금 제가 깨달은 감사는 영원한 감사라고 믿습니다."


이때 이 청년의 간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다.



<예화> 감사는 하나님께

어떤 곳에 무엇이든지 희귀한 것만을 갖고 싶어 하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맛이 기막히게 좋은 요리를 드신 후 감탄했습니다. “이제껏 먹어본 요리 중에서 이것이 제일이었다. 이 훌륭한 요리를 만든 요리사에게 많은 상을 주어야겠다.”


요리사는 임금님 앞에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님, 칭찬해 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요리는 제 기술이 좋아서 만이 아닙니다. 만약 좋은 야채를 파는 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칭찬해 주시려거든 그 야채 장수를 칭찬해 주십시오.” 임금님이 채소 장수를 불러 칭찬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님,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야채를 팔았을 뿐이며 칭찬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야채를 키운 농사꾼이겠지요.”


이번에는 농사꾼이 불려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농사한 야채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얘기를 듣자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 그것은 틀립니다. 저는 그저 손질만 했을 뿐입니다. 제가 땅을 갈아 씨를 심어도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저는 잎사귀 하나, 열매 하나 만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감사의 인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예화> 주어진 은혜를 감사하며 삽시다.

모든 우주 만물, 특히 살아있는 생명체 중 창조주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가장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없습니다. 어느 과학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인체의 오묘한 신비를 비롯하여 지구상의 조화된 모든 물질이 없이는 인간은 스스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크나큰 은혜를 받고도 인간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더욱더 편해지고 욕심을 채우고 싶어 자연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권력을 위해 매일같이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창조주도 인간에게 한없이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받은 은혜는 생명이 있는 동안만 유효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루하루 은혜를 까먹고 있는 셈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지금 살아있을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후에, 평생 살아온 것에 대한 주님의 심판으로 이루어 질것입니다.


어느 성당에서 청소년 피정을 보냈습니다. 피정이란 천주교에서 일련의 교육 과정인데, 그 원 뜻은 피세정념으로 세속을 일시 떠나 고요함 속에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주님께 염원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지도를 맡으신 신부님께서 특이한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신부님은 한창 피어나는 젊은이들에게 죽음의 교육을 시키신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일생을 살다 마지막 가는 장면을 학생들에게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신부님은 미리 준비해둔 관 뚜껑을 열게 하고 모두 자기의 관속에 눕게 하였습니다. 관 뚜껑을 닫고 캄캄한 암흑 속에서 한동안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 소원과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학생 모두는 울면서 그 동안 잘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다시 살아난다면 열심히, 그리고 소중히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집에까지 알려져 내용도 모르는 학생들의 어머니한테서 그 신부님은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귀한 자식을 왜 관속에 넣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들도 곧 이해를 하게 되었고 그분들도 죽음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고마움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알베르토 슈바이처 박사가 젊은 시절 어느 화창한 아침에 자신이 크나큰 은혜 속에 살고 있는 것을 깨닫고 이 은혜를 갚지 않으면 않 되겠다는 일념으로 아프리카 오지에서 평생을 봉사 한 것입니다.


사람은 그냥 평범하게 살다보면 은혜를 모르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 칼럼에도 "어느 말기암 환자의 살아가는 이야기" 가 인터넷과 지면을 통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적이 있습니다. 주인공 김현경씨는 갔지만 그분이 써놓은 주옥같은 글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만일 김현경 씨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단 일분일초라도 헛되게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주어진 은혜의 삶에 충실하고 또 받은 은혜를 이웃사랑으로 갚아주고 어떠한 고통과 불행으로 생을 마감하더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사후 장기기증은 물론 저희 몸을 실습용으로 기증할 것입니다. 그리고 난후 거름이 되어 자연에 뿌려지고 싶습니다.


요즈음 가뭄이 극심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대지의 목마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가 매일 먹어야 하는 일용할 양식이 나오기 까지는 농민의 피땀 어린 정성은 물론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매일 하는 식사기도는 피땀 어린 노력을 이해하지 않고는 공염불에 불과 합니다. 한 그릇의 밥이 상에 올라오기까지 수 백번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도 발우공양의 식사예절이 있는데 그 예절이 엄격하다고 합니다. 농사지은 분의 노고와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는 마음이 깊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이 한순간을 천금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하루의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 단비 좀 내려주십시오. 모든 대지가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출처] [본문스크랩] 추수감사절 예화 여러편 모음 |작성자 kai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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