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 고목(古木)에게 물었네 /유용선
새파랗게 젊은 시인이 한 그루 고목에게 물었네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그런 마음이 되어 버릴지도 몰라요,
삶이란 그렇듯 예견할 수 없는 것. 나는 두려워요.
진실의 자리에 허구가 들어앉는 날,
만약에 그런 날이 내게 닥친다면?
빛바랜 꿈으로 허튼 노래나 부르는 내가 되고 싶진 않아요."
숱한 계절을 겪은 고목이 대답했네
"맨 처음 바람에 내 모든 잎사귀를 빼앗기던 그 날에
나는 두려워 떨며 울었소,
운명이란 그렇듯 가혹한 것.
나는 절망하며 탄식했어요.
앙상한 가지에 새들도 보이지 않던 그 나날에
다른 무슨 생각이 들었겠어요?
다만 눈물로 닥쳐올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요……."
말을 잊은 채 듣고 있는 시인에게
고목은 살며시 웃음 지으며 이야기했네
"견디고 기다리는 나날의 끝에
다시금 태양은 가까이 다가오고
움츠렸던 온 몸 곳곳에 물기 솟아
연두빛깔 잎사귀 마침내 부활하던 그 날,
비로소 나는 깨달았지요, 내 삶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말없이 듣고 있는 시인에게
고목은 너그러이 웃음 지으며 이야기했네
"다만 한 평생 시를 쓰고자 할 때
진실의 자리에 허구를 앉히지 않으며
다만 견디며 기다리는 사람이라야
시련의 나날에 마음 잃지 않으리니,
젊은이여, 그대에게 줄 말은 이 뿐.
귀담아 듣고 안 듣고는 그대의 몫."
아무리 많은 사랑이 있다고 해도
지속성이 없으면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없겠지요.
거짓된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빛이 바래고
자신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
온갖 위선을 떨어야 하는 문제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금과 은이 왜 귀하다고 말 하는 것일까요?
다른 금속들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고 다 변하지만
금과 은은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겠죠.
결혼하기 전에
난 당신 없이는 못산다던 그 진실한 사랑은
흐르는 세월에 빛이 바래고 다 낡아서
처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다면
진실이란 자리엔 허구가 주인 노릇하는 것이겠지요.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요.
세월이 흐를수록 진실은 안 보이고
허구만 판치는 현실에 긴 겨울을 끝내고
따듯한 햇살에 움이 돋고 처음의 모습을
회복 하려는 부활의 몸짓이
눈물겹도록 귀하게 느껴지는 지금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금과 같이
변하지 않은 사랑과 믿음이
나에게 있는지 묻고 싶은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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