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한 해를 살고 보니 (엡 5:15-21)

2007. 12. 19. 21:21목양자료/6.교회행사 자료

[송구영신] 한 해를 살고 보니 (엡 5:15-21)

미국의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 박사가 95세 이상 된 사람 50명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앙케이트 조사를 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또 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세 가지만 기록하십시오!” 가장 많은 응답은 이렇습니다. “날마다 반성하며 살겠습니다.”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다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은 “용기 있게 살겠다.”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비굴하였다는 것입니다. 눈앞의 이득 때문에 양심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불의와 타협했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한번만 더 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용기 있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많이 나온 것은 “죽은 후에도 무엇인가를 남기는 삶을 살겠다.”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물거품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 없어지고 말 것을 추구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긍정적인 차원에서 좋은 본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오늘만 지나면 2005년도 과거 속으로 흘러 가버립니다. 이 시점에서 한 해를 살고 보니 어떠하십니까? 일파만파(一波萬波)의 희비가 엇갈릴 것입니다. 서양의 어느 시인은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 셋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과녁을 향해 쏜 화살과, 급하게 뱉어버린 말과, 황금 같은 기회라고 하였습니다. 금년에 우리에게 주어졌던 기회들이 다 흘러가버렸다는 말입니다.

1. 되돌아보는 세월은 언제나 후회가 많습니다.

바로 앞에 선 야곱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나그네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險惡)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이것은 분명히 후회입니다. 야곱의 일생의 결론입니다. 오늘로 끝을 맺는 2005년의 마지막 날에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보다는 한 해를 바로 살지 못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 속에 살지 못하였다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그리고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책임감이 어께를 누릅니다. 이 한 해 동안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왜냐하면 지난 정초에 작정했던 모든 계획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후회와 부끄러움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부끄러움이 더욱 큽니다. 얼마나 말씀대로 살아왔는가? 얼마나 말씀대로 순종하였는가? 믿는 사람들의 본이 되어 살았는가? 등등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서로의 원망과 책임전가와 집단 이기주의로 마음들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대통령을 비난하고, 정부를 비난하고 정당들을 욕합니다. 희망을 주는 곳이 어디입니까?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육신의 지나온 세월이 이처럼 얼룩진 세월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영적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가지고 나가 허랑방탕하게 지내며 모든 것을 탕진했던 불순종한 둘째 아들처럼, 지난 1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365일씩 끊어서 살도록 하신 것은 한 해를 살고 반성하며 다시는 반복적인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 한 해를 보내면서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십시다. 그리고 회개한 자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섭섭했던 마음도 다 풀고, 용서하지 못하였던 것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 때문에 상처를 받고 마음 아파하는 분들이 혹 있으실 것입니다. 제가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여러분들 앞에 사과를 드립니다. 제가 너무 부족해서 그렇지 본심은 아니니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일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묵은해를 보내면서 깨끗이 회개하고 자복한 일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의 죄과를 다 도말하시고 사해 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새해의 우리의 각오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을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나간 세월은 지나간 세월이고 그 세월을 거울삼아 다시 한 번 주님을 기쁘시게 살아가려고 다짐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첫째로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어리석게 산다.”는 것은 자신만을 위해 산다는 뜻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자기의 본능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 삶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앞서 설문조사에서 반영된 것처럼 후회하는 인생이 될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정말 그 사람은 부자입니다. 그 해에 매출이 너무 많아 참고를 새로 증축해야 할 판입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잘 진행되어 가득하게 창고를 채웠습니다. 그 부자는 풍성한 추수를 한 뒤에 평안히 살려고 했습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평생을 자기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니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웃에 주린 자를 돌아보지 아니합니다.(눅16:19-24) 무슨 말씀입니까? 부자가 되었는데도 남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부자가 되었음에도 그의 이름은 나오지 못하고 닉네임으로 나온 것이 “이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삶을 가리켜 어리석은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부요케 해 주셨겠습니까? 왜 여러분들에게 유능한 지혜를 주셨겠습니까? 왜 여러분들에게 탁월한 재능을 주셨겠습니까? 주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이 되라고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뜻은 헤아리지 못하고 내 뜻만 고집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도 어리석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리석게 살지 않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의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시든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감추고, 주님을 드러내고, 교회를 들어내는 것입니다. 시31:19절에 주를 위하여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가 있다고 하십니다. 금년에 우리 모두가 주의 뜻을 분별하여 살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 돌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새해에는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말이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말을 제일 먼저 한 사람들은 신자들이 아니라 불신자들이었습니다. 안디옥의 불신자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보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같다고 인정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 것은 불신자들이 생각할 때에 우리와 무엇인가가 다른 사람들이라는 칭찬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요, 둘째는 불신자들과 무엇인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이 명확했는데 요즘은 그것이 희석되어졌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볼 때에도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인지 믿지 않는 사람인지를 알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니 불신자들이 볼 때에 오죽 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우리 신자들에게서 예수 냄새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예수꾼들이요, 예수의 사람들이 분명한데 이런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반성을 해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런 평가를 받으며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 가장 많은 비판을 들은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위선적인 요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은 철저하였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구별됨의 생활이 있었습니다. 새해에는 예수 냄새를 물씬 풍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우리의 전도 방법은 세상에서 무력해졌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듣던지 말든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너무 무모한 낭비가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전도지를 돌리고, 초청 잔치이니, 부흥회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이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행사들이 더 이상 효과적인 전도의 도구들이 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관계전도의 시대입니다. 관계를 맺는 가운데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게 하고 느끼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들어오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데 최고의 좋은 방법은 가정교회입니다. 바로 목장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초대교회들은 가정교회들이었습니다. 우리 목장의 목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서로 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모임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좋은 모습들만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자리에 관계가 있는 친구나, 가족이나, 이웃 분들을 교회가 아닌 가정으로 자연스럽게 초청하여 함께 다과를 나누고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어 보십시오! 은혜를 나누고 간증들을 나누어 보십시오! 요즘같이 단절되고 대화의 상대가 그리운 시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시대에 따뜻한 위로와 사랑과 말이 있는 곳으로 우리 가정교회를 세워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위하여 중보기도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수많은 열매들이 맺어 지게 될 줄 믿습니다.

끝으로 성령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술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방탕한 일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성령 충만을 가장 강조하는 교회는 한국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가장 잘 분열이 되고, 반목질시합니다. 서로 등을 돌리고 미워하고 증상모략까지 합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뜨거운 것도 좋고 요란한 것도 좋은데 이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 해야 하겠습니다. 욕망을 버리고 지족할 줄 아는 마음(딤전6:6),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는 삶(요14:26),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요15:26), 책망에 귀 기울이는 삶(요16:7,8),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삶(요16:13),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요16:14)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이것은 어떤 분이 이렇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새날이 오느냐?” 한 제자가 대답합니다.

“동창이 밝아오면 새날이 옵니다.”
“아니다.” 다른 제자가 대답을 합니다.
“노고지리가 우지지면 새날이 옵니다.”
“아니다.”하면서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스승이 말을 해 줍니다.
“너희들이 네 앞에 있는 사람들이 너희 형제, 자매로 보이면 그 날이 새날이다.”(고후5:17)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여러분들의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형제자매처럼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성령 충만한 분들입니다. 그렇게 한 해를 사시기를 바랍니다.

옛 시인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모두가 꿈속의 일인 것을
저 강을 건너가면 누가 너이고 누가 나인가
누구나 한 번은 저 강을 건너야 한다.

나 또한 다를 바가 없다.
곧 바람 멋고 불 꺼지리라.

꿈속의 한 평생을 탐하고 성내면서
너니 나니 하고 다투기만 하는가?”

이제 시비와 흑백을 가리며 살아온 시간들을 부끄러워하며 새 날을 위하여 무거운 것들을 벗어 버릴 때입니다. 또 다시 그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죽을 고생을 하시겠습니까? 이제는 훌훌 다 벗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참회라고 하는 것은 누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성령 안에서 믿음의 두레박으로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려는 노력입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리사 수녀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수녀님, 수녀님이 돌아가시면 세상은 이전과 같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애쓰셨는데 달라진 게 뭡니까?” 수녀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저 깨끗한 물 한 방울이 되려고 했을 뿐입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밝아온 대망의 새해, 2006년에 예수님 잘 섬기시고, 세상을 바꾸려고 헛손질 하지 마시고 저와 여러분들이 깨끗한 물 한 방울 되려고 힘쓰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윤정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