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독서 기도(렉시오 디비나)
2007. 12. 13. 00:09ㆍ목양자료/4.기도자료
거룩한 독서 기도(렉시오 디비나)
1. 영적 독서 기도
“영적 독서(Lectio Divina)”는 성경과 기도를 연결하는 5단계의 기도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lectio divina를 “영적독서기도”라고 의역할 수도 있다. “영적(divine)”이란 말은 존재론(ontology)적 의미(영적인 독서의 대상물을 의미)와 인식론(epistemology)적 의미(영적으로 독서를 함)를 가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새 사람, 새 가치의 영적 사람으로의 가치론(axiology)적인 변화(transformation)를 지향한다.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영성수련 방법들 중의 하나가 “영적독서기도”이다. 그런데 그 이름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영적독서기도는 한국에 많이 알려진 Q.T(Quiet Time)의 원형이다. Q.T는 영적독서기도의 단계 중에서 관상(contemplatio―라틴어, contemplation―영어)의 단계가 빠져 있거나 약한 것이 문제이다.
영적독서의 뿌리는 유대교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세기에 살았던 시프리언(?―258)는 이런 말을 했다:
“Be constant as well in prayer as in reading[lectio]; now speak with God, now let God speak with you, let Him instruct you in His precepts, let him direct you.”
기원후 6세기에 와서는 베네딕트의 [수도원 규칙] 등에서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12세기에 귀고(Guigo II, the Carthusian)가 쓴 『수도사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Reading(lectio) seeks for the sweetness of a blessed life, meditation(meditatio) receives it, prayer(oratio) asks for it, contemplation(contemplatio) tastes it. Reading, as it were, puts food whole into the mouth, meditation chews it and breaks it up, prayer extracts its flavor, contemplation is the sweetness itself which gladdens and refreshes.”
종교개혁자 루터의 『성경읽기 지침』(Instructions on How to Read the Holy Bible)과 웨슬리의 『성경읽기에 대한 조언』(Advice on Spiritual Reading)도 영적독서와 유사하다.
영적독서기도는 개인으로도 그룹으로도 실천할 수 있다. 영성수련에 있어서, 위로는 영적 지도자를 두고, 옆으로는 영적 친구를 사귀도록 하자. 향수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면 향수를 사지 않아도 향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나아가, “남의 소를 아무리 세어도 나에게 유익이 없다.”는 말을 명심하고 스스로 영성수련을 실천하자.
2. 영적독서기도의 5단계와 그 구조
전통적으로, 영적독서기도는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 읽기(Lectio)
2) 묵상(Meditatio)
3) 기도(Ortio)
4) 관상(Contemplatio)
여기서 행함(operatio) 혹은 실천적 삶이라는 다섯 번째 단계를 하나 첨가한다.
“전통은 죽은 자의 산 얼굴이고, 맹신적 전통절대주의는 산 자의 죽은 얼굴이다.”
영적독서기도의 다섯 단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선형으로 발전되어 나아간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다섯 단계의 순열과 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도―읽기―기도―묵상―기도―명상―기도―행함의 순서로 진행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 중에 쓰기(기도문, 시, 산문…), 예술적 표현(그리기, 노래하기, 춤추기…), 나누기(sharing) 등등을 할 수도 있다.,십자가의 요한은 ekdmarhk rkxdl 요약한다.
“독서에서 찾아라. 그러면 묵상에서 찾을 것이다. 기도에서 두드리라. 그러면 명상에서 열릴 것이다. (Seek in reading, and you will find in meditation. Knock in prayer,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in contemplation.)”
1). 읽기(Lectio)
성경의 한 가운데를 펼치면 시편 119:105이 나온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로 시작된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말씀(Word, Logos)이신 예수께로 나아간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식과 정보(information)만을 위해서 성경을 읽지 말고, 나의 존재와 삶의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함을 명심하며 다음의 단계를 밟자.
장소와 때
시간과 공간의 십일조에 인색하지는 않은가? 되도록 가장 좋은 시간과 장소에서 영적독서기도를 실천하자. 하루 24시간의 삶 전체가 기도가 되려면, 일상적인 삶이 아닌 기도만을 위한 집중적인 기도 시간이 필요하다.
몸 풀기와 호흡, 침묵과 기도로 준비하자
영성수련 전후에 몸 풀기와 호흡 고르기를 한다.(몸 풀기는 매달 있을 영성 세미나와 워크샵에서 시범을 보이기로 하자.) 자연스럽고 깊게 호흡을 고르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 조용히 겸허한 마음으로 서자. 호흡은 온도계(thermometer)이며 동시에 온도조절기(thermostat)이다. 온도계로 체온을 재듯이, 호흡으로 그 사람의 심적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또한 온도조절기로 방안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듯이, 자연스럽고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호흡은 마음풀기의 한 좋은 열쇠이다.
호흡훈련은 기도와 묵상, 스포츠, 무술, 예술 등에서 그리고 심지어 아기를 출산할 때에도 중요시된다. 선도(仙道)와 라자 요가(Raja Yoga)는 그 긴 역사를 통해, 호흡훈련을 상당히 발전시켰다. 그렇다고 호흡훈련이 그들만이 전유물이 아니었다. 기독교의 헤시카즘(Hesychasm)도 호흡과 자세 등을 기도의 중요한 부분으로 가르치고 훈련했다. 지면 관계상, 헤시카즘을 논의하지는 않겠다.
성경을 읽기 전에, 혹은 소리 내어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한두 시간을 침묵한 성인들이 있다. 방자히 성경이나 입을 열지 않기 위해서이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자. 성령님이 성경을 조명하실 것을 기도하자.
성경을 전심으로, 온 몸으로 읽고 듣는다.
영혼과 몸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듯이(마 22:37; 눅 10:27; 신 6:4-9), 성경을 그렇게 사랑하고 읽자, 하나남의 사랑의 편지인 성경 앞에 서면 가슴이 설레며, 영혼의 초점이 하나님께 모아진다.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TV를 잊고 생명의 소리, 복된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스러운 호흡에 맞추어 일정량의 성경을 읽어 나아간다. 서두르지 말자. 시간에 쫓겨 햄버거를 먹어 치우듯이 해서야 되겠는가? 적당한 음성으로 천천히 성경을 읽으면서 동시에 그 읽는 것을 듣자. 귀로만 아니라, 피부로 그리고 온 몸으로 그 음성의 파동을 느끼자.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세포가 깊숙이 공명함을 느끼기도 한다.
구름기둥이 멈추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여행을 멈추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멈추면, 성경을 읽다가 멈추어 서서 그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자. 그리고 다시 성령이 움직이면, 성경을 계속 읽는다(출 40:36-38).
읽는 방법들
신명기 6장 5절에 있는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이여 들어라)”은 중요한 전통이다. 온 몸과 마음으로 경건하게 읽되, 읽는 방법들은 아래와 같이 다양하다.
큰 소리 읽기―작은 소리 읽기―숨소리 읽기―마음소리 읽기―소리없는 침묵독
통독(通讀)―정독(精讀)―미독(味讀)
소요독(逍遙讀)과 체독(體讀)
낭독―교독―윤독―합독
초독―재독―암송독
참고: 기독교의 전통적인 4중 성경해석법
신비적 해석(anagogical interpretation)
비유적 해석(allegorical)
도덕적 해석(tropological)
문자적, 역사적 해석(literal, historical)
참고: 유대교의 전통적인 2중 성경 공부법
haggadah: 기독교 4중 성경해석법의 상부와 유사.
halakah: 기독교 4중 성경해석법의 하부와 유사.
평생 독서: 7범주
a. 동양 전통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기독교 전통에는 “네 권의 책(Four Books)”이 있다.
네 권의 책=성경+자연+영혼+삶(the Life, Jesus Christ). 후커(Hooker)―웨슬리(Wesley)와 감리교―기독교 전반으로 이어지는 “사변형(Quadrilateral)” 전통도 있다.
b. 책 중의 책: 성경
성경은 물론이요 다른 “책”들(위의 7범주의 “책”들)도 읽자. 예를 들어, 자연이라는 책, 영혼이라는 책, 그리고 역사라는 책도 읽자. 자연과 영혼과 역사에 하나님의 흔적(vestige)이 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성경 뿐만 아니라 자연과 영혼과 역사의 원 저자이시며 지휘자이시며 재창조자이다. 평생의 독서 계획을 수립하자. 평생의 독서는 자손들과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의 아버지는 늘 책만 읽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은 많은 독서로 양식이 풍부하니 사회를 위해서 일을 좀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일을 권유했다. 그러나 처칠의 아버지는 그저 책만 읽었다. 사람들은 그를 무능한 사람으로 간주했다. 무능한 사람들을 보면 "처칠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또 있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과연 처칠의 아버지의 독서는 비생산적인 일이었을까? 바로 그 독서가 처칠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빚은 것이다.
2) 묵상(Meditatio)
“복 있는 사람은…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히브리어인 “Hagah”는 보통 묵상(meditation)으로 구약에 번역되어 있다. Hagha는 내면화(interiorization)와 말씀을 계속 되뇌이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인 “meditation”은 라틴어인 “meditatio”에서 유래하며,
"meditatio”는 그리스어인 “melete”와 유사하다. “Melete”는 돌보다(care), 공부하다(study), 연습하다(exercise) 등의 의미를 가진다. “Meditation”의 어근인 “med”도 치료하다(cure), 돌보다(care) 등의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면, medicine=약, 의학)
“heal,” “whole,” 그리고 “holy”는 같은 어원을 가진다. 곧, 치유되(cure, heal) 전인(whole person)이 건강과 평화를 얻으면 거룩해지는(holy) 것이다. 묵상은 재창조와 구원을 향한 길이다.
예수는 습관적으로 새벽에 혹은 밤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묵상하곤 하였다.
“나는 평생 현자들을 보고 들으며 자라왔다. 그런데 침묵과 고요함보다 더 유익한 것을 찾지 못했다.”
(All my days I have grown up among the wise, and I have not found anything better for one than silence and stillness.); 시므온, 『사막의 교부들의 금언』
말씀 묵상과 내면화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소개한다: 역대상 29:17-19, 잠언 4장.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눅 2:19) 누가복음 2:51. 예수님 자신도 성경(Hebrew Scriptures)을 가지고 일종의 영적독서기도를 하셨음 직하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1:4-6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답은 이사야 42:6-7과 61:1에 대한 묵상의 결과가 아닐까? 마태복음 22:37-40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갈파하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신명기 6:5)과 이웃 사랑(레위기 19:18)을 비롯한 성경 전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묵상을 하셨을 것이다. 관주(貫珠)성경의 의미도 바로 일이관지 하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1:2-3의 기록도 이사야 40:3에 대한 묵상이 아닐까? 마음에 대한 다음의 구절들도 참조하자: 시 27:3; 27:3; 51:10; 73:1; 119:2; 138:1; 삼상 2:1; 21:12; 27:1.
어떻게 묵상할까? 일기―묵상―기도―명상의 전 단계가 성령의 방법을 따른다. 수영 책만 보고 수영을 잘 할 수 있을까? 수영은 수영함으로써 배운다. 묵상도 묵상함으로써 배운다. 성령이 묵상의 대 선생이시고 신앙의 선배나 친구나 책은 보조 수단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몇가지 묵상 방법을 논하자.
a. 분심 다루기
분심을 원숭이 또는 코끼리의 코로 비유한다. 분 심 자체도 우리 존재의 한 모습이므로 부정하지 말고 측은지심으로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분심꺼리를 “오게 하고, 가게 하라(Let it come, let it go).”
묵상을 하다가 잡념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잡념을 붙들고 싸우느라고 더 많은 잡념을 만들지 말자. 잡념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잡념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잡념이 저절로 온 것처럼 저절로 가도록 하자. “Let is come, let it go.” 호흡을 가다듬거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계속 묵상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오감(五感)을 조절하여 잡념을 방지하자. 한편, 오감을 적극적으로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다. 내적인 영적 오감도 프란시스처럼 활용할 수 있다(The Life of St. Francis in Bonaventure, Bonaventure, p. 262-3).
오감과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전통은, 프란시스(약 1181-1226) 혹은 보나벤처(약 1217-1274)의 삶의 나무(The Tree of Life,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묵상이다)와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 약 1491-1556))의 영성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으로 이어진다.
b 소의 되새김질(qkscn)
읽은 말씀에 대해서 느끼고(sense and feel) 상상하고(imagine), 생각하고(think) 직관적으로 공명하라(intuitive resonance). 읽은 말씀 중에서 특히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소처럼 계속 되새김질하자. 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듯이, 말씀에서 달고 오묘한 맛이 나온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내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적신다. 말씀이 내면화 된다. 목판 활자를 진흙에 대고 누르듯, 말씀이 진흙 같은 나의 존재에 서서히 새겨진다.
쉼터: 이조 시대에 살았던 한 선비의 이야기이다. 그는 남에게 책을 빌려서는 책을 한 장 씩 찢어 도포 자락에 넣고 다니면서 외웠다. 다 외운 뒤에는 그 종이를 씹어 먹었다고 한다.
c. 입술로 마음으로
소처럼 말씀을 되새김질할 때, 소리내어 말씀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다가, 마음의 되새김질로 넘어가도 좋다. 마음의 되새김질 중에 초점이 흐려지거나 잡념이 들거나 졸릴 듯할 때, 다시 입술의 되새김질로 돌아와도 좋다. 입술의 되새김질과 마음의 되새김질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고갈 수 있다.
마음에 심상(image)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편 23편을 묵상할 때, 푸른 초장과 목자 되신 예수님의 그림이 떠오른다. 친구 되신 예수님과 초장을 거닐며 담소하기도 한다.
d. 말씀의 성육신
되새김질에서 말씀이 자연스럽게 외워지면 좋다. 말씀이 마음에 스며들며,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처럼 피와 살이 된다. 기록된 성경말씀(written Word)이 성육신하신 말씀(the incarnate Word) 곧, 임마누엘 예수로 바뀌어 간다. 날마다 크리스마스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임마누엘의 뜻) 새하늘과 새땅에서 새 사람이 됨을 기도해봄 직하다.
3) 기도(Oratio)
말씀 묵상을 통하여 기도의 단계로 나아간다. 잘 먹은 젖소는 좋은 우유를 낸다. 마찬가지로, 깊은 묵상은 선한 기도를 낸다. 말씀 묵상을 통해서 진국처럼 흘러나오는 기도가 향기로운 법이큗)를 찾으며, 자아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God-centered life)을 산다. 참고로, “그리스도 안”이라는 구절이 성경에 150번 이상 나온다. 깊은 하나님 체험 속에서 언어를 놓고 침묵하는 사람들도 많다.
5) 행함(Operatio)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신령한 변화(transfiguration)를 보고 베드로는 그 곳에 거주하자고 예수님께 요청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산하여 하나님 나라 사역을 계속하신다(막 9:2-32; 눅 9:28-36; 마 17:1-13.).
믿음과 행함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성경에는 믿음의 구절 뿐만 아니라 행함의 구절들도 많다. 예를 들면,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신5:27) 예수님 왈,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 또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도 예수님 왈,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17).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명상은 태풍처럼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으로 나타난다(빌 4:13). 사도행전은 기도행전이었다. 기도가 사도행전의 산실이었다.
기도의 사람들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믿음의 역사, 소망의 인내, 사랑의 수고가 넘친다. 모세, 바울, 프란시스,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종교개혁자들, 본회퍼, 토마스 머튼 등등, 한국의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등등.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훌륭한 분들―그 이름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행함(operatio)은 사랑의 실천이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며, 몸과 마음과 삶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1. 영적 독서 기도
“영적 독서(Lectio Divina)”는 성경과 기도를 연결하는 5단계의 기도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lectio divina를 “영적독서기도”라고 의역할 수도 있다. “영적(divine)”이란 말은 존재론(ontology)적 의미(영적인 독서의 대상물을 의미)와 인식론(epistemology)적 의미(영적으로 독서를 함)를 가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새 사람, 새 가치의 영적 사람으로의 가치론(axiology)적인 변화(transformation)를 지향한다.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영성수련 방법들 중의 하나가 “영적독서기도”이다. 그런데 그 이름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영적독서기도는 한국에 많이 알려진 Q.T(Quiet Time)의 원형이다. Q.T는 영적독서기도의 단계 중에서 관상(contemplatio―라틴어, contemplation―영어)의 단계가 빠져 있거나 약한 것이 문제이다.
영적독서의 뿌리는 유대교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세기에 살았던 시프리언(?―258)는 이런 말을 했다:
“Be constant as well in prayer as in reading[lectio]; now speak with God, now let God speak with you, let Him instruct you in His precepts, let him direct you.”
기원후 6세기에 와서는 베네딕트의 [수도원 규칙] 등에서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12세기에 귀고(Guigo II, the Carthusian)가 쓴 『수도사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Reading(lectio) seeks for the sweetness of a blessed life, meditation(meditatio) receives it, prayer(oratio) asks for it, contemplation(contemplatio) tastes it. Reading, as it were, puts food whole into the mouth, meditation chews it and breaks it up, prayer extracts its flavor, contemplation is the sweetness itself which gladdens and refreshes.”
종교개혁자 루터의 『성경읽기 지침』(Instructions on How to Read the Holy Bible)과 웨슬리의 『성경읽기에 대한 조언』(Advice on Spiritual Reading)도 영적독서와 유사하다.
영적독서기도는 개인으로도 그룹으로도 실천할 수 있다. 영성수련에 있어서, 위로는 영적 지도자를 두고, 옆으로는 영적 친구를 사귀도록 하자. 향수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면 향수를 사지 않아도 향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나아가, “남의 소를 아무리 세어도 나에게 유익이 없다.”는 말을 명심하고 스스로 영성수련을 실천하자.
2. 영적독서기도의 5단계와 그 구조
전통적으로, 영적독서기도는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 읽기(Lectio)
2) 묵상(Meditatio)
3) 기도(Ortio)
4) 관상(Contemplatio)
여기서 행함(operatio) 혹은 실천적 삶이라는 다섯 번째 단계를 하나 첨가한다.
“전통은 죽은 자의 산 얼굴이고, 맹신적 전통절대주의는 산 자의 죽은 얼굴이다.”
영적독서기도의 다섯 단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선형으로 발전되어 나아간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다섯 단계의 순열과 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도―읽기―기도―묵상―기도―명상―기도―행함의 순서로 진행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 중에 쓰기(기도문, 시, 산문…), 예술적 표현(그리기, 노래하기, 춤추기…), 나누기(sharing) 등등을 할 수도 있다.,십자가의 요한은 ekdmarhk rkxdl 요약한다.
“독서에서 찾아라. 그러면 묵상에서 찾을 것이다. 기도에서 두드리라. 그러면 명상에서 열릴 것이다. (Seek in reading, and you will find in meditation. Knock in prayer,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in contemplation.)”
1). 읽기(Lectio)
성경의 한 가운데를 펼치면 시편 119:105이 나온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로 시작된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말씀(Word, Logos)이신 예수께로 나아간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식과 정보(information)만을 위해서 성경을 읽지 말고, 나의 존재와 삶의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함을 명심하며 다음의 단계를 밟자.
장소와 때
시간과 공간의 십일조에 인색하지는 않은가? 되도록 가장 좋은 시간과 장소에서 영적독서기도를 실천하자. 하루 24시간의 삶 전체가 기도가 되려면, 일상적인 삶이 아닌 기도만을 위한 집중적인 기도 시간이 필요하다.
몸 풀기와 호흡, 침묵과 기도로 준비하자
영성수련 전후에 몸 풀기와 호흡 고르기를 한다.(몸 풀기는 매달 있을 영성 세미나와 워크샵에서 시범을 보이기로 하자.) 자연스럽고 깊게 호흡을 고르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 조용히 겸허한 마음으로 서자. 호흡은 온도계(thermometer)이며 동시에 온도조절기(thermostat)이다. 온도계로 체온을 재듯이, 호흡으로 그 사람의 심적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또한 온도조절기로 방안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듯이, 자연스럽고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호흡은 마음풀기의 한 좋은 열쇠이다.
호흡훈련은 기도와 묵상, 스포츠, 무술, 예술 등에서 그리고 심지어 아기를 출산할 때에도 중요시된다. 선도(仙道)와 라자 요가(Raja Yoga)는 그 긴 역사를 통해, 호흡훈련을 상당히 발전시켰다. 그렇다고 호흡훈련이 그들만이 전유물이 아니었다. 기독교의 헤시카즘(Hesychasm)도 호흡과 자세 등을 기도의 중요한 부분으로 가르치고 훈련했다. 지면 관계상, 헤시카즘을 논의하지는 않겠다.
성경을 읽기 전에, 혹은 소리 내어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한두 시간을 침묵한 성인들이 있다. 방자히 성경이나 입을 열지 않기 위해서이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자. 성령님이 성경을 조명하실 것을 기도하자.
성경을 전심으로, 온 몸으로 읽고 듣는다.
영혼과 몸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듯이(마 22:37; 눅 10:27; 신 6:4-9), 성경을 그렇게 사랑하고 읽자, 하나남의 사랑의 편지인 성경 앞에 서면 가슴이 설레며, 영혼의 초점이 하나님께 모아진다.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TV를 잊고 생명의 소리, 복된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스러운 호흡에 맞추어 일정량의 성경을 읽어 나아간다. 서두르지 말자. 시간에 쫓겨 햄버거를 먹어 치우듯이 해서야 되겠는가? 적당한 음성으로 천천히 성경을 읽으면서 동시에 그 읽는 것을 듣자. 귀로만 아니라, 피부로 그리고 온 몸으로 그 음성의 파동을 느끼자.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세포가 깊숙이 공명함을 느끼기도 한다.
구름기둥이 멈추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여행을 멈추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멈추면, 성경을 읽다가 멈추어 서서 그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자. 그리고 다시 성령이 움직이면, 성경을 계속 읽는다(출 40:36-38).
읽는 방법들
신명기 6장 5절에 있는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이여 들어라)”은 중요한 전통이다. 온 몸과 마음으로 경건하게 읽되, 읽는 방법들은 아래와 같이 다양하다.
큰 소리 읽기―작은 소리 읽기―숨소리 읽기―마음소리 읽기―소리없는 침묵독
통독(通讀)―정독(精讀)―미독(味讀)
소요독(逍遙讀)과 체독(體讀)
낭독―교독―윤독―합독
초독―재독―암송독
참고: 기독교의 전통적인 4중 성경해석법
신비적 해석(anagogical interpretation)
비유적 해석(allegorical)
도덕적 해석(tropological)
문자적, 역사적 해석(literal, historical)
참고: 유대교의 전통적인 2중 성경 공부법
haggadah: 기독교 4중 성경해석법의 상부와 유사.
halakah: 기독교 4중 성경해석법의 하부와 유사.
평생 독서: 7범주
a. 동양 전통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기독교 전통에는 “네 권의 책(Four Books)”이 있다.
네 권의 책=성경+자연+영혼+삶(the Life, Jesus Christ). 후커(Hooker)―웨슬리(Wesley)와 감리교―기독교 전반으로 이어지는 “사변형(Quadrilateral)” 전통도 있다.
b. 책 중의 책: 성경
성경은 물론이요 다른 “책”들(위의 7범주의 “책”들)도 읽자. 예를 들어, 자연이라는 책, 영혼이라는 책, 그리고 역사라는 책도 읽자. 자연과 영혼과 역사에 하나님의 흔적(vestige)이 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성경 뿐만 아니라 자연과 영혼과 역사의 원 저자이시며 지휘자이시며 재창조자이다. 평생의 독서 계획을 수립하자. 평생의 독서는 자손들과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의 아버지는 늘 책만 읽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은 많은 독서로 양식이 풍부하니 사회를 위해서 일을 좀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일을 권유했다. 그러나 처칠의 아버지는 그저 책만 읽었다. 사람들은 그를 무능한 사람으로 간주했다. 무능한 사람들을 보면 "처칠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또 있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과연 처칠의 아버지의 독서는 비생산적인 일이었을까? 바로 그 독서가 처칠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빚은 것이다.
2) 묵상(Meditatio)
“복 있는 사람은…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히브리어인 “Hagah”는 보통 묵상(meditation)으로 구약에 번역되어 있다. Hagha는 내면화(interiorization)와 말씀을 계속 되뇌이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인 “meditation”은 라틴어인 “meditatio”에서 유래하며,
"meditatio”는 그리스어인 “melete”와 유사하다. “Melete”는 돌보다(care), 공부하다(study), 연습하다(exercise) 등의 의미를 가진다. “Meditation”의 어근인 “med”도 치료하다(cure), 돌보다(care) 등의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면, medicine=약, 의학)
“heal,” “whole,” 그리고 “holy”는 같은 어원을 가진다. 곧, 치유되(cure, heal) 전인(whole person)이 건강과 평화를 얻으면 거룩해지는(holy) 것이다. 묵상은 재창조와 구원을 향한 길이다.
예수는 습관적으로 새벽에 혹은 밤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묵상하곤 하였다.
“나는 평생 현자들을 보고 들으며 자라왔다. 그런데 침묵과 고요함보다 더 유익한 것을 찾지 못했다.”
(All my days I have grown up among the wise, and I have not found anything better for one than silence and stillness.); 시므온, 『사막의 교부들의 금언』
말씀 묵상과 내면화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소개한다: 역대상 29:17-19, 잠언 4장.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눅 2:19) 누가복음 2:51. 예수님 자신도 성경(Hebrew Scriptures)을 가지고 일종의 영적독서기도를 하셨음 직하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1:4-6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답은 이사야 42:6-7과 61:1에 대한 묵상의 결과가 아닐까? 마태복음 22:37-40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갈파하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신명기 6:5)과 이웃 사랑(레위기 19:18)을 비롯한 성경 전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묵상을 하셨을 것이다. 관주(貫珠)성경의 의미도 바로 일이관지 하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1:2-3의 기록도 이사야 40:3에 대한 묵상이 아닐까? 마음에 대한 다음의 구절들도 참조하자: 시 27:3; 27:3; 51:10; 73:1; 119:2; 138:1; 삼상 2:1; 21:12; 27:1.
어떻게 묵상할까? 일기―묵상―기도―명상의 전 단계가 성령의 방법을 따른다. 수영 책만 보고 수영을 잘 할 수 있을까? 수영은 수영함으로써 배운다. 묵상도 묵상함으로써 배운다. 성령이 묵상의 대 선생이시고 신앙의 선배나 친구나 책은 보조 수단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몇가지 묵상 방법을 논하자.
a. 분심 다루기
분심을 원숭이 또는 코끼리의 코로 비유한다. 분 심 자체도 우리 존재의 한 모습이므로 부정하지 말고 측은지심으로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분심꺼리를 “오게 하고, 가게 하라(Let it come, let it go).”
묵상을 하다가 잡념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잡념을 붙들고 싸우느라고 더 많은 잡념을 만들지 말자. 잡념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잡념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잡념이 저절로 온 것처럼 저절로 가도록 하자. “Let is come, let it go.” 호흡을 가다듬거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계속 묵상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오감(五感)을 조절하여 잡념을 방지하자. 한편, 오감을 적극적으로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다. 내적인 영적 오감도 프란시스처럼 활용할 수 있다(The Life of St. Francis in Bonaventure, Bonaventure, p. 262-3).
오감과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전통은, 프란시스(약 1181-1226) 혹은 보나벤처(약 1217-1274)의 삶의 나무(The Tree of Life,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묵상이다)와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 약 1491-1556))의 영성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으로 이어진다.
b 소의 되새김질(qkscn)
읽은 말씀에 대해서 느끼고(sense and feel) 상상하고(imagine), 생각하고(think) 직관적으로 공명하라(intuitive resonance). 읽은 말씀 중에서 특히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소처럼 계속 되새김질하자. 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듯이, 말씀에서 달고 오묘한 맛이 나온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내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적신다. 말씀이 내면화 된다. 목판 활자를 진흙에 대고 누르듯, 말씀이 진흙 같은 나의 존재에 서서히 새겨진다.
쉼터: 이조 시대에 살았던 한 선비의 이야기이다. 그는 남에게 책을 빌려서는 책을 한 장 씩 찢어 도포 자락에 넣고 다니면서 외웠다. 다 외운 뒤에는 그 종이를 씹어 먹었다고 한다.
c. 입술로 마음으로
소처럼 말씀을 되새김질할 때, 소리내어 말씀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다가, 마음의 되새김질로 넘어가도 좋다. 마음의 되새김질 중에 초점이 흐려지거나 잡념이 들거나 졸릴 듯할 때, 다시 입술의 되새김질로 돌아와도 좋다. 입술의 되새김질과 마음의 되새김질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고갈 수 있다.
마음에 심상(image)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편 23편을 묵상할 때, 푸른 초장과 목자 되신 예수님의 그림이 떠오른다. 친구 되신 예수님과 초장을 거닐며 담소하기도 한다.
d. 말씀의 성육신
되새김질에서 말씀이 자연스럽게 외워지면 좋다. 말씀이 마음에 스며들며,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처럼 피와 살이 된다. 기록된 성경말씀(written Word)이 성육신하신 말씀(the incarnate Word) 곧, 임마누엘 예수로 바뀌어 간다. 날마다 크리스마스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임마누엘의 뜻) 새하늘과 새땅에서 새 사람이 됨을 기도해봄 직하다.
3) 기도(Oratio)
말씀 묵상을 통하여 기도의 단계로 나아간다. 잘 먹은 젖소는 좋은 우유를 낸다. 마찬가지로, 깊은 묵상은 선한 기도를 낸다. 말씀 묵상을 통해서 진국처럼 흘러나오는 기도가 향기로운 법이큗)를 찾으며, 자아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God-centered life)을 산다. 참고로, “그리스도 안”이라는 구절이 성경에 150번 이상 나온다. 깊은 하나님 체험 속에서 언어를 놓고 침묵하는 사람들도 많다.
5) 행함(Operatio)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신령한 변화(transfiguration)를 보고 베드로는 그 곳에 거주하자고 예수님께 요청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산하여 하나님 나라 사역을 계속하신다(막 9:2-32; 눅 9:28-36; 마 17:1-13.).
믿음과 행함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성경에는 믿음의 구절 뿐만 아니라 행함의 구절들도 많다. 예를 들면,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신5:27) 예수님 왈,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 또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도 예수님 왈,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17).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명상은 태풍처럼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으로 나타난다(빌 4:13). 사도행전은 기도행전이었다. 기도가 사도행전의 산실이었다.
기도의 사람들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믿음의 역사, 소망의 인내, 사랑의 수고가 넘친다. 모세, 바울, 프란시스,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종교개혁자들, 본회퍼, 토마스 머튼 등등, 한국의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등등.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훌륭한 분들―그 이름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행함(operatio)은 사랑의 실천이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며, 몸과 마음과 삶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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