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정욕

2007. 12. 12. 21:39참고자료/5,영성 자료

영성과 정욕
영성생활이란 순수한 지·정·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지.정.의에는 자유가 있다.

사람이 정욕(애정과 욕망)적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혼인 지.정.의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다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한다는 것은 이 혼인 지.정.의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같이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지.정.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마치 망치를 강도에게 주면 살인무기가 되지만, 훌륭한 건축가에게 주면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언제든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은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지으는 것이다.

우리가 광야에서 연단을 받는 이유도 자기 중심적으로 행하는 혼(지.정.의)을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지.정.의(혼이)가 되게 하기 위한 연단인 것이다.

절제의 중요성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하였듯이
우리는 천국에서 누릴 상급을 쌓기 위하여 이 세상의 정욕을 절제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이에 대해, 무절제의 결과란... 욕망이 우리 영혼에 미치는 두 가지 해가 있는데...욕망의 절제 못함이란 그 하나는 “앗음”이요 또 다른 하나는 “끼침”이라 파악해 준다.

(1) 앗음 - ``하나님의 얼을 빼앗아 간다``는 뜻으로...

얼이란 정신, 넋, 혼을 말하는데, 정욕, 특히 욕망에 지배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대한 정신, 넋, 혼을 빼앗기게 된다. 하나님 아닌 무엇에 정신이 쏠려서 그 욕이 영혼 안의 자리를 차지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위한 수용력이 그만치 줄어든다는 것을 말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애착과 피조물에 대한 집착이 상반되는 만큼, 우리의 마음 안에 피조물에 대한 애집과 하나님에 대한 애착이 서로가 용납될 수 없음임을 말한다.
감각적인 것과 영성적인 것,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이 두 사이에 무슨 상관성이 있단 말인가? 우리 마음이 감각에 쏠리고 정신에 지배되는 한 순수한 영적인 정신이 마음 안에 들어오기는 불가능하다.

마태복음15:26을 보면, “…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 말씀에 대하여 요한의 이해는 오직 하나님의 영을 받으려고 피조물에 대한 욕심을 끊는 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라 하시고, 피조물로 제 욕심을 기르려는 자들은 개에다 비교하였다.

자녀들은 그 아버지와 함께 한 상에서 한 접시 즉 당신의 영으로 먹게 하시고, 개들은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맛보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이 모든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녀들의 빵은 그들의 차지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피조물의 부스러기를 떠나서 아버지의 영의 식탁에 앉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들처럼 언제나 허덕이며 돌아다니게 되니, 부스러기로는 허기증만 더 할뿐, 주림이 가시지 않는 법이다. “저희로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저희는 식물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시59:14-15)라고 하였다.

바로 이것이 육을 지닌 자의 특성으로서, 그는 허기증에 걸린 사람처럼 항상 불만이 있고 못 마땅해 하는 것이다.

사실 피조물에 허덕이는 그 주림과 하나님의 영에서 오는 만족감과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그러기에 영혼의 욕에서 일어난 이 허기증이 먼저 가시지 않으면 피조물에서 오지 않는 만족은 영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하나의 주체 안에 두 상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 여기 상반이란 주림과 배부름이다.

(2) 욕이 영혼에게 끼치는 결과

① 욕이 영혼을 피로에 지치게 한다.

예를 들면, ㄱ) 철부지는 어머니를 항상 졸라대면서 언제 한 번 만족한 적이 없다. 보배가 탐이 나서 땅을 뒤지는 사람이 피로에 지치듯이 욕심이 요구하는 바를 얻으려고 마음은 지친다. ㄴ) 연애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바랐던 날에 모처럼의 기회가 수포로 돌아갈 때, 허탈증에 빠지는 것처럼 마음은 욕을 가지면 가질수록, 채우면 채울수록 허탈증에 걸린다. 그러므로 정욕이 마음을 피로에 지치게 함은 분명하다.


② 괴롭게 함이다.

이 경우 영혼은 고문하는 밧줄로 어느 한 자리에 묶여있는 사람과 같아서 거기서 풀려 나가기까지는 전혀 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사기16:16을 보면,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이 마음이 번민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하였다. 욕심이 대단할수록 그만치 마음도 괴롭다. 따라서 욕이 있을수록 괴로움이 더 크고, 욕을 잔뜩 지니는 마음일수록 더더욱 괴로움을 당한다.
원수의 손에 떨어진 자가 괴롭고 슬픈 것처럼, 자기를 정욕에 내맡긴 마음은 괴롭고 슬프다. 마치 삼손이 블레셋에 붙잡혀 눈이 뽑히고 맷돌질하는 고통과 슬픔과 같다. 욕이라는 원수가 그 안에 살고 승리를 거두면 영혼도 이와 마찬가지로 야위고 장님이 된다.


③ 마음을 어둡게 하고 눈멀게 한다.

ㄱ) 마치 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하여서 밝은 태양이 비치지 못하듯, 흐린 거울에 얼굴이 맑게 비칠 수 없듯, 흙탕물에 비치는 사람의 모습이 똑똑치 않듯이 정욕에 사로잡힌 영혼은 이성이 어두워져서, 인간 이성의 태양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지혜의 태양도 밝게 비출 자리가 없는 것이다.
ㄴ) 그리고 이성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의지가 무디어지고 기억이 흐려져서 올바라야 할 작용들이 어지러워진다.
왜냐하면 이런 능력들이 작용함에는 이성에 딸린 만큼 이성이 막히는 경우 이것들은 방향을 잃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둔 하늘에 태양의 빛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이성이 하나님 예지의 비추심을 받을 수 없고, 의지도 마치 흐린 거울에 비치는 얼굴이 아리송한 것처럼, 순수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안아들일 재간이 없다.
욕의 어둠에 현혹된 기억도 이와 못지 않으니, 흙탕물에 비친 사람의 모습이 똑똑치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모습을 맑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욕에 이끌릴 때마다 이성이 흐려져서 장님이 되는 것이다. 마치 불나비가 불빛을 좇다가 죽는 것처럼, 물고기가 어부가 밝힌 불빛을 따라가다가 그물에 걸려 잡혀 죽는 것처럼, 정욕에 사로잡힌 자의 마음도 욕에 이끌리다가 장님이 정욕에 이끌리는 자의 마음은 어둡게 되고, 눈멀게 되는 것이다.
농부가 열매를 얻기 위하여 땅을 가꾸는 수고가 필요하고, 이 수고가 없이는 다만 잡초만 남는 것처럼, 성도들도 영혼의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정욕을 끊음이 필요하다.


④ 영혼을 더럽히고 때 묻히는 일이다.

“숯을 만지면 너도 더러워지고”라고 하였듯. 언제 숯을 만지게 되는 건가? 어느 피조물로 마음의 욕을 채우는 바로 그때이다. 마찬가지로 천하일색인 얼굴도 검댕칠을 하면 더러워지듯이, 고르지 못한 욕을 지니는 영혼도 더럽고, 미워질 수밖에 없다.

작은 욕심 하나가 비록 큰 죄거리가 아니라도, 영혼을 굴종시키고, 더럽히고, 추하게 만들기에 족하다. 그래서 이 욕이 씻어지기까지는 하나님과의 합일에 도달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욕정에 맡기어져,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그 영혼은 얼마나 추할 것인가? 얼마나 하나님에게서 동떨어져 있으며, 얼마나 하나님의 순결

하심에서 멀 것인가?
가지가지 욕구가 마음 안에서 빚는 가지가지 더러움은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치로 헤아릴 수도 없다. 욕 하나하나가 그 질과 양에 따라, 혹은 크게 혹은 작게 영혼 안에다 더러움과 추함을 끼친다는 사실, 그리고 이성의 단 하나의 무질서로 해서 혹은 크고 작은 무수한 더러움이 생길 수 있으며, 그나마 하나하나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 내지 이해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놀랍고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⑤ 미지근하게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혼이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덕에 나아가고 오래 갈 힘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사실 욕구의 힘이 갈라지면 갈라질수록, 그 하나하나에 대한 힘도 줄어드는 법이다.
전도서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하신 것처럼 뭉치면 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의 욕구가 덕이 아닌 다른 것에 쏠린다면, 덕을 위한 힘이 약해질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자잘한 것들에 마음을 쓰는 영혼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것처럼, 싱그런 향료도 막아두지 않으면, 꽃다운 향기가 가시는 것처럼, 영혼도 이와 같아서 하나님의 욕 하나에 골똘하지 않으면, 덕의 열과 힘이 가시고 마는 것이다.
또한 정욕이 영혼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나무 둘레에 돋아난 새순들이 많아서 열매가 열리지 못하는 것처럼 덕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욕은 이와 같이 영혼에게 어느 선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지고 있는 것마저 앗아가는 것이 분명하다. 영혼 안에 살고 있는 욕이, 그 불쌍한 영혼을 어떻게 다루는지, 그런 영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얼마나 불행한지, 이웃에게는 얼마나 메마르고, 하나님의 일에는 얼마나 둔하고 게으른지를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세상 것에 대한 욕만큼, 영혼이 덕에 나아가는 데에 굼뜨고 슬프게 만드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덕을 얻으려는 마음과 힘을 쓰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욕과 정을 가지지 않은 데에 있다.

'참고자료 > 5,영성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성의 소고  (0) 2007.12.12
성령으로 기름부음  (0) 2007.12.12
당신의 아침은 경건합니까?  (0) 2007.12.12
이웃사랑의 영성  (0) 2007.12.12
영성위기시대의 영성  (0) 2007.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