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열릴 때 영어도 열린다

2007. 12. 5. 23:26선교자료/1.글로벌선교회

마음이 열릴 때 영어도 열린다

< 앞으로 틈틈이 이한규 목사님이 쓰신 네트영어칼럼을 게시합니다. 2008년 3월 3일부터 이한규 목사님이 직접 인도하시는 네트영어 강좌가 분당 샛별 얼라이언스 미션센터에서 시작됩니다. 개설되는 강좌는 칼럼 아래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

몇 년 전 대만에 갔다. 공항에서 차를 빌려 유명한 관광지인 화련으로 갔다. 그곳에서 2시간쯤 관광하고 오후 5시에 타이베이로 향했다. 그때 구정 귀경 차량으로 길이 너무 막혀서 짧은 해변 길 대신에 중앙횡관 도로를 탔다. 그 도로는 3000미터 이상 되는 산맥을 뚫고 낸 난코스 도로라서 운전도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한참 달리자 휘발유가 점점 떨어졌다. 도중에 작은 마을들이 몇 개 있었지만 일찍 주유소를 닫아서 휘발유를 넣을 수 없었다. 밤 11시가 넘어서면서 일란이란 도시 근처로 진입할 때 휘발유가 거의 떨어진 상황에서 한 운전자에게 물었다. “주유소가 어디 있어요?(Where is gas station?)” 청년인데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주유구를 가리키며 “휘발유 탱크를 채우려고 해요(I am going to fill up the tank).”라고 하자 청년은 상황을 이해한 듯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를 따라 10분쯤 달리자 드디어 문을 연 주유소가 보였다. 친절히 안내해준 청년에게 내가 말했다. “Thank you.” 그때 그가 손짓하며 말했다. “No.” 아마 “아니에요.”라는 뜻으로 말한 것 같았다. 그 대답을 듣고 재미있어서 한참 웃었다.

나는 처음 영어를 배울 때 “Thank you.”란 말에 대한 대답으로 한 “You are welcome.”이란 문장을 교과서에서 “천만에요.”라고 해석해 놓은 것이 궁금했다. 물론 전체 맥락으로는 맞는 해석이지만 영어의 “You are welcome.”이란 표현과 국어의 “천만에요.”라는 표현이 마음속에서 매칭(matching)되지 않아 미국에 가서도 누가 “Thank you.”라고 하면 “You are welcome.”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언어를 배우려면 배우려는 언어에 맞춰 ‘모국어 표현의 자연스러움’을 희생해야 한다. 즉 영어를 배우려면 영어 표현에 맞춰 자연스런 한국어 표현을 희생해야 한다. 자연스런 한국어 표현만 고집하면 영어는 내 관념 및 생활과 일치된 상태에서 습득되지 않고, 결국 무조건 외울 수밖에 없으니까 많이 공부해도 영어는 잘 늘지 않는다.

언어는 끊임없이 파생어를 만드는 생물과 같다. 지금도 파생어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왕따’란 말은 ‘왕’과 ‘따돌림’이 합성된 단어로 ‘최고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뜻한다. 처음에 속어로 시작된 ‘왕따’란 말은 아마 곧 국어사전에 들어갈 것이다. 현재 쓰는 많은 단어들도 과거에 그런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영어로 ‘welcome’은 ‘well(알맞은)’과 ‘come(오다)’의 합성어이다. 결국 ‘welcome’이란 단어는 ‘알맞게 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단어의 자연스런 한국어 표현은 ‘환영받는’이다. 그러나 ‘환영받는’이란 표현을 고수하면 ‘welcome’이 지닌 원래의 뜻 파악이 더디게 되고 그 단어가 합성어임을 모른 채 무조건 외워야 한다. 그러나 ‘알맞게 온’이란 표현이 비록 어색해도 마음속으로 그 표현의 의미를 인식할 때 ‘welcome’이란 단어를 외울 필요가 없이 쉽게 개념화시킬 수 있다.

“You are welcome.”이란 문장도 “당신은 알맞게 오셨어요.”라고 표현하면 “천만에요.”라는 표현보다 한국어로 훨씬 어색해진다. 그러나 영어로는 그 어색한 표현이 더 원래의 뜻에 가깝다. 즉 “You are welcome.”이란 말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신은 제게 잘 오셨어요. 저도 도울 수 있어서 기뻐요(It's my pleasure). 제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No problem). 크게 마음 쓰지 마세요(Never mind).”

국어를 사랑해야 하지만 영어를 배울 때만은 자신의 개념 속에 굳게 자리 잡힌 국어의 자연스런 표현을 희생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처럼 조금 한국어 표현이 어색해도 영어의 원래 뜻에 충실한 방식으로 한국어로 표현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 영어도 크게 늘게 된다. 결국 마음의 문이 열려야 영어의 문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