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눈물 (딤후 1:1-5)

2007. 11. 30. 20:58목양자료/2.설교자료

아름다운 눈물 (딤후 1:1-5)

어떤 신앙이 좋은 신앙일까요? 좋은 신앙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 눈물이 많은 신앙이 좋은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눈물 흘리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일생에 세 번만 울어야 한다. 태어나면서 울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울고, 나라를 잃었을 때 운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울음보다는 웃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 눈물이 많았습니다. 예수님도 세 번이나 우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우셨습니다. 바울도 눈물의 사람입니다. 다윗도 눈물이 많았습니다. 예레미야도 눈물의 선지자로 유명합니다. 디모데도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눈물은 하나님 앞에서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느 목석같은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과학자는 자꾸만 우는 자기 부인이 왜 우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인의 눈물을 받아서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눈물에는 약간의 소금과 포도당, 그리고 다량의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물을 어찌 과학으로 분석해 볼 수 있겠습니까? 신앙에 있어서 눈물은 넘치는 의미가 있습니다. 눈물이 없다는 것은 아직 넘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 진정으로 울어야 할 눈물이 있습니다.

1. 감사의 눈물입니다.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그러면 눈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눅7:38에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신 한 여자가 나옵니다. 이 여자는 죄 많은 여자였는데 유대에서 여자에게 죄인이란 칭호는 창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여자였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그녀는 한없는 눈물을 흘렀습니다.

지난 날 방황하던 죄악과 저주에서 구원 받은 일을 생각하면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고난의 경험이 없거나 잊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탄식했던 율법 아래서의 생활이란 저주 그 자체였습니다. 저도 그것을 경험했는데 율법 아래 삶이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십자가 보혈로서 구원해 주신 것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2. 회개의 눈물입니다.

진실로 회개하면 눈물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시6:6에 다윗의 눈물이 나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했습니다. 다윗은 충신 우리아를 죽게 만들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는 범죄를 저지른 후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생각 날 때마다 계속하여 울었습니다. 진실로 회개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아는 양심 상징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양심을 죽였습니까? 죄악과의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충신인 양심을 얼마나 버렸습니까? 다윗이 환난을 당했듯 양심을 죽이면 환난이 옵니다. 영의 환난, 육의 환난이 옵니다. 그래서 롬2:9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8-10) 외쳤습니다.

눈물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천사가 천국 문을 열기 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의 피 한 방울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천국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급히 다시 세상에 내려와 슬픔 가운데 죽어간 한 여인의 한숨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흘린 노인의 눈물 한 방울을 담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자 천국 문이 활짝 열리더랍니다. 물론 이것은 교훈을 위한 이야기이지만 분명한 것은 회개 없이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이 담긴 눈물은 굳게 닫힌 천국 문도, 돌같이 굳어진 마음도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릎 부흥」이라는 책을 쓴 레오나드 레이븐힐의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가? 라고 묻지만, 하나님은 어찌하여 너희는 깨어지지 않느냐? 라고 물으신다. 또한 우리는 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태산같이 쌓아 놓고 왜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가? 라고 의아해 하지만, 하나님은 어찌하여 너희는 순종하지 않느냐? 라고 물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굽어보시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통곡하기를 원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깨어지고 부서지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3. 사랑의 눈물입니다.

우리 주님의 눈물이 사랑의 눈물입니다. 요11:35에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했습니다. 주님은 친구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주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사랑의 눈물은 우리도 흘려야 할 눈물입니다. 주님을 모르고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갈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답답하고 애통스럽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다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눈물은 예레미야의 눈물이기도 합니다. 죄악으로 멸망할 자기 백성을 위한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렘9:1에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근원이 될 꼬 그렇게 되면 살육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했습니다. 그 마음에 성령이 계셨기 때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바울도 사랑의 눈물이 많았습니다. 자기 욕망 따라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 눈물로 외쳤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사는 우리 북녘동포들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특히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죄수 아닌 죄수들이 당하는 고통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죽도록 일을 시키고 조금만 맘에 들지 않으면 짐승보다 더 혹독하게 다룬다고 합니다. 정치범수용소에선 보위원이 자행하는 사형은 비일비재하며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 통치자에 대한 충성인 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2005년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을 탈출한 신동혁씨는 최근 발간한 수기 「세상 밖으로 나오다」에서 북한의 실상을 폭로했습니다. 신동혁씨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날 때부터 죄수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1996년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하다 공개처형 당했으며, 본인은 14세 나이로 불고문을 당하는 등 온갖 만행을 겪었습니다. 그가 본 수용소 사건 가운데 소지품에서 밀 이삭이 몇 개 나왔다고 어린 소녀를 때려죽인 일도 있었고, 일하다 지친 노인들이 쉬니까 논다고 구둘 방에 불을 넣어 데워 죽인 일도 있었고, 매일 발전소 건설에 내몰아 하루에도 수없이 죽어서 나왔습니다. 그는 2005년 1월 2일 지옥만큼 악한 수용소를 극적으로 탈출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족의 인권과 구원을 위해 바울처럼 사랑의 눈물을 하나님 앞에서 흘려야 하겠습니다.

4. 진실하고 솔직한 눈물입니다.

눈물이란 언제나 거룩한 것만은 아닙니다. 내 설움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고단할 때 막바지에서 울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이나 같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울어야 할 고통이 있다면 우시기 바랍니다. 우시되 그냥 우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울지 않는다고 믿음 좋은 것 아닙니다.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 합니다. 물론 울지 않아야 할 때 불신의 울움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 정상입니다.

성경에서도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시56:8에 다윗은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울었으면 그 눈물을 기억해 달라고 눈물 병에 담아달라고 했겠습니까? 히스기야도 병들어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사38:5)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를 때 속이 상해서 울 때도 있었습니다. 시42:3에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한나도 자식을 갖지 못한 괴로움에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라는 귀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바벨론 강가에서도 백성들은 울었습니다. 그러자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은 안 그러는 척하는 문화가 팽배합니다. 힘들어도 힘 안 드는 척, 슬픈 일이 있어도 아무런 일 없는 척하는 체면과 위선의 문화가 팽배합니다. 이런 완고하고 거짓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까지 참으면 위로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형편을 내어 놓고 우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역사는 눈물의 연속이었습니다. 일본 식민지 아래에서 나라 빼앗긴 설움으로 온 나라가 방성대곡하였습니다. 해방이 되었으나 625 동란으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산천은 초토화 되었습니다. 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은 보릿고개를 지내며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풀뿌리 나무뿌리 캐먹으면서 겨우 목숨만 부지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시집온 우리 부모들은 밤만 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울 수 있었기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도 우셨습니다. 성령께서도 탄식하십니다. 본문의 디모데도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눈물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네 눈물 보기를 원한다고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눈물 보기를 원하십니다. 천국은 마른 눈으로는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감사의 눈물, 회개의 눈물, 사랑의 눈물, 문제를 애통하는 아름다운 눈물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응답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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