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에큐메니칼 선교 운동 비판

2007. 8. 20. 00:27교회사자료/1.기독교회사

에큐메니칼 선교 운동 비판

 

 

방 재 홍

 

 

                    목          차

1. 서 론 ------------------------------------------------------1

2. 에큐메니칼의 의미-----------------------------------------------1

3. 에큐메니칼의 역사적 배경과 성격--------------------------------------1
     3-1. 에큐메니칼의 역사적 배경-------------------------------1
     3-1-1. 19세기 이전
     3-1-2. 19세기 이후
     3-2. 에큐메니칼의 기원과 형성-----------------------------------2
     3-2-1. 선교회의
     3-2-1-1. 세계선교대회
     3-2-1-2. 국제선교협의회
     3-2-1-2-1.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3-2-1-2-2. 신앙과 직제운동(Faith and Order)
     3-2-1-2-3. 생활과 봉사운동(Life and Work)
     3-2-1-2-4. W.C.C의 형성
     3-3. 에큐메니칼의 성격
     3-3-1. WCC의 정의와 존재목적
     3-3-2. WCC와의 회원자격과 상호관계
     3-3-3. WCC의 권한과 한계
     3-3-4. WCC의 기능

4. 에큐메니칼 운동 총회와 동향
     4-1. 암스텔담 제1회 총회
     4-2. 에반스톤 제2회 총회---------------------------------------------6
     4-3. 뉴델리 제3회 총회----------------------------------------------6
     4-4. 업살라 제4회 총회----------------------------------------------6
     4-5. 나이로비 제5회 총회=------------------------------------------7
     4-6. 벵쿠버의 제6차 회의------------------------------------------7

5. 에큐메니칼 운동 비판을 통한 현장목회의 적용점.
     5-1. 에큐메니칼을 통한 목회적 대안
     5-2. 교회의 일체성은 교리적이어야 한다.
     5-3. 자유주의 등의 오류를 포용하는 것은 교회의 연합은 잘못이다.
     5-4. 우리는 전제주의적 교회를 두려워 한다.
6. 결 론

8. 참고문헌


1. 서론

  교회사가들은 20세기를 에큐메니칼의 시대라고 한다. 그중의 대표적인 하나가 세계 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약칭 W.C.C)이다.
그런데 이 에큐메니칼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각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포괄적인 기구가 되어 명실공히 제2의 UN으로 등장하였다. 그래서 유엔 사무총장도 W.C.C 의장에게 협력을 부탁하기까지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나아가 결과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한국교회를 분열시킨 이유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교회의 분열과 선교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에큐메니칼 선교론의 원리와 교리들을 소개하고 복음주의 입장에서 비판하므로 바람직한 선교론을 정립하고자 한다.

2.  에큐메니칼의 의미

에큐메니칼, ecumenical, 이란 어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누리’ 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쿠메네(oikoumene)’ 에서 파생된 말로서 ‘전 세계적인 교회(world-wide Christian unity)’ 를 의미한다. 오리게네스는 새로운 의미를 부가해 오이쿠메네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류로서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는 민족적, 국가적 구별을 초월한 인류의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인 교회, 그 교회가 전세계로부터 모여서 개최한 교회 회의도 콘칠리움 에큐메니쿰(Comcilium Oecumenicum)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15회 사용되었다. 이 말은 교리문제로 인한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교회회의에서 이미 사용되었다. 연합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에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나타나며, 니케야 신조도 교회의 연합, 거룩, 보편성 및 사도성을 말한다. 그러나 전세계적이고도 조직적인 연합운동은 20세기의 선교문제로부터 시작된다. 곧 이 단어는 자신들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교회들을 연합하는 운동을 지칭하게 되었으며, 특히 이 단어는 세계 교회협의회 즉 W.C.C.(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와 그 산하 기관의 신학 또는 공식적인 견해 및 신학적 경향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면서 WCC 초대 총무를 역임한 비서트 후프트(Vissert Hooft)는 이 에큐메니칼 용어를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 '전 로마 제국', '전 교회', '교회의 우주적 타당성', '교회의 세계적인 선교', '교회간의 관계와 일치', '기독교의 일치 의식'등 일곱가지로 표현하고 그 중 후자 세 개념, 교회의 세계적 선교, 교회들간의 일치, 기독교의 일치 의식을 20세기 현대적인 의미에 있어서 에큐메니칼의 정의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에큐메니즘이란 말은 금세기에 시작된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한정되고 있으나 본래의 의미로 본다면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뿐 아니라 더 큰 의미를 가진 말, 즉 그리스도 안에서 전세계의 일치, 전 인류의 일치도 포함하는 것이다.

3. 에큐메니칼의 역사적 배경과 성격

3-1. 에큐메니칼의 역사적 배경

   세계교회 협의회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44개국 147교인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설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에와서 생겨난 새로운 운동이 아니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내려운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3-1-1. 19세기 이전

 1세기 중반에 새로이 나타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인종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유대인과 그리스 로마세계로 부터 동시에 배척받고 팝박받은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하고있었는데 그 이유는 강력한 사랑의 교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곧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 사상에 의해 교회의 일체성이 깨어질 위기에 있었다.이렇게 인간적인 요소와 이질적인 이단사상이 교회의 일체성을 해치려 할때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적 전통의 일체성 내지는 제도작 전통의 일체성을 내세우며,교회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다가 313년의 밀라도 칙령을 통해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서 박해의 시기가 끝나며,급속히 성장하면서 교회일치의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이전까지는 신앙,예배,내적 영성에 있어서의 일치를 추구하였으나 이제는 제도적 일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자 국가 통치자들은 교리적,신학적으로 교리가 나뉘어짐으로서 이것들을 피하기 위해 니케아, 콘스탄티노플,에베소,칼케톤,등지에서 여러 에큐메니칼 종교회의를 개최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라틴교회와,헬라교회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교리적인 측면과 예배의식의 측면과 아울러 주교들간의 경쟁과 대립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하여 동,서의 분열을 가져오게 되며,서로의 정통성을 주장하였다.그러다가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또다른 분열의 폭풍울 겪게 된다.이것은 종교개혁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카톨릭에서 나온 프로테스탄트는 더 심각한 분열의 길을 걷게 된다.

3-1-2. 19세기 이후

 종교개혁이후 나타난 개신교 정통주의는 지나치게 교리에 집착하고 사변적 논쟁을 일삼음으로서,교회의 영적생명력과 활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경건주의가 일어나게 된다.경건주의는 개인적 회개와 중생체험,성경연구와 기도,살아있는교제와 영혼구원을 강조했고,이것은 18,19세기의 영국과 미국의 부흥운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이것은 곧바로 현대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고불리우는 윌리암 캐리에 의해 시작된 19세기 선교운동에 밑거름과 같은 역활을 하였다. 그래서 왕성한 교회의 성장을 가져오고,선교단체의 왕성한 활동들이 있었다.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를 이루지 못한 여러선교단체들은 선교사역을 수행하면서 여러가지 한계와 문제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선교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문제의식이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을 일으키게 된 주요요인인것이다.그래서 19세기 중엽부터는 선교단체들간의 연합과 일치운동이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 선교단체들간의 연합운동은 결국 교회일치 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인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가 열리도록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것이다.


3-2. 에큐메니칼의 기원과 형성

 지금까지 우리는 에큐메니칼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있다. 이제 우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에딘버러 선교대회에서 촉발된 교회연합운동이 어떤 과정과 축을 통하여 세계교회 협의회(W.C.C)라는 결정체를 이루게 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3-2-1. 선교회의

 에큐메니칼의 출발점인 선교회의는 첫번째 항목으로 비교적 중요한 것이었고 연합하기에 쉬웠다고 한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19세기 이후의 역사적인 배경하에서 런던의 각 선교회 총무들이 모여 그들의 선교사역을 위하여 자동적으로 연합운동의 기운을 조성하게 되었다.

 3-2-1-1. 세계선교대회

 1910년 6월14일부터 23일까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 있는 대학교 뉴 칼레지에서 중요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다.이 회의의 구성원으로는 서방이 핵심을 이루고,특수선교단체등,세계각국 169개 교파에서 파송한 1,2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공식 참석했다.기도와 연합의 분위기로 날마다 15분간의 기도로 시작했고,정오에는 30분씩,선교사역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였다. 여기에서의 공동적 당면문제는 8개가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① 비기독교 세계의 복음전도 방법. ② 선교지 교회문제 ③ 국민생활을 기독교화 하는데 관계되는 교육문제 ④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선교적 사명, ⑤ 선교사 양성 ⑥ 국내 선교문제 ⑦ 선교와 정부와의 관계문제 ⑧ 교회연합을 위한 협력과 추진문제등이다.

3-2-1-2. 국제선교협의회

 국제선교협의회는 1921년 뉴욕 모호크호반에서 조직되어 세계적으로 선교사업을 격려하고,협조하기 위하여 시작 되었다. 이 회의는 교회의 협의회가 아니고,작은 지역적 협의회,또는 연합회가 모인 협의회 였다. 그리고 선교와 관련된 문제를 연구, 논의,협조 해결하는데 그 목표를 삼았다.

3-2-1-2-1.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에딘버러 대학교의 뉴 칼리지 (New College) 건물에서 159개의 선교단체가 파송한 1200명 이상의 세계선교 관련자들이 참석하여 개최된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19세기 선교 및 연합운동의 총결산이요, 20세기 선교 및 연합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회의 목적은 모두 다른 종교 (비 기독교) 들과 얼굴을 맞대고 선교사업과 문제를 같이 연구 , 협의하는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중요하게 논의되었던 것들은 ①비그리스도교 세계에서의 복음전도 방법  ②선교지교회 문제  ③국민생활을 기독교화하는데 관계되는 교육문제  ④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선교적 사명  ⑤선교와 정부와의 관계  ⑥교회연합을 위한 협력과 추진 문제등이었다.
    그 중에서 선교와 연합의 필요성을 내세운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범세계적 선교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는 연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내세웠고 국제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에딘버러대회는 신학성격이 포괄적이었으며 자유주의 신학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 회의는 성경진리에 대한 해석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성서의 무오성과 절대권위를 부인하게 되었으며 사회봉사문제를 선교의 한 과제로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 기독교에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도덕덕 , 사회적 여건을 개선해 주는 것을 선교의 주요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타종교들과의 접촉을 찿으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복음의 메세지의 변질과 종교혼합주의 (Syncretism) 에 빠질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 놓았다. 19세기 서구 선교신학과 비교할 떄 선교신학사상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사회의식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타 종교에도 진리의 요소가 있고 하나님은 타종교를 기독교를 위한 준비로써 사용하며 이제 선교는 어느 단체나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온 교회의 책임임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 회의의 성명은 비기독교적 제종교에 대하여 선교사가 취해야할 태도는 진정으로 이해하고 동정하여야 하며 선교사는 비기독교적 종교속에 있는 고귀한 요소를 찿아서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더 높은 차원에 있는 모든 참된 것 , 선한 것을 승인하는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고 타종교 속에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 회의는 선교역사에서 19세기 서구 선교와 에큐메니칼 선교를 구분하는 분수령이 되었고 계속위원회 (Continuation Committee) 를 조직하여 1921년에는 국제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로 발족하게 되었다.
    돌이켜볼 때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의 역사적 의의는 두가지 상반되는 에큐메니칼적 입장과 반 에큐메니칼적인 요약이 가능하다. 즉 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에딘버러 대회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이 본격화되고 신학체계가 수립된 결과를  가져왔으나 , 복음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 대회는 "위대한 세기"의 선교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을 뿐 아니라 복음주의 선교신학에도 위협을 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3-2-1-2-2. 신앙과 직제운동(Faith and Order)

 에딘버러 선교대회는 교회나 교파의 특성과 관련되는 교리나 교회 의식문제는 토의하지 않기로 전제된 모임이었다. 그러나 일부 대표들은 교회나 의식의 차이를 그냥 덮어둘것이 아니라,그 차이점들을 솔직히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그 중에서 교리와 의식문제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낀사람은 미국 감독교회 출신의 챨스 브렌트 감독이었다.그는 교회에서 신학적 대화와 교제의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결과 수개월만에 미국 감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세계의 모든 교회들과 함께 신앙과 직제에 관한 문제를 토의할 세계대회를 개최할것을 결의 하였다. 이로부터 17년이 지난 1927년 8월 스위스 로잔에서 제 1차 신앙과 직제 세계 대회가 개최되었다. 1937년 8월 에딘버러에서 제2차 "신앙과 직제대회"가 열렸을때는 교회들간에 보다 깊은 이해가 조성되었다. 이 에딘버러 대회는 오랜 격론끝에 <신앙과 직제>운동과 <생활과 봉사>운동을 통합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는데 결국 양 기구는 1948년 통합되어 세계교회 협의회에 속한 위원회가 되었다.

3-2-1-2-3. 생활과 봉사운동(Life and Work)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세계교회들은 사회적 관심과 국제적 책임을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스웨덴 웁살라의 감독 나단 죄더볼륨은 기독교 국가들이 관여된 전쟁의 죄악을 통감하면서 교회는 초 국가적인 화해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을 역설 하였다. 죄더볼륨은 이러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세계 기독교 대회를 개최할것을 제안 하였는데 영국의 윌리엄 템플을 비롯한 세계여러 교회 지도자들이 이 제안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그리하여 1925년 8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차 생활과 봉사 세계 대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 교회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과 연합의 필요성을 천명한 모임 이었다. 이 대회는 계속 위원회를 두어 <생활과 봉사 세계 협의회>란 기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제2차 생활과 봉사세계 협의회는 1937년 옥스포드에서 개최되어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정치,사회,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교회의 사명과 과업을 다짐했다. 이 대회의 특징은 사회,정치적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의 문제라고 선언한 것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함에 있어서 편신도의 역활과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3-2-1-2-4. W.C.C의 형성

 에큐메니칼이 탄생하기는 여러 국제 연합 기구를 통합해가는 과정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자 "세계교회연맹"을 형성하자는 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 고립상태에 있는 세계 교회들이 상호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여,국제적,정치,사회,문제에 대한 통일된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죄더볼륨과 올담은 이와같은 세계교회연맹의 필요성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신앙과 직제>와<생활과 봉사> 양 기구의 통합의 가능성과 타당성에 대한 토의가 계속 되었으나,통합된 경우 양 기구가 지향하는 이념과 과업이 결국 와해되고 말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양 기구 통합을 위한 노력이 1928년-1932년 동안에도 계속 되었으나,허사였다.그러나 템플과 올담의 부단한 노력으로통합의 필요성이 인삭 되기 시작했다.
 결국 1936년 <신앙과 직제><생활과 봉사><국제 선교 협의회>는 통합을 위한 모색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고,그 결과 35인으로 구성된 통합 자문 위원회를 만들어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35인 위원회>는 1937년 런던 웨스트필드 대학에 모여서 교회를 대표하는 기구, 즉 세계교회 협의회를 형성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WCC명칭을 제안한 맥크리 캐비트를 비롯하여, 템플,올담, 브라운 등이 WCC의 산모역활을 하였다. 웨스트 필드 35인 위원회는 협의회가 세계교회들을 대행하여 입법권을 행사하는 기구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을 강조했고,5년에 한번씩 총회를 개최한 것과 1년에 한번씩 모이는 중앙위원회를 둘것을 제안했다. 이들의 제안은 옥스포드 대회와 에딘버러 대회에서 통과 되었고, 두 기구는 앞으로 조직될때, WCC의 구조와 헌장을 논의 하기 위해 다시 <14인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4인 위원회는 유트레히트에서 첫 모임을 가지고, WCC 조직을 위한 임시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IMC 임원들이 <WCC 임시 위원회>에 참석하여 WCC의 구조와 과업에 대한 문제를 함께 논의 하면서 IMC와 WCC 의 통합이 구체적으로 논의 되기 시작하였고, IMC는 후에 WCC 제 3차 총회인 인도 뉴델리 대회에서 WCC와 통합 하였다. 이로서 WCC는 증거(IMC),일치,봉사를 모토로 하는 3대 국제연합기구를 통합하여 명실 상부한 세계 교회 협의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3. 에큐메니칼의 성격

 이제 WCC의 자체 문헌속에 나타난 정의와 존재목적, 회원자격과 권한, 기능들을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3-3-1. WCC의 정의와 존재목적

 세계 교회 협의회의 제3차 뉴델리 총회는 다음과 같이 WCC에 대한 자체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로 고백하며, 또 이에 따라 한 분이신 하나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통된 소명을 다함께 완수하고자 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는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는 세계교회 협의회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교회 협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인정하는 교회들로 구성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일치를 발견한다.교회 일치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WCC는 회원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공통된 충성을 다함께 증거하며,일치된 행동을 요구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협력할수 있도록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로서 회원교회를 섬기기를 바란다. 그러나 WCC는 이미 회원교회가 담당하고 있는 어떠한 역활도 찬탈하기를 원하지 않으며,또한 회원교회들을 통제한다든지, 그들에 대해 입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WCC의 목적은 다른 방식으로 그 일치를 표현하는 것이다. 일치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러 나온다. 그 사랑은 회원교회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고 또 서로서로를 결합시킨다. 회원교회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또 그럼으로서 서로에 대해서도 보다 긴밀히 연합되는 것이 WCC의 소망이다.

3-3-2. WCC와의 회원자격과 상호관계

 에반스톤 제2차 WCC총회에서 회원들 교파는 상호존재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로 결정 하였다.
 ① WCC회원교파들은 각각 교파들보다 더 포괄적인 것으로 WCC를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자기 교파밖에서도 친교의 대상으로 삼는다.
 ② 회원교파들은 타 교파들도 거룩한 보편교회에 속해 있음을 인정한다.
 ③ 회원교회는 서로 유대를 가지고,피차의 필요에 따라 도와주고,형제이기 때문에 다툴수 없는 것을 안다.
 ④ 회원교회들이 친교하여 서로 다른 교파들로부터 배우고 연구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 몸인 교회가 육성되며, 교회생활이 쇄신되도록 한다.
 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원 교파들의 신조나 의견은 강압받지 않으며, 회원교파는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에 있다.

3-3-3. WCC의 권한과 한계

 WCC가 할수 있는 권한은 회원교회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에 있어서 연합적인 행동을 할수 있도록 협의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하나 또는 그 이상의 회원교파가 WCC에 위임하는 일이 있을때 회원교회를 대신하여 행동을 취할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수한 제목을 가지고,지역적 회의나 세계 회의를 소집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할수 없는 일은 WCC가 회원교파들을 대신하여 입법을 할수 없고, 위에서 지적한 방법으로나 혹은 후에 회원교파들이 지정한 방법 이외의 방법으로는 결단코 행동할수 없다는 것이다.
 토론토 문서는 다음과 같이 권한과 한계를 설명한다.
 ① WCC는 초 교회가 아니며, 되어서는 안된다.
 ② WCC의 목적은 교회들간의 일치를 도모하며,교회들로 하여금,서로서로 살아있는 교류를 하게 하고,교회 일치의 문제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증진시키는데 있다.
 ③ WCC는 참교회에 대한 어떤 특정한 교파의 교회 개념에 근거할수 없고 해서는 안된다.
 ④ 어떤교회가 WCC회원이 된다는 것은 참교회에 대한 자기 교파의 교회 개념을 단지 상대적인 것으로 취급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⑤ WCC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교회 일치의 본질에 관한, 어떤 특정 교리의 수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3-3-4. WCC의 기능

 세계 교회 협의회의 헌법과 강령을 따르면, 세계 교회협의회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① 신앙과 직제 및 생활과 봉사를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 그리고 국제 선교위원회의 사업을 수행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3대 국제기구의 사역, 즉 증거, 일치, 봉사의 사역을 수행하는 것이다.
 ② 교회들의 공동활동을 촉진한다. 상호원조나 난민구호같은 사업을 회원교회가 협력한다.
 ③ 공동 연구를 도모한다. 봉사하기 위한 준비로 교회안과,밖의일,선교정책을 위하여 연구한다.
 ④ 교회의 세계 선교 및 복음전도의 임무를 지원한다.
 ⑤ 국가별,지역별 교회 협의회,교파별 세계단체들 및 다른 에큐메니칼 기구들과의 관계를 수립한다.
 ⑥ 모든 교회 교인들이 에큐메니칼 및 선교의 의식을 성장시켜 가도록 돕는다.
 ⑦ 필요시 특정주제에 관한 세계회의를 소집한다. 또한 그러한 세계 회의들의 결과를 출판할 권한을 갖는다.

4. 에큐메니칼 운동 총회와 동향

4-1. 암스텔담 제1회 총회

 1948년 8월 암스텔담 제1회 총회에서는 151교파로 부터 352 대표들이 참석했다. 프로테스 탄트 교파들이 절대다수요,소수의 정교회 대표들이 있었다.
 암스텔담회의의 논제는 "사람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의장"이었다. 그 회의의 사신들은 좋은 말로 결론하되, 암스텔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새로운 언약,새로운 행동을 작위 했으니 우리는 서로 결속된다. 우리는 연합되어 있기로 결정한 것이다.
 암스텔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는 교파들이 일정한 조건들을 이행하기로 하고,공적으로 보낸 대표들로 구성되었고,구체적인 조직과 사업을 가지게 되었다.

4-2. 에반스톤 제2회 총회

 1954년 8월 15일 미국 시카고 근방 에반스톤시에서 17일동안 진행 되었다. 세계 163개의 프로텐스탄트 교파중에서 132교파와 헬라정교 계통의 교회들로부터 1242명의 대표들이 내참하였다.
 "세계의 소망 그리스도"라는 주제를 걸고 세계의 저명한 지도자들이 연설하며,토의한 결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유주의편이 수적으로 우세하고,긍정하는 편이 열세를 보였다. 조정 위원회를 구성하여,최후적으로 토의 결과를 종합하여 두 종류의 의견 그대로 보류하는 최후 결정서를 8월25일 전체회의에 제출하여 약간의 수정이 있은후에 채택하였다.
 그리고 6개의 분과를 나누어서 연구와 토론을 하였다. 제1분과는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과 교회의 분열에 대한 것으로 교회의 분열을 비판하고연합을 이루기 위한 결단이 있어야할것을 주장하였고, 제2분과 에서는 교회 밖을 향한 교회의 선교에 대한 것으로 선교에 있어서 평신도의 역횔을 강조했다.제3분과에서는세계적 상황에서의 책임있는 사회에 대한 것으로서 책임이ㅆ는 사회에 대해 보다 분명한 정의를 내리고,현존하는 모든 사회질서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다. 제4분과는 세계 공동체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투쟁에 대한 것이었다. 제5분과는 인종적 및 종족적 긴장 가운데 있는 교회로서 국제적 평화와 정의구현을 위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였고,세계국가들이 대중을 살해하는 무기사용과 침략행위를 금해야 한다고 했다. 제6분과에서는 평신도 그리스도인과 직업에 대한 것이었다.

4-3. 뉴델리 제3회 총회

 1961년 12월 인도국 뉴델리에서 모인 회의에서는 러시아 정교회가 회원으로 되었다. 또 이회의에서 국제선교 협의회가 WCC에 합동되었다. 여기에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 이라는 주제를 갖고,정치적 독립과 민족주의, 산업 및 도시개발, 시골 및 농촌생활등에 역점을 두었다. 즉 사회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 총회에서는 '대화'의 개념이 등장했다. 이 대화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1967년 세 이론에서 타종교와의 대화가 실현되었다. 그리고 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도 등장하였다. 또 해방신학과 같은 급진적 참여의 선교를 부르짖었다. 그래서 보수와 자유주의 교회를 더욱 양극화 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4-4. 웁살라 제4회 총회

 제4차 총회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1968년 7월4일부터 20일까지 스웨덴의 업살라에서 열렸다.
이 대회를 선교면에서 평가한다면 첫째, 인간화를 주장하였다. 새 인간성이 선교의 목적이라 하여서 본회퍼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진다.
둘째, 선교의 개념도 윌링겐에서 다룬 소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구체화 시켰다.
하나님의 선교는 마태복음 28:19의 대명사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는 선교와 구별된다.  그리하여 증거(전도)는 희생시키고 봉사만 강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 하나님의 선교개념은 세계와 역사에 대한 새 해석을 하게 함으로 타종교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여 대화를 더욱 발전시켰다.
기타 이총회에서는 인종차별,사회적 정의,경제적 정의, 그리고 해방등에 관한 제네바 회의의 주요 논점들이 다시 반영되었다.

4-5. 나이로비 제5회 총회

 제5차 총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해방하고, 연합하게 한다"라는 주제 아래 1975년 11월23일부터 12월10일까지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286개 교파의 747명의 대표들이 모였다. 여기에는 로마교황청이 파견한 16명의 천주교 사람들을 비롯한 불교, 힌두교, 모슬렘교, 유대교 등에서도 참석하였다. 이 총회에서는 구원과 복음과 선교에 관한 성경적 교리를 해방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북반구의 백인지배 소비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난, 민중차별, 인권유린, 군사주의 등을 비판하였다.  이 총회때에 해방신학이 가담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사회 개선과 인권해방을 향한 것이 진정한 선교라고 주장하였다.
이 나이로비 총회는 구원의 신학을 해방의 신학으로 바꾸어버렸고, 선교를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전락시키는 교회의 정치화를 열어놓았다.

4-6. 뱅쿠버의 제6차 회의

 제6차 총회는 카나다의 뱅쿠버에서 1983년 7월24일부터 8월10일까지 세계 각국에서 정식대표 930명을 포함하여 각국에서 보내온 교계대표들,이방종교대표자들,천주교사절드, 보도진등 820명을 포함 총3500명이 참석하였다.
 뱅쿠버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생명"으로서 평화와 정의의 문제를 비롯하여, 아프카니스탄, 중미 및 세계의 기타 지역에서의 사건들에 대한 해석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해 다양한 성명들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의 가장 중요한 시책은 인종차별 투쟁상업을 계속 강화하기로 결의 하였다.

5. 에큐메니칼 운동 비판을 통한 현장목회의 적용점.

 사람은 어떤 사건이나 사상에 대하여 세 종류의 스타일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무조건 배척해버리는 것이다.
     즉 어떤 사건이나 사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연구 검토도 없이 주변에 선입관으로 사상이나 사건을 침몰시키버리며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배척해 버리는 것이다.

 둘째,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상의 관점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더 이상은 나아가지 않고 현실에 머물러 버리는 것이다.

  셋째, 적극성을 띠고 차이점을 발견하며 장점을 적용하여 본질을 살리려는 긍정적인 스타일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사를 살펴보면서 본인은 이런 3가지 유형을 생각해 보게 하였다.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상이나 사건들을 무조건 배척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의 배경과 발단은 무엇이였으며 변천과정을 살펴보면서 차이점을 발견하고 공헌한 점들은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상이나 사건이 오도되고 오해된 부분들은 반드시 검증이 되고 수정이되어서 본질적으로 의도했던 복음이 바르게 확산 될 수 있도록 협력하며 검증되어지는 노력이 있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목회일선에 있어서도 에큐메니칼이라는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증되어지고  검토되어진 연구속에서 그에 대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5-1. 에큐메니칼을 통한 목회적 대안

      에큐메니칼 운동을 옳다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저들 약점을 분석하고 나름대로의 장점을 받아드리면 되는 것이다.

5-2. 교회의 일체성은 교리적이어야 한다.

성경은 교회의 일체성이 영적, 교리적 , 유형적임을 가르친다.

5-3. 자유주의 이단과 로마 카톨릭의 오류를 포용하는 것은 교회의 연합은 잘못이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한 세계 교회 개념은 기독교계 안의 배도된 이단적 구성원들을 배제하지 않고 추구하는 연합이기 때문에 잘못이다.

5-4. 우리는 전제주의적 교회를 두려워 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여하튼 하나를 만드는, 인간이 만든 현대의 바벨탑, 하나의 세계적 조직체는 모든 회원을 그것을 통제아래 놓는 전제주의적 교회가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것이 어떤 사상이든지 어떤 사건이든지 그 출발점과 발단은 좋았을 지라고 변질되고 결국 어떤 사건이나 사상이 인간이 만든 현대의 바벨탑, 즉 이성의 산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역사속에서도 복음은 변질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6. 결 론

 에큐메니칼 운동은 발단은 시대적인 특징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19세기 말부터 개신교의 세계 선교가 전개되면서 선교활동상 범 세계적인 교회 협력체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며 당대의 도덕적 사상적 퇴폐가 만연됨에 따라 이에 대항항여 교회를 지키기위한 세계교회 연합을 시도한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발단이였다고 생각하다. 그리고 이 운동을 통하여서 선교적 측면의 공헌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사를 살펴보면서 WCC의 교리적 포용주의와  익명의 그리스도를 주장하므로 기독교의 유일성을 거부하는데 있어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할 수가 있겠다. 복음은 수직주의도 수평주의도 아닌 복음 그 자체일 뿐이며 , 복음은 인간이 만든 "이즘" (Ism) 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한 사건이라고 볼때 복음 안에는 수직적인 면도 수평적인 면도 포괄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운동사를 살펴볼 때 에큐메니칼 신학은 수직적인 면을 도외시하고 수평주의만을 외침으로 계시가 결핍되고 있다.
한편 근본주의는 수직적인 면만을 부르짖고 수평적인 면을 세상적이라고 무시함으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런던대학 출신의 저명한 학자인 오스구니스 (Os Guinness)는 "제3의종족"(원제목 - 죽음의 재 : The Dust of Death) 이란 책에서  자유주의자들을 "신학적 패션모델" 이라고 풍자하고  근본주의자 (Fundermentalist)  들을 "동키호테" 로 비유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가 안고있는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말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본인은 복음이 가지고 있는  수직적인면과 수평적인 면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경이적인 광경을 복음주의에서 발견하면서 수평적인 면을 도외시하는 근본주의 (Fundermentalism)의 오류를 반성하고, 수직적인 면을 이탈하여 복음을 이데올로기화 시키려는 에큐메니칼 신학을 지양하고 있는 복음주의가 성경적인 선교신학의 표본이라고 이해되어진다.
 시대적으로 선교의 위기를 당한 복음주의 교회는 새롭게 개혁되어져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선교라는 대사명(Great Commission)에 임해야 한다.
현대 에큐메니칼 선교과 급진주의적 정치신학으로 변질된 데는 복음주의 교회도 책임이 있다.
복음전도, 즉 영혼구원에는 관심을 가지고 이것이 교회에 주어진 유일한 의무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레위기19:18절을 인용하시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섬김의 정신을 도외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복음전도 즉 영혼전도와 동일한 강도로 즉 동반자적 관계로서 섬김 즉 사회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선교를 펼쳐 나아갈 때 진정한 선교의 시대는 열려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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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행복 충전소(大名*大明*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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