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 18. 23:26ㆍ참고자료/4,예화자료
흉터없는 사람 없고 상처없는 새가 없듯이
흉터없는 사람 없고 상처없는 새가 없듯이
누구에게나 "이것만" 없다면 횅복할것 같은 "이것이" 있고
"이것만" 없다면 감사하며 살것 같은 "이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풍랑입니다.
그냥 풍랑이 아니라, 광풍입니다.
광풍중에서도 역광풍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수도 없는 재앙같은 풍랑이 불기 시작하면
우리의 인생과 신앙은 송두리채 흔들리곤 합니다.
예고없이 도적이 찾아오듯 풍랑은 도적같이 우리를 후려칩니다.
예외없이 생노병사 하듯 이 풍랑의 영향권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갈릴리 바다 한복판에서 풍랑과 싸웠던 주님의 제자들처럼
우리 또한 풍랑 인연하여서 날마다 부평초 인생되어, 표류하는 조각배로 살아 가야만 합니다.
바다 한 복판에서 앞으로 가자니 거센 풍랑 휘몰아 치고
돌아서자니 떠나온길 억울하여 돌아 설수도 포기할수도 없이
그냥 바다에 홀로이 극심한 두려움의 나날입니다.
거센 풍랑보다 더 큰 슬픔과 고통은 바람소리에 가려 주의 음성 안 들리며
파도 높이에 묻혀 주의 모습 안 보이심 입니다.
주만 바라보고 살아온 세월이 풍랑 앞에서 한 순간에 무너짐은 용납할수 없는
또 하나의 부끄러움입니다.
많은 기독인들이 풍랑에 대한 오해가 있는듯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흔히 질병의 풍랑, 가난의 풍랑, 실패의 풍랑,
상처의 풍랑, 관계의 풍랑....을 만납니다.
우리는 흔히 풍랑을 만나면, 처음에는 속상해 하다가, 그 다음에는 낙심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원망하고 그 다음에는 체념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풍랑 때문에 불행하다고 믿고 살아 갑니다.
그리스도인의 불행은 풍랑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풍랑은 불행의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의 불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음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에서 함께 하신다면, 풍랑을 만나고도 즐거울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멀리 계시면 풍랑없이도 불행할수 있습니다.
이러므로,우리의 치명적인 불행의 원인은
풍랑의 유뮤가 아니라, 성령님의 유뮤에 있습니다.
주님, 떠나심이 불행의 이유이며,
주님이 우리 안에서 주무심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게 하고
만족치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풍랑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풍랑 건너편에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들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지독하고 처절한 풍랑 속에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이 숨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하고 함께라면
밤길도 즐겁고, 길잃어도 행복하고, 못먹어도 신나는 것입니다.
마참가지로, 주와 함께라면
가난해도, 병들어도, 망해도, 실패해도, 죽어도, 즐거운 일입니다.
찬송가 456장에 보면 "주와 같이 길가는것 즐거운일 아닌가?"
그렇습니다.
좁은 길을 걸어가도 성령님과 함께라면, 물밀듯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탄배가 풍랑을 만났으나, 제자들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망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배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풍랑을 만드신 주님만이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수 있습니다.
풍랑의 정체를 아시는 주님만이 풍랑 뒤에 숨어있는 사단의 역사를 풀어 놓아
고요하게 하실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피하게 함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게 하는 힘입니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곳 이를때에도 큰 바위 밑에 숨기시며
주 손으로 덮으심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풍랑을 피하려 하거나 겁내지 마십시다.
주님과 함께 풍랑과 정면돌파 하십시요.
풍랑 앞에서 두려워 하지 말고 풍랑을 향하여 외치십시요.
"풍랑아,물러가라"
"풍랑아,잠잠하라"
두고 보시기에도 아까운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시고, 죽어 주신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뭐가 걱정인가요?
풍랑보다 크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니, 뭐가 불행인가요?
그리스도인의 풍랑은 종착역이 아닙니다.
풍랑은 과정이며 잠깐 머무르는 정류장입니다.
사단은 풍랑으로 우리의 믿음의 여행을 포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풍랑 인연하여서 우리의 목적지로 더 빨리 가게 하십니다.
주님이 가시는 길을 풍랑이 막을수 없었듯이
우리의 달려가는 믿음의 행진도 결코 막지 못할 것입니다.
풍랑중에 계신가요?
감사하십시요.
조금만 더 견디십시요.
조금더 힘내십시요.
풍랑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잔잔함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본래의 모습이 잔잔한 호수이듯
풍랑은 우리의 허상이지 실상은 아닙니다.
허상은 잠시후면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상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와 함께 만나는 풍랑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주와 함께하는 풍랑은 오히려 찬송의 이유입니다.
아무일도 없음이 행복이 아닙니다.
풍랑속에서도 주와 함께 사는 삶이 행복의 이유이며, 찬송의 제목입니다.
*풍랑의 주인되시는 주님..
우리의 풍랑을 보시옵소서.
우리를 떠나지 마시옵소서.
풍랑을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가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하는 풍랑의 세월이 즐겁게 하소서.
풍랑으로 성숙하게 하소서.
아
기도보다 앞선 생각, 하나님보다 앞선 마음
최문식
우리들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일을 추진하려고 할때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내 자신이 계획하고자 하는 일을 기뻐하시는지, 아니면 하고자 하는 것을 묻지도 않은채 내 생각과 의지와 판단과 의지를 토대로 일에 대한 계획을 다 세워 놓고서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원치않으시는 것인지 물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성전건축에 대한 마음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 왕 때에 성전 건축을 허락하셨습니다.
때때로 우리들은 일이나 계획을 세우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받아 계획을 세우고 일을 행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이 기도보다 앞서가고, 하나님의 마음을 앞질러 가며, 자신의 생각을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리라고 생각하거나 기도는 하지만 자신이 설정해 놓은 시간과 때에 하나님이 마치 심부름꾼처럼 응답하시기를 바라는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자신이 행하고 싶은 일을 할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어떠한 계획을 세우거나 일을 행하려고 할때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허락하심을 받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경험을 내세워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믿음으로 바라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경험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경험을 더 의지하면 할수록 많은 실패를 경험할수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경험할수도, 일이 막히고 제대로 진행이 안되는 것을 느끼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께 속한 일일수록 더욱더 그렇겠지만 우리들의 모든 일상생활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비록 하찮고 별일 아닌 것일지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우리들이 계획하고 일을 추진하는 것처럼 여길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의 삶가운데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도와주시기에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지 나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이 기도보다 앞서가거나 하나님을 앞질러 가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한, 우리들의 삶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들의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들을 도우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받는이와 사랑하는이의 차이점
사랑하는 이의 눈가엔
늘 보이지 않는 눈물이 고여있다.
사랑받는 이의 눈가엔
늘 당당한 승자의 미소가 묻어있다.
사랑하는 이는
언제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자책한다.
사랑받는 이는
자신의 어떤 면이 매력인지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는
단 한번의 고백을 위해
참으로 많은 시간을 준비한다.
사랑받는 이는
단 한번의 고백을
그저 잔잔히 미소 지으며 웃어넘긴다.
사랑하는 이는 좋은 옷을 보면
그에게 어울리겠다고 생각한다.
사랑받는 이는 좋은옷을 보면
자신의 취향인지 아닌지를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는 그와 함께 있을땐
밥먹는 것조차 간간히 잊어버린다.
사랑받는 이는 식사시간이 되면
밥부터 먹자고 말한다.
사랑하는 이는 추워진 새벽이면
그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사랑받는 이는 추워진 아침
무엇을 입고 나갈 것인지를 걱정한다.
사랑하는 이는
그가 전화를 끊자고 할까 두려워한다.
사랑받는 이는
전화끊고 일해야해..공부해야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해.... 라고 말한다.
사랑받는 이는
알아....그래 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이는
그래도 자신이 늘 행복한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받는 이는
자신이 행복한 사람인지를 때때로 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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