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도 "...있을찌어다"가 성경적이다.

2007. 7. 18. 11:24신학자료/8.목회학 자료

축도 "...있을찌어다"가 성경적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이 말씀이 오늘의 교회 공적 예배 폐회시 담임목사로 인하여 대언되고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는 바울이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성도들에게 축복한 것을 표본으로 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목사가 축복할 때에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하되 끝에가서 "축원하옵나이다"하는 목사는 담임목사로 청빙하고 선신예배도 초청하지만 "있을지어다"라고 축도하는 목사는 청빙도 헌신예배 초청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느쪽이 성경적이며 비성경적이냐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시비는 말씀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고, 만약 말씀의 권위를 인정한다고 해도 목사의 권위를 격하시킨다는 도전적인 발상에서 시도한 것이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결론을 초래한 것이다.
성경에는 삼위일체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하였고(창1:1, 욥26:13, 요1:3, 히11:3)
죄로 인하여 죽은 인간을 삼위일체께서 구속하셨으며(엡1:4, 욥33:4, 사53:5, 고전12:3, 마16:16-17) 세례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시행하고(마28:19-20) 축복도 삼위일체의 이름의 권위를 기록된 말씀을 대언(선포)하는 것뿐이다(고전4:6,겔37:4-10)

그러므로 목사는 사람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밖으로 넘어가 가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계22:18-19, 고전4: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축복을 하도록 하셨는데 복을 받고 못받는 것은 성도들의 믿음 여하에 따라 죄우되는 것이라고 하였다(마10:12-140
축복은 주의 이름과 말씀으로 주의 종이 대언하지만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창14:19) 그리고 축원의 과정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하기로 되어있다(암3:7, 잠11:11)

그래서 오늘의 목사들이 축복할 때에 성경대로 (고전13:13) 대언하는데 어떻게 시비가 되는가?
바울은 말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딤후3:16-17)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4) 하였는데 이는 오늘의 "...있을지어다"라고 축도하는 목사를 배척하는자들을 겨냥해서 한 말이 아닌지 알 수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목사의 권위문제 가지고 시비할 수는 있으나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격하시킨다면 이는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목사와 장로의 권위 다툼에서 성경이 희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사도 "...있을지어다"라고 축도한다고 해서 자기가 하나님이나 된 것 같이 착각해서는 안되고 축복을 받는 성도들도 목사가 하난미과 같이 군림한다고 오해해서도 안될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믿음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다(엡2:4-5)
다만 믿음은 과정일 뿐이다.(엡2:8-9)
마찬가지로 축복하는 목사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목사가 삼위일체의 아름으로 축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멜기세덱 제사장은 :그가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업소사"(창14:19)하였다.

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다. 여기서 분명히 알고 지나갈 것은 목사가 축복해도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축복을 받는 사람들의 믿음과 행위가 좌우하는 것이다(마10:12-13). 그리고 축복기도는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일반적인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모든 성도가 서로를 위하여 축복하는 것이고(롬12:14) 왕이 백성을 축복하는 것이다(왕상8:66)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축복하는 것이다(창27:30)
그러나 특별 축복은 (공예배시) 여호와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자가 함이 옳다(신10:8)

물론 지금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고 해도 제사장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벧전2:9)
그렇다고 해서 질서까지 파괴해서는 안된다. 아무나 축복받을 수 있다고 해서 공예배시에 너도나도 축복하겠다고 강단위로 올라간다면 이는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하나님은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시다(고전14:33) 그러므로 질서를 지켜야 한(고전14:40)
그래서 베드로는 "인간에게 세운 제도도 주를 위하여 지키라"(벧전2:13-14)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질서를 위하여 목사를 세우시고 성도들은 그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여 즐거움으로 목회를 하게 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유익이 없다고 하였다(히13:17).

그래서 교회 목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만이 될 수 있다(고전12:29, 욥1:6-8, 렘1:5, 3:15, 잠16:33)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백성들 즉 성도들의 죄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고(출32:30-35) 세례를 베풀게 하며(마28:19-20) 말씀을 대언케하고(겔37:1-11) 축복을 대신케 하는 것이다(고후13:13, 요3서 2)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죽은 후에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맞이하여 그의 명령대로 절대 순종할 것을 다짐하고 만약에 불순종할 때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만 여호수아에게 바랄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신 것같이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였다(수1:16-18).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지도자로서 여호수아를 보내주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성도들은 목사를 성도들의 지도자로 보내주심을 인정하고 그를 통하여 축복도 받고 말씀도 받으며 세례도 받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민23:20, 눅6:28)
그리고 목사는 저주해서는 안된다(눅6:28, 행7:60, 미3:5) 물론 바울 사도는 저주를 한것같은 느낌이든다(고전16:220 그러나 이 말씀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한 말과 같은 것이다(마25:41-46) 또한 목사가 무조건 저주한다고 해서 저주가 임하는 것은 아니다(잠26:2, 시140:8) 도리어 그 저주가 자기에게 임할 수 있다(시109:17-18)

그러므로 목사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것이 사명인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시40:1, 마10:12-14) 그리고 목사는 두 손을 들고 축복할 대상자를 바로 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축복해야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축복은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하고(마16:16, 고전12:3) 예수를 사랑하고 교회 출석하는 자에게 하며(엡6:24, 히4:16) 축복받을 조건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하지 아니함이 옳다(렘7:16, 14:11) 중심은 사람이 알 수 없지만 외모라도 믿는 형식을 갖춘 이에게 축복함이 옳은 것이다.

그럼 어떤 내용으로 축복함이 좋을까? 축복의 내용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축복해야 한다(마6:33)즉 영적이고(고후13:13) 현세적이며(민6:23-26, 요3:2) 영원한 평강의 내용이어야 한다(민6:26, 롬1:7, 살전1:1, 요20:19, 21:260
그리고 축복하는 방법은 손을 들고 해야하고(눅24:50, 딤전2:8, 출17:10-16) 주의 이름으로 하며(신10:8, 요15:16) 아멘으로 끝을 맺어야 한다(갈6:18, 신27:15-16, 느8:6, 대상16:36, 롬16:27, 계5:13-14, 렘11:4-5)

베드로가 주의 부활을 전파하고 다닐때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할.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8-20)고 하였고 바울 사도는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려 하나님께 좋게 하려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하였다.
오늘의 목사들도 교회 청빙받기 위하여 신앙양심을 팔고 성경밖으로 넘어가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자들과 합류한다면 차라리 목회를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축원하옵나이다"라고 축복하는 목사를 보고 파는 말이 아니다 "...있을지어다" 하는 목사는 청빙도 초정도 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듣고 태도를 바꾼 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만약에 그와 같은 말을 들은 후에 태도를 바꾼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목사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엄격히 말해서 구원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않다.

이렇게 성경적 근거도 없는 말로 시비하며 교회를 혼란시키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책임추궁을 받게 될 것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목사가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성경의 권위를 대언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성경적인 것임을 말해두고자 한다.
비생산적인 것 가지고 시간낭비 및 정력소모할 필요성이 없다고 본다.

1991. 기독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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