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9. 20:30ㆍ참고자료/4,예화자료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된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통감을 사살한 뒤 뤼순 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어느 날 안 의사는 독립운동을 하다 헐벗고 굶주리다 지쳐 어미니를 만나러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일본 관헌을 피해 캄캄한 밤에 어머니의 방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제가 왔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방문을 열지도 않은 채 방안에서 냉랭하게 "내 아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러 나가고 없다. 아직 큰일을 이룩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누가 와서 나를 부른단 말이냐" 안 중근은 장부가 뜻을 세웠으면 공을 세울 때까지 모든 것을 잊고 전념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발길을 돌이켰습니다,
아들이 사형을 선고받자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라"고 당부했고 아들에게 "최후까지 남자스럽게 싸우라"고 격려했습니다. 안 의사가 이토 통감을 사살하고 수감됐을 때는 안 의사의 동생들을 보내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노니 … 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라"고 전했습니다. 또 사형이 선고된 뒤 편지와 함께 명주 수의를 보내었고 안 의사는 그 수의를 입고 형 집행을 받았습니다. 그 후 조 여사는 가족과 함께 노령 연해주로 망명하여 교포들의 분쟁을 해결하거나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했고 1920년 상하이로 거처를 옮겨 항일독립운동계의 대모 역할을 했습니다.
안 의사라는 거목 뒤에는 아들만큼이나 용감하고 나라를 지극히 사랑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탄하게 됩니다. 조 여사가 '이토 히로부미는 수많은 조선인을 죽였는데 그 한 사람을 죽인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며 일본 경찰에게 호통을 쳐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란 제목으로 신문에 등장하기도 한 그 기개에 감탄할 뿐입니다. 오늘 날 이기적임 모성을 되돌아보며 자식보다 나라를 앞세웠던 한 여성의 강인한 애국 혼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개정 잠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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