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주어야 복을 받는다
2007. 5. 3. 19:49ㆍ참고자료/4,예화자료
복을 주어야 복을 받는다
김기홍 kimkh@amennews.com
신학생 두 사람이 있었다. 늘 같이 다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야 빵 좀 사줘라.” 빵을 사준다. “돈 좀 꿔주라. 목사 되면 갚을 게.” 꿔준다. 신학생 때는 누구나 돈 없고 배고프다. 그러다가 두 사람 목사가 되었다.
꿔주는 쪽은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성전을 아름답게 지었다. 헌당식에 그 신학교 친구가 10년 만에 찾아왔다. 첫 마디가 무엇일까? “야 오늘 헌당식 하니까 선물 많이 들어오겠다. 나 시계 하나만 주라.” 그래서 차고 있던 시계를 준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여기서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의 차이가 나타난다. 대단히 영적인 진리이다. 받는 사람은 여기저기서 받기만 해서 부자가 되어야 할 텐데 안 그렇다. 항상 받기만 한다. 없으니까. 주는 사람은 주기만 해서 가난해야 할 텐데 더 잘 된다.
주는 것과 받는 것
주는 것과 받는 것 어느 것이 좋은가? 물론 받는 것이다. 주면 내 것이 없어지지만 받으면 많아진다. 그래서 무조건 받으려고 하고 무조건 안 주려고 한다. 사업하는 이들도 이 원칙을 적용한다. 받을 것은 악착스럽게 받아내고 줄 것은 가능하면 늦게 적게 주려 한다.
식사하러 가서도 그렇다. 함께 점심을 먹은 뒤에 늦게 일어난다. 신발 끈을 오래오래 다시 맨다. 돈 있는 놈 내라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 약한 사람이 값을 지불한다. 안 내는 사람은 언제나 안 낸다. 그렇게 안 내니까 잘 살아야할 텐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주고 베푸는 사람은 언제나 그런다. 아예 체질이 되어버린다. 수학으로 계산하면 늘 주는 사람에게 돈이 없어야한다. 이상하게도 그 반대이다. 얻어먹는 사람은 계속 얻어먹는다. 베풀려고 마음을 먹어도 베풀게 없다.
물질의 법칙보다 높은 법칙이 있음을 알게 된다. 대단히 영적인 원리이다. 늘 베푸는데, 갈수록 크기가 늘어난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해본 사람만이 아는 신기한 법칙이다.
어떤 사람이 환한 얼굴을 하고 있어 주위에서 물었더니 대답한다. “얼마 전 중증장애인 단체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왔습니다. 너무 피곤해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니 저도 모르는 기쁨이 솟아나지 뭡니까.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마더 테레사나 슈바이처는 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보냈다. 나중에 천국에서 받을 상만 바라고 지겨운 삶을 억지로 살았을까? 아니면 세상의 칭찬? 아니다. 남들이 상상 못하는 엄청난 기쁨과 행복을 누렸다. 그들의 고백에서도 나온다.
주는 것은 영적 활동
주는 것과 받는 것 어느 것이 더 높은 덕인가? 주는 것이다. 주는 것과 씨 뿌리는 것이 같다. 열매로 받는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하늘의 법칙이다.
신기하다. 주면 없어지는데 오히려 후히 돌아온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되돌려 준다. 세상 법칙 위에 있는 영적 법칙이다. 물질만 되돌려 주는 게 아니다. 마더 테레사와 슈바이처가 누렸던 능력과 만족도 부어진다.
그래서 주께서 덧붙이신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지금 나의 마음 씀씀이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하늘에서도 어느 정도로 내게 복을 줄지 가늠한다는 말이다.
자기 몸을 정말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운동한다. 그러면 건강해지고 힘도 많아진다. 그래서 오래 동안 힘들게 일해도 피곤하지 않다. 하루 한 시간 운동하면 손해 보는 게 아니다.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일하면서도 안 피곤하다.
남 위해 베풀고 섬기는 것도 그렇다. 주면 줄수록 더 크게 더 많이 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운동을 싫어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베풀고 봉사하는 것을 싫어한다. 아끼기만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한다.
영적 활동이 환상보고 천국 갔다 오고 신기한 체험 하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영적 활동은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보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다. 주고 또 준다. 그러나 모든 것을 얻는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온 천하를 얻는다. 영원히 다스린다.
주께 드리기부터
복을 거두려면 먼저 복을 뿌려야 한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 남에게 주는 것이 물 위에 던지는 것 같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잠 19:17).
우리는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 가고 취직 잘 한다. 선진국에서는 아무리 공부 잘 해도 중・고등학교에서 자원봉사 실적 없으면 좋은 데는 절대 못 간다. 어려서부터 매주 몇 시간씩 무료로 남을 도우며 사람답게 살기를 체험해야 한다.
왜 기쁨이 없고 삶의 힘이 없을까? 남에게 유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속이지 마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
하버드 대학은 신학교부터 시작했다. 그러므로 하버드 대학 깃발에 있는 방패 문장에 헬라어로 쓰였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놀라운 복음이다. 이미 신자는 능력을 받았다.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친다. 그러나 사랑하고 주는 능력도 역시 받았다.
이 사실을 믿고 실천하라. 성장하고 열매도 맺는다. 우선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그러겠다고 결심해 보라. 그러면 나도 살고 교회도 살고 우리 사회도 산다.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내 시간을 주는 것이다. 다 주라는 게 아니다. 작은 것부터 해보라.
더 낫게 살기 위해서는 죽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많이 죽을수록 많이 산다. 예수와 사도들이 증거를 보여주었다. 번데기가 허물 벗듯 아픔을 무릅쓰고 봉사하겠다고 나서야 한다. 복을 주어야 복을 받는다. 베풂을 실천하기 좋은 계절이다.
김기홍 kimkh@amennews.com
신학생 두 사람이 있었다. 늘 같이 다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야 빵 좀 사줘라.” 빵을 사준다. “돈 좀 꿔주라. 목사 되면 갚을 게.” 꿔준다. 신학생 때는 누구나 돈 없고 배고프다. 그러다가 두 사람 목사가 되었다.
꿔주는 쪽은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성전을 아름답게 지었다. 헌당식에 그 신학교 친구가 10년 만에 찾아왔다. 첫 마디가 무엇일까? “야 오늘 헌당식 하니까 선물 많이 들어오겠다. 나 시계 하나만 주라.” 그래서 차고 있던 시계를 준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여기서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의 차이가 나타난다. 대단히 영적인 진리이다. 받는 사람은 여기저기서 받기만 해서 부자가 되어야 할 텐데 안 그렇다. 항상 받기만 한다. 없으니까. 주는 사람은 주기만 해서 가난해야 할 텐데 더 잘 된다.
주는 것과 받는 것
주는 것과 받는 것 어느 것이 좋은가? 물론 받는 것이다. 주면 내 것이 없어지지만 받으면 많아진다. 그래서 무조건 받으려고 하고 무조건 안 주려고 한다. 사업하는 이들도 이 원칙을 적용한다. 받을 것은 악착스럽게 받아내고 줄 것은 가능하면 늦게 적게 주려 한다.
식사하러 가서도 그렇다. 함께 점심을 먹은 뒤에 늦게 일어난다. 신발 끈을 오래오래 다시 맨다. 돈 있는 놈 내라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 약한 사람이 값을 지불한다. 안 내는 사람은 언제나 안 낸다. 그렇게 안 내니까 잘 살아야할 텐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주고 베푸는 사람은 언제나 그런다. 아예 체질이 되어버린다. 수학으로 계산하면 늘 주는 사람에게 돈이 없어야한다. 이상하게도 그 반대이다. 얻어먹는 사람은 계속 얻어먹는다. 베풀려고 마음을 먹어도 베풀게 없다.
물질의 법칙보다 높은 법칙이 있음을 알게 된다. 대단히 영적인 원리이다. 늘 베푸는데, 갈수록 크기가 늘어난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해본 사람만이 아는 신기한 법칙이다.
어떤 사람이 환한 얼굴을 하고 있어 주위에서 물었더니 대답한다. “얼마 전 중증장애인 단체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왔습니다. 너무 피곤해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니 저도 모르는 기쁨이 솟아나지 뭡니까.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마더 테레사나 슈바이처는 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보냈다. 나중에 천국에서 받을 상만 바라고 지겨운 삶을 억지로 살았을까? 아니면 세상의 칭찬? 아니다. 남들이 상상 못하는 엄청난 기쁨과 행복을 누렸다. 그들의 고백에서도 나온다.
주는 것은 영적 활동
주는 것과 받는 것 어느 것이 더 높은 덕인가? 주는 것이다. 주는 것과 씨 뿌리는 것이 같다. 열매로 받는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하늘의 법칙이다.
신기하다. 주면 없어지는데 오히려 후히 돌아온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되돌려 준다. 세상 법칙 위에 있는 영적 법칙이다. 물질만 되돌려 주는 게 아니다. 마더 테레사와 슈바이처가 누렸던 능력과 만족도 부어진다.
그래서 주께서 덧붙이신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지금 나의 마음 씀씀이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하늘에서도 어느 정도로 내게 복을 줄지 가늠한다는 말이다.
자기 몸을 정말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운동한다. 그러면 건강해지고 힘도 많아진다. 그래서 오래 동안 힘들게 일해도 피곤하지 않다. 하루 한 시간 운동하면 손해 보는 게 아니다.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일하면서도 안 피곤하다.
남 위해 베풀고 섬기는 것도 그렇다. 주면 줄수록 더 크게 더 많이 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운동을 싫어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베풀고 봉사하는 것을 싫어한다. 아끼기만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한다.
영적 활동이 환상보고 천국 갔다 오고 신기한 체험 하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영적 활동은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보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다. 주고 또 준다. 그러나 모든 것을 얻는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온 천하를 얻는다. 영원히 다스린다.
주께 드리기부터
복을 거두려면 먼저 복을 뿌려야 한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 남에게 주는 것이 물 위에 던지는 것 같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잠 19:17).
우리는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 가고 취직 잘 한다. 선진국에서는 아무리 공부 잘 해도 중・고등학교에서 자원봉사 실적 없으면 좋은 데는 절대 못 간다. 어려서부터 매주 몇 시간씩 무료로 남을 도우며 사람답게 살기를 체험해야 한다.
왜 기쁨이 없고 삶의 힘이 없을까? 남에게 유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속이지 마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
하버드 대학은 신학교부터 시작했다. 그러므로 하버드 대학 깃발에 있는 방패 문장에 헬라어로 쓰였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놀라운 복음이다. 이미 신자는 능력을 받았다.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친다. 그러나 사랑하고 주는 능력도 역시 받았다.
이 사실을 믿고 실천하라. 성장하고 열매도 맺는다. 우선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그러겠다고 결심해 보라. 그러면 나도 살고 교회도 살고 우리 사회도 산다.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내 시간을 주는 것이다. 다 주라는 게 아니다. 작은 것부터 해보라.
더 낫게 살기 위해서는 죽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많이 죽을수록 많이 산다. 예수와 사도들이 증거를 보여주었다. 번데기가 허물 벗듯 아픔을 무릅쓰고 봉사하겠다고 나서야 한다. 복을 주어야 복을 받는다. 베풂을 실천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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