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언 기 도

2007. 5. 3. 17:34목양자료/4.기도자료

방 언 기 도

 

 

I. 방언기도에 관해서 공부하기 전에 방언에 관한 우리의 신조를 먼저 공부하겠습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헌법 제 2편 “신조”편의 제 12조 “성령세례”에 관한 조항 “성령세례의 처음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며, 증거의 방언은 은사의 방언과 본질은 같으나 그 목적과 역사는 다르다(행 2;4).” 1. 성령세례의 증거는 방언인가? 우리 교단의 신조는 분명하게 성령세례의 처음 증거는 방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와 관련해서 보다 더 극단적으로 방언은 성령세례의 유일한 증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성경을 통해 볼 때도 적절치 못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의 증거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표를 통해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의 현상 사건 급하고 강한 바람, 불의 혀, 다른 방언 행 2: 1-4 표적의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시몬은 무슨 일인가 일어난 것을 보았다. 행 8:14-24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다 ;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곧바로 전파했다(행 9:22) 행 9:10-22 이방인들이 방언을 하며 하나님을 높였다. 행 10:44-48 에베소의 제자들이 방언과 예언을 했다. 행 19:6 이처럼 성령세례의 증거는 방언 외에도 예언도 있고, 찬양도 있으며, 복음전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의 증거를 방언만으로 못 받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의 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로, 방언이 유일무이한 증거는 아니지만, 매우 특징적인 증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을 성령세례의 처음 증거, 혹은 대표적인 증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조용기 목사님도 방언만이 성령세례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증거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대표적인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방언이라는 어떤 현상 자체 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마음의 큰 확신과 강력한 복음전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그 증거가 방언의 외적 표적이든, 복음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전도의 생활화이든 성령세례를 받은 신자의 마음에 큰 확신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다. 중생의 체험이 부인할 수 없는 인생 최대의 사건이듯이, 성령세례의 체험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는 희미한 체험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받았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체험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믿되 성령세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는 자는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성령세례의 목적은 단지 표적만을 구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신앙을 세우고 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복음을 삶과 행동으로 전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유창하게 말하는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성령의 임재가 곧 복음 증거로 연결될 때에 비로소 확실한 성령 세례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세례의 증거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의 내적인 증거는 성령세례의 체험을 했다는 강한 마음의 확신이며, 성령세례의 외적인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가운데 대표적인 증거는 방언이고,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삶의 증명은 최종적으로 복음전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방언은 절대적인, 유일무이한 성령세례의 증거는 아니지만, 대표적인 성령세례의 외적인 증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증거(표적)방언은 무엇이며, 은사방언은 무엇인가? 증거방언은 성령세례와 관련하여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들로 성령세례의 외적인 증거로 나타난 방언을 말하며, 은사방언이란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에 기록된 성령의 은사들 중 하나로서 나타난 방언을 말합니다. 이처럼 증거방언과 은사방언은 그 내용에 있어서 서로 구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에 있어서 증거방언과 은사방언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경우 증거방언이 은사방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아 증거방언을 한 사람이 대부분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방언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입니다. II. 방언기도는 무엇입니까? 방언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방언체험은 기본적으로 하나님 체험이라고 특징 지을 수 있습니다. 메이어 펄만(Myer Pearlman)은 어느 전도집회에서 겪었던 방언체험을 Pentecostal Evangel 이라는 잡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고했습니다. 내가 거기에 서 있었을 때에, 나는 어떤 이상한 힘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기술할 수 없는 것이나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도 볼 수 없었고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 그리고 몇 날이 지나지 않아서 내가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을 때에 놀랍게도 나는 내게 전혀 익숙치 않은 말로 내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기도는 나를 저 높은 곳으로 높이 올라가게 해주었으며, 나에게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계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방언기도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은 다음 간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간증자는 하나님의 임재에 완전히 압도되어 그 분의 실재와 임재를 강하게 확신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갑작스러운 차원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기에 오셨음을 실제로 느꼈다. 순수한 사랑의 영이 교회에 침투에 들어와 비와 같이 나를 흠뻑 적셨다. 하나님은 저기 하늘에 계신 분만이 아니었다. 그 분은 내 가까이 오셔서, 나의 영이 나에게 가까운 것 같이 나에게 가까이 계심을 깨달았다. 그 분은 나의 심장 속에서 나의 심장과 함께 박동하며, 나의 핏속을 피와 함께 흐르고 있고, 나의 허파 속에서 나와 함께 숨쉬며, 나의 뇌 속에서 나와 함께 생각하고 있다. 내 몸 속에 있는 나의 모든 세포와 나의 모든 신경조직이 임재하신 그 분의 불꽃으로 함께 불붙고 있다. … 하나님은 현실의 경험이요, 단순한 상징이나 하나의 개념이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 그 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하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오순절운동, 혹은 은사주의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데니스 베네트(Dennis Bennett)도 그의 최초의 방언체험을 말하면서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방언은 나의 정서의 영역 저 건너편에 있는 나의 중심,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곳으로부터 나에게 주신 것이다. 방언을 하면 할수록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성령 하나님은 나에게 아버지 하나님께 이야기할 언어를 주셨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내가 방언을 할 때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방언기도는 단순히 현상적으로 특이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며 확신하고 기뻐하는 만남의 체험인 것입니다. 2. 방언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영적인 대화입니다. 방언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이면서 동시에 그 임재 속 에서 하나님과 나누는 거룩한 영적인 대화입니다.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기도, 시간만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에서 하나님에 관한 강한 확신으로 하나님과 나누는 거룩한 영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 14:2) 방언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찬미를 하는 영적인 기도인 것입니다(고전 14:15). 3. 방언기도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시고 계심을 보여주는 귀한 증표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조용기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방언은 인간의 성품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길들인다는 의미가 있다. 말은 인격표현의 도구로 인간의 생각과 사상, 감정을 표현해준다. 또한 말에는 대단한 위력이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야고보는 혀의 크나큰 영향력에 대하여 마치 큰 배를 움직이는 작은 키와 같으며, 온 산을 태우는 작은 불과 같다고 했다(약 3:4-7). 그러면서 가장 길들이기 힘든 것이 또한 혀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를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악을 쉼 없이 내 뿜는 인간이 혀를 길들이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의 거룩한 성품으로 닮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에 방언을 하게 되는 것은 길들이기 어려운 인간 성품의 상징인 혀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길들이기를 원하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방언기도는 우리의 인격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입을 거룩한 성령님의 인도로 제어하심으로써 우리의 인격 전체를 거룩한 인도하심으로 제어하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증표인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교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 전하기를 원하시고 계심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인간은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려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당시 그들은 한 언어를 사용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많은 언어로 나뉘게 하심으로 그들을 세상에 흩어지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간에 대한 저주와 심판은 사라지고, 모든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받은 영적 이스라엘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했을 때 이방 지역에 흩어져 살던, 국적이 다른 유대인들이 각기 자국어로 하나님의 큰 일 말함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행 2:8-11).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임한 방언은 언어의 장벽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모든 문화권을 향한 복음 전파의 거룩한 매개체가 된 것이다. 인간의 교만함으로 보시고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바벨탑 쌓기를 그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복음으로 온 세상을 부르신 것이다. 방언기도는 바로 종말의 때에 하나님이 온 민족을 복음으로 다시 부르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 위한 뜻을 보여주는 귀한 상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그 자체가 복음 전파의 긴박함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III. 방언기도는 어떤 점에서 유익한 것입니까? 1. 방언기도는 개인의 신앙을 성장시킵니다. 사도 바울이 방언이 일차적으로 개인의 덕을 세우는 데 유익하다라고 말하듯이(고전 14:4), 개인의 신앙을 살아있는 신앙이 되게 하고 성장시킵니다. 우리는 다음 한 청년의 방언체험의 간증을 통해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째서 이 순간이 그처럼 나의 성장에서 중요한 것인가? 첫째로, 이 밤에 비로소 나는 하나님이 실제로 살아계심과 그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필요를 알기 때문에 그 자녀들을 지배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둘째로, 이 밤에서부터 나는 나의 전 존재를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고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불이 내 안에서 붙기 시작하여 나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시고 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고민은 완전히 뒤로 물러가 버린 것 같다. 물론 나는 모든 시험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게 부은 바 되었고, 성령을 깊이 체험했기 때문에 내게는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으로 나는 내 자신과 내 이웃과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성장은 제 궤도를 찾게 되었고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상담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새 사람으로 해방되었고, 객관적으로 나의 두 번째의 삶에 맞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를 중심 하여 살고 그 분의 인도를 구하는 동안에 나는 안정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 방언기도는 성령의 능력을 날마다 충만히 입게 합니다. 방언기도를 날마다 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날마다 성령님께 더욱 더 민감해지며, 개방적이 됩니다. 그러기에 방언기도를 날마다 깊이 하는 사람은 날마다 성령님의 영향력 안에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되며, 성령님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3. 방언기도는 진실된 마음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성령님은 방언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진실되게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돕습니다. 건성으로 하거나, 형식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마음의 밭을 새롭게 하십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방언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하시고, 영의 깊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계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하나님 앞에 진실되고 충성되게 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진실로 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방언기도는 우리의 기도생활에 언제나 큰 힘을 불어넣습니다. 기도의 생활은 사실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대단한 결단과 결심이 요할 수 있는 생활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사도 바울의 선포를 따르기란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처음 결심과 달리 포기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방언기도를 하게 되면 우리의 기도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로 어지간히 해낼 수 없는 오랜 시간을 방언기도를 통해서 쉽게 할 수 있으며, 방언기도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얻게 되는 내적인 리듬을 통해서 매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우리의 기도의 물줄기를 날마다 뿜어내는 펌프와 같습니다. 5. 방언기도는 우리가 영적인 공격을 받고 있거나 구원 사역에 관련되어 있을 때, 영적전쟁의 효과적인 수단이 됩니다. 악한 영이 어떤 사람이나 상황으로부터 떠나지 않으려 할 때나, 어떤 풀리지 않는 문제로 말미암아 줄기차게 기도할 때, 또한 어떤 사람의 구원과 관련된 기도를 할 때 방언기도는 악한 영들과 환경을 깨뜨리며, 사람을 구원하는 영적인 무기가 됩니다. 방언기도는 영적전쟁을 승리하기 위한 효과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6. 방언기도는 우리가 행하는 은밀한 중보기도를 돕습니다. 방언기도는 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고전 14:14). 성령님께서 함께 기도하며 인도하는 영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또한 영적전쟁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영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야말로 우리가 중보하는 사람이나 공동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중보기도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악한 영에 절대 누설되지 않은 채,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은밀하게 드리는 영적인 중보기도인 것입니다. 7. 방언기도는 때론 통역의 은사를 통하여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예언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방언기도는 방언기도는 대중집회에서 누군가 방언을 말하고 그 방언이 통역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예언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고전 14:5). IV. 방언기도는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충만을 강력하게 사모하고 구하십시오. 모든 잡다한 생각들을 온전히 비워버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실 성령의 부어주심을 항상 고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떡을 구하는 자에게 돌을 주며, 생선을 구하는 자에게 뱀을 주시겠습니까! 전통적인 오순절 운동의 시작인 아그네스 오즈만(Agnes N. Ozman)의 체험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성경학교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미네소타 주 세인트 폴에 있는 T.C. 호론 성경학교에 다녔으며, 그 다음에는 뉴욕 시에 있는 A.B. 심프슨 성경학교에 다녔다. … 1900년 가을에 나는 캔자스 시에 있었는데, 그 때에 캔자스 주 토페카 시에 성경학교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이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주님께 내가 그 학교에 다니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를 알고자 기도했다. 나는 낮에는 성경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중심가에 가서 많은 일을 했다. … 기도탑으로 따로 구별하여 놓은 다락에서 나는 밤낮으로 계속하여 기도드렸는데, 나는 밤중에 여기에서 깨어 기도하면서 많은 복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헌신하는 그 순간에 성령세례를 받은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령이 더 충만하게 나에게 부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았을 때에 나의 마음은 약속하신 보혜사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였다. 그래서 나는 하늘로부터 능력을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부르짖었다. 먹을 것이 떨어져서 굶주렸을 때에도 음식보다 성령을 더 사모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밤에는 잠을 자는 것보다도 더 그 분의 성령을 받기를 더 원하여 기도하였다. 1900년 마지막 날 하루종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역사하고 있다는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조용히 하나님의 더 큰 일을 행하시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모두어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의 영이 저녁 때에 우리에게 임하셨다. 성령을 받기 위하여 누군가 내게 안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떠 오른 것은 거의 밤 11시가 되었을 때이다. 내 위에 손을 얹었을 때에 성령께서 나에게 임하였다. 그리고 나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다. … 그것은 마치 생수의 강이 내 속에서 흘러넘치는 것과 같았다. 성령님께 철저히 의탁하여 쉬지 말고 방언의 은사를 구하며,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말하십시오. 성령님께서 말하도록 감동시키신다면, 아무리 “무의미한 말”인 것 같더라도 그대로 말하십시오. 방언으로 기도할 때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해서 영으로 기도하도록 깊이 몰두하십시오. 그러할 때 우리의 방언기도는 더욱 깊어져 하나의 영적인 거룩한 내적 리듬을 타게 될 것이며, 더욱 깊은 방언기도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V. 더 깊은 방언기도의 삶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함께 생각해봅시다. 방언이라는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성령님께 더욱 깊이 집중하십시오. 방언기도를 통해서 나의 모든 영적인 자아상이 온전히 치유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되도록 기도하며, 내 삶을 영으로 묵상하십시오. 성령님 안에서 자신이 날마다 성장하도록 특별하게 노력하십시오. 방언은 하나님의 특별한 어루만지심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으로 세워지는데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해야 합니다. 방언기도를 통해서 더욱 깊은 영적인 중보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방언기도를 통해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전략적인 중보기도를 하도록 하십시오. 방언기도는 교회 안에서는 철저히 교회의 질서 속에서 행해져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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