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학교(1) 기도란 무엇인가?
2007. 5. 3. 17:26ㆍ목양자료/4.기도자료
기도학교(1)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의 정의
■기도란 성령의 도우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그의 은혜를 감사, 찬송하며, 죄를 자복하고, 우리의 사정을 아뢰며 그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에 우리 자신의 소원을 복종시킴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시고 이해하시며 염려하시고 응답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목전에 우리의 무력함과 다른 사람의 무력함을 펼쳐놓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숨결이요, 헐떡임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취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늘의 영광 가운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훌륭하고 웅장한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모든 진실 된 기도에는 성령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저항할 수 없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단순한 기도의 조건을 만족시킬 때 우리는 그의 자비와 은총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바로 그 은혜의 보좌에서 나오는데 그 보좌에는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죽음을 통과 하셨으며 우리 마음의 절망스런 외침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의 소원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한 분께서 앉아 계신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새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는 자가 아니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는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식물이 자라고 열매맺기 위한 비료의 3요소 - 질소, 인산, 가리
신앙이 자라고 열매 맺기 위한 3요소 - 찬송, 기도, 말씀
기도에 대한 명언들
■ E.M.바운즈 “교회는 보다 나은 방법을 찾고 있으나 하나님은 보다 나은 사람을 찾고 있다” 보다 나은 사람은 누구인가? 재주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 훌륭한 사람, 인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 성령님이 쓰시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 죠웨트 박사(Dr. Jowett)(유명한 설교가) “열 사람에게 설교하기를 가르치기 보다 한 사람에게 기도하기를 가르치겠다”
■ 스드로우 박스터="사람들은 우리의 호소를 일축하고 우리의 복음을 거절하고, 우리의 주장을 반대하고, 우리의 성도들을 경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는 꼼짝 못한다."
■ "나는 열 사람에게 설교를 가르치기보다는 한 사람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싶다."
■ 사무엘 차드렉="악마의 한 가지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악마는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악마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떤다."
■ 아드니람 저드슨="진심으로 기도하면 어느 때 어떻게 해서든지 어떤 형태로 응답이 온다."
■ A.W.로프="하나님은 육체적 수고보다는 기도와 영적 교제에 더 큰 가치를 둔다. 하늘나라의 신랑은 신부에게 구애하고 있는 것이지 하인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그의 은신처에서 불러내어 이 땅에서 기적을 행하게 하고 신자를 통하여 길 잃은 영혼의 세계 속에 그 자신을 나타낸다."
■ 마틴 루터(Martin Luther)= "오늘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처음 3시간은 기도로 보내리라." “나는 너무나도 일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나갈 수가 없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은 말을 신령한 원칙이라고 생각하였다. “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연구를 잘한다.”
■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웨슬리는 하루에 두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바침으로 그의 확신을 뒷받침하였다.
■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의 생애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의 기도에 있었다. 그의 일기는 기도와 금식과 명상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나의 시골집에 홀로 있기를 즐겨한다.” “나는 이 날을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금식하는 날로 따로 정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와서 명상과 기도와 금식을 하였을 때…….”
기타 기도에 대한 아름다운 교훈들
■ "하나님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성도의 가장 작은 기도의 속삭임에 대하여 바다같이 넓은 은혜를 주신다. 만일 그 기도의 속삭임이 회개하고 청결 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저항할 수 없는 이름에 전적으로 의지한데서 나온 것이라면!"
■ "기도 없는 하루는 축복 없는 하루이며, 기도 없는 일생은 능력 없는 일생이다."
■ "하나님과 보낸 한 시간은, 인간과 보낸 일생만큼의 가치보다 더 의미가 있다."
■ "다니엘은 기도의 하루를 잃어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사자와 더불어 하룻밤을 보내기를 좋아했으리라. 베드로는 감옥에서 나오는 것이 기도회에 가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을 알았다."
■ "믿음은 기도할 때만 힘이 있는 것이다."
■ "결코 지지 않는 한 비밀스런 저 태양은 새벽을 고대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비로소 떠오른다. 기도실에서 헐떡이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깊숙하고 고요한 새벽의 분위기를 맛보게 된다."
■ "많은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그것에 관하여 듣기를 좋아하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 "성도들이 아침 일찍, 저녁 늦게, 오랜 시간동안 기도하지 못하기에, 복음은 느린 속도로 머뭇거리며 늑장을 부리고 있다."
그러면 기도란 무엇인가?
머리말
기도는 신자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자의 바른 기도 생활은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이비적 신앙 운동이 범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도에 대한 바른 인식의 부족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적인 바른 기도는 이방 종교에서 행해지는 염불이나 불공 또는 복을 비는 기복 행위와는 같지 않다. 그런데 기독교를 빙자한 허다한 집단들 속에서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 잘못된 기도 행위가 행해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더욱이 건전한 기도원보다는 건전치 못한 기도원들이 더 많이 난립되어 있어서 어린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커다란 탈선을 조장하고 있고 이 같은 현실은 뜻 있는 교계 지도자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기도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단지 무엇을 구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다윗의 시를 읽어 보라. 그가 하나님과 너무 친밀하다보니 그의 기도, 그의 노래, 그의 묵상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즉시 들어주실 수 없을까?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필요한 때만 불러.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요술램프의 거인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를 우리의 신앙 성장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약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왜 엘리야는 그렇게 잘 응답 받았는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 의인이었다. 즉 이미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친구에게 부탁해 보라. 친한 친구일 경우에는 도와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 부탁하면 별로 도와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먼저 좋은 관계 맺어야 한다. 그러니 문제 있을 때만 철야, 금식, 야단법석 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평소에 잘 맺어야 한다.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고, 우리의 매일 걸음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 기도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기도는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시간이다.
기도에 대한 이해
(1)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이며 교제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지엄한 분이 아니라 친근한 아버지이시다.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친근히 아버지께 나아가 그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자신의 고통, 슬픔, 번뇌, 기쁨 등 모든 것을 창조자이시며 완전한 인격체이신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 형편을 헤아리신다. 또한 기도하는 이를 통해 그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기도는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한다.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대화하고 사귐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바쁘다고 숨 안 쉬나? 숨 안 쉬면 죽은 사람이다. 죽었나 안 죽었나 숨쉬는 것을 보면 안다.
(2) 성도들간의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동일한 기도제목을 갖고 동일한 장소에 모인 성도들은 서로가 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고 부모형제와 같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된다. 기도는 성도들간의 진실한 사랑을 맺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3) 기도는 거듭난 자의 호흡이다.
육신이 코로 숨을 쉬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호흡운동이며 호흡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인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영혼 역시 죽은 영혼이다.
(4)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이다
계5:8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기 나는 기도가 있고,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기도가 있다.
(5)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랑의 고백이며 믿음의 구체적 고백이다.
(6)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하는 통로이다. ★ 출32:11-14 ★ 수10:12 ★ 렘33:3
(7) 기도는 영적 투쟁이며, 헌신이다. (겸손의 비결)
(8)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이다. ★ 롬8:32 ★ 히4:16
(9)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최선의 길이다. ★ 행1:4-5 , 행2:1-4 ★ 렘29:10 , 렘29:12-14
(10) 기도는 선한 싸움의 무기이다.
출17:8-13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 우리가 아빠만 불러도 불량배들은 도망친다.
(11) 기도는 만능의 열쇠이다.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목욕탕 탈의실의 마스타 키를 아는가? 탈의실 안의 모든 옷장은 이 하나의 열쇠로 다 열 수 있다.
(12)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서의 인간의 기도가 절대 효력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효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화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이 된다.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을까? 만일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지 못한다면 절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없으며 설령 드린다 해도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속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시고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이루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사실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 중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 17:21)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우리 성도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방법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시고 다음으로 예수님과 우리 성도가 하나가 되는데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즉 예수님만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져야 기도의 첫째 요건이 갖추어진다.
(13)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성도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하나님과의 화목의 범주 속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로 언급해 보기로 하겠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을 때 효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에게서 잘려지면 절대로 효과 있는 기도는 드릴 수가 없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서 잘려진 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 7:9-10)고 하신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신령한 연합을 이루어 자녀의 명분을 얻은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적 바른 기도의 요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한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영암교회기도학교(2) 기도의 주체
일반적으로 기도는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 다 그러나 기독교적 참된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 인간 사이에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죄로 더러워진 인간은 감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기도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기독교에 있어서 효력 있는 참 기도의 주체는 오직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시는 기도만이 효력 있게 하신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다는 말인가 물론 그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성도들은 기도의 직접적인 주체가 될 수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존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 독자적으로 하나님께 참 기도는 드릴 수 없다는 말이다
기도는 예배의 한 부분 일진데 거룩한 하나님께서 성자의 속죄 제사 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더러운 인간의 예배는 받으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피없는 제사는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양의 피를 흘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혹자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해 대속으로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성도가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와는 정반대로 천주교에서는 추악한 인간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신부가 중보의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영원한 대속이시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영원토록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속을 이루어 주시고 이제는 우리와 관계없이 멀리 떠나가신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표준 문서인 대소 요리 문답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요 16:24)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내 이름으로” 란 말은 “예수님의 공로와 신분으로” 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로와 신분이 아니면 도저히 어는 누구도 기도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 26:41)등 여러 곳에서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의 기도가 예수님과 관계없이 직접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우리의 연약성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성령(그리스도의 영)께서 도우셔서 간구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직접적인 주체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구속주 이신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기도의 대상
이교도들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적 존재나 또는 자기들이 만든 우상에게 기도를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 물론 삼위의 구별 없이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여기서 논하려고 하는 것은 어떠한 하나님이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논하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묘사할 수도 있겠으나 크게 나누어서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1)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그가 전능 자라는 전제 아래서 가능한 것이다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전능자 하나님만이 효과 있는 기도의 응답자가 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드리는 기도는 찬송과 감사 자백 간구 등으로 엮어지는데 전능자가 아니시면 어떻게 찬송의 대상이 되며 감사를 드리며 자백과 간구를 할 수 있겠는가 혹시 한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절대로 찬송과 감사 자백과 간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혹자들은 마리아나 베드로 또는 불상이나 조상의 영들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무능한 존재들이다 무능한 이런 아이에게 나의 사업을 도와 달라는 간청이나 찬송과 감사가 가능하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소원을 요청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 는 것은 능력이 온전하시다 는 뜻으로서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으로 만사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하여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온 우주 만물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도의 절대 대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2)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기도만을 들어주신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 내용용을 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 자신을 아들로 호칭하면서 기도를 드린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께서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것은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재 것이 온데...(요17:10)라는 원리에서 이해되는 진리이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는 사랑을 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자의 관계요 주는 자와 주는 것을 받는 자와의 관계이다 그리고 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자와 구하는 자와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아버지의 것과 아들의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것이 곳 아들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양자의 명분을 얻은 성도가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결국 기독교의 참된 기도는 천지와 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며 들어주셔야 하는 관계를 맺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마음가짐
(1) 확신을 가지고 할 것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6-8)" 이 말씀은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 진다는 사실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확실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잘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응답되어 진다는 확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간구라면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다. 기도에는 오직 한 가지 마음, 응답하신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2) 겸손한 마음으로 할 것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시10: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이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시34:18)"
겸손한 마음은 곧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이다. 겸손한 심령, 통회하는 심령으로 간구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고 하였다. 이제까지 인도해주심과 만 가지 은사와 축복 받은 사실을 아는 것이 감사한 마음이다. 기도를 통해서 어떤 것을 구하기 이전에 항상 감사가 앞서야 한다.
(3) 하나님께 완전히 맡길 것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하나님과의 진정한 영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있는 그대의 모습을 꾸밈없이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 또한 마음속에 있는 일을 그대로 하나님께 고하며, 마음을 쏟는 일이다.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못한다면 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품속에 자신을 던지고 간구한다면 더욱 확신을 얻을 수 있다.
(4) 낙심하지 말 것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기도에 있어서 낙심은 금물이다. 낙심하는 마음가짐은 기도하는 자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 기도의 결과는 반드시 있게 마련인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오래 참음으로 기도하고 기도의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중단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5) 하나님 뜻대로 할 것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보는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이 기도이며, 의논한다는 것은 하나남의 뜻을 묻는 것이다. 기도는 결코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응답만을 간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상호 의사교통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중에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의 내용
혹자들은 하나님께 무슨 내용의 기도이든지 열심히 오랫동안 드리기만 하면 응답해 주시는 줄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기도가 만사를 자기의 소원대로 성취하는 비법인 양 생각하고 올바르지 못한 기도에 몰두하는 자들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그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을 가르쳤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찬송과 감사 자백과 간구가 기도의 내용이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내용의 근본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라고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 내용 중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10)라고 하셨다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의하여 성취되어 가는데 감히 누구의 뜻이 첨가될 수 있단 말인가 야고보서에서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얻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성도는 마땅히 내 뜻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혹자는 반문하기를 그렇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속에 소원을 두셔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기도할 마음을 주시고 소원을 주셔서 기도하게 하신다. 그래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줄을 우리로 알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성도들의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기록을 자주 보게 된다. 백성을 위한 모세의 기도 히스기야의 기도 다윗의 기도 등의 경우이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들은 자세히 알고 보면 모두가 본래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대로 이루신 것임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본래의 작정하신 뜻대로 다윗의 왕조를 잇게 하시려고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출생하여 자라기까지 히스기야의 생명을 십오 년 동안 연장시켜 주신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기도나 다윗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대로 섭리하시려고 응답하여 쥐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뜻을 돌이키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 뜻을 돌이키셨다는 것이 아니고 섭리 과정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려는 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구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기도의 내용이다 구약 시대의 야곱 모세 다윗 히스기야 등 유명한 선지자들의 기도가 모두 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야 한다. 신약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내용이 모두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한 말씀은 조금 앞에서 가르치신 주님의 기도 내용의 요약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 천국의 내림 뜻이 땅에서 이룰 것 일용할 양식 죄 용서 악에서의 구출 등을 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사실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미 약속된 것들을 그 내용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드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되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 내용에서 받은 줄로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는 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구했을 때에만이 가능한 것이다
누가복음 11장 1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기도하라는 것을 벗의 비유를 들어서 교훈 하신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주실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19장 1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로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신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 역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재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까 기도하라는 교훈으로 하신 말씀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오랫동안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나 약속된 것이 아닌 것은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정성을 다해 드린다 할지라도 절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바른 기도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만세 전의 정하신 뜻에 따라 우리에게 약속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기독교적인 바른 기도란 그리스도의 공로로 자녀 된 자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약속된 뜻을 구하는 것이다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하자.
(1) 일정한 시간을 정하라
각자의 하루 계획이 각자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과를 시작하기 전인 아침 시간이 좋다고 말한다. 시간이 없다고 핑계하지 말고,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2) 일정한 장소를 마련하라
은밀하고 고요한 곳을 찾아서 주위가 산만하지 않는 중에 기도하는 것이 좋다. 만일 그러한 장소가 허락되지 않을 때는 정신을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3) 기도하는 시간에 쫓기듯이 서둘러서는 안 된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대로 충만해야 한다. 다음 시간의 할 일을 생각한다면 기도는 산만해지고 말 것이다.
(4)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라.
모든 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영혼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5) 기도의 목록을 만들어 기도의 내용과 응답된 것을 기록하라.
계획적이고 능률적인 기도생활을 위해서 기도 수첩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도의 필요성
모든 일에 실패하는 것은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구약의 사울과 신약의 가룟 유다의 기도생활을 연구해 보면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전혀 기도생활을 갖지 않았다. 다음 이런 질문을 해보자. 에덴동산에서 뱀이 접근했을 때 아담 혹은 하와는 기도를 하였나? 아브라함이 하갈에게 들어가기 전에 기도를 하였나? 혹은 애굽을 내려가기 전은? 바울과 바나바가 요한 마가로 인하여 다투기 직전에 바울은 기도를 하였는가?
기도가 없는 것은 재앙이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밤에는 야곱에게 추위를 주시고 낮에는 가뭄으로 더위를 주셨지만, 20년이 지난 후에야 그로 하여금 겨우 한마디 기도소리를 낼 수 있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가 기도했을 때 기도응답을 받으려고 놀랍게도 하나님의 길에 들어가 있었다.(창32:9-20참조).
야곱이 하나님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비결을 배운 것은 단지 얍복강(비우는 장소)에서였다. 왜냐하면 거기서 그는 모든 힘을 소진하고 다리를 절었기 때문에 목숨을 다해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야곱은 씨름에서 졌지만 매달림으로 해서 곧 승리했다. 다윗 생애의 가장 큰 비극은 기도하지 않고 궁전의 지붕 위를 거닐며 밧세바를 욕정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찾아왔다.
"초대교회에 기도를 대신할만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기도를 제쳐놓을 만한 어떤 것이 있는지에 관하여는 다음 구절을 주목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니"(행6:2-4)
저명한 목사 두 분이 질문을 받았다. "만일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스런 일이 되겠습니까?" 그 분들은 대답하기를 "기도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기도할 마음은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한 불쌍한 영혼이 지옥에 도착한 후에야 기도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그 고통스러움에서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한 거지에게 자기 형제들을 경고해 주도록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한 인간인 아브라함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장소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는 일은 감히 부탁하지도 못했다. 그는 자기가 모든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이 사건은 땅 위에서 기도하지 않고, 지옥에서 기도를 배우려 하는 것은 응답 받지 못하며, 너무 늦어버린 영원한 고통임을 교훈한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니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23:6)
올바른 기도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의 종교 의식들 중에서 가장 잘 시행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기도이다. 인간에게는 자기보다 고차원적인 어떤 존재로부터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밀림지대로부터 산악 지대나 바다의 섬 지대에 이르기까지 온갖 언어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과 따라서 이러한 의식이 귀신을 쫓아내거나 어떤 도움을 비는 미신적인 행위의 수준을 거의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란 인류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기도는 영광의 보좌와 연결되어 있는 송수신용 전화선과도 같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기도란 단지 우리가 말하고 또 말하고, 요구하고 또 요구할 수 있는 우리의 일방적인 송신용 회선이라고만 생각하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또 들으려고 기다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황급하게 긴 요구 사항들을 쏟아 놓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에 대해서는 알려고 기다리지도 않고 황급하게 기도를 끝내 버린다. 일방 통화용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하긴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 누군가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거나 아니면 듣고 또 듣고 하기는 하지만 한 마디의 대답도 들을 수 없는 경우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없다 !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롬 15:30)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기 전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1.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도록 하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우리 기도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기도라는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고 계신지 조금도 모르는 채 기도를 하고는, 응답을 받지 못할 때는 놀라며 실망을 한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마 6:9; 고전1:2; 행 12:5).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히 4:16)
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요 14:13,14;15:16; 16:23; 고전 1:2)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딤전 2:5,6)
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롬 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누가 기도할 수 있는가?
1)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자.
하나님께서 죄인들로부터 듣고자 하시는 유일한 기도는 바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라며 나오는 기도이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 66:18)
2)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지 않은 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2)
3.기도에 장애가 되는 것들
1) 불신앙은 기도의 응답에 방해가 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6,7)
2) 잘못된 동기는 기도에 방해가 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 4:3)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4)
3)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 것과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기도에 방해가 된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잠 28:9)
4) 공허한 말의 반복은 기도에 방해가 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6)
5) 그리스도인 가정의 불화는 기도에 방해가 된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6)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기도에 방해가 된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 (막 11:25,26)
예수님의 기도 생활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5,16).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장소와 시간은 특별히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으며 (눅 5:16; 9:18), 또 그렇게 가르치셨다. (마 6:5,6) 예수님께서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막 1:35) 혹은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 (눅 6:12)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기도하셨고(마 14:23), 바쁘면 바쁠수록 더 많은 기도를 하셨다.(눅 5:15,16)
또한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특별한 기도를 하셨다. 제자들을 택할 때에는 철야 기도를 하셨고 (눅 6:12),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기도하셨고 (눅 3:21,22),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 (눅 9:28,29) 그리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는 40일 동안이나 금식 기도를 하셨다. (마 4:2) 예수님께서는 5,000명을 먹이실 때에도 먼저 축사하셨고 (막 6:41), 그 후에도 즉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가셨다.(막 6:45,46)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마 26:36-46; 막 14:32-42; 눅 22:40-4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까지도 원수를 용서하는 기도를 하셨고(눅 23:34), 마지막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셨다.(눅 23:46). “구하라 ! 찾으라 ! 문을 두드리라 !”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기도하시면서 모범적인 기도 생활을 보여 주셨다. 이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자처하는 우리들의 생활이 얼마나 주님을 본받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아직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을 때에 열심히 기도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하겠다.
(결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 (눅 18:1)이처럼 기도는 유순한 권고가 아니라 명령인 것이다. 선지자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삼상 12:23)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붙들지 않기 때문에 잃는 축복과 도우심은 또 얼마나 많은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2)
우리는 이처럼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온 가족이 매일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이는가?
우리는 매일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가? 기도회에는 착실하게 참석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인가?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어찌하여 그분에게 응답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는가?
기도의 훈련
기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영적 생활의 최전방에서 서게 한다. 기도는 답사하지 않은 영토를 최초로 답사하는 것이다. 명상은 우리들로 하여금 내적 삶 속에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금식은 하나의 부수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 심령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행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기도의 “훈련”(실제의 체험) 그 자체이다. 진정한 기도는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또 생활을 창조하는 것이다.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기도(은밀하고 열렬한 믿음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밑뿌리에 있다.”
기도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시는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가 만약 변화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기도를 버리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의 부족함을 더 잘 보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일치하기를 더욱더 원하게 된다.
윌리암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우리의 삶의 과업은 하나님의 “사랑의 들보”를 짊어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피하기 위하여 얼마나 자주 도피처를 만들었는가.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서서히 그리고 자비롭게 우리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그 숨어 있던 장소에서 나와 자유롭게 되도록 하신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올바르게 구하는 일은 정욕이 변화하여 전적으로 새롭게 되는 일과 연관된다. 진정한 기도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원하게 되며 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 기도할 때 우리는 사물을 하나님이 보시는 견지에서 보도록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모든 사람들은 기도를 그들의 삶의 주된 일로 보았다. 마가복음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를 설명해 준다. 다윗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한 그 마음은 잠의 유혹에서 떠나도록 하였다. “내가 일찍 주를 찾되”(시 63:1). 사도들이 다른 중요하고 필요한 일에 힘을 기울이도록 유혹을 받았을 때, 그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사역에 계속적으로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행 6:4).
믿음의 최전방에서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들의 삶의 변두리에 덧붙은 습성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이며 그들의 가장 생산적인 시기의 가장 진지한 일이었다.
영암교회기도학교(3) 기도의 비결
기도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참된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을 분명히 깨달을 때 우리는 참된 기도 생활을 할 수 있고, 기도의 효능을 맛볼 수 있다. 기도는 불가사의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비밀이다. 기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가장 큰 사역이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동역인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사탄의 의도는 깨져버린다. 또한 기도하는 자의 받는 은혜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일어나 기도하라"(눅22:46)고 하신 경고를 따라야 할 것이다.
1.기도란 무엇인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에서 주님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 보장을 기도롤 통하여 약속했다. 그러므로 기도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알아보므로 능력 있는 주님의 학생으로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능력의 사람이 될 것이다.
Ⅰ.기도의 정의
기도란 하나님의 전능하심 뒤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며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중심이 되시므로 그 어떤 것도 기도를 능가할 수는 없으며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와의 대화이며 영교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기도는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도가 없는 곳에는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도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 비례하여 나타난다.(대하7:14)
기도는 가장 오묘한 일일 뿐 아니라 가장 놀라운 영적 활동이다.
1.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와의 대화이며 영교이다(마6:6)
2.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드리는 향이다(계5:8)
3.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인 호흡이다(살전5:17)
4.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죄 용서함을 받는 통로이다(대하7:14)
5.기도는 하나님께서 자녀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는 귀중한 것이다(사60:21)
6.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시50:15)
기도는 비밀이다
기도는 하나의 비밀인데 그러나 이 말은 기도의 비밀이 불가사의한 것이라거나 불가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다만 기도에 대해 잘 깨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기도로써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드문 것이다. 기도의 능력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기도의 원칙에 얼마나 일치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도의 원칙에 일치된 기도만이 참 가치를 가진 것이다.
왜 기도하는가?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왜 기도가 필요한가?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 아닌가? 왜 그는 우리가 기도할 때까지 일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리시는가? 그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인데 왜 우리가 모든 것을 그에게 아뢰어야 하는가(빌4:6)?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즉각 일하시지 않는가? 왜 그는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는가? 왜 구하는 자만 얻게 되고, 찾는 자만이 찾게 되며, 두드리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가(마7:7)?
하나님은 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약4:2)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상의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가? 기도와 하나님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뜻과 반대되는 것은 결코 실행하지 않으신다. 문을 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왜 그는 우리가 문을 두드리기까지 기다리시는가? 왜 그는 그의 뜻을 따라 그냥 문을 열어 놓으시지 않는가? 그는 전지하신 분이므로 우리에게 문이 열려야 할 필요를 다 아실 텐데, 왜 열기 전에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시는가? 문은 열리기로 되어 있고,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며, 그는 문 열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잘 아시는데 왜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시는가? 왜 그는 문을 그냥 열어 주시지 않는가 우리의 두드림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주는가?
우리는 또 다음의 질문들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문을 여는 것이고, 문을 여는 것은 그의 의와 일치하는데도 그는 우리가 두드리지 않으면 열지 않으실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기 위해 그의 뜻과 의를 이루기를 지연시키는 것인가? 그는 우리가 두드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문을 열려는 그의 뜻이 중단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 때문에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과연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그가 전능하신 분이라면 왜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기 전에 혼자 열지 않으시는가? 과연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가? 그가 정말 능력 있는 분이라면 왜 그가 문을 여는 것(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두드리는 것(사람의 기도)에 의해 지배를 받으시는가?
이 모든 질문을 할 때, 우리는 기도가 하나의 큰 비밀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일어나 일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뜻은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해 실현되며, 성도들의 기도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혼자서 이루시지 않고 그의 백성들이 기도로 동의를 보인 후에 이루신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활동이다. 기도는 성도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는, 곧 하늘에 계신 주님의 뜻을 소리로 나타내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탄원을 들어 달라는 요구가 아니요, 자신을 위한 욕망을 채워달라는 소원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뜻을 바꾸게 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일을 하시도록 그분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단지 성도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드러내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로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결정을 변경시키지 않는다. 기도는 아무것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다만 그분이 이미 정하신 것을 이룰 뿐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부족할 때, 그의 결정은 공중에 그대로 떠 있는 상태가 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잘 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말씀 다음에 연결되는 주님의 말씀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절)는 것이다.
땅의 통제를 받는 하늘
기도와 하나님의 사역의 관계는 분명해졌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다만 땅에 있는 그의 자녀들이 묶고 푸는 것을 묶고 푸신다. 매야 할 것들이 많지만 하나님 혼자서는 매지 않으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이 땅에서 먼저 매기를 원하신다. 그 다음에 그도 하늘에서 매는 것이다. 또, 풀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 혼자서 풀기를 원치 않고 땅에서 먼저 그의 백성들이 풀기를 기다렸다가, 푼 후에야 하늘에서도 푸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라! 하늘의 모든 활동은 땅의 활동의 통제를 받는다. 하늘의 모든 움직임은 땅의 움직임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을 그의 백성들의 지배 아래 두기를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육적인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님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육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만일 육적인 것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여러 면에서 하나님을 손상시키게 된다.
마태복음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의미의 말씀이 이사야서에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사45:11).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참으로 엄숙해지고, 육적인 것이 몰래 들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명령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들의 명령에 따라 그의 일을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취한 행동은 묶는 것이든 푸는 것이든 모두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늘이 매기 전에 먼저 땅이 매어야 한다. 하늘이 풀기 전에 먼저 땅이 풀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에 반대되는 것은 결코 하시지 않는다. 그가 매기를 원치 않는 데도 땅의 강요를 받아서 매는 것은 아니다.
땅에서 매는 그것이 그의 원래의 뜻이기 때문에, 결국 땅에서 맨 것을 하늘에서도 매는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매려고 하는 것을 땅에서 그의 백성들이 매기까지 기다리시고, 그들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들이 간구한 것을 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의 간구를 기뻐하시고 그들이 맨 것을 하나님도 매기를 기뻐하신다는 그 사실은, 그분이 이미 매기로 작정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왜 그분은 더 일찍 매시지 않는가? 매는 것이 그의 뜻이고, 따라서 그 뜻이 영원한 이상 왜 그는 그의 뜻에 따라서 매야할 것을 더 빨리 매시지 않는가? 왜 그가 하늘에서 매기 전에 땅이 매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땅이 매지 않은 것은 하늘에서도 맬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땅에서 매는 것이 지연되면 하늘에서도 지연되는가? 하나님은 왜 오랫동안 매기 원하신 것을 자신이 매기 전에 땅이 맬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런 질문의 대답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좀더 쓸모 있게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사탄을 멸하고 하나님과 동역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여 사탄을 거절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구속의 뿐 아니라 창조의 목적이다.
주 예수께서는 그의 온 생애를 통해 이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혼자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심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뜻만 내놓고 그들의 생각만을 기도로 나타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동의를 나타내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은 차라리 잠깐 기다리고 서서 그의 일을 연기하신다. 그는 혼자 행동하기를 거절하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로 그와 동역하게 하여 그들을 높이신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그의 전지전능하심이 그의 자녀들에 의해 제한 받기를 기뻐하신다. 그는 반드시 그의 뜻을 잊고 그에게 동의를 나타내지 않아 동역을 실패하는 경우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늘날처럼 식어지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더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더 순종하며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고 그분의 말씀만을 지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이 시대를 향한 뜻은 신속히 실현될 것이고, 교회는 이렇게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죄인들은 그렇게 강퍅하지 않을 것이다. 주 예수와 그의 나라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사탄과 졸개들은 더 빨리 무저갱에 던져지고, 온 땅에 주님이 더 빨리 알려질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에 자신의 일들만 가득 차 있어 하나님과의 동역을 실패하고 있으므로 수많은 원수들과 불법들이 매이지 않고, 수많은 죄인들과 많은 은혜가 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땅 때문에 얼마나 큰 속박을 받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깊이 존중하시므로 우리는 그만큼 그를 믿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매기로 하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매는가? 또한 그가 풀기로 하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푸는가? 주님께서 주신 대답은 이것이다.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것은 기도, 곧 그리스도의 몸의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최고의 동역이다.
참된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표현하는 기회이다. 기도는 우리의 뜻이 하나님 편에 선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벗어난 기도는 있을 수 없다.
자아와 기도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기도는 요즈음 얼마나 될까? 나의 자아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구하는 기도는 얼마나 될까?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 날마다 그분 앞에서 그분의 뜻을 선포하고, 그가 우리에게 알려 주신 뜻이 다 이루어지도록 온 마음을 쏟아 기도하는 성도들이 우리 중에 과연 얼마나 될까?
다른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것은 기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의견, 우리의 소망, 우리의 계획, 우리 자신의 추구가 얼마나 강한가! 자아가 그렇게 강한데, 자신을 완전히 잊고 하나님의 뜻만을 찾는 기도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아를 부인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행동에서나 기도에서나 필수적인 것이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바치는 기도는 바치는 생활에서 나온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크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기도를 흔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떠드는 것이거나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가 곧 하나님의 필요를 이루도록 간구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본래의 생각은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성도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달라는 기도를 결코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기도의 원칙과 뜻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무엇이든지 성도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님도 이것을 원하시는가, 아니면 나의 필요함을 공급해 주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이 당신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것임을 알았다면 당신은 당신의 필요를 공급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간구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당신은 그분이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지금 문제는 당신의 필요가 충족되었는가의 여부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는가에 있다. 지금 당신이 구해야 할 것은 당신의 필요를 공급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잘못이 얼마나 많은지! 성도들은 자신의 필요를 먼저 내놓는다. 그들은 기도에서 그들의 필요를 먼저 말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것들을 공급해 주는것이 주님의 뜻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만 기도해서는 안 된다.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께 용납되는 합법적인 기도는 오직 하나, 곧 그분의 뜻을 그분이 이루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잃어버려야 한다. 우리의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즉시 우리의 필요를 내려놓고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는 주님의 높은 기도라 할 수 없다. 개인적인 필요를 위한 기도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기도한 다음에 간접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비결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분의 뜻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며, 우리가 자신의 관심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다. 우리가 동역하는 방법은 기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가 그의 뜻에 관계된 것들을 다알고 그의 뜻을 따라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 참된 기도는 실제로 역사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직 그의 뜻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실제로 자신을 부인하는 역사이다.
우리 자신이 완전히 끝나지 않으면, 자신에 관해서는 지극히 작은 관심마저도 다 없어지고 절대적으로 주님만을 위해 살며 그의 영광만을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가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할 수 없고, 그가 구하는 것을 구할 수 없고, 그가 원하는 기도를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에 대한 관심을 다 없애고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관심 없이 그분만을 위해 기도하기란 더 어려운 것이다.
지난 세대들에서는 그의 자녀들의 동역의 기도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그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 있었다. 우리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아도 똑같이 애석한 상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좀더 큰 믿음을 가지고 좀더 많은 기도를 했더라면 우리의 생활은 그렇게 무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과 화합하여 그 화합을 기도로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의 화합을 통해 나타난 위대한 역사를 완전히 경험한 성도들은 없었다.
기도는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가 달리는 철로이다." 이것은 어느 하나님의 종의 좋은 표현이다. 참으로 기도와 하나님의 뜻은 철로와 기차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기차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하루에 천 마일도 달린다. 그러나 철로가 없으면 한 치도 달릴 수 없다. 철로 없이 움직이려고 하다가는 땅 속에 푹 박히고 말 것이다. 먼 거리도 달릴 수 있지만 철로가 없는 곳은 갈 수 없다.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도 이와 똑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더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이 비유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전능한 힘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지만 여러분과 내가 기도로 그분과 함께 역사하지 않으면, 기도로 그의 뜻을 위한 길을 예비하지 않으면, "모든 기도와 간구"(엡6:18)로 그의 기동력을 시인하지 않으면 그분은 역사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 원하시는 일은 대단히 많지만 그의 자녀들이 동의하지 않고, 길을 예비하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손은 묶여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이 점에서 그분을 날마다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당신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이 일과 비교될 만큼 중요한 다른 일은 없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성도들이 그 길을 열지 않으면 "불가능"으로 변하고 만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더욱더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히 기도해야 한다. 모든 방면에 걸쳐, 빈 틈 없는 기도를 해야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뜻이 그 모든 방면에 나타난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우리 행동도 중요하지만, 바쳐진 기도로 주님과 동역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중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관념은, 하나님은 완고한 분이므로 우리가 기도로 그분과 싸워서 그분을 굴복시켜 그의 결정을 바꾸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도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기도는 완전히 헛된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처럼 애써야 할 때는, 다만 하나님의 뜻이 사탄이나 사람에게 방해를 받고 있을 때 그의 결정이 반대를 당하지 않고 그의 뜻이 실행되기를 간절히 바랄 때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보아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결정하신 뜻만을 바라는 마음과, 그 뜻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단호히 대항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나 사탄 -때로는 우세한 것처럼 보이는 -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단호히 막고, 그분의 결정이 실행되도록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실지로 우리는 하나님과 다투며 애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애쓰는 것은 그분의 뜻을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바꾸기 위해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반대되는 것에 단호히 대항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기도를 할 수 없다.
기도의 참 뜻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면 우리는 육적인 것이 잠입해 오지 못하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 스스로 일꾼을 보내신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일꾼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라고(마9:38) 명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저절로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면, 그의 왕국이 우리의 동역 없이도 저절로 임한다면, 그분의 뜻이 저절로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주 예수께서 그러한 기도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마6:9-10).
교회의 반응 없이도 주께서 다시 오신다면 주의 영이 사도 요한을 감동시켜 주님이 속히 오시도록 부르짖게(계22:20)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을 저절로 하나 되게 하신다면 우리 주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왜 그런 기도를 했겠는가(요17:20-22)? 하나님께 동역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주님이 하늘에서 계속 중보 노릇을 하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동의하는 기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동의를 보인 일만을 역사하신다. 그의 백성들이 그의 뜻에 하나 되지 않을 때, 기도가 없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기를 거절하신다. 그의 뜻과 하나 되어 드리는 기도만이 참 기도이다.
기도의 가장 높은 목적은 응답을 얻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연결되어 그분으로 하여금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그릇된 간구를 드리므로 응답 없이 끝난다. 그러나 우리의 뜻이 하나님과 연결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있다.
2.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 안에서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원문참조)
"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그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나아온 것을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군과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 군이 이를 것이라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단10:1-20)
다니엘의 기도를 보여 주는 다니엘서 10장을 읽을 때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 째
첫째로 주의할 점은, 참된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 는사람일 뿐 아니라 그의 뜻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 즉 그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처음부터 우리의 요구를 위해 시작된 기도가 있다. 주님은 간혹 그런 기도를 들으시지만, 주님은 거기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다음의 구절을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106:15).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욕구를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정말 그들이 구한 것을 주셨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약해졌다. 간혹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의 요구를 위한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그러나 그분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기도는 별 가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다른 종류의 기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자신의 필요에서 나온 기도이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에 속한 기도이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기도이다. 이런 기도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하려면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주 나아가야 할 뿐 아니라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안에 포함시켜야 하고 자기의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야 한다. 항상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주께서 그의 뜻과 생각을 알려 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자신의 소망이 되어, 그것을 기도로 표현하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이 두 번째 기도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어리고 약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그의 영이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 안에,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안에 넣도록 할 수 있다. 우리가 그의 뜻과 생각을 접촉할수록 그의 역사와 원하심을 더욱더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알게 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은 점차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어, 우리 안에서 기도로 변한다. 이러한 기도가 큰 가치를 가진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생각 안에 들어가 그의 뜻과 목적을 감지했으므로 자신의 마음속에도 하나님과 똑같은 소망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다니엘 속에서 더욱 분명해 소망은 다니엘의 소망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탄식과 부르짖음의 기도로 이 소망을 나타냈을 때 그는 실제로 하나님의 소망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 이런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을 더 많이 만지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하나님 마음의 뜻 안으로 인도하게 하라.
물론 이러한 기도를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많은 말이나 생각을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 영은 조용히 안식해야한다. 우리는 순간순간 우리의 상황을 주님 앞에 가져가 주님 앞에서 그 것을 생각하거나, 우리의 현재의 상태는 잊어버리고 단순히 그의 말씀만을 묵상해야 한다.
또는 그분 앞에서 살며, 우리의 영으로 그를 접촉하기를 훈련할 수도 있다.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접촉하게 된다. 사실 가장 큰 지혜는 바로 이 근원에서 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의지는 그의 의지로, 우리의 생각은 그의 생각으로 들어간다.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기도가 그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생각을 하나님께 가져올 때, 우리 안에서 그분의 의지와 생각이 밝아져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된다. 이렇게 드리는 기도가 가치 있고 무게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에 대해 하신 말씀을 상기해 보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이것은 우리가 간단히 외우는 말 세 마디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나타내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갖다 놓을 때 밝아질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의 의지와 생각이 될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똑같은 한 가지 문제에 관해서도 두 종류의 기도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뜻이 근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기대에 기초를 둔 것이다. 주님이 그런 기도에 응답을 하실 지는 모르나 그런 기도는 가장 낮은 가치를 가진 기도이다. 다른 경우로 우리가 그 문제를 주님 앞에 가져와 그의 영으로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 안에 넣고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안에 넣도록 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깊은 갈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바로 그분의 의지와 생각인 것이다. 주님이 인간의 죽음을 슬퍼하고 탄식하신다면 우리 안에도 한 영혼의 멸망도 보지 않으려는 눌림이 생길 것이다.
이런 것이 깊은 탄식으로 기도하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의 나타남이다. 또 주님이 그의 자녀들의 실패를 염려하고 마음 아파하시는 것도 우리 속에서 같은 눌림을 갖는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죄와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똑같은 갈망을 갖게 된다. 그때우리 안에서 기도가 나온다.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그의 자녀를 깨끗케 해 주실 것을 간구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뜻에 의한 기도가 있고, 우리 안에서 우리의 뜻이 된 하나님의 뜻대로 한 기도가 있다. 이 두 종류의 기도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두 번 째 기도의 경우, 성도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의 뜻이 그의 안에 나타난다. 그것이 그의 호흡이 되고 탄식이 된다. 이 뜻에 따라 한 기도는 가치 있고 무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여러 면으로 할 일이 많으시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 만으로만 기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그의 갈망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탄식으로 기도하게 된다. 우리가 그에게 가까이 갔을 때 하나님이 복음 전파의 뜻을 넣어 주시면 이것이 곧 우리 안에 눌림이 된다. 이 눌림대로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탄식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처럼 느낀다. 주님은 여러 가지 뜻과 여러 가지 눌림을 우리 안에 넣어주신다. 어떤 뜻이든 어떤 눌림이든 그것이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새겨지면 그 사람은 주님의 뜻이 자기의 뜻이 되어 그대로 기도할 수 있다.
다니엘의 경우에서도, 그는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어떤 문제를 접촉했고 깊은 탄식으로 기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얼마나 귀하고도 실제적인 것인가?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한다.
둘 째
사탄을 놀라게 하므로 사탄이 기도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기도는 흑암의 세력을 건드린다. 여기에 영적 전쟁이 생기게 되어 우리의 육신이나 가정, 또는 우리에게 속한 무엇이든지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된다. 언제든지 기도는 사탄의 공격을 부른다. 그 원수는 우리의 기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공격한다. 심지어 그는 공중에 방해를 던져 기도의 응답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응답이 신속해야 할 그 기도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그 응답이 이십 일 일간이나 방해를 받았던 것도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했는가?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의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가지 질문이 있다. 당신은 기도가 응답이 없는 채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그것은 어딘가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이십 일 일의 기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 보좌에서 응답은 주어졌지만 방해를 받아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이 땅의 더 많은 기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오래 참으며 겸손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생각들을 부인하고 그 분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 당신은 기도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일에 당신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당신의 기도의 대상이 될 것이고, 당신의 기도를 통해 모든 문제들이 접촉될 것이다. 자신의 감정으로 기도하지 말라. 당신의 소망을 하나님의 소망 안으로 가져와서, 그 분의 뜻이 당신의 뜻이 되고, 당신의 탄식이 되고, 당신의 소망이 되게 하라.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수 없고, 사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사탄의 세력과 부딪히게 된다.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사탄의 반대 공작을 멸하기 위해 기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풀어야 할 것을 풀고 묶어야 할 것을 묶는 기도의 권위를 행사하자. 우리 자신의 뜻에 따라 기도하지 말라.
기도의 정의
■기도란 성령의 도우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그의 은혜를 감사, 찬송하며, 죄를 자복하고, 우리의 사정을 아뢰며 그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에 우리 자신의 소원을 복종시킴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시고 이해하시며 염려하시고 응답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목전에 우리의 무력함과 다른 사람의 무력함을 펼쳐놓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숨결이요, 헐떡임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취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늘의 영광 가운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훌륭하고 웅장한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모든 진실 된 기도에는 성령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저항할 수 없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단순한 기도의 조건을 만족시킬 때 우리는 그의 자비와 은총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바로 그 은혜의 보좌에서 나오는데 그 보좌에는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죽음을 통과 하셨으며 우리 마음의 절망스런 외침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의 소원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한 분께서 앉아 계신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새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는 자가 아니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는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식물이 자라고 열매맺기 위한 비료의 3요소 - 질소, 인산, 가리
신앙이 자라고 열매 맺기 위한 3요소 - 찬송, 기도, 말씀
기도에 대한 명언들
■ E.M.바운즈 “교회는 보다 나은 방법을 찾고 있으나 하나님은 보다 나은 사람을 찾고 있다” 보다 나은 사람은 누구인가? 재주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 훌륭한 사람, 인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 성령님이 쓰시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 죠웨트 박사(Dr. Jowett)(유명한 설교가) “열 사람에게 설교하기를 가르치기 보다 한 사람에게 기도하기를 가르치겠다”
■ 스드로우 박스터="사람들은 우리의 호소를 일축하고 우리의 복음을 거절하고, 우리의 주장을 반대하고, 우리의 성도들을 경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는 꼼짝 못한다."
■ "나는 열 사람에게 설교를 가르치기보다는 한 사람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싶다."
■ 사무엘 차드렉="악마의 한 가지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악마는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악마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떤다."
■ 아드니람 저드슨="진심으로 기도하면 어느 때 어떻게 해서든지 어떤 형태로 응답이 온다."
■ A.W.로프="하나님은 육체적 수고보다는 기도와 영적 교제에 더 큰 가치를 둔다. 하늘나라의 신랑은 신부에게 구애하고 있는 것이지 하인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그의 은신처에서 불러내어 이 땅에서 기적을 행하게 하고 신자를 통하여 길 잃은 영혼의 세계 속에 그 자신을 나타낸다."
■ 마틴 루터(Martin Luther)= "오늘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처음 3시간은 기도로 보내리라." “나는 너무나도 일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나갈 수가 없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은 말을 신령한 원칙이라고 생각하였다. “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연구를 잘한다.”
■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웨슬리는 하루에 두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바침으로 그의 확신을 뒷받침하였다.
■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의 생애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의 기도에 있었다. 그의 일기는 기도와 금식과 명상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나의 시골집에 홀로 있기를 즐겨한다.” “나는 이 날을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금식하는 날로 따로 정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와서 명상과 기도와 금식을 하였을 때…….”
기타 기도에 대한 아름다운 교훈들
■ "하나님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성도의 가장 작은 기도의 속삭임에 대하여 바다같이 넓은 은혜를 주신다. 만일 그 기도의 속삭임이 회개하고 청결 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저항할 수 없는 이름에 전적으로 의지한데서 나온 것이라면!"
■ "기도 없는 하루는 축복 없는 하루이며, 기도 없는 일생은 능력 없는 일생이다."
■ "하나님과 보낸 한 시간은, 인간과 보낸 일생만큼의 가치보다 더 의미가 있다."
■ "다니엘은 기도의 하루를 잃어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사자와 더불어 하룻밤을 보내기를 좋아했으리라. 베드로는 감옥에서 나오는 것이 기도회에 가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을 알았다."
■ "믿음은 기도할 때만 힘이 있는 것이다."
■ "결코 지지 않는 한 비밀스런 저 태양은 새벽을 고대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비로소 떠오른다. 기도실에서 헐떡이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깊숙하고 고요한 새벽의 분위기를 맛보게 된다."
■ "많은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그것에 관하여 듣기를 좋아하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 "성도들이 아침 일찍, 저녁 늦게, 오랜 시간동안 기도하지 못하기에, 복음은 느린 속도로 머뭇거리며 늑장을 부리고 있다."
그러면 기도란 무엇인가?
머리말
기도는 신자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자의 바른 기도 생활은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이비적 신앙 운동이 범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도에 대한 바른 인식의 부족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적인 바른 기도는 이방 종교에서 행해지는 염불이나 불공 또는 복을 비는 기복 행위와는 같지 않다. 그런데 기독교를 빙자한 허다한 집단들 속에서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 잘못된 기도 행위가 행해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더욱이 건전한 기도원보다는 건전치 못한 기도원들이 더 많이 난립되어 있어서 어린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커다란 탈선을 조장하고 있고 이 같은 현실은 뜻 있는 교계 지도자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기도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단지 무엇을 구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다윗의 시를 읽어 보라. 그가 하나님과 너무 친밀하다보니 그의 기도, 그의 노래, 그의 묵상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즉시 들어주실 수 없을까?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필요한 때만 불러.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요술램프의 거인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를 우리의 신앙 성장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약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왜 엘리야는 그렇게 잘 응답 받았는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 의인이었다. 즉 이미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친구에게 부탁해 보라. 친한 친구일 경우에는 도와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 부탁하면 별로 도와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먼저 좋은 관계 맺어야 한다. 그러니 문제 있을 때만 철야, 금식, 야단법석 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평소에 잘 맺어야 한다.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고, 우리의 매일 걸음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 기도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기도는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시간이다.
기도에 대한 이해
(1)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이며 교제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지엄한 분이 아니라 친근한 아버지이시다.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친근히 아버지께 나아가 그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자신의 고통, 슬픔, 번뇌, 기쁨 등 모든 것을 창조자이시며 완전한 인격체이신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 형편을 헤아리신다. 또한 기도하는 이를 통해 그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기도는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한다.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대화하고 사귐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바쁘다고 숨 안 쉬나? 숨 안 쉬면 죽은 사람이다. 죽었나 안 죽었나 숨쉬는 것을 보면 안다.
(2) 성도들간의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동일한 기도제목을 갖고 동일한 장소에 모인 성도들은 서로가 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고 부모형제와 같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된다. 기도는 성도들간의 진실한 사랑을 맺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3) 기도는 거듭난 자의 호흡이다.
육신이 코로 숨을 쉬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호흡운동이며 호흡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인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영혼 역시 죽은 영혼이다.
(4)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이다
계5:8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기 나는 기도가 있고,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기도가 있다.
(5)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랑의 고백이며 믿음의 구체적 고백이다.
(6)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하는 통로이다. ★ 출32:11-14 ★ 수10:12 ★ 렘33:3
(7) 기도는 영적 투쟁이며, 헌신이다. (겸손의 비결)
(8)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이다. ★ 롬8:32 ★ 히4:16
(9)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최선의 길이다. ★ 행1:4-5 , 행2:1-4 ★ 렘29:10 , 렘29:12-14
(10) 기도는 선한 싸움의 무기이다.
출17:8-13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 우리가 아빠만 불러도 불량배들은 도망친다.
(11) 기도는 만능의 열쇠이다.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목욕탕 탈의실의 마스타 키를 아는가? 탈의실 안의 모든 옷장은 이 하나의 열쇠로 다 열 수 있다.
(12)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서의 인간의 기도가 절대 효력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효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화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이 된다.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을까? 만일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지 못한다면 절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없으며 설령 드린다 해도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속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시고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이루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사실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 중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 17:21)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우리 성도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방법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시고 다음으로 예수님과 우리 성도가 하나가 되는데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즉 예수님만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져야 기도의 첫째 요건이 갖추어진다.
(13)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성도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하나님과의 화목의 범주 속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로 언급해 보기로 하겠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을 때 효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에게서 잘려지면 절대로 효과 있는 기도는 드릴 수가 없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서 잘려진 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 7:9-10)고 하신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신령한 연합을 이루어 자녀의 명분을 얻은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적 바른 기도의 요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한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영암교회기도학교(2) 기도의 주체
일반적으로 기도는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 다 그러나 기독교적 참된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 인간 사이에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죄로 더러워진 인간은 감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기도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기독교에 있어서 효력 있는 참 기도의 주체는 오직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시는 기도만이 효력 있게 하신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다는 말인가 물론 그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성도들은 기도의 직접적인 주체가 될 수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존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 독자적으로 하나님께 참 기도는 드릴 수 없다는 말이다
기도는 예배의 한 부분 일진데 거룩한 하나님께서 성자의 속죄 제사 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더러운 인간의 예배는 받으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피없는 제사는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양의 피를 흘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혹자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해 대속으로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성도가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와는 정반대로 천주교에서는 추악한 인간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신부가 중보의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영원한 대속이시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영원토록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속을 이루어 주시고 이제는 우리와 관계없이 멀리 떠나가신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표준 문서인 대소 요리 문답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요 16:24)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내 이름으로” 란 말은 “예수님의 공로와 신분으로” 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로와 신분이 아니면 도저히 어는 누구도 기도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 26:41)등 여러 곳에서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의 기도가 예수님과 관계없이 직접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우리의 연약성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성령(그리스도의 영)께서 도우셔서 간구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직접적인 주체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구속주 이신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기도의 대상
이교도들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적 존재나 또는 자기들이 만든 우상에게 기도를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 물론 삼위의 구별 없이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여기서 논하려고 하는 것은 어떠한 하나님이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논하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묘사할 수도 있겠으나 크게 나누어서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1)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그가 전능 자라는 전제 아래서 가능한 것이다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전능자 하나님만이 효과 있는 기도의 응답자가 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드리는 기도는 찬송과 감사 자백 간구 등으로 엮어지는데 전능자가 아니시면 어떻게 찬송의 대상이 되며 감사를 드리며 자백과 간구를 할 수 있겠는가 혹시 한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절대로 찬송과 감사 자백과 간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혹자들은 마리아나 베드로 또는 불상이나 조상의 영들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무능한 존재들이다 무능한 이런 아이에게 나의 사업을 도와 달라는 간청이나 찬송과 감사가 가능하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소원을 요청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 는 것은 능력이 온전하시다 는 뜻으로서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으로 만사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하여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온 우주 만물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도의 절대 대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2)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기도만을 들어주신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 내용용을 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 자신을 아들로 호칭하면서 기도를 드린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께서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것은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재 것이 온데...(요17:10)라는 원리에서 이해되는 진리이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는 사랑을 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자의 관계요 주는 자와 주는 것을 받는 자와의 관계이다 그리고 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자와 구하는 자와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아버지의 것과 아들의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것이 곳 아들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양자의 명분을 얻은 성도가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결국 기독교의 참된 기도는 천지와 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며 들어주셔야 하는 관계를 맺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마음가짐
(1) 확신을 가지고 할 것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6-8)" 이 말씀은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 진다는 사실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확실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잘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응답되어 진다는 확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간구라면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다. 기도에는 오직 한 가지 마음, 응답하신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2) 겸손한 마음으로 할 것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시10: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이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시34:18)"
겸손한 마음은 곧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이다. 겸손한 심령, 통회하는 심령으로 간구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고 하였다. 이제까지 인도해주심과 만 가지 은사와 축복 받은 사실을 아는 것이 감사한 마음이다. 기도를 통해서 어떤 것을 구하기 이전에 항상 감사가 앞서야 한다.
(3) 하나님께 완전히 맡길 것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하나님과의 진정한 영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있는 그대의 모습을 꾸밈없이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 또한 마음속에 있는 일을 그대로 하나님께 고하며, 마음을 쏟는 일이다.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못한다면 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품속에 자신을 던지고 간구한다면 더욱 확신을 얻을 수 있다.
(4) 낙심하지 말 것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기도에 있어서 낙심은 금물이다. 낙심하는 마음가짐은 기도하는 자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 기도의 결과는 반드시 있게 마련인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오래 참음으로 기도하고 기도의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중단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5) 하나님 뜻대로 할 것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보는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이 기도이며, 의논한다는 것은 하나남의 뜻을 묻는 것이다. 기도는 결코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응답만을 간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상호 의사교통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중에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의 내용
혹자들은 하나님께 무슨 내용의 기도이든지 열심히 오랫동안 드리기만 하면 응답해 주시는 줄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기도가 만사를 자기의 소원대로 성취하는 비법인 양 생각하고 올바르지 못한 기도에 몰두하는 자들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그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을 가르쳤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찬송과 감사 자백과 간구가 기도의 내용이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내용의 근본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라고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 내용 중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10)라고 하셨다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의하여 성취되어 가는데 감히 누구의 뜻이 첨가될 수 있단 말인가 야고보서에서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얻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성도는 마땅히 내 뜻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혹자는 반문하기를 그렇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속에 소원을 두셔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기도할 마음을 주시고 소원을 주셔서 기도하게 하신다. 그래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줄을 우리로 알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성도들의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기록을 자주 보게 된다. 백성을 위한 모세의 기도 히스기야의 기도 다윗의 기도 등의 경우이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들은 자세히 알고 보면 모두가 본래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대로 이루신 것임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본래의 작정하신 뜻대로 다윗의 왕조를 잇게 하시려고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출생하여 자라기까지 히스기야의 생명을 십오 년 동안 연장시켜 주신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기도나 다윗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대로 섭리하시려고 응답하여 쥐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뜻을 돌이키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 뜻을 돌이키셨다는 것이 아니고 섭리 과정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려는 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구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기도의 내용이다 구약 시대의 야곱 모세 다윗 히스기야 등 유명한 선지자들의 기도가 모두 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야 한다. 신약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내용이 모두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한 말씀은 조금 앞에서 가르치신 주님의 기도 내용의 요약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 천국의 내림 뜻이 땅에서 이룰 것 일용할 양식 죄 용서 악에서의 구출 등을 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사실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미 약속된 것들을 그 내용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드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되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 내용에서 받은 줄로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는 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구했을 때에만이 가능한 것이다
누가복음 11장 1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기도하라는 것을 벗의 비유를 들어서 교훈 하신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주실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19장 1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로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신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 역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재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까 기도하라는 교훈으로 하신 말씀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오랫동안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나 약속된 것이 아닌 것은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정성을 다해 드린다 할지라도 절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바른 기도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만세 전의 정하신 뜻에 따라 우리에게 약속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기독교적인 바른 기도란 그리스도의 공로로 자녀 된 자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약속된 뜻을 구하는 것이다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하자.
(1) 일정한 시간을 정하라
각자의 하루 계획이 각자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과를 시작하기 전인 아침 시간이 좋다고 말한다. 시간이 없다고 핑계하지 말고,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2) 일정한 장소를 마련하라
은밀하고 고요한 곳을 찾아서 주위가 산만하지 않는 중에 기도하는 것이 좋다. 만일 그러한 장소가 허락되지 않을 때는 정신을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3) 기도하는 시간에 쫓기듯이 서둘러서는 안 된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대로 충만해야 한다. 다음 시간의 할 일을 생각한다면 기도는 산만해지고 말 것이다.
(4)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라.
모든 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영혼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5) 기도의 목록을 만들어 기도의 내용과 응답된 것을 기록하라.
계획적이고 능률적인 기도생활을 위해서 기도 수첩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도의 필요성
모든 일에 실패하는 것은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구약의 사울과 신약의 가룟 유다의 기도생활을 연구해 보면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전혀 기도생활을 갖지 않았다. 다음 이런 질문을 해보자. 에덴동산에서 뱀이 접근했을 때 아담 혹은 하와는 기도를 하였나? 아브라함이 하갈에게 들어가기 전에 기도를 하였나? 혹은 애굽을 내려가기 전은? 바울과 바나바가 요한 마가로 인하여 다투기 직전에 바울은 기도를 하였는가?
기도가 없는 것은 재앙이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밤에는 야곱에게 추위를 주시고 낮에는 가뭄으로 더위를 주셨지만, 20년이 지난 후에야 그로 하여금 겨우 한마디 기도소리를 낼 수 있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가 기도했을 때 기도응답을 받으려고 놀랍게도 하나님의 길에 들어가 있었다.(창32:9-20참조).
야곱이 하나님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비결을 배운 것은 단지 얍복강(비우는 장소)에서였다. 왜냐하면 거기서 그는 모든 힘을 소진하고 다리를 절었기 때문에 목숨을 다해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야곱은 씨름에서 졌지만 매달림으로 해서 곧 승리했다. 다윗 생애의 가장 큰 비극은 기도하지 않고 궁전의 지붕 위를 거닐며 밧세바를 욕정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찾아왔다.
"초대교회에 기도를 대신할만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기도를 제쳐놓을 만한 어떤 것이 있는지에 관하여는 다음 구절을 주목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니"(행6:2-4)
저명한 목사 두 분이 질문을 받았다. "만일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스런 일이 되겠습니까?" 그 분들은 대답하기를 "기도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기도할 마음은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한 불쌍한 영혼이 지옥에 도착한 후에야 기도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그 고통스러움에서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한 거지에게 자기 형제들을 경고해 주도록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한 인간인 아브라함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장소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는 일은 감히 부탁하지도 못했다. 그는 자기가 모든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이 사건은 땅 위에서 기도하지 않고, 지옥에서 기도를 배우려 하는 것은 응답 받지 못하며, 너무 늦어버린 영원한 고통임을 교훈한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니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23:6)
올바른 기도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의 종교 의식들 중에서 가장 잘 시행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기도이다. 인간에게는 자기보다 고차원적인 어떤 존재로부터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밀림지대로부터 산악 지대나 바다의 섬 지대에 이르기까지 온갖 언어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과 따라서 이러한 의식이 귀신을 쫓아내거나 어떤 도움을 비는 미신적인 행위의 수준을 거의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란 인류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기도는 영광의 보좌와 연결되어 있는 송수신용 전화선과도 같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기도란 단지 우리가 말하고 또 말하고, 요구하고 또 요구할 수 있는 우리의 일방적인 송신용 회선이라고만 생각하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또 들으려고 기다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황급하게 긴 요구 사항들을 쏟아 놓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에 대해서는 알려고 기다리지도 않고 황급하게 기도를 끝내 버린다. 일방 통화용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하긴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 누군가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거나 아니면 듣고 또 듣고 하기는 하지만 한 마디의 대답도 들을 수 없는 경우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없다 !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롬 15:30)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기 전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1.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도록 하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우리 기도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기도라는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고 계신지 조금도 모르는 채 기도를 하고는, 응답을 받지 못할 때는 놀라며 실망을 한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마 6:9; 고전1:2; 행 12:5).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히 4:16)
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요 14:13,14;15:16; 16:23; 고전 1:2)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딤전 2:5,6)
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롬 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누가 기도할 수 있는가?
1)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자.
하나님께서 죄인들로부터 듣고자 하시는 유일한 기도는 바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라며 나오는 기도이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 66:18)
2)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지 않은 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2)
3.기도에 장애가 되는 것들
1) 불신앙은 기도의 응답에 방해가 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6,7)
2) 잘못된 동기는 기도에 방해가 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 4:3)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4)
3)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 것과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기도에 방해가 된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잠 28:9)
4) 공허한 말의 반복은 기도에 방해가 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6)
5) 그리스도인 가정의 불화는 기도에 방해가 된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6)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기도에 방해가 된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 (막 11:25,26)
예수님의 기도 생활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5,16).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장소와 시간은 특별히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으며 (눅 5:16; 9:18), 또 그렇게 가르치셨다. (마 6:5,6) 예수님께서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막 1:35) 혹은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 (눅 6:12)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기도하셨고(마 14:23), 바쁘면 바쁠수록 더 많은 기도를 하셨다.(눅 5:15,16)
또한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특별한 기도를 하셨다. 제자들을 택할 때에는 철야 기도를 하셨고 (눅 6:12),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기도하셨고 (눅 3:21,22),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 (눅 9:28,29) 그리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는 40일 동안이나 금식 기도를 하셨다. (마 4:2) 예수님께서는 5,000명을 먹이실 때에도 먼저 축사하셨고 (막 6:41), 그 후에도 즉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가셨다.(막 6:45,46)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마 26:36-46; 막 14:32-42; 눅 22:40-4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까지도 원수를 용서하는 기도를 하셨고(눅 23:34), 마지막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셨다.(눅 23:46). “구하라 ! 찾으라 ! 문을 두드리라 !”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기도하시면서 모범적인 기도 생활을 보여 주셨다. 이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자처하는 우리들의 생활이 얼마나 주님을 본받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아직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을 때에 열심히 기도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하겠다.
(결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 (눅 18:1)이처럼 기도는 유순한 권고가 아니라 명령인 것이다. 선지자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삼상 12:23)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붙들지 않기 때문에 잃는 축복과 도우심은 또 얼마나 많은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2)
우리는 이처럼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온 가족이 매일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이는가?
우리는 매일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가? 기도회에는 착실하게 참석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인가?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어찌하여 그분에게 응답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는가?
기도의 훈련
기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영적 생활의 최전방에서 서게 한다. 기도는 답사하지 않은 영토를 최초로 답사하는 것이다. 명상은 우리들로 하여금 내적 삶 속에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금식은 하나의 부수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 심령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행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기도의 “훈련”(실제의 체험) 그 자체이다. 진정한 기도는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또 생활을 창조하는 것이다.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기도(은밀하고 열렬한 믿음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밑뿌리에 있다.”
기도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시는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가 만약 변화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기도를 버리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의 부족함을 더 잘 보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일치하기를 더욱더 원하게 된다.
윌리암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우리의 삶의 과업은 하나님의 “사랑의 들보”를 짊어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피하기 위하여 얼마나 자주 도피처를 만들었는가.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서서히 그리고 자비롭게 우리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그 숨어 있던 장소에서 나와 자유롭게 되도록 하신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올바르게 구하는 일은 정욕이 변화하여 전적으로 새롭게 되는 일과 연관된다. 진정한 기도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원하게 되며 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 기도할 때 우리는 사물을 하나님이 보시는 견지에서 보도록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모든 사람들은 기도를 그들의 삶의 주된 일로 보았다. 마가복음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를 설명해 준다. 다윗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한 그 마음은 잠의 유혹에서 떠나도록 하였다. “내가 일찍 주를 찾되”(시 63:1). 사도들이 다른 중요하고 필요한 일에 힘을 기울이도록 유혹을 받았을 때, 그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사역에 계속적으로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행 6:4).
믿음의 최전방에서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들의 삶의 변두리에 덧붙은 습성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이며 그들의 가장 생산적인 시기의 가장 진지한 일이었다.
영암교회기도학교(3) 기도의 비결
기도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참된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을 분명히 깨달을 때 우리는 참된 기도 생활을 할 수 있고, 기도의 효능을 맛볼 수 있다. 기도는 불가사의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비밀이다. 기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가장 큰 사역이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동역인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사탄의 의도는 깨져버린다. 또한 기도하는 자의 받는 은혜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일어나 기도하라"(눅22:46)고 하신 경고를 따라야 할 것이다.
1.기도란 무엇인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에서 주님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 보장을 기도롤 통하여 약속했다. 그러므로 기도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알아보므로 능력 있는 주님의 학생으로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능력의 사람이 될 것이다.
Ⅰ.기도의 정의
기도란 하나님의 전능하심 뒤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며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중심이 되시므로 그 어떤 것도 기도를 능가할 수는 없으며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와의 대화이며 영교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기도는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도가 없는 곳에는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도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 비례하여 나타난다.(대하7:14)
기도는 가장 오묘한 일일 뿐 아니라 가장 놀라운 영적 활동이다.
1.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와의 대화이며 영교이다(마6:6)
2.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드리는 향이다(계5:8)
3.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인 호흡이다(살전5:17)
4.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죄 용서함을 받는 통로이다(대하7:14)
5.기도는 하나님께서 자녀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는 귀중한 것이다(사60:21)
6.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시50:15)
기도는 비밀이다
기도는 하나의 비밀인데 그러나 이 말은 기도의 비밀이 불가사의한 것이라거나 불가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다만 기도에 대해 잘 깨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기도로써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드문 것이다. 기도의 능력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기도의 원칙에 얼마나 일치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도의 원칙에 일치된 기도만이 참 가치를 가진 것이다.
왜 기도하는가?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왜 기도가 필요한가?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 아닌가? 왜 그는 우리가 기도할 때까지 일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리시는가? 그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인데 왜 우리가 모든 것을 그에게 아뢰어야 하는가(빌4:6)?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즉각 일하시지 않는가? 왜 그는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는가? 왜 구하는 자만 얻게 되고, 찾는 자만이 찾게 되며, 두드리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가(마7:7)?
하나님은 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약4:2)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상의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가? 기도와 하나님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뜻과 반대되는 것은 결코 실행하지 않으신다. 문을 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왜 그는 우리가 문을 두드리기까지 기다리시는가? 왜 그는 그의 뜻을 따라 그냥 문을 열어 놓으시지 않는가? 그는 전지하신 분이므로 우리에게 문이 열려야 할 필요를 다 아실 텐데, 왜 열기 전에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시는가? 문은 열리기로 되어 있고,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며, 그는 문 열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잘 아시는데 왜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시는가? 왜 그는 문을 그냥 열어 주시지 않는가 우리의 두드림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주는가?
우리는 또 다음의 질문들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문을 여는 것이고, 문을 여는 것은 그의 의와 일치하는데도 그는 우리가 두드리지 않으면 열지 않으실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기 위해 그의 뜻과 의를 이루기를 지연시키는 것인가? 그는 우리가 두드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문을 열려는 그의 뜻이 중단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 때문에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과연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그가 전능하신 분이라면 왜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기 전에 혼자 열지 않으시는가? 과연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가? 그가 정말 능력 있는 분이라면 왜 그가 문을 여는 것(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두드리는 것(사람의 기도)에 의해 지배를 받으시는가?
이 모든 질문을 할 때, 우리는 기도가 하나의 큰 비밀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일어나 일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뜻은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해 실현되며, 성도들의 기도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혼자서 이루시지 않고 그의 백성들이 기도로 동의를 보인 후에 이루신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활동이다. 기도는 성도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는, 곧 하늘에 계신 주님의 뜻을 소리로 나타내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탄원을 들어 달라는 요구가 아니요, 자신을 위한 욕망을 채워달라는 소원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뜻을 바꾸게 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일을 하시도록 그분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단지 성도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드러내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로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결정을 변경시키지 않는다. 기도는 아무것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다만 그분이 이미 정하신 것을 이룰 뿐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부족할 때, 그의 결정은 공중에 그대로 떠 있는 상태가 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잘 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말씀 다음에 연결되는 주님의 말씀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절)는 것이다.
땅의 통제를 받는 하늘
기도와 하나님의 사역의 관계는 분명해졌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다만 땅에 있는 그의 자녀들이 묶고 푸는 것을 묶고 푸신다. 매야 할 것들이 많지만 하나님 혼자서는 매지 않으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이 땅에서 먼저 매기를 원하신다. 그 다음에 그도 하늘에서 매는 것이다. 또, 풀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 혼자서 풀기를 원치 않고 땅에서 먼저 그의 백성들이 풀기를 기다렸다가, 푼 후에야 하늘에서도 푸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라! 하늘의 모든 활동은 땅의 활동의 통제를 받는다. 하늘의 모든 움직임은 땅의 움직임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을 그의 백성들의 지배 아래 두기를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육적인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님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육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만일 육적인 것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여러 면에서 하나님을 손상시키게 된다.
마태복음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의미의 말씀이 이사야서에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사45:11).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참으로 엄숙해지고, 육적인 것이 몰래 들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명령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들의 명령에 따라 그의 일을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취한 행동은 묶는 것이든 푸는 것이든 모두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늘이 매기 전에 먼저 땅이 매어야 한다. 하늘이 풀기 전에 먼저 땅이 풀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에 반대되는 것은 결코 하시지 않는다. 그가 매기를 원치 않는 데도 땅의 강요를 받아서 매는 것은 아니다.
땅에서 매는 그것이 그의 원래의 뜻이기 때문에, 결국 땅에서 맨 것을 하늘에서도 매는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매려고 하는 것을 땅에서 그의 백성들이 매기까지 기다리시고, 그들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들이 간구한 것을 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의 간구를 기뻐하시고 그들이 맨 것을 하나님도 매기를 기뻐하신다는 그 사실은, 그분이 이미 매기로 작정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왜 그분은 더 일찍 매시지 않는가? 매는 것이 그의 뜻이고, 따라서 그 뜻이 영원한 이상 왜 그는 그의 뜻에 따라서 매야할 것을 더 빨리 매시지 않는가? 왜 그가 하늘에서 매기 전에 땅이 매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땅이 매지 않은 것은 하늘에서도 맬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땅에서 매는 것이 지연되면 하늘에서도 지연되는가? 하나님은 왜 오랫동안 매기 원하신 것을 자신이 매기 전에 땅이 맬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런 질문의 대답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좀더 쓸모 있게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사탄을 멸하고 하나님과 동역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여 사탄을 거절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구속의 뿐 아니라 창조의 목적이다.
주 예수께서는 그의 온 생애를 통해 이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혼자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심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뜻만 내놓고 그들의 생각만을 기도로 나타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동의를 나타내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은 차라리 잠깐 기다리고 서서 그의 일을 연기하신다. 그는 혼자 행동하기를 거절하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로 그와 동역하게 하여 그들을 높이신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그의 전지전능하심이 그의 자녀들에 의해 제한 받기를 기뻐하신다. 그는 반드시 그의 뜻을 잊고 그에게 동의를 나타내지 않아 동역을 실패하는 경우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늘날처럼 식어지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더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더 순종하며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고 그분의 말씀만을 지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이 시대를 향한 뜻은 신속히 실현될 것이고, 교회는 이렇게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죄인들은 그렇게 강퍅하지 않을 것이다. 주 예수와 그의 나라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사탄과 졸개들은 더 빨리 무저갱에 던져지고, 온 땅에 주님이 더 빨리 알려질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에 자신의 일들만 가득 차 있어 하나님과의 동역을 실패하고 있으므로 수많은 원수들과 불법들이 매이지 않고, 수많은 죄인들과 많은 은혜가 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땅 때문에 얼마나 큰 속박을 받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깊이 존중하시므로 우리는 그만큼 그를 믿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매기로 하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매는가? 또한 그가 풀기로 하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푸는가? 주님께서 주신 대답은 이것이다.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것은 기도, 곧 그리스도의 몸의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최고의 동역이다.
참된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표현하는 기회이다. 기도는 우리의 뜻이 하나님 편에 선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벗어난 기도는 있을 수 없다.
자아와 기도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기도는 요즈음 얼마나 될까? 나의 자아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구하는 기도는 얼마나 될까?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 날마다 그분 앞에서 그분의 뜻을 선포하고, 그가 우리에게 알려 주신 뜻이 다 이루어지도록 온 마음을 쏟아 기도하는 성도들이 우리 중에 과연 얼마나 될까?
다른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것은 기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의견, 우리의 소망, 우리의 계획, 우리 자신의 추구가 얼마나 강한가! 자아가 그렇게 강한데, 자신을 완전히 잊고 하나님의 뜻만을 찾는 기도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아를 부인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행동에서나 기도에서나 필수적인 것이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바치는 기도는 바치는 생활에서 나온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크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기도를 흔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떠드는 것이거나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가 곧 하나님의 필요를 이루도록 간구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본래의 생각은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성도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달라는 기도를 결코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기도의 원칙과 뜻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무엇이든지 성도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님도 이것을 원하시는가, 아니면 나의 필요함을 공급해 주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이 당신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것임을 알았다면 당신은 당신의 필요를 공급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간구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당신은 그분이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지금 문제는 당신의 필요가 충족되었는가의 여부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는가에 있다. 지금 당신이 구해야 할 것은 당신의 필요를 공급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잘못이 얼마나 많은지! 성도들은 자신의 필요를 먼저 내놓는다. 그들은 기도에서 그들의 필요를 먼저 말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것들을 공급해 주는것이 주님의 뜻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만 기도해서는 안 된다.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께 용납되는 합법적인 기도는 오직 하나, 곧 그분의 뜻을 그분이 이루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잃어버려야 한다. 우리의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즉시 우리의 필요를 내려놓고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는 주님의 높은 기도라 할 수 없다. 개인적인 필요를 위한 기도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기도한 다음에 간접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비결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분의 뜻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며, 우리가 자신의 관심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다. 우리가 동역하는 방법은 기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가 그의 뜻에 관계된 것들을 다알고 그의 뜻을 따라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 참된 기도는 실제로 역사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직 그의 뜻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실제로 자신을 부인하는 역사이다.
우리 자신이 완전히 끝나지 않으면, 자신에 관해서는 지극히 작은 관심마저도 다 없어지고 절대적으로 주님만을 위해 살며 그의 영광만을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가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할 수 없고, 그가 구하는 것을 구할 수 없고, 그가 원하는 기도를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에 대한 관심을 다 없애고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관심 없이 그분만을 위해 기도하기란 더 어려운 것이다.
지난 세대들에서는 그의 자녀들의 동역의 기도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그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 있었다. 우리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아도 똑같이 애석한 상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좀더 큰 믿음을 가지고 좀더 많은 기도를 했더라면 우리의 생활은 그렇게 무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과 화합하여 그 화합을 기도로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의 화합을 통해 나타난 위대한 역사를 완전히 경험한 성도들은 없었다.
기도는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가 달리는 철로이다." 이것은 어느 하나님의 종의 좋은 표현이다. 참으로 기도와 하나님의 뜻은 철로와 기차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기차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하루에 천 마일도 달린다. 그러나 철로가 없으면 한 치도 달릴 수 없다. 철로 없이 움직이려고 하다가는 땅 속에 푹 박히고 말 것이다. 먼 거리도 달릴 수 있지만 철로가 없는 곳은 갈 수 없다.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도 이와 똑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더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이 비유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전능한 힘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지만 여러분과 내가 기도로 그분과 함께 역사하지 않으면, 기도로 그의 뜻을 위한 길을 예비하지 않으면, "모든 기도와 간구"(엡6:18)로 그의 기동력을 시인하지 않으면 그분은 역사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 원하시는 일은 대단히 많지만 그의 자녀들이 동의하지 않고, 길을 예비하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손은 묶여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이 점에서 그분을 날마다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당신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이 일과 비교될 만큼 중요한 다른 일은 없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성도들이 그 길을 열지 않으면 "불가능"으로 변하고 만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더욱더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히 기도해야 한다. 모든 방면에 걸쳐, 빈 틈 없는 기도를 해야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뜻이 그 모든 방면에 나타난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우리 행동도 중요하지만, 바쳐진 기도로 주님과 동역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중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관념은, 하나님은 완고한 분이므로 우리가 기도로 그분과 싸워서 그분을 굴복시켜 그의 결정을 바꾸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도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기도는 완전히 헛된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처럼 애써야 할 때는, 다만 하나님의 뜻이 사탄이나 사람에게 방해를 받고 있을 때 그의 결정이 반대를 당하지 않고 그의 뜻이 실행되기를 간절히 바랄 때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보아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결정하신 뜻만을 바라는 마음과, 그 뜻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단호히 대항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나 사탄 -때로는 우세한 것처럼 보이는 -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단호히 막고, 그분의 결정이 실행되도록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실지로 우리는 하나님과 다투며 애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애쓰는 것은 그분의 뜻을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바꾸기 위해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반대되는 것에 단호히 대항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기도를 할 수 없다.
기도의 참 뜻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면 우리는 육적인 것이 잠입해 오지 못하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 스스로 일꾼을 보내신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일꾼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라고(마9:38) 명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저절로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면, 그의 왕국이 우리의 동역 없이도 저절로 임한다면, 그분의 뜻이 저절로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주 예수께서 그러한 기도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마6:9-10).
교회의 반응 없이도 주께서 다시 오신다면 주의 영이 사도 요한을 감동시켜 주님이 속히 오시도록 부르짖게(계22:20)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을 저절로 하나 되게 하신다면 우리 주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왜 그런 기도를 했겠는가(요17:20-22)? 하나님께 동역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주님이 하늘에서 계속 중보 노릇을 하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동의하는 기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동의를 보인 일만을 역사하신다. 그의 백성들이 그의 뜻에 하나 되지 않을 때, 기도가 없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기를 거절하신다. 그의 뜻과 하나 되어 드리는 기도만이 참 기도이다.
기도의 가장 높은 목적은 응답을 얻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연결되어 그분으로 하여금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그릇된 간구를 드리므로 응답 없이 끝난다. 그러나 우리의 뜻이 하나님과 연결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있다.
2.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 안에서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원문참조)
"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그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나아온 것을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군과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 군이 이를 것이라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단10:1-20)
다니엘의 기도를 보여 주는 다니엘서 10장을 읽을 때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 째
첫째로 주의할 점은, 참된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 는사람일 뿐 아니라 그의 뜻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 즉 그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처음부터 우리의 요구를 위해 시작된 기도가 있다. 주님은 간혹 그런 기도를 들으시지만, 주님은 거기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다음의 구절을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106:15).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욕구를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정말 그들이 구한 것을 주셨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약해졌다. 간혹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의 요구를 위한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그러나 그분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기도는 별 가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다른 종류의 기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자신의 필요에서 나온 기도이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에 속한 기도이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기도이다. 이런 기도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하려면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주 나아가야 할 뿐 아니라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안에 포함시켜야 하고 자기의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야 한다. 항상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주께서 그의 뜻과 생각을 알려 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자신의 소망이 되어, 그것을 기도로 표현하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이 두 번째 기도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어리고 약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그의 영이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 안에,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안에 넣도록 할 수 있다. 우리가 그의 뜻과 생각을 접촉할수록 그의 역사와 원하심을 더욱더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알게 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은 점차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어, 우리 안에서 기도로 변한다. 이러한 기도가 큰 가치를 가진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생각 안에 들어가 그의 뜻과 목적을 감지했으므로 자신의 마음속에도 하나님과 똑같은 소망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다니엘 속에서 더욱 분명해 소망은 다니엘의 소망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탄식과 부르짖음의 기도로 이 소망을 나타냈을 때 그는 실제로 하나님의 소망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 이런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을 더 많이 만지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하나님 마음의 뜻 안으로 인도하게 하라.
물론 이러한 기도를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많은 말이나 생각을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 영은 조용히 안식해야한다. 우리는 순간순간 우리의 상황을 주님 앞에 가져가 주님 앞에서 그 것을 생각하거나, 우리의 현재의 상태는 잊어버리고 단순히 그의 말씀만을 묵상해야 한다.
또는 그분 앞에서 살며, 우리의 영으로 그를 접촉하기를 훈련할 수도 있다.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접촉하게 된다. 사실 가장 큰 지혜는 바로 이 근원에서 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의지는 그의 의지로, 우리의 생각은 그의 생각으로 들어간다.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기도가 그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생각을 하나님께 가져올 때, 우리 안에서 그분의 의지와 생각이 밝아져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된다. 이렇게 드리는 기도가 가치 있고 무게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에 대해 하신 말씀을 상기해 보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이것은 우리가 간단히 외우는 말 세 마디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나타내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갖다 놓을 때 밝아질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의 의지와 생각이 될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똑같은 한 가지 문제에 관해서도 두 종류의 기도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뜻이 근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기대에 기초를 둔 것이다. 주님이 그런 기도에 응답을 하실 지는 모르나 그런 기도는 가장 낮은 가치를 가진 기도이다. 다른 경우로 우리가 그 문제를 주님 앞에 가져와 그의 영으로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 안에 넣고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안에 넣도록 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깊은 갈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바로 그분의 의지와 생각인 것이다. 주님이 인간의 죽음을 슬퍼하고 탄식하신다면 우리 안에도 한 영혼의 멸망도 보지 않으려는 눌림이 생길 것이다.
이런 것이 깊은 탄식으로 기도하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의 나타남이다. 또 주님이 그의 자녀들의 실패를 염려하고 마음 아파하시는 것도 우리 속에서 같은 눌림을 갖는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죄와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똑같은 갈망을 갖게 된다. 그때우리 안에서 기도가 나온다.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그의 자녀를 깨끗케 해 주실 것을 간구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뜻에 의한 기도가 있고, 우리 안에서 우리의 뜻이 된 하나님의 뜻대로 한 기도가 있다. 이 두 종류의 기도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두 번 째 기도의 경우, 성도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의 뜻이 그의 안에 나타난다. 그것이 그의 호흡이 되고 탄식이 된다. 이 뜻에 따라 한 기도는 가치 있고 무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여러 면으로 할 일이 많으시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 만으로만 기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그의 갈망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탄식으로 기도하게 된다. 우리가 그에게 가까이 갔을 때 하나님이 복음 전파의 뜻을 넣어 주시면 이것이 곧 우리 안에 눌림이 된다. 이 눌림대로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탄식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처럼 느낀다. 주님은 여러 가지 뜻과 여러 가지 눌림을 우리 안에 넣어주신다. 어떤 뜻이든 어떤 눌림이든 그것이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새겨지면 그 사람은 주님의 뜻이 자기의 뜻이 되어 그대로 기도할 수 있다.
다니엘의 경우에서도, 그는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어떤 문제를 접촉했고 깊은 탄식으로 기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얼마나 귀하고도 실제적인 것인가?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한다.
둘 째
사탄을 놀라게 하므로 사탄이 기도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기도는 흑암의 세력을 건드린다. 여기에 영적 전쟁이 생기게 되어 우리의 육신이나 가정, 또는 우리에게 속한 무엇이든지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된다. 언제든지 기도는 사탄의 공격을 부른다. 그 원수는 우리의 기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공격한다. 심지어 그는 공중에 방해를 던져 기도의 응답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응답이 신속해야 할 그 기도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그 응답이 이십 일 일간이나 방해를 받았던 것도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했는가?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의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가지 질문이 있다. 당신은 기도가 응답이 없는 채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그것은 어딘가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이십 일 일의 기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 보좌에서 응답은 주어졌지만 방해를 받아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이 땅의 더 많은 기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오래 참으며 겸손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생각들을 부인하고 그 분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 당신은 기도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일에 당신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당신의 기도의 대상이 될 것이고, 당신의 기도를 통해 모든 문제들이 접촉될 것이다. 자신의 감정으로 기도하지 말라. 당신의 소망을 하나님의 소망 안으로 가져와서, 그 분의 뜻이 당신의 뜻이 되고, 당신의 탄식이 되고, 당신의 소망이 되게 하라.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수 없고, 사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사탄의 세력과 부딪히게 된다.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사탄의 반대 공작을 멸하기 위해 기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풀어야 할 것을 풀고 묶어야 할 것을 묶는 기도의 권위를 행사하자. 우리 자신의 뜻에 따라 기도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