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독교인들은 '성경적' 이라는 표현을 무지하게 잘 쓴다.
이러한'성경적'이라는 표현은 일반 신자든, 목사든, 누구든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무엇을 하든 성경적으로 하라고 말한다.
이 '성경적'이라는 표현은 '복음적' 혹은 '기독교적' 이라는 말의 쓰임과도
흡사하게, 기독교인으로서 지향해야 할 최상의 지점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재미난 사실은 똑 같은 성경을 두고서도
저마다 해석을 다르게 한다는 점이다.
한 구절을 높고도 그 해석이 첨예하게 갈라진다.
심지어 같은 구절을 두고 번역본도 저마다 다르다.
킹제임스역본, NIV, RSV, 개역, 공동번역, 새번역, 등 헤아릴 수 없다.
여성차별을 정당화하여, 여성목사 안수를 반대하는 보수 진영도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 본문을 찾아보면 여성에 대한 비하가 허다하다.
사형제 논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인 한기총은
사형제를 지지하는 이유가 성경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사형제를 반대하는 진보진영은
한기총과는 전혀 다르게 성경을 해석한다.
노예제도를 정당화 했던 미근본주의 기독교 역시
노예제도와 흑인차별을 성경에 기인하여 정당화시킨다.(창9:25)
반대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 반대 역시, 성경에 기인하고 있다.(마5~7)
(이상은 펌 글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 신천지, 구원파 등의 이단들도
한결같이 자신의 교리를 '성경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무지하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체험'이 적은 사람은
이단 사설이 매혹적이고 그럴듯하기 때문에 쉽게 빠져듭니다.
이단들도 모두 성경을 들고 가르치지만 중요한 것은...
'똑 같은 구절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요, 문제입니다.
성경은 은혜속에서 기도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잘못된 교회나 이단 교주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구절들만 골라
하나로 모아 목걸이 처럼 연결한 뒤, 그들만의 해석을 비밀인냥
가르치고, 세뇌시킵니다. 이단들은 교주가 통달?한 성경을
베워 아는 것이, 믿음이요, 구원이요, 영생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단의 공통점은 재림을 지나치게 자주 강조합니다. 신도들에게
급한 마음과 두려움을 주어, 헌금을 강요하여 물질로 착취합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고 말하면서, 이 땅에 큰 예배당을 세우려 합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바로, 이단의 간교함이요, 사기극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은 사실만이 참-진리가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경험한 사실만이 생명이 됩니다.
참과 거짓을 분변하기 위해서는 영 분별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영 분별을 은사를 사모하며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고전12:10)
영은 말이나 말씀으로써 자기 정체를 드러내며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요8:47)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변할 수 있습니다.(요10:4,5,27)
의의 말씀을 경험한 자, 즉 연단을 받은 자들이(히5:13)
지각을 사용하므로 선악을 분변할 수 있습니다.(히5:14)
이단이 주로 쓰는 방법인 알레고리(allegory)식 성경해석
즉, 비유와 은유로 푸는 자의적 성경 해석도 경계해야겠지만
지식적으로 접근하여 이성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깨달을 때는 영혼을 죽이는 독초가 됩니다.
말씀으로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학문(인문과학, 자연과학)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조금씩 발견해가거나 응용하는 지혜밖에는 없습니다.
세상 학문으로도 어느 정도까지는 영적사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를 아는데 있어서 세상의 학문은
소경의 눈과 같고 곤충의 더듬이와 같습니다.
세상의 학문으로도 영적 실재에 접근할 수는 있겠지만(창3:6)
인본적 배움이나 신념에는 지혜롭게 할 만한 지식만 있을 뿐입니다.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텅 비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학문에만 기반한 신학(神學)은 믿음(영혼)을 죽입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살아있는 교제를 통해 말씀이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배워 성경을 자기 취향대로 곡해하기 때문입니다.
눈물속에서 은혜로 주어지는 믿음이 아니라, 지적 유희를 통해,
사람의 눈에 타당해 보이는 신학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런 교사들과 목사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습니다.
박학다식해 보여도, 그들은 영적 실상을 보지 못한 소경이기 때문에
자기-지식으로 말미암은 거짓말을, 진리 말씀인냥 가르치게 됩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9:41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영적 실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본다(안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런 거짓교사를 영적으로 분별하라고 경고합니다.
(마15:14. 마23:16. 마7:15, 마24:11,24. 고후11:13)
이런 어리석은 종들이 도처에서 독초를 먹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도 참된 믿음의 성장은 거의 없이
머리속-판단과 지식만,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땅히
받아야 할 은혜조차 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은 신념을, 신앙인냥 착각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 수록 용감무쌍하여
성령의 역사를 대수롭지 않게 판단하거나 멸시하게 됩니다.
오늘날, 남녀 종들이 성령 훼방죄를 많이 범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는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마12:31~32) 성령훼방죄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용서 받을 수 없는, 대역죄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영안이 밝아질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은) 신령한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세계를 체험으로 맛보고 안다고 할찌라도
물질에 눈이 어두우면, 영을 팔아 먹게 됩니다. 이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들입니다.(갈3:3)
세상의 부귀영광을 위해 복음과 예수의 피를 파는 자들이며
충성은 고사하고 육신적으로 허우적거리는, 타락한 종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에 실패한 자들(유다서1장 11)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항상 깨어, 근신함으로 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말)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
흐르는 곡 ː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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