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 6. 22:48ㆍ목양자료/4.기도자료
구약에 나타난 중보기도
박동현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수 /
구약학)
--------------------------------------------------------------------------------
하나.
들어가는 말
중보기도란 하나님과 그 어떤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그를 위해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더러는 대도(代禱)라고 옮기기도
한다. 영어 intercession에서는 누가 하나님과 그 어떤 사람 "사이에 끼어든다"는 점이 강조되고, 독일어 Fu¨rbitte에서는 그
어떤 사람을 "위해서 빈다"는 점이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에서는 먼저 중보기도를 뜻하는 몇몇 구약성경 히브리어 표현들이
어떤 흐름에서 쓰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둘"), 그런 표현들이 없더라도 내용이 중보기도인 경우를 몇 가지 알아본 다음("셋"), 중보기도에
대한 구약성경의 다양한 진술들을 간추려 보기로 한다("넷").
중보기도에 관한 구약성경 본문을 완전히 또, 하나 하나를 자세히
풀이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그냥 몇몇 보기를 계속적인 연구의 자료로 제시하는 정도에 머물기로 한다.
둘.
중보기도를 뜻하는 구약성경 히브리어 표현들
가. "…를 위해 기도드리다"(히트팔렐 베아드…)(아래 1-6), "…때문에 기도
드리다"(히트팔렐 알…)(아래 6-8), "…를 위해 기도를 올리다"(나사 테필라 베아드…)(아래 9)
⑴
아브라함
창세기 20장 7절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한 아브라함의 말을 믿고 사라를 아내로 취한 밤에 하나님이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것을 막으시고 사라를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시면서 아브라함은 선지자인데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1)라고
말씀하신다.
⑵ 모세
민수기 21장 7절에서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뱀들에 물려 죽게
된 백성이 모세에게 잘못했다고 하면서 살려 달라고 하자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고 한다.
신명기 9장 20절에서 모세는
지난날 시내산 기슭에서 금송아지 만드는 일에 관여했던 아론을 하나님이 멸하려 하셨을 때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였다고 한다.
⑶
사무엘
사무엘상 7장 5절에서는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불러 모으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말한다.
12장 19절에서는 임금을 구한 이스라엘에게 야훼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시자 두려워한 백성이 사무엘에게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답 가운데서 사무엘은 23절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한다.
⑷ 유대에서 벧엘로 온 하나님의 사람
열왕기상 13장 6절에서는 유다에서 벧엘로 온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이 분향하던 단을 향하여 심판의 말씀을 외치자 여로보암이 그를 잡으려고 단에서 손을 폈을 때 그 손이 말라 거두지 못하게 되었는데
여로보암이 이 하나님의 사람더러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고
부탁한다.
⑸ 예레미야
예레미야 7장 16절, 11장 14절, 14장 11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더러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다.
29장 7절에서는 바벨론에 사로잡혀가 있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레미야가 써보낸 편지 가운데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37장 3절에서는 시드기야 임금이 신하들을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한다.
42장 2-3절, 20절에서는 유다가 망한 다음 유다 땅에 남게 된 유다 사람들 위에 바벨론이 세운 총독 그달리야2)가
암살된 다음 그 암살자들을 물리친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라 하고 이에 따라 예레미야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드려 애굽 땅으로 달아나지 말라는 말씀을 받아 전했는데 이들은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
⑹ 욥
욥기 42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욥이 그의 세 벗들 "때문에" 기도할 것이라고 하시고, 10절에서
욥은 그 벗들을 "위하여" 기도 드린다.
⑺ 히스기야
역대하 30장 18절에 히스기야는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지 않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를 어긴 사람들 "때문에"* 그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드린다.
⑻ 느헤미야
느헤미야
1장 6절에서 예루살렘성이 훼파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는데, 길게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한
다음 왕 앞에 나아가서 소원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해 달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⑼ 이사야
열왕기하 19장
4절과 이사야 37장 4절에서 히스기야 임금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와 에워싸고 항복을 권유하고 위협하는 어려운 상황을 이사야에게 알리면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려라"*고 부탁한다. 뒤이어 6-7절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어떻게 해야 할런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 것 같다.
나. "…에게 좋도록 기도드리다"(아타르 레… / 히으티르 레…) 또는 "…에게 좋도록
기도드려지도록 하다"(네으타르 레…)
⑴ 이삭
창세기 25장 21절에서 이삭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더니 야훼께서 "'그를 위하여' '기도를 들으셨다'(〈네으타르〉)."*
여기서 이삭이 드린 기도가 한편으로는 그의
아내를 위한 기도이어서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아내의 불임은 곧 그 자신의 불행이기도 한 것이어서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⑵ 모세
출애굽기 8장 9[5]3)절에서 모세는 애굽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구하여"(히으티르) 개구리가 사라지도록 하려 하였고, 28[24]절에서 바로는 모세더러 "나를 위해"
"기도하라"(히으티르)고 하였다. 9장 28절과 10장 17절에서도 전치사는 없지만 바로를 위해 모세가 기도라는 것을 동사〈히으티르〉로 표현하고
있다.
⑶ 다윗
사무엘하 21장 1절에서 세 해 동안 가뭄이 들자 다윗은 야훼 앞에 "구하였다"(동사 빅케쉬). 이에
하나님께서 그것이 사울과 피를 흘린 집 때문임을 알려 주셔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자 14절에서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네으타르)" 하신다.
마찬가지로 사무엘하 24장 25절에서도 온역이 온 나라를 덮쳤을 때 다윗이 아라우나의 마당에서
제사드리자 야훼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다고 한다.
다윗의 경우도 앞의 이삭의
경우처럼 한편으로는 백성이나 나라는 위해 기도한 것이지만, 그 백성이나 나라의 통치자가 자신이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다. "…를 위하여 구하다"(빅케쉬 베아드…)
사무엘하 12장 16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저지른 잘못 때문에
하나님께서 밧세바와 자신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죽게 하시겠다는 뜻을 전해 듣고 이 아이를 "위하여 구한다".
라. "…때문에 탄원을
올리다"(힙필 테힌나 알…)
다니엘 9장 4-19절에 보면 다니엘이 "우리"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철저히 아뢰고 고백하면서 황폐해진
예루살렘 "때문에"* "탄원을 올린다"*.
마. 구약 아람어로 "…를 위해 기도드리다"
에스라 6장 10절에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지원하라는 내용으로 바사 임금 다리오가 쓴 조서 안에 유대 사람들이 바사 임금과 왕자들이 생명을 "위하여", "기도드리도록" 하라는
말이 들어 있다.
바. "그 틈새 (야훼) 앞에 서다"
(아마드 밥페레츠 리프네 [아도나이])
⑴
모세
시편 106편 23절에서 시인은 "야훼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 택하신 모세가 '그 틈새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들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였도다"* 한다.
이는 출애굽기 32장에서 시내산 기슭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전멸시키시고 그 대신 모세로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 주시마 하셨을 때, 모세가 자신은 망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만큼은 용서하고 살려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드려 마침내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신 사실을 가리킨다.
또, 민수기 14장에서 바란 광야에서 보낸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에 이어 낙심해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멸망시키시고 모세로 큰 민족을 이루려고 하실 때 모세가 기도드려 하나님의 뜻을 바꾸게
한 사건도 생각나게 한다.
이 표현은 중보기도의 성격 가운데 하나님과 다른 사람 사이에 끼어든다는 면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⑵ 하나님이 찾으신 사람
같은 표현이 에스겔 22장 30절에서도 나온다. 유다 멸망의 원인을 밝히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각 계층 사람들이 부패하였지만 "그래도 나는 성벽을 쌓으며, 내가 그를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이 땅을 위해 '그 틈새 내 앞에
서는 사람을' 그들 가운데서 찾아보았는데 만나지 못"*해서 마침내 유다에 재난이 닥치도록 했다고 하신다.
이 경우 "그 틈새
(여호와) 앞에 서다"는 표현에 "이 땅을 위해"라는 말이 덧붙어 있어서 중보기도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드린다는 뜻을 더욱 더 분명히 해준다.
셋. 내용으로 보아 중보기도로 여길 수 있는 경우
⑴
아브라함
창세기 18장 22-3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것을 알게 된 아브라함이 소돔 땅에서 사는 조카
롯을 생각하면서 그 성중에 의인이 몇 있으면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실 수 있는지를 여러 차례에 걸쳐 여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돔 성은
망했지만 롯과 그 가족은 살아남는데 이를 19장 29절에서는 "하나님이…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고 한다.
⑵ 모세
민수기 12장 13절에서 모세는 자신이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을 비방하다가
문둥병이 든 미리암을 위해서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기도드린다.
⑶ 엘리야
열왕기상 17장
20-21절에서 엘리야는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정성스레 대접한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르짖는다.
⑷
엘리사
엘리야의 경우와 비슷하게 열왕기하 4장 33절에서 엘리사도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고자 기도드린다.
⑸
아모스
아모스 7장 2절과 5절에서 아모스는 환상 가운데서 이스라엘에게 재난을 내리시려는 하나님께 그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드려
응답을 받는다.
⑹ 예레미야
예레미야 14장 7-9절에서 예레미야는 가뭄이 유다에 닥쳐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생각해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마시라는 내용의 기도를 드린다.
⑺
에스라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 포로살이를 끝내고 그리던 고향 땅에 돌아온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과 혼인한 것을 본 에스라는
에스라 9장 6-15절에서 이들의 잘못에 대해 철저하게 회개하는 기도를 드린다. 이는 범죄한 백성을 위해 지도자가 참회하며 드리는 기도로 볼 수
있다.
⑻ 에스더 4장 16절에 모르드개의 권유를 따라 목숨을 걸고 아하수에로 임금에게 나아가 유다 사람들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기로
마음먹은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에스더를 위해 금식한다 할 때 에스더를 위해 기도드림을 암시한다 할 것이다.
⑼ 시편에 나오는 이스라엘
임금을 위한 기도
시 72편 1절의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132편 1절의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10절의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와 20편
1[2] 5[6]절을 제사장이나 예언자가 이스라엘 임금을 위해 드리는 기도로 보기도 한다.4)
넷. 나가는 말 : 중보기도의
내용
위에서 살펴 본 구절들에서 중보기도의 내용은 주로 누구에게 재난이 닥쳤을 때 그가 그 재난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빌거나, 닥칠 재난에 직접 책임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재난 당할 사람들에게 재난을 내리지 마실 것을 비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때로는 특별한 위기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기도가 중보기도이기도 했다. 또한 백성이 저지른 죄에 대해 한 지도자가 깊이 뉘우치며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의 회복을 비는 중보기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임금이 이스라엘의 참 임금이신 야훼의 뜻을 받들어 잘 다스리기를 비는
중보기도도 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때로는 이방 성읍과 이방 사람들이 잘 되도록 드리는 중보기도도
있었다.
중보기도를 드린 사람은 한결같이 야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가운데 있어 야훼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로서,
엘리야,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유다에서 벧엘로 온 하나님의 사람 같은 예언자이거나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 같은 하나님 백성의 지도자들이었다.
사람의 중보기도가 하나님을 강제할 수는 없고, 그 기도를 들으시는가 물리치시는가는 오로지
야훼 하나님의 자유에 속한 것이었다.
미주
1) 이 글에서 성경인용은 개역성경을 따르기로 하되, 사역한 경우는 그 뒤에
*표를 하였다.
2) 히브리말로는 같은 이름인 ?????????? 또는 ????????????를 개역성경 열왕기하 25장에서는
"그달리야"로, 예레미야 39장-41장에서는 "그다랴"로 적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달리야"로 통일하기도 한다.
3) 개역성경의
절수와 마소라 본문의 절수가 틀릴 경우 마소라 본문의 절수는 [ ] 안에 적기로 한다.
4) Hans-Joachim Kraus,
Psalmen 1-59(Biblischer Kommentar. Altes Testament)(Neukirchen-Vluyn :
Neukirchener Verlag, 51978), 62-63쪽.
신약에 나타난 중보기도
김연태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
신약학)
--------------------------------------------------------------------------------
Ⅰ
신약에서
기도를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는 δ?ησιs,? προσευχ?, ?ντευξιs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실제적으로는 서로 상호 교환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 중에서 중보기도(?ντευξιs, 딤전 2:1)는 특별히 타인을 위해서 기도할 때 쓰여지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보기도를
연구할 때 "엔튴시스"라는 용어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약의 저자들이 기도를 말할 때 자신의 필요와 의도에 따라서 자유롭게 용어를
선택하여 쓰고 있고, 그들이 선택한 용어에는 중보기도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와 관련해서 어떠한 용어를 선택해서 쓰든지
그것이 내용상 타인을 위한 기도라면 그것을 중보기도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보기도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의 유형 중에서 가장 차원이 높은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중보기도는 목회를 살아있게 하며, 신자들을 성숙한 신앙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중보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중보기도를 성서적으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그것을 실제에 적용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차원 높은 목회사역을 위해서, 좀더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우리는 신약성서가 중보기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 성서적 원리를 배우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
소고에서는 우선 신약 전반에 흩어져 있는 중보기도에 관한 이야기들을 선택적으로 살펴보고 이것을 통해서 중보기도와 관련한 몇가지 원리들을 파악해
보려고 한다.
Ⅱ
우선 복음서 중에는 누가복음 22:32절에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중보기도 한 것이 나와 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여기에서 중보기도의 상황은 사탄과의 대결에
설정되어 있다. 제자들이 과연 사탄과의 투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의 물음에 대해서 누가는 예수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베드로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묵시적 상황 설정은 이 세상을 이원론적인 구도로 보고 있는 신약성서의 가장 중요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자들은 항상 사탄의 도전 앞에 있다.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인가 사탄의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구도에서 사람을
건져내어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하는데는 중보기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누가의 생각이었다.
누가는
이밖에도 예수가 그의 적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 중보기도의 상황은 원수사랑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누가는 십자가 상황에서 예수의
중보기도를 설정함으로써 예수의 원수사랑의 실체를 보여주려고 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 사상 중의 하나가 원수 사랑이다. 이 원수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기초적인 단계가 바로 원수를 위한 중보기도에 있다는 것을 누가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좀 더
구체적으로 중보기도를 신학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7장으로서 이것을 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장은 전체적으로 예수의
기도에 대한 요한의 해석을 담고 있다. 크게 네 개의 문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째 문단(1-5절)은 예수 자신을 위한 기도를 담고 있고, 둘째
문단(6-19절)은 제자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담고 있으며, 셋째 문단(20-24절)은 후대신자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이고, 넷째
문단(25-26절)은 기도의 결론부분이다. 이중에서 우리가 중보기도와 관련하여 관심을 갖는 단락은 둘째와 셋째 단락이다.
6-8절은
중보기도의 도입부로서 중보기도의 전제조건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라고 하면서 중보기도하는 대상에 대한 분명한 신앙적인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확고한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중보기도의 정당성을 확인해 주며, 책임감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다. 둘째는 기도하는 자의 태도다. "모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중보기도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결코 그들보다 우월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신적인 능력으로 중개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다. 특히 무속종교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한국신자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보기도하는 자는 어떠한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무당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도하는 자는 완전히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행위를 기도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9-19절은 제자들의 보전과 성결을 위한 실제적인 중보기도이다. 그 중보기도의 내용은 첫째로 제자들의 보전을 위한
것이다.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1절)라고 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제자를 보호해 주도록 간구하고 있다.
이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할" 것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이렇게 세상과의 단절을 촉구하는 신학적
입장이 강하다. 따라서 중보기도도 세상과의 단절의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진리로 거룩하게"(17절) 해달라는
기도이다. 공동체의 거룩을 기도하면서 이 거룩이 단지 소극적인 의미의 거룩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거룩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중보기도하는 자도 그 대상을 세상에 보내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20-23절은 범위가 좀더
확장된 중보기도이다. 이제 중보기도의 대상이 자신의 제자에게로부터 일반신자에게로 넓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도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특별히
자신의 공동체의 상황과 관련하여 강조점을 두고 있다. 신자 공동체는 시대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것만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24-26절은 신자들의 완전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것은 중보기도의 완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을 기원하고 있다. 이와같이 요한복음에서는 그 공동체의 상황을 전제로 하여 중보기도가 상당히 탈 세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중보기도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사도행전과 서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사도행전에서는
스데반이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이것은 누가가
예수의 십자가의 장면에서 설정했던 기도와 비슷하다. 원수를 위한 기도의 한 예로서 제시된 것으로서 예수의 원수사랑의 기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에는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그를 위하여 간절히 중보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12:5). 이와같이
사도행전에서는 초대기독교에서 중보기도가 신자들의 삶 속에서 절실하게 행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바울에게서 실제
목회사역에 있어서 중보기도의 역할과 위치가 무엇인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바울은 목회자로서 그의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마다 자신의 신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였다. 우선 바울의 최초의 서신이라고 할 수 있는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바울은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한다"(살전 1:2)라고 하면서 중보기도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중보기도 하고 있다. 첫째로는 사랑을 풍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빌 1:9), 둘째로는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의
날까지 진실하여 허물이 없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빌 1:10).
로마교회 교인들을 위해서는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한다"(롬 1:9)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른 교회와는 달리 로마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성도가 아닌 자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중보기도를 해왔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특별히 주목할 만 하다. 또한 로마서에서 바울은 중보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와같이 바울의 1차 서신에서는 중보기도가 역동적으로 행해졌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이 후기 공동체로 가면서 상당히 신학화 되어감을 알 수 있다.
목회서신에서는 중보기도가 어느정도 정착화되어 목회의 일부로
정형화되어 있는 것을 보여 준다. 디모데전서 2:1-2절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함이니라"라고 하면서
중보기도를 목회사역에서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야고보서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상황인 병든 자를 위한 중보기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 5:14). 야고보서가 행동의 신학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중보기도도 실천에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서는 예수의 중보적 위치를 가장 잘 설명한 책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의 위치를 멜기세덱적인 대제사장의 위치로
인식하면서 예수께서 중보의 위치에서 신자들을 위해서 항상 간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로 중보기도는 예수에게서, 제자들에게서, 그리고 초대교회 신자들에게서 빠질 수 없는 목회적 요소이면서 동시에 신자들의 기도의 중요한
일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Ⅲ
이상에서 선택적으로 신약의 중보기도를 살펴보았는데 이제 그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겠다.
첫째, 중보기도의 필요성, 혹은 근거와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해야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 분을 따르는 신자들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보기도를 우리가 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수 자신에게 있다. 예수 자신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내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고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중보기도는 나 자신의 능력이나 신적인 위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중보기도의 유효성과 관련한 것이다. 물론 중보기도를 이루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그 기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효과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큰 것이 타인을 위한 사랑이다. 중보기도는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기도의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고쳐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되기 때문에 사랑의 실천이
구체화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수께서는 원수를 위한 중보기도도 강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기도를 통해서 원수 사랑의 실천에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중보기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 신앙생활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으로만 머무르는 한계를 넘어서게 해 준다. 중보기도는 사람 뿐 아니라 국가, 세계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해 주며,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결코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와 우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의 실현을 위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셋째, 중보기도에서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대상은 한계가 있을 수 없다. 우선 자기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원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목회자, 성도들로부터 불신자들에
이르기까지 기도할 것이며, 더 넓게는 나라의 위정자들, 세계의 지도자들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다. 중보기도의 내용에 있어서는 타인의
구원과 선교를 위한 내용 뿐 아니라 이 세계와 우주로까지 관심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Ⅳ
중보기도는 우리의
기도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최상의 기도이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회와 신앙의 차원을 높일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의
넓이와 차원에 따라, 또한 우리가 중보기도하는 그 내용의 넓고 깊음에 따라 신앙의 질적인 차원이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중보기도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도록 기원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기도를 통하여 이 땅과 우주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원해야 할 것이다.
'목양자료 > 4.기도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0) | 2006.09.06 |
---|---|
매일 기도해야 할 15가지 이유 (0) | 2006.09.06 |
엘리야의 기도 (0) | 2006.09.06 |
야베스의 기도 (0) | 2006.09.06 |
"시편 기도시의 문맥에서 본 칼빈의 기도론" (논문) (0) | 2006.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