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형 기도

2006. 8. 13. 00:20목양자료/4.기도자료

성막형 기도



1. 본 과를 공부하는 목적

  모든 사람이 기도를 한다. 기도 없이 인간은 살수 없기 때문이다. 또 모든 종교는 기도를 요구하고 있으며 일찍이 기도를 배제한 종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존스(Johnes)라는 학자는 “사람은 왜 기도하는가? 하는 질문은 마치 왜 뻐꾸기는 밤에 우는가? 라는 질문과 같다. 또 독수리는 왜 끝없이 창공을 치솟는가? 라는 질문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뻐꾸기는 밤에만 울도록 지음을 받았고 독수리의 날개는 높이 날게 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기도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기도를 요구한다. 기도없이 살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선생님!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며 주님 앞에 나왔던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기도의 목마름과 기도의 열정이 있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열정을 가지고 “나도 한 시간 이상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가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제자들의 기도의 목마름과 기도의 열정 앞에 주님이 ‘주기도문’을 알려주셨듯이 오늘 한 시간 이상 기도하길 원하는 우리의 열정 앞에 성령님께서는 조용기 목사님을 통해 ‘성막형 기도’를 알려 주신 것이다.


2. 그릇된 기도의 유형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 잘못된 두 가지 종류의 기도를 말씀하고 계신다.

 1) 외식하는 기도

  첫째, 마태복음 6장5절에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유대인에게는 일정한 기도의 시간이 있었다. 3시, 6시, 9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다는 표현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또한 그들에게는 기도의 시간 못지 않게 기도의 장소도 중요했다. 왜냐하면 유대들의 통속적 관념 속에는 회당에서 기도할 때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의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갖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문제점은 시간과 장소만을 강조하다 보니까 자연히 기도 그 자체의 중요성을 상실한데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기도의 동기를 보시고 가리켜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라고 우리에게 경계해 주시는 것이다.


 2) 중언부언 기도

   마태복음 6장7절에 보면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말씀하시며 우리는 이방인과 같이 기도하지 말 것을 가르치셨다.

  중언부언 즉 ‘바타로게세테’라는 헬라어 단어는 히브리어의 ‘파트파트’라는 단어에서 온 것이다. 이 ‘파트파트’란 히브리어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말을 배울 때 그 뜻도 알지 못하고 부모를 따라할 때의 발음’에서부터 이 단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아무 의미도 알지 못하고 그대로 반복하는 모습 어쩌면 우리의 기도 생활이 이와 같지는 않은지?

  의미없는 단어의 기계적인 반복! 오랜 신앙생활과 오랜 기도생활에서 어쩌면 우리의 기도용어는 하나의 익숙한 기계적인 언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무의미한 단어의 반복! 영혼과 마음이 실려있지 않은 기도를 주님께서 경계하신다.


3. 성막형 기도의 특징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오늘은 ‘성막’ 을 이용한 기도방법을 소개하려 한다. 이 성막형 기도가 지닌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성막형 기도는 성경적이다.

 2) 성막형 기도는 간결하고 단순하다.

 3) 성막형 기도는 완전하다.

4. 성막형 기도의 실제

   레위기 1장1절 ‘회막(會幕)’이 영어성경에서는 ‘tent of meeting' 즉  만남의 장소로 표현되어 있다.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고로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인 회막(성막)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또 있겠는가? 여기 성막 기도의 위력이 있다.


 1) 동문의 영적 의미와 기도

  성막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나님이 계신 장막 안으로 인도하는 문은 단 하나밖에 없다.

 ;내가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먹으리라(요10:9)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행4:12)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문이 된다는 사실을 성막의 단 하나의 문은 극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


☞ 동문에서 드리는 기도

 “주님, 오늘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2) 번제단의 영적의미와 기도

   이 놋제단은 제물을 드리는 곳이다. 놋제단에 바치는 예물은 보통 양이나 염소. 이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장은 먼저 제물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한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행동으로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 그 순간 내가 범한 죄가 그 제물에게 옮겨진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사장은 ‘죄로 인해 내가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 제물이 나 대신 나의 죄를 지고 대신 죽는다’ 라는 내용의 고백을 드린다. 그리고는 제물을 죽여 각을 뜬다.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히9:22)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으신 아들 예수를 희생양으로 우리를 위해 대

신 죽이시고 우리 죄를 해결하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예수를 볼 때마다 그것은 우리 아니 나에 대한 값을 대신 지고 가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린다’ ‘걸린다’ 등의 표현을 대할 때마다 바로 번제단에 매달려 있던 희생제물을 연상하게 된 것이다.


☞ 번제단에서 드리는 기도

 “주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를 구속해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3) 물두멍의 영적의미와 기도

 번제단을 통과하면 물두멍이 기다리고 있다. 제사장들은 이 물두멍 앞에 설 때마다 먼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놋은 거울로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놋과는 달리 아주 투명했다. 그 앞에 서게 되면 제사장의 모습이 보인다. 거울에 비쳐진 제사장의 더러워진 모습을 보며 물두멍의 물에 손과 발을 씻는다. 그런 역할을 위해 쓰여졌던 것이 바로 물두멍이다.

 왜 씻어야 하는가? 더러움과 불결함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번제단을 통과했다 할찌라도 아직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한 땅을 밟고 사는 이상 세상의 것에 오염 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예비된 것이 물두멍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 4:8)”

  

☞ 물두멍에서 드리는 기도

 “주님, 오늘도 나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4) 떡상의 영적의미와 기도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과한 뒤 이제 거룩한 성소로 들어가게 된다. 그 우측에 떡상이 있고 좌측에는 금촛대가 있다. 그리고 한 가운데 분향단이 있다.

 제사장들이 성소안에 들어가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떡상이다. 떡상 위의 떡은 항상 신선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제사장들은 거룩한 성소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비하신 향기로운 떡을 배부르게 먹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다.

  동문과 번제단 물두멍을 통과한 제사장이 떡상 앞에서 떡을 먹었다. 번제단을 통과하고 물두멍에서 손을 씻은 사람이 떡상의 떡을 먹은 것이다.


☞ 떡상에서 드리는 기도

 “주님, 내가 영적으로 건강하여져서 말씀이 달게 느껴지게 하옵소서...”

 5) 금촛대의 영적의미와 기도

 금촛대는 무게만 45kg이고 시가 이천여만원에 이르는 가치를 지닌 정교한 물건이다. 성막안에는 창문이 없는고로 이 금촛대의 빛이 유일한 빛이었다. 그러므로 성소 안에서 활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오직 이 금촛대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금촛대의 구조를 살펴보면 가지는 실상 여섯 개고 줄기가 하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줄기를 중심으로 우측으로 3개, 좌측으로 3개의 가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금촛대는 포도나무 가지를 연상케 한다.

 요한복음 15장에 유명한 포도나무 비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포도나무는 예수요 우리는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 가지인 그리스도인은 그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그 존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내가 주님 안에 돌아가 쉬기까지 내 영혼에는 결코 평안이 없었나니” 라고 고백한 어거스틴처럼.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의 인생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금 촛대의 빛을 내는 재료는 출27장 20절에 의하면 순결

한 감람나무 기름이라고 했다. 이 감람나무 기름은 ‘성령’ 을 상징한다(행10장38절)

 즉 순결한 감람나무 기름이 부어졌기 때문에 금촛대는 아름다운 빛을 낼 수 있듯이.. 여러분이 세상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령충만할 때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이 비쳐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금촛대의 불빛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할 책임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듯이. 오늘 우리도 성령의 등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  이 말씀은 “성령의 등불을 끄지 말아라” 는 뜻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성전삼고 거하신다.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서 나를 주관하시며 다스

리신다. 그러나 내가 그 분께 순종하지 않고 내 속에 범죄가 가득할 때 내 속에 있는 등불은 가물거린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성령을 소멸치 마라”


☞ 금촛대에서 드리는 기도

 “내가 주님과 분리되지 않게 하시고 성령을 소멸치 않게 하옵소서...”

 6) 분향단의 영적의미와 기도

 분향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향이다. 하늘을 향해 계속 피어오르고 있는 향불과 향연기가분향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계 5:8 절에 보면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왜 기도를 해도 응답받지 못할까?”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이 분향단의 위치를 주목해 보라.

 나는 번제단을 통과했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감격의 눈물이 나오는가?” 나는 물두멍을 통과했는가? “지금 당신 삶에 더러운 부분은 없습니까” 나는 떡상을 통과했는가? 영의 양식인 말씀을 잘 섭취하고 있습니까? 나는 금촛대를 통과했는가? 성령의 불꽃이 꺼져 있지는 않는가?

 당신에게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그리고 그 삶을 고쳐라. 그럴 때 여러분의 기도의 연기가 하늘에 올라가서 응답받게 될 것이다.


☞ 분향단에서 드리는 기도

 “죄에서 건져 주신 것 감사

  성령충만하게 해 주신 것 감사

  치료해 주신 것 감사

  아브라함의 복을 주신 것 감사

  시험과 환란에서 건져주신 것 감사

  모든 화를 변하여 유익이 되게 하신 것 감사..”


 7) 휘장의 영적의미와 기도

 옛날에는 이 휘장을 통해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이 차단되어 있었다. 아주 굳게 닫혀져 있었기 때문. 대제사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경고함.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음. 죄인은 결코 들어갈 수 없음”

 만약 이 원칙을 무시하고 누군가가 휘장을 열고 지성소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레위기 16장 1,2절을 보라. 아론의 두 아들이 그냥 나갔다가 죽지 않았는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던 대제사장도 일년에 단 한번 그것도 온몸에 속죄의 피를 뿌리고서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마태복음 27장 50절 이하를 보라 “ 예수께서 죽자마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고..”

 성소에 있던 휘장이 찢어짐으로 지성소가 보이게 된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이 휘장을 하나님께서 찢으셨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아들을 죽이시면서 막힌 담을 허신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어지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에 있었던 당시 남북전쟁에 참여했던 어느 군인 한 명이 아주 허름하고 온몸이 찢겨진 초라한 모습으로 대통령께 면회를 신청.. 그러나 면회가 허락되지 않음. 그 병사는 ‘나는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렇게 상처를 입고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이후 내 삶에 대한 아무런 보상을 못 받았다. 나의 이런 사정을 아뢰고 싶다’

 그러나 경호원들에게 그 사정은 통하지 않았다. 그에게 링컨을 만날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링컨 대통령 아들인 덷 링컨이 백안관 앞에서 놀다가 이 부상병이 그날도 경비원에게 애원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 대통령의 아들은 그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듣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덷 링컨이 이 부상병의 손을 잡고 들어간다. 경비원들이 어디를 가느냐 묻자 덷 링컨이 말한다. ‘이 아저씨는 내 친구입니다. 저와 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이 부상병은 링컨 앞에서 자기의 사정을 아뢰게 되었고 대통령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아무도 왕이신 하나님의 궁전에 접근할 수 없다. 찢기우고 상처받은 부상병과 같은 우리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관심을 가지시고 찾아오신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그분의 피묻은 손을 붙잡고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한 궁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정을 그 분께 아뢰고 그 분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 휘장앞에서 드리는 기도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어주시고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8) 언약궤 영적의미와 기도

 성소의 휘장을 열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이 언약궤를 발견하게 된다. 대제사장은 이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을 찾아 나온 목적을 아뢰고 응답을 받는다.


언약궤 안의 내용물과 그것이 주는 교훈

히브리서 9장 4절을 읽어보라. 언약궤 안에 뭐가 들어 있다고 했는가?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언약의 비석.

그런데 왜 이 세 가지가 언약궤 안에 들어 있는 것일까? 한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 가지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범하는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죄를 보여준다”

 우리가 이 땅에서 범하는 세 가지는 죄는 다음과 같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법을 파괴한 것이요,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도전한 것이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오히려 불평과 원망으로 대한 것이 언약궤 안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약궤 안에 인간의 죄가 우굴거리고 있는 것을 말한다.


 속죄소의 의미와 교훈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인간의 죄가 우굴거리고 있는 언약궤 위에는 항상 뚜겅이 닫혀 있다는 것이다. ‘속죄소’ 라고 불려지기도 하고 ’은혜의 보좌’ 라고도 불려지기도 한다.

 평소에 이 언약궤가 ‘은혜의 보좌’ 로 덮혀져 있기에 대제상장은 이 언약궤 앞에서 언약궤 위에 피를 뿌린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피밖에 안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의 내용물은 피 아래 있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3:25절을 보라. 예수님의 피로 인해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무슨 말인가? 은혜의 보좌를 인해 간과하심으로..란 뜻. 다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우리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과 진노를 피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므로 그 피가 내 죄를 덮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 피를 보시고 내 죄를 간과하신다는 뜻이다

 언약궤, 이 앞에서 대제사장은 피를 뿌리고 하나님과 교제의 대화를 시작했듯이. 나를 위해 피흘려 주신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와 하나님 사이의 교제가 오늘도 시작되고 감히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된 것이다.


☞ 언약궤 앞에서 드리는 기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부모형제를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결 론

누군가 ‘천국은 무릎으로 전진하는 나라’ 라고 했다. 성막형 기도로 오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성막형 기도로 3시간 이상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면 오늘 하루는 그리고 우리의 일생은 그 기도가 주는 엄청난 능력과 평온으로 새롭게 창조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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