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라 (눅 12:29~34)
2006. 7. 16. 00:17ㆍ목양자료/2.설교자료
바꿔라 (눅 12:29~34)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세상에는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원한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롯 유다가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영생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영원한 고통과 유황불의 형벌을 받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나, 에서가 잠시 잠깐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팔아먹고 영원히 후회하는 사람이 된 것도 일시적인 것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의 한 사례입니다.
사람들은 바꾸기를 좋아합니다. 핸드폰도 유행에 따라 바꿉니다. 살던 집도 더 좋은 집으로 바꿉니다. 함께 교제하던 친구나 애인이나 심지어 남편과 아내도 바꾸어 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못 바꾸면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진짜 바꾸어야 할 것을 바꾸지 못하면 동이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일시적인 것이고, 땅의 것에 소망과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았다면 영원하며, 가치가 있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치관이 바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가졌다면 과감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출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 받는 일입니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어떤 권세를 붙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천국까지 따라가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살기위해서 지금까지 올바르지 못한 가치관을 소유하며 살아왔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합니까?
1. 세상의 모든 것은 잠깐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6~20절에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얼마 전인 금년 7월에 “용의 눈물”을 재방영 되었는데 그렇게 위세당당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태조 이성계도 잠깐 동안에 세월이 지나가 한줌의 흙이 된 지 옛날이 되었고, 더욱 허무한 것은 이성계 역을 맡았던 탤런트 김무생 씨도 죽어 이제는 형체도 찾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편 90편 10~12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이 70살, 80살을 산다고 해도 새가 날아가듯이 신속히 날아간다고 말씀합니다. 인생의 년수가 아침 안개나 이슬처럼, 들의 풀처럼 시들고, 전광석화와 같이 빨리 지나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한 말씀처럼 이 땅에서 인생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의 호흡이 다하는 일에는 권세가 있어도 소용없고, 재물이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수십 년 전 이란의 팔레비 왕은 당시 우리나라 예산의 3배를 가졌으나 고국으로 부터 축출당해 미국 시카고에서 암 병 수술을 받고 수술비용을 못 내 시달리다가 죽었고,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은 그 당시 500억 불의 재산을 가졌지만 하와이에서 쓸쓸히 죽고 말았습니다. 권력을 가졌다고 큰 재물을 가졌다고 해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 인생인데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천 년, 만 년 살 줄 알고 속아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인생은 잠시 동안 여행하다 끝나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존재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2. 영원한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29~3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물었습니다.『선생님! 저 하늘에 별의 수효가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때 공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이라 알 수 없다.』라고 대답 했습니다.그러자 제자는 다시 묻기를 『선생님! 그렇다면 바로 눈 위에 있는 눈썹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라고 물어 보았습니다.그 때의 대답은 『알 필요가 없어서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전해옵니다. 먼 것도 모르고, 가까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까? <아멘>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번거롭고 힘든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와 과거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식주가 필요함을 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여러 가지 필요가 있음을 아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필요 필요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모두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긍휼과 때를 따라 돕는 은총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까마귀에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도록 눈과 날개와 부리를 주셔서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까마귀가 직접 심지 않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도록 다른 짐승이 가지지 아니한 특별한 기능을 주셨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놀라운 생존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한 동식물의 공생공존은 생태계를 유지시켜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합화에게 아름다운 모습과 영광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잘 만든 조화라 할지라도 물기를 머금기도 하고, 성장의 변화가 나타나는 생화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백합화 한 송이를 가리키며, 솔로몬의 모든 영화로도 견줄 수 없다고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은 이처럼 하찮은 새 한 마리와 꽃 하나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물 중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특히 구원받은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동식물도 책임을 지시는데 인생들에게 이 땅에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아니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롬8:32)고 약속하며,
본문 31-32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기를 기뻐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권력이나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잠깐 후에 다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가령 10만원을 투자했다가 10년 후에 1억을 찾는다고 하면 투자하지 아니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이나 물질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것은 이보다 더욱 큰 유익으로 되돌아오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멸망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과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신다는 은혜는 상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을 바로 깨닫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2장 본문 다음에 45~48절에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구원 받고 영생 얻은 성도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지혜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마태복음 6:33절은 좀 더 자세하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일에는 우선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을 하긴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며, 힘은 힘대로 들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갔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은 도끼를 가지고 5시간 동안 나무를 베었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일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꼬박 5시간에 걸쳐 나무를 베었고, 또 한 사람은 50분에 걸쳐 나무를 벤 후 10분 쉬기를 거듭했다. 그런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5시간 동안 꼬박 일한 사람보다 10분 쉰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베었답니다..꼬박 일한 나무꾼이 그 비결을 묻자 「능률의 나무꾼」이 대답합니다.
“ 나는 10분 쉬는 동안 도끼날을 갈았습니다.”라고 알려 주더랍니다.
1)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삶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머리로서 다스리시는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37절에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고 말씀합니다. 39절 후반 절에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고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한 말씀대로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사는 것은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 함께 끝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영원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잠깐 동안에 지나가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은 영원히 내세에도 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순교자 Jim Eliot이라는 사람은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이것이 내게 유익이냐, 손해냐?”를 따지는 것이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를 먼저 생각하고 믿음으로 행하여야 영원한 이익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쉽게 추구하는 “육신의 정욕”이란 먹고 마시는 것과 성적 욕망을 말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 년에 관광비용으로 소비하는 돈이 엄청나답니다. 시편 기자는 “내 눈을 들어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Henry F. Lyte씨는 “우리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변하고, 썩어버리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교훈했습니다.
“이생의 자랑”에서 자랑은 pride인데 “허풍, 자랑”(braggart)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모든 허풍과 자랑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으로 영원한 것을 위해 투자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5장 44절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세상의 영광과 자랑만 추구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47절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풀처럼 곧 시들어 죽고 맙니다. 인간의 모든 영광 즉 권세나 인기, 이 모든 것들은 풀의 꽃과 같이 곧 시들어 떨어지고 맙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로 구별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얼마나 많은 대가가 지불된 것인지 아십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면 좁은 길로 가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목자가 되신 예수님의 음성과 지도에 따라가는 양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염려를 버리고, 영적인 일에 우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은 믿음을 좇는 삶이고, 우선순위를 좇는 삶이며, 구제하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를 그분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말씀합니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짐꾼입니다. 저 높은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 많은 장비가 필요 하는데 산 중턱까지 짐을 옮겨주는 사람을 헬퍼(helper)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헬퍼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에서도 절대적인 능력과 힘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헬퍼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헬퍼가 되십니다. "네 짐을 내게 다 맡겨라." "염려도 맡겨라." "네 경영하는 계획도 맡겨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난로 가에 앉아서 책을 읽던 뉴턴이 갑자기 큰 소리로 하녀를 부르더니 "난로불이 너무 뜨거우니 불 좀 낮추라"고 말합니다. 그 난로는 장작을 사용해서 불을 지피는 것이므로 당장 줄이기는 힘듭니다. 요즘의 전깃불이나 가스 불처럼 쉽게 조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장작불을 어떻게 낮춥니까?
하녀는 잠시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답니다. "선생님께서 의자를 조금 뒤로 물리시면 되지 않겠어요?" 불을 낮추는 것과 의자를 뒤로 물리는 것. 어느 편이 더 쉽겠습니까? 지금 뉴턴은 매우 중요한 것을 생각하느라고 의자를 뒤로 물리면 된다는 사소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쪽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까? 무엇을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대개 근심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시시한 것부터 생각하는 반면 걱정 근심 없이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중요한 것부터 생각합니다. 무엇부터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염려를 함으로써 하나님도 안 보이게 되고, 그 동안 받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망각하며 부인하게 됩니다.
염려에 사로잡혀 있으면 나는 전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끼고, 내 주위에 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듯 염려함으로 불신앙에 빠지게 되고, 생명도 잃게 되며, 가장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잊게 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까, 출세를 할까, 어떻게 하면 인기를 얻을까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이 잘 될까 생각하며, 없어지지 아니한 보물을 쌓아두는 삶과 영성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영혼이 먼저 잘 되는 길을 택해야 되고, 또 영혼이 잘 되면 다른 모든 것도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가령 집을 사도 먼저 기도할 방이 있나 없나를 살펴보고, 여기서 영혼의 안식처인 교회와 멀지는 않는 지, 교회 출석을 잘 할 수 있나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교회가 멀어서 못 나가간다면 프리미엄 많이 붙을 아파트를 찾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봉급이 좀 적어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면 그런 직장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성도 여러분 수입이 조금 줄어들어도 신앙적으로 잘 살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4)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세계는 나의 교구다. 언제, 어디서나 영혼구원!”을 외치며, 하루 평균 90마일(약 145km) 이상을 말을 타고 다녔으며, 일주일에 평균 15회 설교를 하였고, 일생동안 42,400회의 설교와 25만 마일, 약 402,336km를 다녔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전도하시기 위해 얼마나 찾아가십니까?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십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2:18절에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방인들에게 구원과 심판을 알리시기 위하여 오셨고,
마태복음 9:10-13절에는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하시며,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하여 오셨으며,
마태복음 18:12-14절에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마가복음 1장 38절에는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목적도 영혼을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전도하는 일이 살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와 함께 70년대 권투 계를 3분했던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었습니다. 흑인 슬럼가에서 태어난 조지 포먼은 어려서 학교 가기를 싫어했고, 자라나며 휴스턴 뒷골목의 불량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의 가공할 파괴력을 발견한 한 권투 코치에 의해 그는 권투선수가 되어 1973년 당대의 무적 조 프레이저를 이기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1974년 그의 나이 28세가 되던 해 무하마드 알리에게 충격적으로 패배한 후 깊은 좌절에 빠져 권투 계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예수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후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마약과 범죄로 방황하는 흑인 청소년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교회를 개척하고 체육을 가르치고 제자 훈련을 하게 되지만 이 청소년들에게 좀 더 체계적인 믿음과 삶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그는 청소년 회관을 건축하다가 재정난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권투선수로는 회갑의 나이로 불려지는 38세에 회관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사각의 링에 서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나이 45세라는 나이로 WBA와 IBF 통합 챔피언이 되는 신화적인 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를 잘 아는 스포츠 기자는 “그의 나이 45세가 되던 해 그의 챔피언 전에 나선 그를 가르쳐 아마 복싱사상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명예를 위해서도 아닌 다른 동기로 게임에 임한 유일한 케이스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 마지막 챔피언 전을 치르면서 그의 마음속에 복음으로 그가 양육하는 수많은 청소년 제자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주님께 기도하며 경기를 진행했다고 간증합니다.
그의 딸 나탈리는 그의 아버지의 생애를 증언하며 그녀의 아버지가 예수님 을 만난 후 가장 중요한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날이후 내 아버지에게는 권투도 돈도 명예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내 아버지의 열정은 오직 한 일,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니엘 12장 2~3절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씀합니다.
영혼을 구원해 내는 일이 얼마나 크고, 귀하고, 영원한 상급을 받는지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을 다른 일에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일, 선교하는 일에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늦은 여름이 너무나 소중한 여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거나 공부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영혼을 구원하며, 전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사시기를 부탁합니다.
5) 보화를 하늘에 쌓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기회 있는 대로 잠깐 있다 없어지는 재물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에 그 무거운 짐을 긴 막대 한쪽 끝에 매달고, 그리고 막대기 다른 쪽 끝에는 그 짐과 비슷한 무게의 돌을 매달아 어깨에 매어 운반한다고 합니다. 양쪽 끝에 비슷한 무게의 짐이 있으면 한쪽에만 무거운 짐이 있을 때보다는 균형이 잘 잡혀 덜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무겁고 힘든 짐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이 가볍고 쉽게, 그리고 평안하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이웃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생활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이 한층 기쁘고, 소망이 넘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의복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면 조금 모아둔 돈도 얼마가지 않아 다 없어지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도 세상에 쌓아 둔 재물을 도적맞거나 부도나거나 불타 없어지진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유산을 많이 남겨주어도 3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령사업을 위해 쓰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 사용하고, 구제를 위해 주의 이름으로 써 둔 것은 하늘에 쌓아둔 것이 되어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도리어 세상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이 복되고 귀한 진리를 무시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청지기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맡아 관리하던 청지기가 잘못 사용한다는 말을 주인이 듣고 사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지기가 생각하기를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도무지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이때에 한 지혜를 생각해냈습니다. 자기가 아직 재물을 맡아 관리하는 동안에 빚쟁이들을 불러다가 탕감해주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해 주리라 하고 기름 100말은 50말로, 밀 100석은 80석으로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주인이 청지기가 한 일을 알고는 책망하지 않고, 지혜롭게 했다고 칭찬하신 것은 우리의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깨닫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소유한 것은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청지기인 성도는 주인인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요, 영원한 상급을 받는 일입니다. 물질이든 건강이든 재능과 기술이든지 가지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 아니며 주님의 뜻대로 쓰면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눅 16:9)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하는데 재물을 사용하면 장차 천국에서 구원받은 영혼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고 면류관과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질가지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선한 사업에 써두는 것이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사람이 소유한 것을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있는 한 내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다 놓고 떠나거나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회 있는 대로 성령의 감동이 오는 대로 순종하여 영원히 남는 천국에 쌓아두어야 하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물질을 영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돈 쓰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것입니다.
돈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12:3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우리의 물질은 반드시 함께 간다.”(God's pleasure and our treasures must go together)라고 했습니다.
물질을 하 나님께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믿음도 없는 사람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충성되게 활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0~11절에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물질은 하나님 보시기에 작은 것입니다. 불의한 것입니다. 이 물질을 바치고 쓰는 데 충성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큰 것과 참된 것을 우리에게 맡기시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일시적인 세상 것에 집착하면 언제나 염려와 불안이 따르고, 영원한 것에 집착하면(fixed on)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빌4:5-9).
물질을 종으로 잘 부리면 훌륭한 종(wonderful servant)이 되고, 물질이 내 상전이 되면 무서운 주인(tremble master)이 되고. 폭군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똑같은 위치에 놓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물질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3절에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고 말씀합니다.
스페인 격언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본문 31절에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세상의 어느 것보다 다른, 곧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물질도, 재능도, 건강도, 시간도 영원한 것을 위해 투자하며,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목표로 바꾸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 빌어 드립니다. (황영복 목사)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세상에는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원한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롯 유다가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영생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영원한 고통과 유황불의 형벌을 받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나, 에서가 잠시 잠깐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팔아먹고 영원히 후회하는 사람이 된 것도 일시적인 것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의 한 사례입니다.
사람들은 바꾸기를 좋아합니다. 핸드폰도 유행에 따라 바꿉니다. 살던 집도 더 좋은 집으로 바꿉니다. 함께 교제하던 친구나 애인이나 심지어 남편과 아내도 바꾸어 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못 바꾸면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진짜 바꾸어야 할 것을 바꾸지 못하면 동이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일시적인 것이고, 땅의 것에 소망과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았다면 영원하며, 가치가 있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치관이 바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가졌다면 과감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출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 받는 일입니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어떤 권세를 붙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천국까지 따라가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살기위해서 지금까지 올바르지 못한 가치관을 소유하며 살아왔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합니까?
1. 세상의 모든 것은 잠깐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6~20절에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얼마 전인 금년 7월에 “용의 눈물”을 재방영 되었는데 그렇게 위세당당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태조 이성계도 잠깐 동안에 세월이 지나가 한줌의 흙이 된 지 옛날이 되었고, 더욱 허무한 것은 이성계 역을 맡았던 탤런트 김무생 씨도 죽어 이제는 형체도 찾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편 90편 10~12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이 70살, 80살을 산다고 해도 새가 날아가듯이 신속히 날아간다고 말씀합니다. 인생의 년수가 아침 안개나 이슬처럼, 들의 풀처럼 시들고, 전광석화와 같이 빨리 지나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한 말씀처럼 이 땅에서 인생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의 호흡이 다하는 일에는 권세가 있어도 소용없고, 재물이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수십 년 전 이란의 팔레비 왕은 당시 우리나라 예산의 3배를 가졌으나 고국으로 부터 축출당해 미국 시카고에서 암 병 수술을 받고 수술비용을 못 내 시달리다가 죽었고,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은 그 당시 500억 불의 재산을 가졌지만 하와이에서 쓸쓸히 죽고 말았습니다. 권력을 가졌다고 큰 재물을 가졌다고 해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 인생인데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천 년, 만 년 살 줄 알고 속아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인생은 잠시 동안 여행하다 끝나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존재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2. 영원한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29~3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물었습니다.『선생님! 저 하늘에 별의 수효가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때 공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이라 알 수 없다.』라고 대답 했습니다.그러자 제자는 다시 묻기를 『선생님! 그렇다면 바로 눈 위에 있는 눈썹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라고 물어 보았습니다.그 때의 대답은 『알 필요가 없어서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전해옵니다. 먼 것도 모르고, 가까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까? <아멘>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번거롭고 힘든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와 과거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식주가 필요함을 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여러 가지 필요가 있음을 아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필요 필요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모두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긍휼과 때를 따라 돕는 은총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까마귀에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도록 눈과 날개와 부리를 주셔서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까마귀가 직접 심지 않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도록 다른 짐승이 가지지 아니한 특별한 기능을 주셨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놀라운 생존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한 동식물의 공생공존은 생태계를 유지시켜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합화에게 아름다운 모습과 영광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잘 만든 조화라 할지라도 물기를 머금기도 하고, 성장의 변화가 나타나는 생화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백합화 한 송이를 가리키며, 솔로몬의 모든 영화로도 견줄 수 없다고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은 이처럼 하찮은 새 한 마리와 꽃 하나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물 중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특히 구원받은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동식물도 책임을 지시는데 인생들에게 이 땅에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아니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롬8:32)고 약속하며,
본문 31-32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기를 기뻐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권력이나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잠깐 후에 다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가령 10만원을 투자했다가 10년 후에 1억을 찾는다고 하면 투자하지 아니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이나 물질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것은 이보다 더욱 큰 유익으로 되돌아오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멸망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과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신다는 은혜는 상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을 바로 깨닫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2장 본문 다음에 45~48절에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구원 받고 영생 얻은 성도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지혜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마태복음 6:33절은 좀 더 자세하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일에는 우선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을 하긴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며, 힘은 힘대로 들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갔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은 도끼를 가지고 5시간 동안 나무를 베었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일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꼬박 5시간에 걸쳐 나무를 베었고, 또 한 사람은 50분에 걸쳐 나무를 벤 후 10분 쉬기를 거듭했다. 그런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5시간 동안 꼬박 일한 사람보다 10분 쉰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베었답니다..꼬박 일한 나무꾼이 그 비결을 묻자 「능률의 나무꾼」이 대답합니다.
“ 나는 10분 쉬는 동안 도끼날을 갈았습니다.”라고 알려 주더랍니다.
1)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삶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머리로서 다스리시는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37절에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고 말씀합니다. 39절 후반 절에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고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한 말씀대로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사는 것은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 함께 끝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영원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잠깐 동안에 지나가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은 영원히 내세에도 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순교자 Jim Eliot이라는 사람은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이것이 내게 유익이냐, 손해냐?”를 따지는 것이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를 먼저 생각하고 믿음으로 행하여야 영원한 이익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쉽게 추구하는 “육신의 정욕”이란 먹고 마시는 것과 성적 욕망을 말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 년에 관광비용으로 소비하는 돈이 엄청나답니다. 시편 기자는 “내 눈을 들어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Henry F. Lyte씨는 “우리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변하고, 썩어버리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교훈했습니다.
“이생의 자랑”에서 자랑은 pride인데 “허풍, 자랑”(braggart)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모든 허풍과 자랑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으로 영원한 것을 위해 투자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5장 44절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세상의 영광과 자랑만 추구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47절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풀처럼 곧 시들어 죽고 맙니다. 인간의 모든 영광 즉 권세나 인기, 이 모든 것들은 풀의 꽃과 같이 곧 시들어 떨어지고 맙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로 구별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얼마나 많은 대가가 지불된 것인지 아십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면 좁은 길로 가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목자가 되신 예수님의 음성과 지도에 따라가는 양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염려를 버리고, 영적인 일에 우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은 믿음을 좇는 삶이고, 우선순위를 좇는 삶이며, 구제하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를 그분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말씀합니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짐꾼입니다. 저 높은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 많은 장비가 필요 하는데 산 중턱까지 짐을 옮겨주는 사람을 헬퍼(helper)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헬퍼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에서도 절대적인 능력과 힘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헬퍼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헬퍼가 되십니다. "네 짐을 내게 다 맡겨라." "염려도 맡겨라." "네 경영하는 계획도 맡겨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난로 가에 앉아서 책을 읽던 뉴턴이 갑자기 큰 소리로 하녀를 부르더니 "난로불이 너무 뜨거우니 불 좀 낮추라"고 말합니다. 그 난로는 장작을 사용해서 불을 지피는 것이므로 당장 줄이기는 힘듭니다. 요즘의 전깃불이나 가스 불처럼 쉽게 조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장작불을 어떻게 낮춥니까?
하녀는 잠시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답니다. "선생님께서 의자를 조금 뒤로 물리시면 되지 않겠어요?" 불을 낮추는 것과 의자를 뒤로 물리는 것. 어느 편이 더 쉽겠습니까? 지금 뉴턴은 매우 중요한 것을 생각하느라고 의자를 뒤로 물리면 된다는 사소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쪽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까? 무엇을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대개 근심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시시한 것부터 생각하는 반면 걱정 근심 없이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중요한 것부터 생각합니다. 무엇부터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염려를 함으로써 하나님도 안 보이게 되고, 그 동안 받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망각하며 부인하게 됩니다.
염려에 사로잡혀 있으면 나는 전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끼고, 내 주위에 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듯 염려함으로 불신앙에 빠지게 되고, 생명도 잃게 되며, 가장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잊게 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까, 출세를 할까, 어떻게 하면 인기를 얻을까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이 잘 될까 생각하며, 없어지지 아니한 보물을 쌓아두는 삶과 영성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영혼이 먼저 잘 되는 길을 택해야 되고, 또 영혼이 잘 되면 다른 모든 것도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가령 집을 사도 먼저 기도할 방이 있나 없나를 살펴보고, 여기서 영혼의 안식처인 교회와 멀지는 않는 지, 교회 출석을 잘 할 수 있나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교회가 멀어서 못 나가간다면 프리미엄 많이 붙을 아파트를 찾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봉급이 좀 적어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면 그런 직장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성도 여러분 수입이 조금 줄어들어도 신앙적으로 잘 살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4)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세계는 나의 교구다. 언제, 어디서나 영혼구원!”을 외치며, 하루 평균 90마일(약 145km) 이상을 말을 타고 다녔으며, 일주일에 평균 15회 설교를 하였고, 일생동안 42,400회의 설교와 25만 마일, 약 402,336km를 다녔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전도하시기 위해 얼마나 찾아가십니까?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십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2:18절에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방인들에게 구원과 심판을 알리시기 위하여 오셨고,
마태복음 9:10-13절에는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하시며,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하여 오셨으며,
마태복음 18:12-14절에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마가복음 1장 38절에는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목적도 영혼을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전도하는 일이 살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와 함께 70년대 권투 계를 3분했던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었습니다. 흑인 슬럼가에서 태어난 조지 포먼은 어려서 학교 가기를 싫어했고, 자라나며 휴스턴 뒷골목의 불량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의 가공할 파괴력을 발견한 한 권투 코치에 의해 그는 권투선수가 되어 1973년 당대의 무적 조 프레이저를 이기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1974년 그의 나이 28세가 되던 해 무하마드 알리에게 충격적으로 패배한 후 깊은 좌절에 빠져 권투 계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예수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후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마약과 범죄로 방황하는 흑인 청소년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교회를 개척하고 체육을 가르치고 제자 훈련을 하게 되지만 이 청소년들에게 좀 더 체계적인 믿음과 삶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그는 청소년 회관을 건축하다가 재정난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권투선수로는 회갑의 나이로 불려지는 38세에 회관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사각의 링에 서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나이 45세라는 나이로 WBA와 IBF 통합 챔피언이 되는 신화적인 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를 잘 아는 스포츠 기자는 “그의 나이 45세가 되던 해 그의 챔피언 전에 나선 그를 가르쳐 아마 복싱사상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명예를 위해서도 아닌 다른 동기로 게임에 임한 유일한 케이스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 마지막 챔피언 전을 치르면서 그의 마음속에 복음으로 그가 양육하는 수많은 청소년 제자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주님께 기도하며 경기를 진행했다고 간증합니다.
그의 딸 나탈리는 그의 아버지의 생애를 증언하며 그녀의 아버지가 예수님 을 만난 후 가장 중요한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날이후 내 아버지에게는 권투도 돈도 명예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내 아버지의 열정은 오직 한 일,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니엘 12장 2~3절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씀합니다.
영혼을 구원해 내는 일이 얼마나 크고, 귀하고, 영원한 상급을 받는지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을 다른 일에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일, 선교하는 일에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늦은 여름이 너무나 소중한 여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거나 공부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영혼을 구원하며, 전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사시기를 부탁합니다.
5) 보화를 하늘에 쌓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기회 있는 대로 잠깐 있다 없어지는 재물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에 그 무거운 짐을 긴 막대 한쪽 끝에 매달고, 그리고 막대기 다른 쪽 끝에는 그 짐과 비슷한 무게의 돌을 매달아 어깨에 매어 운반한다고 합니다. 양쪽 끝에 비슷한 무게의 짐이 있으면 한쪽에만 무거운 짐이 있을 때보다는 균형이 잘 잡혀 덜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무겁고 힘든 짐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이 가볍고 쉽게, 그리고 평안하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이웃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생활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이 한층 기쁘고, 소망이 넘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의복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면 조금 모아둔 돈도 얼마가지 않아 다 없어지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도 세상에 쌓아 둔 재물을 도적맞거나 부도나거나 불타 없어지진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유산을 많이 남겨주어도 3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령사업을 위해 쓰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 사용하고, 구제를 위해 주의 이름으로 써 둔 것은 하늘에 쌓아둔 것이 되어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도리어 세상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이 복되고 귀한 진리를 무시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청지기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맡아 관리하던 청지기가 잘못 사용한다는 말을 주인이 듣고 사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지기가 생각하기를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도무지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이때에 한 지혜를 생각해냈습니다. 자기가 아직 재물을 맡아 관리하는 동안에 빚쟁이들을 불러다가 탕감해주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해 주리라 하고 기름 100말은 50말로, 밀 100석은 80석으로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주인이 청지기가 한 일을 알고는 책망하지 않고, 지혜롭게 했다고 칭찬하신 것은 우리의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깨닫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소유한 것은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청지기인 성도는 주인인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요, 영원한 상급을 받는 일입니다. 물질이든 건강이든 재능과 기술이든지 가지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 아니며 주님의 뜻대로 쓰면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눅 16:9)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하는데 재물을 사용하면 장차 천국에서 구원받은 영혼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고 면류관과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질가지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선한 사업에 써두는 것이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사람이 소유한 것을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있는 한 내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다 놓고 떠나거나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회 있는 대로 성령의 감동이 오는 대로 순종하여 영원히 남는 천국에 쌓아두어야 하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물질을 영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돈 쓰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것입니다.
돈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12:3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우리의 물질은 반드시 함께 간다.”(God's pleasure and our treasures must go together)라고 했습니다.
물질을 하 나님께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믿음도 없는 사람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충성되게 활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0~11절에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물질은 하나님 보시기에 작은 것입니다. 불의한 것입니다. 이 물질을 바치고 쓰는 데 충성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큰 것과 참된 것을 우리에게 맡기시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일시적인 세상 것에 집착하면 언제나 염려와 불안이 따르고, 영원한 것에 집착하면(fixed on)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빌4:5-9).
물질을 종으로 잘 부리면 훌륭한 종(wonderful servant)이 되고, 물질이 내 상전이 되면 무서운 주인(tremble master)이 되고. 폭군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똑같은 위치에 놓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물질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3절에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고 말씀합니다.
스페인 격언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본문 31절에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세상의 어느 것보다 다른, 곧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물질도, 재능도, 건강도, 시간도 영원한 것을 위해 투자하며,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목표로 바꾸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 빌어 드립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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