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신앙 생활하라

2006. 7. 9. 00:11목양자료/1.기독교자료

 

가슴으로 신앙 생활하라

우리는 머리로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기 때문에 [지성적 예수화]는 완벽할 정도로 잘 이루어져 있으나 [가슴]은 예수 없는 세속적인 것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종종 [신앙적 인식과 삶]이 동일하지 않는 것을 한탄한다. 그러나 [인식과 삶]은 완전 별개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심각하다. 우리가 [사랑한다 미워한다, 교만하다 겸손하다, 선하다 악하다]등의 삶의 문제는 머리의 작용 아니고 [가슴의 작용]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생활상에 나타나는 [언어마저도 감정의 파도]를 타고 나타난다.
그리고 EQ심리학에서 인간 삶의 80%는 [감성적 영향]을 받는다는 학문적 연구결과를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또 EQ심리학에서 [IQ와 EQ는 각각 별개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머리의 예수화와 가슴의 예수화]는 완전 별개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의 신앙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개발해서 목회현장에 투입하는 사명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1)[찬송가를 가슴으로 부르게 한다] 이것은 가슴으로 <느끼며> 부르게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멜로디나 소리]에 그리고 [지성적 인식]에 중점을 두지 말고 <가슴의 느낌과 작용>에 전 신경을 집중하면서 노래를 부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노래의 가사가 구절마다 가슴에 와 닿아서 [짜릿한 느낌과 감동]을 가지게 한다. 때로는 <가슴에 손을 얹고>부르는 것이 좋다. 이것이 [가슴을 키우는 방법]이요, [예수님 가슴을 학습하는 훈련방법] 중의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반복함으로 [감성적 예수화]가 가능해 진다.


2) [성경을 가슴으로 읽어라]  이것은 [감성적 독서]를 뜻한다.
우리는 TV에 등장하는 [그림의 사람]과 함께 울고, 웃고, 기뻐한다. 이처럼 TV화면(사람)의 감정에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은 TV를 눈으로만 보지 않고 [가슴으로 본다]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성경을 눈으로만 보지말고 가슴으로 읽으면 성경에 있는 [주님의 감정을 느끼고 체험] 할 수 있다. 이것이 잘 안 된다는 것은 [가슴의 활용기법]이 미숙해서다. 감성적 학습훈연을 반복 또 반복하게 되면 어렵지 않게 성경의 주님 감정을 [느끼고, 깨우치고, 체험]을 가능케 해 준다. 이것이 [예수님 감정을 학습하는 훈련]이 된다는 점이다.


3) [예배를 가슴으로 드리라] 그러면 [하나님도 만나고 가슴도 키우는 시간]이 된다.
하나님과의 만남은[머리(눈)로가 아니고 마음(가슴)으로 한다]는 것이 성경 내용이다(마5:8, 요일4:12) 모든 체험은 가슴의 작용이요 [하나님 체험]도 가슴의 작용임에 틀림없다.
특히 [설교를 가슴으로 듣는 훈련]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머리로 설교를 듣게 되면 [머리의 속성상 비판과 평가]가 동반하기 때문에 전적인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설교를 가슴으로 듣게 되면 우선 [분석이니 평가니 하는 작용]이 완벽하게 사라진다. [가슴은 비판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설교자가 적절치 못한 내용의 설교를 했다고 가정해도 그것이 그에게는 [교육적, 신앙적인 유익한 느낌]이 있을 뿐 신앙적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왜? 가슴은 약자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동정한다.

[가슴으로 신앙 생활을 하라] 그러면 <가슴의 예수화>가 이루어진다. 가슴의 예수화가 안된 것은 반쪽의 기독교가 된다. 만일 가슴이 없는 사람을 상상해 본다면 가슴이 없는 기독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머리로 교제하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가슴)으로 교제하고 대화하고 체험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는 삶의 종교다. 만일 한국교회가 [삶이 없는 기독교]라는 비극적 역사기록에 동참하게 된다면 하나의 수치스러운 [역사적 유물]로 남아있게 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에도 [입술(지성)보다 마음(감성)이 중요하고 신앙적이다]라고 주장한다(마15:8,사29:13,겔33:31,렘12:2)


[미움은 사탄의 속성이다]를 체질화가 되게 한다

예수님은 산상 보훈에서 [복된 삶은 감정계발에 있다](마5:1-10)라고 설교하신 다음에 살인죄 강의에서 [미움은 사탄의 속성이다]라는 것을 강조하신다(마5:21-24) 여기서 예수님은 [악성감정의 악마성]을 지상에서 가장 강하게 역설하신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 이렇게 까지 심한 말씀을 하시게 되었는가? 그것은 이 가벼운 악성감정마저도 [사탄의 속성]에 속하기 때문에 접근을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이시다. 예수님은 [미움의 실존]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정확하게 읽고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마음 판에 조각]되기를 원해서 그처럼 강하게 언급하셨다.

감정은 하나님과 사탄이라는 [초인간적 배후세력]에 의해 조정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수용하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시다. 하나님의 속성과 사탄의 속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초요 상식이다. 이 상식이<체질화>가 되어야 한다. 내가 체질화가 되어있나 여부를 식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령 실생활에서 미움의 감정이 나타난다고 할 때에, 그 순간 [미움은 사탄의 속성이다]라는 명패나 인식이 본인의 눈앞에 등장하거나, 혹은 느낌 등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안 되면 아직 그는<체질화>가 안 된 증거다. 그래서 필자는 수강생들에게 [마5:21-22, 요일3:15]를 체질화가 될 때까지 [5분 암송]을 계속하라고 강조한다. 예수님의 감정관리 능력계발의 기초적 열쇠는 [마5:21-24, 요일3:15] 말씀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생산적인 활용기법을 습득함에 있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제자는 시작부터 [하나님과 사탄의 속성]에 관한 학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생각임을 깨우쳐야 한다

 [말씀의 포로가 되라] 그렇게 되면 해방이 가능해 진다.

이것은 말씀에 의해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를 말한다. 성경에 말씀이 "꿀 같이 달다"(겔3:2-3,계10:10,시119:103)는 내용이 있다. 이것이 말씀의 포로가 된 마음상태다.

이러한 점에서 <마5:21-24이나 요일3:15>이 꿀처럼 달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서 한없는 <감사의 정>을 느끼게 해 준다. 만일 이 말씀이 없었으면 어떻게 <사탄의 실존>을 인식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한 느낌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말씀에 포로가 된 사람의 마음상태다.

그러나 필자가 15년 전에는 이 말씀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었고, 때로는 이 말씀에서 일종의 슬픔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성 프란시스와 같은 성자에게나 어울리는 내용이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했었다. 이 말씀에서 <쓴맛>을 무수히 경험했었고 도망가고 싶은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말씀에 포로가 안 된 사람의 마음상태다. 필자는 자신의 삶의 역사 속에서 두 형태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람이 말씀에 포로가 되면 그 말씀에서 <단맛과 감사의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경험한 영성적 깨우침이다.


[교인들의 감정관리 훈련 경험을 축적하라]  그렇게 되면 본인 감정도 계발된다.

수련생 중에 겸손하거나 소극적인 사람은 자신의 교회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않는다. 주된 이유가 [내가 아직 완벽한 변화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 된 겸손이다. 교인을 훈련시킨다는 것은 자기 자신도 포함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가 계발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실천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그에게 효과적 계발학습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은 피 지도자의 변화 발전하는 모습을 경험하게 될 때에 지도자 자신에게 엄청난 [발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 자신이 15년 간 계속해서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주관해 왔다는 것은 특별한 뜻이 있다. 왜냐하면 15년 전에 명상의 집에서 이냐시오 영성수련(The Spiritual Exercises of St. Ignatius of Loyola)을 받고 [하나님 체험]을 해서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완벽한 감정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주관하고 집행하면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부터 [작은 악성감정도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영성수련을 주관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나는 영성수련 지도자다]라는 인식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을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내가 영성지도자다]라는 인식 자체가 중요한 [영성 학습]이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필자에게 두 종류의 제자가 있다.

하나는 [나는 영성운동가다]라는 인식이 매우 강한 사람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나는 영성수강생(훈련생)이다]라는 인식이 강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필자의 동일한 지도를 받으면서 변화 발전하는 모습은 엄청나게 다르게 나타난다. 전자는 급진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후자는 변화의 속도가 대단히 느리게 나타난다.

5분 명상 훈련]을 활용한다. 그러면 묵상과 관상기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 훈련은 <성경+마음+성령=영성적 사건>이라는 신앙적 결과가 나타난다

1) 그 필요성과 유용성을 깨우친다.
이것이 너무나 단순해서 믿지 못할 우려마저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단순한 방법]이 대중화와 친근감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말씀과 마음과 성령의 만남]의 사건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이처럼 선택된 말씀을 주님 앞에서 장기간 반복<암송>하게 하는 것은 <말씀의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한가지 명심할 것은 사람의 [마음의 변화]는 사람의 [효과적인 설득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기독교 전통적인 신앙을 수용해야 한다. 이러한 [명상적 암송]은 깨우침이 올 때까지 하루에 10 번씩 4주 이상 계속해야 하고, 가능하면 건너뛰는 날이 없어야 효과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깨우침이 있다]는 것은 [체질화가 된다]는 것과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깨우침의 증거]로 성경본문에 부합되는 [상징이나 느낌] 같은 것이 있게된다. 가령 [요일3:15]를 암송할 기간에 악성감정이 표출한다고 할 때에, <사탄의 그림자> 혹은<미움은 사탄의 도구다>등의 명패나 인식 혹은 느낌 등이 나타난다. 이것이 말씀을 깨우친 증거가 된다.

2) 구체적인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기도자세로 매일 10번씩, 4주 이상 반복 암송한다)

①<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이 부분을 암송할 때는 왼손에 사람그림을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칼로 사람을 찌르는 동작을 취한다-이 동작은 나약한 여자에게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를 하루에 10 번씩 4주 이상 계속한다.

②<마5:21-22> 간추린 내용 "형제에게 노하는 자, 라가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를 동일 방법으로 4주 이상 계속한다.

③<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를 하루 10 번씩 4주 이상 [깨우침]이 있을 때까지 계속한다. 이곳의 깨우침은 [심령의 가난]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현실적인 삶과 직결되는 [구체적인 용어나 느낌 등]으로 내 마음에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마음의 비움]이나 [포기의 신앙] 혹은 [청수]같은 상징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깨우침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수용한다.
그리고 4절 이하의 모든 부분도 3절과 동일한 방법으로 깨우침이 있을 때까지 암송한다.

④<마5: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를 동일 방법으로 깨우침이 있을 때까지 지속한다.

⑤ <마5: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를 동일 방법으로 지속한다.

⑥<마5: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를 동일 방법으로 암송한다.

⑦<마5: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를 동일하게 암송한다.

⑧<마5: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를 동일하게 암송한다.

⑨<마5: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를 동일하게 암송한다.

⑩<마5: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를 동일하게 암송한다.

⑪추가로 적당한 성구로 암송을 지속할 수 있다.
한 예: "너희는 세상의 소금(빛)이다"(마5:13-14)를 깨우침이 있을 때까지 암송함으로 체험적 신앙을 키운다.

) [사탄의 작전개시 신호]에 민감해야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하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 특히 사탄에게 승리하는 비결 중 하나는 [사탄의 작전개시 시호] 인식이다. 그 대표적인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ㄱ) 마음에 [상처]가 나타날 때, 이것은 [사탄의 작전개시 신호]다. 사탄이 작전을 개시했다는 것은 이에 대한 대비를 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참 기도를 통한 성령의 구원의 손길을 간청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탄은 초월적 존재이기에 성령의 개입으로만 승리할 수 있다.

ㄴ) [보기 싫다]는 느낌이 올 때, 이것은 [사탄의 작전개시 신호]다. ㄱ)과 동일한 태도를 취하면서 성령의 협조를 간청한다.

7) [악성감정 상황일기]를 작성한다.
이것은 [감정관리 학습]에 필요한 항목이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악성감정(분노, 미움, 짜증, 신경질, 질투, 교만, 원망, 등)의 표출 상황을 매일 밤 그 [내용과 처리기법]을 간단하게 기록한다. 이것이 학습효과가 있다.

8) 하나님의 감정을 반추한다. 이것이 감정계발 비법의 하나다.
ㄱ) 한 주에 한번 이상(새벽기도 때나 한가한 시간에) 내가 경험했던 [기쁨의 사건]을 반추해서 30분 정도 기쁨의 감정에 머물러 있는 명상훈련이다. 이것을 주기적으로 교인들과도 함께 실시하는 것이 좋다. "사랑, 기쁨, 화평 등"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의 감정이고 이 감정을 반추하고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 감정을 느끼고 소유하는 훈련이 된다. 

ㄴ) 한 주에 한번이상 30분 정도(점심식사 후)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산책하거나 혹은 아름다운추억을 상상하면서 산책한다. 이것도 하나님의 감정을 느끼고 소유하는 훈련이다. 이런 것들이 반복하게 되면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감정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된다.

9) [악성감정을 입으로 확인하라] 이것이 [감정관리 학습]이 되기 때문에 필요하다.
가령, 짜증이 표출했을 때, 본인이나 옆 사람이 <짜증은 사탄의 도구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부가 협의하면, 옆 사람이 말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을 반복하게 되면 효과적 감정계발 학습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법 중 하나다.

이상과 같이 9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본인 자신이 얼마나 철저한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적어도 [1주일 금식기도]를 실행할 정도의 의지와 결심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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